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 천호성
천호성의 매니저는 시간이 꽤 지난 후에 현장에 도착했다.
“호성아!”
천호성이 짜증을 냈다.
“아니, 왜 이제 오는데! 남들은 다 왔는데!”
매니저가 천호성의 얼굴을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너 얼굴이 왜 이래! 누가 우리 연예인 얼굴을 이따위로 만들었어! 당신이야? 당신이야?”
천호성은 납치범 중 하나와 도로에서 치고받고 싸우다가 몇 대 맞았다. 그런데 주로 얼굴을 맞아서 멍이 많이 들었다.
천호성이 왼손을 이마에 살짝 대고 오른손을 옆으로 흔들었다.
“오버하지 마. 범인이랑 싸우다가 이렇게 됐어.”
“어? 그래? 범인은?”
“내가 이렇게 됐으면 그놈은 어떻게 됐겠어?”
“역시 천호성! 운동한 보람이 있구나!”
매니저가 활짝 웃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럼 당장 기자들에게 네가 용감하게 싸워서 범인을 잡았다는 소식을 쫙….”
천호성은 화들짝 놀랐다.
“하지 마!”
“어? 왜?”
“굳이 알릴 필요는 없잖아?”
“너 연예인이야. 이런 좋은 아이템은 화려하게 써먹어야지.”
“그게…. 싸우기 전에 내가 추한 꼴을 좀 많이 보였어. 하지 마.”
매니저가 웃었다.
“괜찮아. 막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하지만 않았으면 상관 없….”
“하지 말라고.”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거…. 혹시 그것보다 더….”
“거기서 쪼금 더.”
“아, 알았다.”
매니저는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다.
“이건 덮어야겠네.”
그가 현장을 보며 말을 돌렸다.
“그런데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오늘 병원 자선 행사에 갔거든?”
“구하니가 가끔 한다던 그거? 가서 누가 더 인기가 있는지 보여준다고 했지. 와. 이거 진짜 스토리가….”
“하지 말라고.”
“알았으니까 계속 설명해봐. 그래서?”
“저놈들은 내가 구하니의 매니저인 줄 알고 같이 납치한 거야.”
“어? 너를 못 알아봤다고?”
“모르더라.”
“한국 사람이 왜 너를 몰라? 장님인가?”
“내가 그 말 했다가 칼 맞을 뻔했어.”
“그래도 경찰이 무사히 구출해서 다행이다.”
“아니. 구하니의 매니저가.”
“어?”
천호성이 불평했다.
“우리 매니저는 내가 죽는지도 모르고 놀던데, 구하니 매니저는 납치되자마자 찾아내서 구출까지 다 하네? 이건 좀 아니지 않아?”
“비교 대상이 좀 너무하지 않냐? 매니저는 원래 그런 것까지는 못해.”
“구하니 매니저는 했다니까?”
천호성의 매니저가 선우현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호성이를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하니 씨를 구하다가 덤으로 구한 겁니다.”
구박을 받고 온 매니저가 작게 툴툴댔다.
“기왕이면 얼굴을 맞기 전에 구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당장 내일 스케줄은 어떻게 하라고….”
“연예인과 매니저가 어떻게 반응이 이렇게 한결같을까? 잘 만나셨네.”
매니저는 선우현이 총칼로 무장한 납치범 둘을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말을 이미 듣고 왔다.
“아, 아니. 혼잣말이었는데 소리가 좀 크게 나왔나 봅니다. 하, 하하.”
방송국 예능 작가 안유정도 연락을 받고 달려왔다.
“하니 언니!”
구하니가 손을 들었다.
“왔어?”
“와…. 언니.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야?”
“네가 우현 씨한테 연락했다며?”
“언니랑 저녁 먹어야 하는데 연락이 안 되잖아. 그래서 우현 오빠한테 같이 있냐고 전화 한 통 한 게 다인데….”
“그 전화 덕분에 살았어. 잘했어. 우현 씨가 날 찾아내서 구해줬거든.”
안유정이 한쪽에서 안성준 형사와 이야기하는 선우현을 보며 말했다.
“참 신기해. 우현 오빠는 납치된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잘 찾지?”
“나도 신기하긴 한데, 이젠 그냥 그런가 보다 하려고.”
안성준 형사가 선우현에게 말했다.
“범인들은 한국인이 아닙니다.”
“한국말을 잘하던데요.”
“재일동포 3세입니다. 국적은 일본이고요. 한국말은 잘하는데, 사는 곳은 일본입니다.”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천호성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가 확 살았다.
“그렇구나! 그래서 나를 못 알아본 거였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서! 하하하. 내가 무명이라서 모른 게 아니야!”
구하니가 다가와서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던데.”
“어? 어? 왜 너는 알지? 너 일본에 진출한 것도 아닌데….”
“내가 목표였으니까.”
“맞다! 그러니까 너는 알고 나는 모르지. 하하하!”
“좋아?”
천호성이 실실 웃었다.
“좋지. 흐흐흐. 구하니. 우리 승부는 다음에 결판 내자.”
“너 혼자 결판내라.”
천호성이 계속 웃으면서 매니저에게 갔다.
“들었어? 외국인이어서 나를 모르는 거였어. 음하하하!”
구하니가 선우현에게 말했다.
“쟤가 원래 말이 생각 없이 튀어나오는 버릇이 있어요. 이해해 줘요.”
“저놈이 저러는 건 자주 봤더니 익숙합니다.”
선우현이 안성준 형사에게 물었다.
“그래서 저놈들은 왜 하니 씨를 납치했답니까?”
“아직 자백은 안 했습니다. 누군가 일본에서 불러왔겠죠. 청부한 놈의 이름도 아직 못 들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시켰는지 알잖습니까? JXK 사장 천호균이겠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천호균이 왜 일본인 청부업자를 썼는지가 의문인데….”
선우현은 그동안 알아낸 게 좀 있다.
“JXK에 일본 자본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쪽으로 좀 조사해보시죠. 천호균 사장과…. 음?”
선우현이 옆을 보았다. 천호성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실실 웃고 있었다.
“잠깐만요.”
그가 천호성에게 손짓했다.
천호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가왔다.
“어이. 구하니 매니저. 손짓만 하지 말고 네가 와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 네가 오는데?”
“이번만 와준 거다.”
“천호성. 너 천호균이라고 아냐?”
천호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야!”
“제대로 묻지도 않았는데 뭐가 아니야?”
“천호균이랑 나랑 엮지 말라고!”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내가 옛날에 천호균 빽으로 떴냐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알아? 난 내 노력과 재능, 실력으로 이 자리에 왔다고!”
“천호균에게 불만 있구나?”
“많지! 그 새끼는 내가 뜨자마자 소문 퍼트려서 날 이용해 먹으려고 했다고!”
“소문?”
“헛소문이라고!”
천호성이 씩씩대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구하니가 옆에서 말했다.
“둘이 형제라는 소문이 있었어요.”
“왜요?”
“잘 보면 얼굴에 닮은 부분이 조금 있잖아요. 이름도 비슷하고.”
“그러네. 그래서 그 소문은 결론이 났습니까?”
“아뇨. 호성이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화를 내니까 앞에서는 떠드는 사람이 없어졌죠.”
“저놈이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군요.”
“호성이를요?”
“물론 마음에 안 드는 게 아직 아홉 개쯤 남아 있지만.”
“아.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요.”
◈ ◈ ◈
천호균은 한적한 곳에 있는 텅 빈 창고에 있었다. 그 창고의 위치는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비포장도로 근처였다.
천호균이 시계를 보았다.
“왜 아직도 도착하지 않는 겁니까?”
사까이가 말했다.
“구하니를 데려오는 데 실패해야 연락이 옵니다. 성공하면 연락하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통화 기록을 남겨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그래도 좀 늦는데….”
“일본에서 베테랑 청부업자를 데려왔으니까 그냥 기다려보시지.”
“구하니의 빽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도 그 청부업자들이 알아서 잘하겠지요?”
“내가 전에도 비슷한 일을 시켜봤는데, 납치부터 정보 캐내는 것까지 원스톱 서비스로 처리합니다.”
“우리에게 피해는 없고요?”
“그들은 한국말을 한국인처럼 잘합니다. 그러면 경찰은 그 사람들이 외국인인 걸 모를 테니 누구인지 못 찾아낼 테고.”
사까이가 가면을 가리켰다.
“이걸 쓰고 있으면 구하니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청부업자들조차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돈만 주면 의뢰인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람들이라서.”
천호균이 시계를 보았다.
“그래도 너무 늦는데….”
그의 스마트폰은 일부러 꺼놓은 상태다. 그래서 먼저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천호균은 초조해졌다.
“안 되겠어. 일단 자리를 피합시다.”
“굳이?”
“내가 청부업자를 한두 번 써본 줄 압니까? 전에도 청부업자가 잡히면 그놈들의 아지트까지 털렸습니다. 만약 그놈들이 실패해서 체포됐다면, 여기로 경찰이 들이닥칠 겁니다.”
사까이가 큰소리쳤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죠. 내가 부른 전문가는 입이 무겁습니다. 설사 체포됐다 해도 입을 열지는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놈들이 잡혀본 적이 있습니까?”
“어…. 그건 나도 잘….”
◈ ◈ ◈
선우현이 칼잡이를 슬쩍 가리켰다.
“둘 중에 저놈 입을 열게 해보죠.”
안성준이 손을 살짝 흔들었다.
“아이고. 뼈를 분질러서 자백을 받을 거였으면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하셨어야죠.”
“내가 매번 그러는 건 아닙니다만?”
“아. 이미 팔은 부러뜨리셨구나.”
“나한테 총 쏜 놈한테 저 정도면 살살 한 겁니다만.”
“하긴. 이번 놈들은 밥숟가락은 들겠군요.”
“됐고요. 저기 칼 든 놈. 저놈이 말이 통할 겁니다.”
◈ ◈ ◈
안성준 형사가 칼잡이에게 말했다.
“천호성은 네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더라.”
청부업자는 두 놈이다.
칼잡이는 천호성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협박했다. 어지간한 협박은 그놈이 다 했다.
총잡이는 차의 천장으로 총을 난사해 선우현을 죽이려고 했다.
덕분에 칼을 들이댄 놈은 총잡이보다는 죄를 덜 지은 것처럼 보였다. 안성준이 거길 파고들었다.
안성준이 말했다.
“한국에서 권총으로 살인미수를 저지르면 처벌이 굉장히 강해. 법정 최고형이 떨어질 거다. 그런데 너는 칼만 썼잖아? 실제로 찌르지도 않았어. 그저 협박만 했지.”
청부업자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는 그냥 협박만 하려던 겁니다. 구하니를 상처 없이 납치해 오란 의뢰였단 말입니다.”
“그런데 총을 쐈잖아.”
“총 쏜 그 새끼가 미친 겁니다. 저는 총이 없습니다.”
“천호성이 좀 얻어맞긴 했는데, 그거야 뭐 폭행으로 처리될 거고.”
“그건 길바닥에 뒹굴다가 당황해서 서로 몇 대 때린 겁니다. 저도 여기 맞았습니다. 멍든 거 보십시오.”
안성준 형사가 물었다.
“내가 네 그런 말을 믿어주고 싶어도 말이야. 네가 입을 다물면 내가 어떻게 믿어주겠어?”
“저는 진짜 아닙니다.”
“그럼 증명해봐. 구하니 씨를 납치하라고 누가 시켰어? 그래야 우리도 너랑 저놈이랑 구분해서 관리하지.”
칼잡이가 눈알을 굴렸다.
‘어차피 우린 망했어. 그럼 나 혼자라도 살아야지.’
칼잡이가 결정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의뢰인의 얼굴은 못 봤습니다. 일이 있으니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한국에 다른 의뢰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구하니라는 가수를 납치해서 데려오라고….”
“어디로?”
청부업자가 지도를 짚었다.
“여기입니다.”
안성준이 팀원들을 불렀다.
“찾았다! 가자!”
◈ ◈ ◈
안성준의 형사팀이 현장을 덮쳤다.
범인 중 하나가 총기를 사용했다. 지원 온 관할 경찰서 형사들도 권총을 챙겨갔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 창고는 텅 비어 있었다.
“젠장. 이미 튀었다.”
안성준이 관할서의 형사에게 물었다.
“이 도로를 빠져나가는 길에 CCTV가 있습니까?”
“이런 시골길에 예산을 들여서 CCTV를 왜 설치하겠습니까? 여기는 차가 거의 안 지나다니는 길입니다.”
“젠장. 이렇게 놓치면 안 되는데.”
◈ ◈ ◈
안성준이 선우현을 찾아왔다.
“범인까지 잡아주셨는데, 청부한 놈들을 놓쳤습니다.”
“누가 시켰는지는 알잖습니까?”
“아마 JXK 사장 천호균이나, 아니면 그놈의 부하겠지요. 하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알리바이는요?”
“천호균과 연락이 되지 않아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명수배를 하기도 어렵습니다.”
안성준은 천호균이 뒤에 있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물증이 없었다.
상대는 유명 기획사 사장이다. 확실한 근거 없이 지명수배하면 역효과만 날 수 있다.
안성준이 설명했다.
“칼잡이가 알려준 위치로 가봤는데, 텅 빈 창고만 있었습니다.”
“CCTV는요?”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시골길이라 CCTV가 없습니다. 그놈이 일부러 그런 곳을 골랐나 봅니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그건….”
안성준은 선우현이 그동안 납치 피해자들을 얼마나 빨리 찾아냈는지 알고 있다.
“선우현 씨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현장에서 자동차로 20분쯤 가면 나오는 곳인데….”
◈ ◈ ◈
선우현이 그 창고에 도착했다.
창고는 이미 경찰이 조사 중이라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과수대가 와서 현장을 조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선우현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너무 일찍 왔나? 아직도 조사 중이네.”
김수선이 말했다.
- 연예인이 납치되다가 구출되고 총기까지 사용된 사건입니다. 철저히 조사하겠지요.
“수선아. 이 근처는 찾아보고 있지?”
- 천호균이 혹시 숨어 있나 싶어 관측 카메라로 보고 있습니다만, 그 주변에서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럴 때 우리 선체에 카메라가 몇 대 더 남아 있으면 좋을 텐데.”
- 자원 회수용 더미 위성이나 빨리 보내시죠. 옛날에 고장 난 거라도 고쳐보게.
“로켓은 빈자리가 나자마자 잡아놨잖아. 자원 회수용 위성도 연구소에서 만드는 중이고. 조금만 기다려.”
- 선장님. 제가 뭘 좀 찾았습니다.
“천호균이냐?”
- 아니요.
“혹시나 했다.”
- 그 길에는 CCTV가 없다면서요.
“그렇다더라.”
-하나 찾아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