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 왔다 II
구하니가 사이드미러로 뒤에서 달려오는 오토바이의 모습을 확인했다. 좀 전에 봤던 것과 같은 오토바이였다.
‘분명히 이 차를 추월해서 지나갔는데, 어떻게 다시 뒤에서 나타난 거지?’
신기하긴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나중에 물어봐야지.’
그녀가 옆을 슬쩍 보았다.
천호성의 목에 칼을 댄 놈은 사이드미러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천호성은 그런 걸 볼 정신이 없었다.
‘앞에 놈은 호성이한테 정신이 팔렸고, 뒤에 놈은 밖을 못 보니까 같은 오토바이라는 건 모를 거야.’
도로를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건 흔한 일이다. 뒷좌석에서는 사이드미러를 보기 어렵다. 뒷문 유리창은 커튼을 쳐서 밖이 보이지 않는다.
구하니가 다시 사이드미러를 보았다.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오면서 손짓하는 게 보였다.
‘나한테 신호하는 거야!’
그녀가 운전대를 꽉 잡고 차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 ◈ ◈
선우현이 차를 세우라고 손짓했다. 그런데 구하니가 잘못 알아들었다.
“아놔. 잠깐 세우랬더니.”
- 운전대를 꽉 잡고 있습니다. 도로 중심에서 흔들림 없이 주행합니다. 손짓을 오해했나 봅니다.
“바라는 게 그거라면야.”
차와 오토바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선우현이 오토바이의 속도를 조절해 차의 뒤에 바짝 붙였다. 오토바이의 앞바퀴가 차의 범퍼에 거의 닿을 정도였다.
- 선장님? 뭐 하시게요?
“갈아타야지.”
선우현이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벌떡 일어나 윗부분을 밟으며 앞으로 걸었다. 순식간에 오토바이를 지나가 뒷문 손잡이를 발로 밟고 승합차의 위로 올라갔다. 움직임이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안정적이고 빨랐다.
혼자 남은 오토바이가 속도를 잃고 뒤로 처지다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다 순식간에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갔다.
선우현이 차 위에 서서 말했다.
“오토바이 또 해먹었네.”
◈ ◈ ◈
천호성의 목에 칼을 댄 놈이 말했다.
“이 새끼를 어떻게 하지?”
다른 놈이 뒷좌석에 앉은 채로 말했다.
“여기서 그으면 골치 아파진다. 피는 어쩔 거야?”
“히익!”
“그래도 이거 해결은 해야….”
갑자기 차의 천장에서 소리가 났다.
오토바이 소리나 차가 지나가는 소리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수 있다. 그런데 차 자체에서 나는 소리는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놈이 고개를 위로 들었다.
“어? 이게 무슨 소리야?”
구하니가 얼른 둘러댔다.
“차에 문제가 생겼어! 엔진에서 소리가 난 거야!”
“소리가 위에서 들린 것 같았….”
“엔진이 고장 났어! 차가 멈출 것 같아!”
그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차를 도로 한복판에 세웠다.
뒤에 앉은 놈이 인상을 썼다.
“너 무슨 짓을….”
구하니가 잠금장치 해제 버튼을 눌렀다. 차량 전체의 잠금장치가 찰칵 소리와 함께 풀렸다.
앞에서 칼을 든 놈이 왼손을 구하니에게 뻗으며 화를 냈다.
“너 누가 차를 세우라고 했어! 당장 문 잠가!”
구하니가 그 손을 피하며 둘러댔다.
“엔진 상태를 확인해야 해!”
그녀가 운전석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그녀의 발에는 신발이 없었다. 납치범들은 구하니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신발을 벗겨놓고 운전을 시켰다.
앞쪽에 있던 놈이 외쳤다.
“이 새끼가 죽는 꼴 보고 싶어? 당장 돌아와!”
구하니가 지금까지 납치범들의 말을 들은 건, 그들이 천호성을 죽인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키는 대로 하던 구하니가 차에서 뛰어내렸다. 엔진을 본다면서 앞으로 가긴 했지만, 그녀의 그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천호성이 겁을 집어먹고 비명을 질렀다.
“히익! 하니야! 나를 버리자 마!”
구하니가 차의 앞쪽에서 말했다.
“호성아. 받아들여.”
“나쁜 년아! 나 버리지 말라고!”
천호성의 목에 칼을 겨눈 놈이 구하니를 협박했다.
“네가 맨발로 뛴다고 해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엔진 보러 나왔다고 했잖아!”
“당장 들어오라고! 안 오면 이 새끼 죽이고 나서 너도 죽….”
갑자기 조수석 문이 벌컥 열렸다. 칼을 겨눈 놈이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차 지붕에서 안쪽으로 손이 쓱 들어오더니 그놈의 팔을 잡았다. 칼을 쥔 오른팔이었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 잡았습니다.
“알아.”
선우현이 붙잡은 놈을 바깥으로 끌어당겼다.
잡힌 놈은 조수석 시트와 차 안쪽 벽 사이 좁은 틈에 몸이 끼었다가 끌려나갔다.
“끄아악!”
선우현이 그놈을 끌어내 차 밖으로 던져버렸다.
뒷좌석에 있던 놈은 깜짝 놀랐다. 그는 급히 오른손을 옷 속에 넣고 더듬거렸다.
천호성이 손으로 목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가 권총을 꺼내는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히이익!”
갑자기 천호성도 밖으로 휙 끌려나갔다. 그는 그래도 어디 끼이지는 않고 끌려나갔다.
천호성이 도로 위에 던져지며 비명을 질렀다.
“케엑!”
뒷좌석에 앉은 놈은 권총에 소음기를 서둘러 결합했다.
천호성을 끌어낸 손이 밖으로 사라졌다.
총잡이가 권총을 위로 향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소음기가 장착된 반자동권총에서 9mm 총탄이 발사돼 차의 천장을 관통했다.
하지만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총탄이 조수석 위쪽 철판을 뚫고 하늘로 날아갔다. 선우현은 이미 조금 뒤로 이동해 있었다.
“그래. 손이 보인 쪽으로 쏴야겠지.”
- 닥치고 피하십시오!
사격은 한 발로 끝나지 않았다. 연이은 총소리와 함께 앞에서부터 뒤쪽으로 구멍이 숭숭 뚫렸다.
총잡이가 천장을 향해 총탄을 연달아 갈겼다. 위쪽 철판 전체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지붕에 사람이 있으면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발을 쏘았다.
그놈이 구멍이 뚫린 천장을 보며 말했다.
“해치웠나.”
갑자기 차의 옆문이 벌컥 열렸다. 선우현이 말했다.
“내가 지붕에 계속 서 있었겠냐? 이거 순진한 놈이네.”
소음기를 써도 총소리는 난다. 그놈은 자기가 쏘는 총소리 때문에 선우현이 옆으로 뛰어내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놈이 황급히 총구를 선우현 쪽으로 돌렸다. 탄창에는 아직 몇 발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손이 닿을 정도였다.
총구가 선우현을 향하기도 전에, 선우현이 두 손으로 권총을 붙잡고 순식간에 분해했다. 권총 부품이 후드득 떨어졌다. 적의 손에는 권총 손잡이만 남았다.
선우현이 말했다.
“야. 이 거리에서 권총을 겨누면….”
적이 갑자기 왼손으로 단검을 뽑아 휘둘렀다.
칼날이 제대로 움직이기도 전에, 선우현이 칼을 쥔 팔을 잡아 꺾어버렸다.
“끄아악!”
“그러면 내가 당해주겠냐고. 총을 쏘려면 거리라도 띄웠어야지. 그래도 소용없겠지만.”
적이 오른손에 쥔 권총 손잡이라도 휘두르려고 했다. 선우현이 그런 놈의 멱살을 잡고 차 밖으로 끌어내 던졌다.
총잡이가 도로 위를 날아가 아스팔트 바닥에 호되게 떨어졌다.
“케엑!”
선우현이 옆을 보았다.
조금 전에 조수석에서 집어 던진 놈과 천호성이 도로 위에서 허겁지겁 일어났다. 그 둘의 거리가 가까웠다.
천호성이 급히 상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 새끼야!”
상대도 천호성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둘이 서로 몇 대씩 치고받았다.
천호성의 뒤로 비틀거렸다.
“자, 잠깐.”
때린 횟수는 비슷한데 충격은 천호성이 훨씬 크게 받았다.
“왜 나만 맞는 거 같냐.”
비틀거리는 천호성의 눈에 단검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천호성이 단검을 향해 보고 몸을 날렸다. 적도 마찬가지였다.
적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적이 칼 손잡이를 잡았다.
천호성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적이 단검을 잡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런 적의 팔을 선우현이 툭 걷어찼다. 팔이 부러지면서 적이 앞으로 엎어졌다.
“으아악!”
단검은 다시 바닥을 굴렀다.
천호성이 얼른 그 단검을 잡았다. 그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칼 잡았다! 나 이제 칼 있다!”
선우현이 말했다.
“그걸로 뭐 하게?”
“너 누구야!”
“누구겠냐?”
선우현이 헬멧을 벗었다. 천호성은 깜짝 놀랐다.
“넌 하니의 매니저? 여긴 어떻게….”
“하니 씨가 사라져서 찾으러 왔지. 매니저니까.”
“아니, 네가 탄 오토바이는 좀 전에 우리 차 앞으로 지나갔었는데. 내가 분명히 봤는데….”
“그것도 나야.”
“설마 텔레포트….”
“당연히 아니지.”
천호성은 선우현이 어떻게 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천호성이 도로 위에 나자빠진 두 놈을 보았다. 둘 다 팔이 부러진 상태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내 매니저는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하니 매니저는 우리를 찾아내고 구출까지….”
천호성이 갑자기 선우현을 향해 외쳤다.
“너! 내 매니저 해라!”
“죽고 싶냐?”
“노, 농담이다!”
차의 앞쪽으로 피했던 구하니가 맨발로 다가왔다.
“우현 씨.”
“괜찮습니까?”
“네.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제가 납치된 건 어떻게 아셨어요?”
“유정이가 하니 씨와 연락이 안 된다고 전화했습니다. 오늘 저녁 약속이 있었다면서요.”
“아. 그래서 아셨구나.”
천호성이 끼어들어 물었다.
“어떻게 우리를 벌써 찾았지? 우리 휴대폰은 저놈들이 빼앗아가서 꺼놨는데?”
“지금 그게 중요하냐?”
“앗! 맞다! 신고부터 해야지! 신고!”
선우현이 휴대폰을 꺼내 안성준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형사님. 바쁘십니까?”
- 바쁘고 싶습니다. 이번엔 설마 아니죠?
“구하니 씨와 천호성을 납치한 놈들이 있습니다.”
- 우리 구하니를요? 내가 그 새끼들을 당장!
“안 형사님의 구하니는 아니고요. 천호성도 납치됐다니까요.”
- 구하니 씨는 괜찮습니까? 혹시 상황이….
“방금 구출했습니다. 다친 곳은 없습니다. 천호성은 몇 대 맞았습니다만.”
- 휴우. 다행입니다. 거기 어디입니까? 제가 지금 가겠습니다.
선우현이 상황을 설명하고 위치도 알려준 후에 전화를 끊었다. 그런 후에 천호성에게 말했다.
“너한테는… 아무도 관심이 없구나.”
“나 천호성이야!”
“별로 안 유명한가 보다.”
“야 이….”
“내가 방금 너 살려줬다.”
“나 천호성이다. 이름을 까먹었을까 봐 다시 말하는 거야.”
천호성이 바닥을 뒹구는 두 놈을 힐끗 보았다.
‘달리는 차에 올라타서 칼을 든 놈에 총을 쏘는 놈까지 순식간에 때려잡았어.’
그가 선우현의 눈치를 살짝 보았다.
‘오늘은 신경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천호성과 구하니의 휴대폰은 차에 있었다. 구하니가 그걸 가져와 천호성에게 넘겨주었다.
천호성이 선우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매니저한테 연락해도 되냐?”
“경찰에 이미 신고도 했으니까 마음대로 해라.”
“그럼 기자들에게도….”
“하니 씨는 당당했는데 너는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질질 짰다고 발표하게?”
“아니다! 나도 싸웠잖아!”
“둘 다 맨손인데도 네가 처맞더라.”
“기자는 안 부르려고 했다. 진짜다. 매니저만 부를 거다.”
안성준 형사가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그의 동료들도 같이 왔다.
“와…. 이 새끼들. 감히 하니 씨를. 다친 곳은 없으시죠?”
구하니가 대답했다.
“저는 괜찮아요.”
천호성은 자기한테도 형사들이 상황을 물어볼 줄 알았다. 그는 뭐라고 대답해야 멋있을지 궁리했다.
그런데 다들 구하니나 범인에게만 관심이 있고 천호성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나 천호성인데…. 인기 가수인데….”
안성준이 차의 천장을 살폈다.
“천장에 열 발은 쐈군요. 왜 이런 걸까요?”
“내가 천장에 있는 줄 알고 쏘더군요.”
“안 맞으셨죠?”
“이젠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물으시네.”
“하, 하하.”
선우현이 안성준을 차 앞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이 차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무슨….”
선우현이 보닛을 열고 엔진룸을 보여주었다.
“알아보시겠습니까?”
“혹시 엔진에 총을 맞았습니까? 겉보기에는 괜찮은 듯한데….”
“잘 보시죠.”
안성준이 엔진룸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이 차 엔진은 이상하게 생겼는데요?”
“엔진이 아니라 M 연료전지와 모터입니다.”
“네?”
“케이스를 씌워놔서 엔진처럼 보이지만, 알맹이는 완전히 다릅니다.”
“와. M 연료전지가 실제로는 이렇게 생겼구나. 뉴스에 나온 모습만 봤…. 어? 잠시만요. 이거 구하니 씨 차 아닙니까? 연료전지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이 차를 테스트 차량으로 등록은 했는데, 기왕이면 알려지지 않는 게 좋겠죠.”
안성준은 선우현이 왜 그에게 연락했는지 깨달았다.
“이건 새어나가지 않게 제가 잘 관리하겠습니다.”
“조사가 끝나면 곧바로 우리한테 돌려줘야 합니다. 이게 최신 기술이 들어간 차량이라서.”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