256. 컷
김수선이 말했다.
- 위에서는 잘 보이는 CCTV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 갈 테니까 위치 설명해.”
선우현의 오토바이는 구하니와 천호성을 구출할 때 망가졌다. 그는 차를 몰고 김수선이 알려준 장소로 이동했다.
김수선이 알려준 곳에는 나무가 있었다.
“와…. CCTV가 저 위에 있네. 잘했다. 김수선.”
- 제가 원래 잘합니다.
“그건 아니고.”
선우현이 안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형사님. 이 도로에는 CCTV가 없다면서요.”
안성준은 창고로 돌아가 조사하던 중이다.
- 네. 없습니다. 예상되는 시각에 그 도로를 지나간 차를 몇 대 찾긴 했습니다만, 농사용 트럭 같은 차량이라 상시 촬영되는 블랙박스가 없더군요.
“제가 CCTV를 한 대 찾았습니다.”
- 예? 그럴 리가….
“밭에 설치된 건데, 카메라 각도가 도로 쪽으로 향하네요?”
안성준의 목소리가 급해졌다.
- 지금 계신 곳이 어디입니까? 제가 당장 가겠습니다.
안성준은 10분도 걸리지 않아 현장에 도착했다.
“이 밭에 있다고요? 안 보이는데요?”
선우현이 밭 한쪽을 가리켰다. 나무 위에 CCTV가 숨겨져 있었다.
“저겁니다.”
“저기 어디 있다고….”
“나뭇가지 사이를 잘 보시죠.”
“어? 와…. 저걸 어떻게 찾으셨습니까?”
“위쪽에서는 잘 보입니다.”
“네? 위쪽에서 보다니요? 하늘이라도 나셨습니까?”
“어…. 나무의 형태를 데이터로 삼아 분석했더니 그런 결론이 나왔습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 선장님. 나날이 뻥이 느십니다.
두 사람은 밭 주인을 찾아갔다.
밭 주인인 농부는 읍내에 나갔다가 조금 전에 집에 돌아와 있었다.
안성준이 신분증을 보여준 후에 CCTV에 관해 물었다.
농부가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고라니 때문에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그 도둑놈 새끼들. 다 처먹는 것도 아니야. 아주 돌아다니면서 한입씩만 쭉 먹고 튄다니까.”
“어르신. 그래서 CCTV는….”
“우리 아들이 달아줬습니다. 아들이 저기에 총도 같이 달아주면 좋을 텐데. 화면에 고라니가 뜨면 쏴버리게.”
“어르신. CCTV에 총을 다는 건 좀…. 그러시면 큰일 납니다.”
농부는 안성준이 형사라는 걸 뒤늦게 생각해냈다. 그는 낮에 읍내에 나갔다가 고스톱을 쳤다. 며칠 전에는 술을 마시고 경운기를 몰았다.
농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다고?”
“저 CCTV 말입니다.”
“내가 내 밭에 단 건데? 저거 불법은 아닐 텐데?”
“저희가 조사하는 사건이 있는데, 범인이 혹시 저 앞길을 지나가다 찍혔나 해서요. 녹화된 게 있으면 좀 봐도 되겠습니까?”
밭 주인의 얼굴이 확 펴졌다.
“그래요? 그럼 도와드려야지. 들어와요. 그런데 누굴 찾으시나? 도둑놈?”
“강도입니다.”
“저런 나쁜 놈을 봤나. 얼른 잡아야겠네.”
선우현과 안성준은 밭 주인의 집에서 CCTV 녹화 화면을 확인했다.
안성준이 감탄했다.
“화질이 좋은데요?”
“우리 아들이 좋은 거로 달아줬거든. 이거 밤에도 잘 찍힙니다.”
“그러네요. 이야아. 어?”
안성준이 지나가는 차를 발견하고 영상을 정지했다. 운전자가 찍히긴 했는데 거리가 좀 멀었다.
“이거 화면 확대 기능은 없습니까?”
“나는 그런 것까지는 모르는데. 우리 아들이 설치해준 거라서.”
선우현이 말했다.
“얼굴이 천호균처럼 생겼군요.”
“그러고 보니까 비슷한 느낌이네요. 옆에 한 놈 더 있고요.”
안성준이 씩 웃었다.
“그리고 얼굴은 잘 안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여기 차 번호가 보이잖습니까?”
농부가 물었다.
“그놈이 나쁜 놈입니까?”
“네. 진짜 나쁜 놈입니다.”
◈ ◈ ◈
CCTV 파일은 안성준이 복사했다. 그가 선우현에게 사과했다.
“이건 수사 자료라 드리긴 어렵습니다.”
“괜찮습니다. 안 형사님이 천호균을 잡는 게 제일 깔끔하니까요.”
안성준이 USB 메모리를 흔들며 장담했다.
“그놈은 이걸로 잡겠습니다.”
안성준은 선우현과 헤어져 광수대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가 자랑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납치사건을 시킨 놈이 찍힌 동영상을 찾았도다!”
팀장이 얼른 다가왔다.
“진짜야? 범인 맞아?”
“개인 CCTV에 얼굴이 찍혔습니다.”
“모니터에 띄워봐. 빨리 좀 보자.”
안성준이 USB 메모리에 담아온 영상을 컴퓨터로 불러냈다.
“따라라라. 화면이 열립니다.”
팀원들도 모여서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밭 근처의 비포장도로를 지나가는 차가 보였다. 안성준은 여기까지 확인하고 파일을 가져왔다.
팀장이 독촉했다.
“야. 화면 확대해봐. 얼굴 좀 잘 보이게.”
“확대 들어갑니다.”
안성준이 화면을 확대했다. 얼굴을 크게 키우자 이미지의 격자가 깍두기처럼 커졌다.
팀장이 말했다.
“어…. 이거 이러면 알아보기 어려운데?”
안성준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왜요? 천호균이라는 거 알고 보면 비슷해 보이는데….”
“화질 더 좋은 거 없어?”
“카메라에서 도로까지 거리가 있는데 이 정도면 잘 나온 겁니다.”
“일단 국과수에 넘겨서 화질 좀 높일 수 있는지 알아봐.”
“알겠습니다.”
“차 번호는?”
“흐릿하지만 알아볼 수는 있을 만큼은 나왔습니다.”
“번호 따서 차적 조회해봐.”
안성준이 말했다.
“제가 장담하는데 JXK나 천호균 소유로 나올 걸요?”
차적 조회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망한 회사 이름으로 등록된 차야? 그럼 이거 대포차네?”
“그러네요?”
“성준아?”
안성준이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천호균 그거 아주 철저한 놈이네. 대포차까지 쓰고.”
“증거 찾았다며.”
“제가 대포차 업자를 찾아서 털어보겠습니다. 누가 샀는지 알아내겠습니다.”
“그거 확인될 때까지 이 영상 관리 잘해. 이거 혼자만 본 거야?”
안성준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선우현 씨하고 같이 찾았는데….”
“어? 왜?”
“CCTV를 찾아낸 사람이 선우현 씨라서요.”
“역시 선우현 사장은 이런 거 찾아내는 능력이 대단해. 그래서 파일은? 설마 공유한 거 아니지?”
“안 넘겨줬죠. 저만 복사해왔습니다.”
“잘했다. 천호균이라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 파일 관리 잘해라.”
“넵!”
◈ ◈ ◈
구하니와 천호성 납치사건은 경찰이 비공개로 수사했는데도 기사가 떴다. 천호성의 소속사에서 정보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기사에는 선우현의 이름은 나가지 않았다. 천호성의 소속사에서는 선우현을 구하니의 매니저라고만 알고 있었다.
게다가 천호성의 매니저는 구하니의 매니저와 비교되는 게 싫어서 선우현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에서 기자에게 정보가 흘러나갈 때 그 이야기는 쏙 빠졌다.
사까이가 그 기사를 보며 화를 냈다.
“천 사장. 이 사태를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JXK 사장 천호균이 반박했다.
“그래도 내가 일단 피하자고 해서 우리가 안 잡힌 겁니다. 그래서 내 이름이나 사까이 씨의 이름이 그 기사에 적히지 않았단 말입니다! 다 내 덕분에!”
사까이는 불안했다.
“우리가 안 들킨 거 확실합니까?”
“일부러 CCTV가 없는 시골 창고를 골랐습니다. 한적한 곳이라 지나가는 차도 없었잖습니까?”
“그럼 다행이고.”
천호균이 따졌다.
“사까이 씨가 일본에서 데려온 청부업자들은 입이 무겁다면서요?”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놈들 입이 그렇게 쌀 줄이야.”
“그놈들이 사까이 씨를 모르는 거 확실하지요?”
“몇 번 거래한 놈들이긴 한데, 돈을 더 주면 의뢰인의 개인정보는 묻지 않습니다.”
천호균이 장담했다.
“그럼 경찰은 우리를 의심할 수는 있어도 증거는 절대로 못 찾습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우리가 아니라 천호균 사장….”
“사까이 씨. 내가 잡히면 설마 나 혼자 죽겠습니까?”
“끄응.”
“이거 터지면 이번엔 진짜로 같이 망하는 겁니다. 사까이 씨도 일본 쪽 인맥을 움직여봐요.”
◈ ◈ ◈
선우현이 구하니와 안유정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천호균은 잠적한 상태로 시간을 끌면서 방법을 찾을 겁니다.”
안유정이 물었다.
“우현 오빠. 그놈이 시간을 끌면 빠져나갈 방법이 생겨요?”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거든.”
“그래도 경찰이 잘 조사하면….”
“천호균에게 그동안 크게 받아먹은 놈들이 있을 거야. 천호균은 궁지에 몰렸으니까, 그런 놈들에게 같이 죽는 수가 있다고 살려달라고 협박하겠지.”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
◈ ◈ ◈
CCTV가 설치된 밭의 주인에게 근처 도시에 사는 아들이 찾아왔다.
“형사들이 왔었다면서요. 무슨 일인가 해서요.”
농부가 아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자랑했다. 그러면서 파일을 복사해준 이야기도 했다.
“내가 수사에 도움이 되라고 시원하게 내줬다.”
“나중에 경찰에서 아버지한테 시민상이라도 주는 거 아닐까요?”
“그런 상이라면 당연히 받아야지.”
그 CCTV는 아들이 밭에 설치했다. 아들이 동영상 파일을 복사해서 가져갔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에게 그 영상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내가 아버지 밭에 설치한 CCTV에 이게 찍혔다. 무슨 강도를 잡는 데 도움이 될 거래.”
그 집 고등학생 딸은 천호성의 팬이다.
“앗! 나 이거 알아! 호성 오빠 사건 때문에 할아버지 밭에서 멀지 않은 곳도 조사했다고 들었어.”
“응? 그런 것까지 기사에 떴어?”
“팬클럽에 그 이야기가 올라와서 알았어.”
“딸? 공부는?”
“그냥 쉴 때 잠깐 봤거든?”
그 집 중학생 아들이 그날 밤에 그 영상 파일을 복사했다. 그는 그 파일을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뿌렸다.
그 집 딸은 그 파일을 팬클럽에 올렸다.
“이러면 호성 오빠한테 도움이 되겠지.”
CCTV 영상 파일은 순식간에 퍼졌다. 인터넷 동영상 너튜브에도 올라갔다.
영상에 댓글이 붙었다.
- 이게 구하니가 납치된 그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 천호성 팬클럽에도 이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그 사건 직후에 경찰이 밭에 찾아와서 영상을 받아갔답니다.
- 기사는 이 영상에 관해서는 뜬 게 없는데?
- 너무 멀리서 찍혀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데….
- 누구지?
다들 궁금해할 때 특정인을 지목한 댓글이 달렸다.
- 천호균처럼 생겼네요.
- 천호성이겠죠.
- 천호성 말고, 기획사 JXK의 사장 천호균이요.
- 어? 인터넷에서 사진 찾아서 비교해보니까, 느낌이 비슷한데?
- 진짜 천호균인가?
- 검색해보니까 그 회사는 얼마 전에 경찰에 압수수색을 당했다네요?
- 그럼 이 사진이 천호균 맞나 본데요?
- JXK 이거 수상하네요.
- 제가 연예계 소식을 많이 듣는데요. 거기는 전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천호균을 언급한 사람이 추가로 댓글을 달았다.
- 천호균은 잠적해서 연락이 안 된다던데.
- 맞네. 범인이 잠수 탄 거네.
영상을 보고 천호균을 지목한 사람은 안유정이다. 그녀가 말했다.
“이 정도면 되려나?”
◈ ◈ ◈
그 영상은 조회수가 급증했다. 인터넷 온갖 커뮤니티 사이트는 물론이고 개인 메신저로도 급속히 퍼졌다. 영상이 찍힌 시간도 알려졌다.
그러면서 공개수배와 비슷한 효과가 발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30분 거리의 다른 지역에서 그 차를 발견했다는 목격담이 떴다.
- 이거 그날 내 차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인데, 이 차가 그 차 맞지요?
- 맞네요. 차도 똑같고, 번호판도 맞는 것 같습니다.
CCTV 영상은 번호판도 흐릿했지만, 두 개를 겹쳐놓고 보면 같은 번호로 보였다.
- 운전자 얼굴이 찍혔네요.
새 영상에는 운전자의 얼굴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나왔다.
- 천호균 맞네요.
- 와. 역시 천호균이 범인이었어.
- 진짜 나쁜 놈이었네.
다른 걸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 그럼 조수석에 있는 사람은 누구죠? JXK 직원인가?
그걸 알아보는 사람도 나왔다.
- 제 여자친구가 일본 사람인데요. 조수석에 있는 사람은 사까이 같다는데요?
- 사까이가 누구입니까? 연예인입니까?
- 일본 음반 회사 사장 아들이라는데, 여자 가수와의 스캔들 기사가 몇 번이나 떠서 알아봤답니다.
- 이야아. 그럼 왜 둘이 같이 있는지 말이 되네. 천호균은 가수 기획사 사장이고, 저 사람은 일본 음반 회사의 사장 아들이니까요.
- 아니, 잠깐. 여자 가수와의 스캔들이요? 그러면 설마 구하니를 납치한 이유가….
- 어? 저 새끼가 감히?
-저 새끼 잡아서 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