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천호균
조세핀이 휴대폰을 귀에 대고 말했다.
“스래곤은 돈이 많잖아. 소형 위성 하나쯤은 그냥 쏠 수 있을걸?”
나사에 있는 동료가 물었다.
- 하지만 그 사람은 스래곤의 평범한 연구원이라며?
“평범하진 않지. 위성 궤도 계산의 천재인데.”
나사 직원 조세핀은 선우현이 사장이라는 걸 모른다. 처음에 스래곤의 연구원이라고 들어서,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 천재가 스래곤 경영진을 설득했겠지.”
- 스래곤은 대단하군. 위성 충돌 경로를 미리 계산해낸 그런 천재도 있고, M 연료전지를 개발한 천재도 있으니까.
“궤도 계산의 천재니까 더미 위성을 우주로 날려 보내는 것도 이유가 있을 거야. 우리가 그 테스트의 목적을 모를 뿐이야.”
- 예산을 쓰는 건 스래곤이니까 너무 따질 필요는 없겠네. 그리고 우리도 스래곤의 연료전지에 관심이 많으니까, 이번에 인심 좀 쓰는 게 좋겠지.
조세핀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사에서 연료전지는 왜? 그 방식은 우주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을 텐데.”
- 대기 기상 관측용 항공기와 드론에 쓰면 좋대. 친구가 그쪽 부서에 있는데 스래곤에서 개발한 연료전지와 새처럼 날아다니는 드론에 관심이 많더라.
“아아. M 연료전지와 매순이를 조합하면 멋진 게 나오겠구나.”
- 더미 위성에 관해서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알려달라고.
“알았어.”
조세핀이 통화를 마쳤다.
“이제 위성 발사 로켓에 빈자리만 나면 되겠다.”
◈ ◈ ◈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에서 말했다.
“수선아. 대형 위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크기가 제법 될 거다. 그걸 너한테 보내면 선체 관리에 도움이 되겠지?”
- 수리에 필요한 소재만 골라서 보내주는데 당연히 도움이 많이 되지요.
더미 위성의 외부는 지금 스래곤 연구소에서 선체 수리용 소재를 조합해 만들고 있다.
지원위성에서는 우주 쓰레기를 수집하고 거기서 필요한 자원을 추출해 선체를 수리한다. 그런데 우주 쓰레기에는 필수 소재가 골고루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대체소재로 때워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 자제를 제대로 쓰면 수리 결과도 당연히 좋아질 겁니다. 자원이 여유가 있으면 자동 수리 로봇을 한 대 더 돌릴 수도 있고요.
“수리 로봇을 더 돌리다니?”
지난번에 우주왕복선 조산 사태에서 물자를 좀 획득했다. 덕분에 자동 수리 로봇을 한 대 쓸 수 있었다.
- 자원이 늘어나면 수리 로봇을 자동으로 두 대 돌리고 저는 좀 놀아야죠?
“응? 굳이….”
- 그동안 선장님만 놀아서 불만이었습니다만? 저는 계속 일할까요? 선장님은 계속 노시고?
선우현이 얼른 말을 바꾸었다.
“놀아. 팍팍 놀아. 선체 관리는 로봇 한 대 더 돌리면 네가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겠다.”
- 외벽에 금이 가는 정도는 알아서 수리될 테니까요.
“네가 펑펑 놀아도 당분간은 선체가 추락하지 않을 테고.”
- 악담은 마시고요.
“악담이라니. 걱정한 거지.”
- 아닌 거 압니다.
“아는구나.”
- 시끄러워요.
◈ ◈ ◈
JXK의 사장 천호균이 회의실에서 시끄럽게 소리를 질렀다.
“씨발! 일이 왜 이렇게 된 거야!”
경찰의 손에서 겨우 빼낸 송정구 이사가 다시 체포됐다.
그는 인맥을 동원해 체포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벌써 소문이 퍼져서 전화조차 받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구하니가 이렇게 거물이었어?”
지금 상황만 보면 그렇게 봐야 한다. 하지만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거물이면 그동안 왜 그렇게 당하고 살았겠냐고.”
천호균이 송정구를 시켜 구하니의 일을 방해한 건, 그녀가 계약을 종료하고 갈라선 후부터였다.
그때는 구하니의 목이 상해 노래가 예전 같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인기도 계속 떨어지던 중이었다.
그래서 일을 방해하기 쉬웠다.
“빽이 그렇게 좋으면 왜 그때 가만히 있었냐고. 말이 안 되잖아.”
최근의 구하니는 이전과는 위치가 달랐다. 활동은 별로 안 하는데도 인기가 높았다. 방송국마다 그녀를 섭외하고 싶어 했다.
“예전 목소리가 돌아와서 인기를 다시 얻은 건 알아. 그렇다고 그런 빽이 생겨?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그의 앞에는 JXK 소속 연예인들의 방송 스케줄이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표의 대부분에 줄이 그어졌다. 명단에는 있는데 줄이 그어졌다는 건 방송 스케줄이 잡혔다가 취소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게 말이 돼? 회사가 경찰 수사를 좀 받았다고 해서 안면 까고 이러는 게 말이 되냐고.”
지금 회의실에는 JXK의 이사진 중에서 천호균의 최측근 두 명만 있었다.
최 이사가 말했다.
“사장님. 다른 기획사들은 이럴 때는 보통 빽을 써서 수습을….”
“구하니 빽이 더 강하다잖아! 도대체 뒤에 누가 있는 거야!”
윤 본부장이 말했다.
“방송가에 우리 회사가 전호 그룹과 대성차 그룹에게 찍혔다는 소문이….”
“거기서 왜 우리를 찍냐고! 도대체 왜! 구하니가 오너 집안에 시집이라도 간대?”
“제가 좀 알아봤는데, 전호 그룹은 전상미 사장이 장악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문제 삼은 곳이 전호 호텔이니까 그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럼 대성차에 시집가는 건 가능한가?”
“대성차 3세라면 가능성이 있긴 한데, 그러면 왜 전호 그룹이 같이 나서는지 설명이….”
“그러니까 누군가 다른 놈이 있다는 거잖아! 도대체 구하니가 누굴 움직였는데 재벌 기업 두 곳에서 간섭하냐고!”
최 이사가 말했다.
“혹시 정치권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우리도 정치권에 줄을 대는 것이….”
“거기에 내가 인맥이 없겠어? 그런데 재벌 두 곳이 기침 좀 하니까 다들 나 몰라라 하잖아! 그놈들은 평소에 내가 사는 술만 잘 처먹더니 정작 이럴 땐 도움이 안 돼!”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봤지만, 이런 일이 왜 생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천호균이 말했다.
“국내에서는 답이 안 나오겠어. 최 이사. 사까이를 만나야겠다.”
“사장님. 당장 일본행 항공권을 알아보겠습니다.”
“안돼. 난 일본에 못 가.”
“예? 사까이는 일본에 있는데….”
“출국금지 상태라 외국으로 나갈 수 없다고!”
“헉! 사장님도 의심받고 계신 겁니까?”
천호균이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단 말이다. 사까이한테 들어오라고 해.”
“한국으로요?”
“구하니를 원하면 들어오라고 하라고!”
천호균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게 다 사까이가 구하니를 원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
◈ ◈ ◈
박서윤이 길성 계열사를 통해 기획사 JXK의 정보를 모았다. 그녀가 선우현에게 설명했다.
“JXK. 서류상의 정식 명칭은 제이크로스케이. 회사 지분 일부를 일본 회사가 가지고 있어요. 물론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안 돼요. 한국 회사에 외국 자본이 들어와 있는 경우는 흔하니까요.”
“회사를 만들 때부터 일본 자본이 참여했습니까?”
“아니요. 이 년 전에 일본 자금을 끌어들였어요. 천호균 사장이 그 돈으로 회사 규모를 키웠죠. 이름도 그때 바꾸고 사옥도 새로 지었어요.”
그녀가 태블릿 PC의 화면을 넘겼다.
“JXK는 일본 진출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어요. 천호균이 그래서 일본 회사를 끌어들인 것일 수 있어요.”
“투자금도 받고 실속도 챙긴다?”
“그렇죠.”
“다른 건?”
“JXK는 증시에 상장된 회사가 아니라서 정보가 많지 않아요. 계속 알아보는 중이에요.”
선우현이 박서윤이 가져온 자료를 보며 말했다.
“그놈들이 하니 씨의 일을 방해한 이유가 있을 텐데….”
◈ ◈ ◈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다. 비행기를 타면 금방 오갈 수 있다.
천호균의 서울 시내 고급 음식점에서 사까이를 만났다.
사까이가 물었다.
“구하니는 아직입니까?”
“사까이 씨가 하필 구하니를 원해서 일이 복잡해졌습니다.”
“제일 상품성이 좋으니까요.”
천호균이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사까이 씨가 원하던 시기에는 구하니의 목소리가 맛이 갔었는데….”
“그거야 잘 쉬게 하고 수술받으면 고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어쨌든 내가 원하는 건 구하니 본인이니까.”
“구하니의 목이 회복돼서 아쉽겠군요.”
사까이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천 사장님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요. 구하니를 우리에게 넘기는 것은 투자의 핵심 조건입니다만?”
사까이는 일본 회사 사장의 아들이다. 회사에서 직급인 이사이고, 경영에도 깊숙이 개입하며,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있다.
천호균은 처음부터 사까이와 긴밀한 관계 유지했다. 일본 회사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것도 사까이를 통해서 진행했다.
문제는 JXK가 일본 진출을 추진하면서 생겼다. 도움을 줘야 할 사까이가 오히려 태클을 걸었다. 그는 일본 진출의 전제조건으로 구하니를 아예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그때는 구하니가 사고를 당한 후에 목소리가 많이 상해 있을 때였다.
천호균은 그녀의 가치가 이미 폭락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사까이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왜 사까이가 구하니를 요구하는지는 관심도 없었다.
천호균은 그때만 해도 퇴물이 된 구하니를 좋은 값이 팔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하니와 재계약 때 그녀를 적당히 속여서 일본 음반 회사에 넘기려던 계획은 실패했다. 구하니가 재계약 협상 자체를 하지 않고 떠났기 때문이다.
천호균은 다른 방법을 찾았다.
“전에는 구하니의 가치가 급락하던 중이었으니까, 일본으로 보내는 게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설 자리가 없는데 일본에서 좋은 제안이 온다면 당연히 넘어갈 테니까요.”
천호균은 그래서 구하니의 단독 활동을 계속 방해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누가 구하니의 목이 저절로 나을 줄 알았겠습니까? 이건 내 탓이 아닙니다.”
사까이가 피식 웃었다.
“천 사장님은 참 소극적으로 일하셨네. 나는 그렇게 일하지 않는데.”
천호균이 반박했다.
“나는 적극적인 방법도 같이 썼습니다. 구하니는 예전에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으니까, 트라우마를 노리고 비슷한 사고를 또 내려고 했단 말입니다.”
사까이가 인상을 썼다.
“나는 살아있는 구하니가 필요한 겁니다만? 죽은 구하니라니. 내가 변태도 아니고.”
“물론 전문가를 고용해서 교통사고로 살짝 다치는 정도만 손을 썼습니다.”
구하니가 그때 목을 다쳐 죽을 뻔했다는 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구하니조차도 당시 상황을 확실히 기억하지는 못했다.
“한국에서 구하니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일이 자꾸 생기면, 일본에서 들어온 좋은 제안을 받아들이고 넘어갈 수도 있잖습니까?”
천호균의 그 계획은 청부업자들이 줄줄이 체포되면서 실패했다.
사까이가 말했다.
“내가 그런 변명을 듣자고 한국에 들어온 건 아닙니다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겁니다. 그것 때문에 회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JXK에 문제가 생기면 일본 회사에서 넣은 투자금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 이유가 사까이 씨의 개인적인 요구 때문이라는 게 알려지면, 서로 곤란하잖습니까?”
사까이가 인상을 썼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겁니까?”
“설마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 둘 다 망합니다. 그러니까 같이 해결해보자는 겁니다.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사까이가 히죽 웃었다.
“망하는 건 당신뿐이지. 나는 안 망합니다. JXK를 찢어 팔아서라도 투자금을 일부는 회수할 테니까요. 약간의 손실은 뭐, 내가 그 정도는 감수할 능력이 됩니다.”
“사까이 씨!”
“천 사장. 그러니까 내 도움이 필요하면 구하니를 나한테 넘겨요. 그러면 내 도와주리다.”
“하지만 이젠 방법이….”
“방법은 알아서 하시고.”
◈ ◈ ◈
박서윤은 길성에서는 비서실 대리로 일한다. 그래서 박길성 회장을 만나기 쉬웠다.
박길성이 말했다.
“JXK에 대해서는 더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은밀하게요.”
“그래. 은밀하게, 저쪽에서 눈치 못 채게.”
“네. 고맙습니다.”
“그런데 선우현은 JXK를 왜 조사해 달라는 거지? 그동안 개발한 금속 기술, 드론, 연료전지 같은 것과는 분야가 너무 다른데?”
“그쪽에서 먼저 우현 씨를 건드렸어요.”
“JXK가 미친 건가?”
“누군지 모르고 건드린 거죠.”
“멍청한 데다가 무식하기까지 하군.”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