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 나쁜 상황
길성 기업 박길성 회장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그 기획사는 선우현을 도대체 왜, 뭘 어떻게 건드린 거지?”
“죄송해요.”
“응?”
박서윤이 진지하게 말했다.
“구체적인 건 알려드려도 되는지 제가 판단할 수 없어요. 선우현 씨의 정보에는 락이 걸려있거든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죄송해요.”
“아니, 나는 네….”
박길성은 박서윤의 아버지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다만, 얼마 전까지는 딸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아버지다.
박길성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어. 그래. 나한테 알려줘도 되는지 물어는 봐라. 그 정도는 괜찮지?”
“그럴게요.”
◈ ◈ ◈
선우현이 말했다.
“말해도 됩니다. 그게 뭐 대단한 비밀은 아니니까요. 박길성 회장님이 정보를 유출할 분은 아니기도 하고.”
“그렇게 신뢰하시나요?”
“그렇죠. 현지협력자는 아니지만요.”
“네?”
선우현이 말을 돌렸다.
“일단 JXK 문제부터 해결합시다.”
“일본 투자자와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알아볼게요. 회장님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고 하셨으니까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선우현은 박서윤이 아직도 박길성을 회장님이라고 부른다는 걸 안다. 박서윤이 박길성의 딸이라는 건 저번에 옥상에서 술을 마실 때 들었다.
“그….”
하지만 그건 선우현이 참견할 문제는 아니다.
“아닙니다. 정보부터 모아봐요.”
◈ ◈ ◈
나사 직원 조세핀이 선우현을 찾아왔다.
“로켓이 한 대 있어요. 거기에 인공위성 네 대를 싣고 올라가서 궤도에 뿌릴 예정이에요.”
“한 대쯤 고장 났으면 좋겠네.”
“맞아요. 그중 한 대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걸 자동차로 옮기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위성이 쪼개졌거든요.”
“아이구야. 그럼 그건 못 쓰겠네.”
“그 말을 그렇게 웃으면서 하니까 좀….”
선우현이 얼른 표정관리를 했다.
“어쨌든 자리가 하나 남겠군요.”
“네. 그 위성을 다시 만들 때까지 로켓의 발사를 늦출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 위성은 거의 다 만들었습니다.”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선장님. 아직 만드는 중인데요?
“발사 스케줄에 맞출 수 있습니다. 그 자리는 비워둬요.”
“위성을 넣을 자리를 맡겨놓은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그 자리 안 비워두면 M 연료전지의 미국 물량을 줄일 겁니다.”
“에이. 설마 스래곤에서 겨우 위성 하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그럴 겁니다.”
조세핀은 그 경고를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웃었다.
“나사에서도 그 자리를 웬만하면 스래곤에 넘길 생각이래요. 나사가 M 연료전지와 매순이에 관심이 많거든요.”
◈ ◈ ◈
선우현이 구하니를 만나 물었다.
“JXK의 일본 투자자에 대해 압니까?”
“일본 활동을 제안받은 적은 있어요. 거절했지만요.”
“거절한 이유가?”
“그때는 목소리가 많이 상했을 때였어요. 한국에서 도망치는 것 같아서 싫었어요.”
“저쪽에서 하니 씨를 잘못 봤군요.”
“네. 그러다 JXK와는 계약을 끝냈으니까, 이제는 그런 제안을 거기서 저한테 할 수가 없고요. 그래서 아는 게 없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그건 왜….”
“천호균을 잡아야지요. 그런데 청부한 놈이 천호균 외에도 있는지 확인하는 중입니다.”
구하니가 걱정했다.
“천호균이 날아가면 JXK도 위험해질 텐데…. 거기에 제가 아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하니 씨가 어려울 때 외면한 사람들을 왜 굳이 걱정하는지?”
“외면한 게 아니라 못 도와준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대놓고 도와주면 JXK가 괴롭히니까….”
“뭐, 그런 사람들은 방법을 찾아봅시다.”
구하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스래곤을 인수할 때와 같은 방법으로….”
“아니요. 내가 좀 알아보니까 JXK는 상장회사가 아니고, 지분은 관계자들이 나눠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곳을 내가 인수하려고 하면 천호균은 망하는 게 아니라 가격을 올려서 한 재산 잡겠죠. 내가 또 그 꼴은 보기 싫어서.”
“그건 그러네요.”
“딱히 인수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스래곤 때처럼 처리하실 건 아니구나.”
◈ ◈ ◈
JXK 사장 천호균이 말했다.
“도대체 뒤에 누가 있는 건지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삽니다.”
사까이가 말했다.
“천 사장은 망해도 나는 안 망한다니까요.”
“사까이 씨. 계속 그렇게 여유를 부리시는데…. 내가 좀 알아보니까 다른 말이 들리더군요.”
사까이의 표정이 굳었다.
“내 뒷조사를 했습니까?”
“그건 아니지요. 회사 내부 사정을 들은 것뿐입니다.”
사까이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는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 그걸 알고 나서도 주도권을 쥐려고 일부러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투자금이 날아가면 사까이에게 타격이 없을 리 없다.
‘내가 강하게 주장해서 투자를 결정한 JXK가 천 사장이 체포되면서 망하면?’
그것만 해도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게다가 천 사장이 경찰에 체포된 이유가 내 개인적인 요구와 연관이 있다면….’
사까이는 일본 회사 사장의 유일한 자식은 아니다.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사까이가 인상을 쓰며 등을 폈다.
“구하니의 뒤에 누가 있는지 어떻게 알아내자는 겁니까?”
“구하니가 알 겁니다.”
“그걸 묻는다고 대답하겠습니까?”
천호균이 말했다.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지요.”
◈ ◈ ◈
선우현은 구하니가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날만 매니저로 일했다.
최근에 구하니는 미끼 역할을 맡아서 공식 활동을 자주 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식으로 적을 유인하는 단계는 지났다. 천호균이 유력한 용의자라는 걸 알아내서, 미끼 작전은 끝났다.
아무 스케줄도 잡지 않고 집에서 쉬는 구하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가끔 개인적으로 참석하던 소규모 행사의 관계자였다.
구하니가 말했다.
“네. 내일 행사에는 저도 참여할 수 있어요. 이제 시간이 많아졌거든요.”
- 어머! 잘됐다. 내일 천호성 씨도 오는데, 그러면 콘서트 되는 거 아니에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니죠.”
- 병원 홈페이지에 홍보하고 싶을 정도예요.
“공연 다 끝나고 알리세요. 먼저 했다가 호성이 팬들이 몰려오면 애들은 어떻게 해요.”
- 알죠. 호호호. 내일 내부 공지만 띄울게요.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내일은 종합병원 어린이 치료센터에서 노래하는 스케줄이 잡혔다.
이건 돈을 받지 않고 하는 개인 스케줄이다. 따로 홍보하지 않고 스케줄도 전날 잡혔다. 규모도 로비 한쪽에서 진행하는 수준이다.
이 공연은 예전에도 가끔 했다. 그때도 관객은 대부분 환자와 병원 직원, 보호자들이었다. 이번에는 천호성도 참여한다는 것만 달랐다.
구하니는 선우현에게 연락하려다가 말았다.
“공식 스케줄도 아니고, 미끼 계획이 끝나서 우현 씨는 이제 내 매니저가 아니니까….”
그걸 생각하니 아쉬웠다.
“같이 일하는 거 좋았는데.”
그녀가 한숨을 작게 쉬었다.
“휴우. 이제부터는 예전처럼 내가 알아서 해야지.”
◈ ◈ ◈
이튿날 오후에 방송국 예능 작가 안유정이 선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우현이 전화를 받았다.
- 우현 오빠!
“너희 방송 출연이라면 거절한다.”
그는 예전에 놀고먹을 때도 방송 출연은 거절했다. 스래곤 사장이 된 지금은 더 나갈 수 없다.
방송에 정식으로 출연하고 화면에 스래곤 사장이라는 자막이라도 뜨면,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자막이 안 떠도 알아보는 사람은 생긴다.
- 뭐래. 그런 거 아니거든요? 물론 박 피디님은 생각이 다른 거 같지만.
“박 피디님한테 씨도 안 먹힐 거라고 꼭 전해라.”
- 알았다고요.
“그런데 왜 전화한 거야? 배고프냐?”
- 저 돼지 아니라고요.
“저번에 우리가 소고기 먹을 때 너 먹은 양이….”
- 오늘은 하니 언니랑 저녁 먹기로 했거든요? 많이 안 먹을…. 아. 맞다. 그래서 전화했지.
“응?”
- 혹시 하니 언니랑 같이 있어요?
“난 지금 회사인데? 왜?”
- 언니랑 연락이 안 돼요. 이따가 저녁 같이 먹기로 했는데.
“오늘 스케줄이 없으니 집에 있겠지.”
- 스케줄 있는데요?
“어? 난 못 들었는데?”
- 우현 오빠는 임시 매니저 끝났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말은 해줄 수 있잖아.”
- 방송이나 공식 스케줄이 아니라서 말을 안 했겠죠. 언니가 가끔 병원 로비에서 노래하는 거 있어요.
“음…. 어느 병원이야?”
◈ ◈ ◈
선우현은 통화를 마치고 스래곤 연구소에서 만들고 있는 위성을 보았다.
연구소 최 팀장이 위성 옆에 있던 부품을 몇 개 가져왔다.
“이 부품들로 위성의 외부 구조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건 금속 소재들을 모아서 제작했는데, 소재의 비율은 사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적용했습니다.”
“잘했습니다.”
“희귀 금속도 있었지만 어렵게 구해서 모두 포함했습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잘하셨는데, 제작 시간을 더 줄여보시죠. 미국에서 발사하는 로켓에 자리가 났습니다. 그 위성이 발사되기 전에 이걸 미국에 보내서 추진기까지 결합해야 합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난 이제 가봐야….”
최 팀장이 손을 들었다.
“사장님. 질문이 있습니다.”
“뭡니까?”
“말씀하신 비율대로 금속을 조합해 합금을 만들었습니다만, 생각보다 튼튼하지 않습니다. 내부에 지지대를 따로 만들어야 할 정도입니다.”
최 팀장은 선우현이 금속 부품 제작기술 쪽으로도 조예가 깊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저희가 뭔가 빠뜨린 건가 싶어서….”
김수선이 말했다.
- 우리 선체에서 자원을 도로 추출하기 좋게 조합했을 뿐이니까요. 합금의 품질은 나쁠 수 있습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실험용 위성이니까 우주로 나갈 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저기, 그리고 위성 내부를 채울 장비 말입니다. 센서가 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센서는 구색만 맞출 정도만 넣었다. 김수선을 위해 보내는 더미 위성이라 데이터는 수집해 봤자 의미가 없다.
최 팀장이 또 말했다.
“그리고 데이터를 전송할 통신 장치도 너무 부실합니다. 제 생각에는 다른 탑재 장비를 줄여서라도 통신 장치에 투자를 더….”
선우현이 말을 끊었다.
“최 팀장님.”
“예?”
“내가 지금 바빠서. 나머지는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알겠습니다.”
◈ ◈ ◈
선우현이 종합병원에 방문했다.
그는 아직 구하니의 매니저 명함을 가지고 있다. 그 명함을 홍보팀 직원에게 주면서 질문했다.
“이벤트 행사는 끝났습니까?”
“네. 아까 끝났어요.”
“그럼 구하니 씨는 아직 병원에 남아 있습니까? 연락이 안 돼서요.”
“아뇨. 행사에 참여해주신 분들은 이미 다 가셨는데요.”
“참가자 명단을 알 수 있을까요?”
“그럼요. 병실에 돌린 홍보 전단지가…. 여기 있네요.”
직원이 내민 건 정식 인쇄된 것이 아니라 프린터로 뽑은 것이다.
“어제 결정돼서 오늘 게릴라 공연처럼 한 거예요. 전에도 가끔 했어요.”
선우현이 참석자를 확인했다. 구하니만 있는 게 아니라 가수 천호성도 있었다.
“음…. 알겠습니다.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선우현이 그곳을 나와 병원 주차장을 확인했다. 구하니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
“하니 씨는 요즘은 개조 밴을 타고 다녀. 보안 시스템을 설치한 차는 그것뿐이니까.”
- 승차감도 좋죠. 스래곤에서 연료전지차로 개조하고 서스펜션도 최고급으로 바꿨으니까요.
“그 차가 이 근처에 있냐?”
- 찾아보고는 있습니다만, 그 병원 근처에는 안 보입니다.
“좀 더 넓은 범위를 보면?”
- 서울에는 차가 너무 많습니다. 구하니의 차와 같은 타입의 차도 많습니다. 찾기 어렵습니다.
“기다려봐.”
선우현이 스래곤 연구소 최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사장님. 아까 말씀드린 통신기 문제로 전화를 주셨….
선우현이 말을 끊고 물었다.
“저번에 개조한 차 아시죠? 구하니 씨의 차.”
- 물론입니다. 제가 직접 팀원들을 모아서 개조했습니다.
“그 차에 보안장치도 많이 달았고요.”
- 누가 하체를 건드리기만 해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 차에는 정차해 있을 때 누가 수작을 부리면 미리 등록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내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위치추적장치도 달았습니까?”
- 네? 그건….
“없습니까?”
최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 위치추적장치 같은 건 안 좋아하실 것 같아서 달지 않았습니다. 사장님은 개인정보 유출을 무척 싫어하신다고 들어서요. 그리고 위치추적 기능은 딱히 필요 없을 줄….
“필요해졌습니다.”
선우현이 추적용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했다. 들어온 영상이 없었다.
“누군가 그 차를 훔쳤다면 문을 강제로 열었을 테고, 그러면 내 폰으로 영상이 날아와야 하지요? 하체를 건드려도 마찬가지고요.”
- 예. 맞습니다.
“아무런 영상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 저기, 사장님. 그럼 차량이 도난된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도난보다 나쁜 상황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