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더미 위성
선우현이 방송국 작가 안유정에게 말했다.
“야. 너 가.”
안유정은 콧방귀를 뀌었다.
“난 언니를 위해서 나온 건데요?”
“오늘 커피 내가 사는 거야. 저녁때 밥도 살 거야.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거 먹어야지.”
안유정이 활짝 웃었다.
“예에! 닥치고 있을게요.”
“음. 닥치지는 말고 JXK 이야기나 계속해봐. 너도 밥값은 해야지?”
“넵! 방송국에 JXK가 경찰 수사를 받는다는 소문이랑, 대성차 그룹과 전호 그룹에 찍혔다는 소문이 돈대요.”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둘 다 사실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대성차와 전호는 선우현의 연락을 받고 움직였다.
“JXK의 상황은 안 좋아지겠네?”
안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쵸. 게다가 수사받는 이유가 뭔지 알려지면 더 나빠지겠죠. 하니 언니를 사고로 위장해서 쓱싹하려고 했잖아요.”
“한 번이 아니지.”
“그쵸. 한 번이 아니…. 네? 한 번이 아니에요?”
“있어. 그런 게.”
“그것만 해도 큰데, 대기업에 찍혔다는 소문까지 사실로 밝혀지면 아마 소속 연예인의 방송 스케줄은 싹 다 취소될 걸요?”
안유정이 장담했다.
“소속 연예인이 방송 출연을 못 하면 외부 행사도 줄어들죠. 그러면 기획사가 어떻게 버티겠어요?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회사는 점점 망해가는 거죠.”
선우현이 구하니의 멘탈을 위해서 한 가지는 정정해주었다.
“그놈들이 하니 씨를 노리고 사고를 유발한 건 맞지만, 죽이려던 건 아니야. 좀 다치게 하는 정도가 목적이었어.”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하지만 선장님이 없었으면 죽을 뻔했죠.
선우현이 레드 포션으로 치료하지 않았으면 구하니는 목에 관통상을 입은 날 죽을 수도 있었다.
구하니가 안유정에게 말했다.
“유정아. JXK가 망하면 연습생들만이 아니라 소속 가수들의 생계에도 문제가 생겨. 돈 많이 벌어놓은 사람들은 상관없을 거고, 본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도 버틸 거야. 하지만 가수가 본업인 사람들은 곤란해져.”
선우현이 말했다.
“확실히 하니 씨는 걱정이 많군요.”
“저는 최근에 돈 많이 벌어서 살만하니까 이렇게 걱정도 하는 거죠.”
안유정이 물었다.
“언니는 요즘 공식 활동은 줄였는데 어디서 돈을 많이 벌었어?”
“응? 어. 우현 씨 덕분에….”
“우현 오빠! 나는!”
“나한테 돈 빌려주게?”
“아뇨. 그건 에바죠.”
◈ ◈ ◈
밥값을 한 안유정은 저녁 식사로 소고기를 골랐다. 선우현과 안유정은 경쟁하듯이 먹었다.
그런 후에 안유정은 구하니의 집에서 자겠다면서 그녀와 함께 떠났다. 선우현은 혼자 집으로 향했다.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 엠투는요?
“엠투 밥도 사려고 했어.”
선우현이 동네에 도착해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 돈까스 도시락이면 되겠지?”
- 엠투의 코에 있는 대기 중 위험물질 분석 장치는 상태가 꽤 좋습니다. 선장님이 고급 소고기를 드신 걸 알 겁니다.
“엠투가 맛을 따지나?”
- 엠투의 혀에 있는….
“하긴. 엠투는 맞잘알이지.”
- 선장님. 저도 먹을 줄 압니다.
“넌 이제 우주 식량이 있잖아. 칼로리바에 비하면 엄청 맛있다며.”
- 일단 맛을 알게 되니까, 더 맛있는 게 먹고 싶어졌습니다. 선장님이 오늘 실컷 드신 소고기 같은 거요. 우주왕복선 회사는 언제 손에 넣을 겁니까?
“그건 돈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잖아. 그 정도로 돈을 번 것도 아니고.”
- 그럼 로켓이라도 좀 쏘시죠?
“다른 회사가 만든 로켓에 식량을 담아서 우주로 보낼 수 있겠냐? 그러면 발사하기도 전에 의심받아.”
- 선장님. 나사 직원 조세핀을 발견했습니다.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선우현이 편의점 입구를 보았다. 잠시 후에 조세핀이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위성 궤도에서 파편 소나기가 우주왕복선을 덮친 사건 이후로 한국에 파견 와 있다.
조세핀이 선우현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앗! 선우현 씨.”
선우현의 조세핀의 얼굴과 어깨를 보았다.
“사람이 왜 그렇게 시들어 있습니까? 이건 뭐 파김치네.”
“파김치가 뭐예요?”
“음…. 통조림에 들어 있는 시금치처럼 시들어 있네.”
“와. 내가 그 정도예요?”
“그 정도입니다.”
조세핀이 우는 소리를 냈다.
“히잉. 혼자 일하니까 힘들어요. 그래서 그래요.”
“본인이 선택한 일이니까 받아들여요. 아. 그런데 하는 일이?”
“모르면서 받아들이라고 한 거예요? 전에 말한 것 같은데?”
“까먹었습니다.”
“관심이 없으시구나.”
“그렇죠?”
“너무 대놓고 그렇다고 하니까 얄밉다. 나사와 한국 업체의 협업을 지원하는 거예요. 제가 주도하는 건 아니고 지원만 하는 거죠.”
“아. 그래요?”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선장님. 조세핀이 그쪽 일을 한다니까 물어나 보시죠?
선우현도 그럴 생각이다.
“그럼 조세핀은 인공위성을 쏘는 사업도 지원합니까?”
“앗! 한 발 쏘시게요? 스래곤이 로켓 개발에 참여하는 건가요?”
김수선이 말했다.
- 로켓이 개발될 때까지 못 기다립니다.
“그건 아니고, 인공위성 하나만.”
“아. 그렇구나. 그럼 위성의 크기는요? 대형 위성은 로켓 전체를 사용하니까 일이 커요.”
“빨리 날릴 수 있는 건?”
“로켓 하나로 위성 여러 개를 실어나르는 건 자주 있어요. 그 경우라면 스케줄이 더 빨리 잡히겠죠. 물론 대기열에 줄은 서야 하지만.”
“당장 위성을 쏘고 싶으면?”
“네? 에이. 위성용 로켓이 무슨 택시인 줄 아세요? 부르면 오게요.”
“그러니까 묻는 거잖습니까? 편법이라도 좋으니까 방법이 없습니까?”
그녀가 잠시 궁리했다.
“어…. 탑재 위성 중 하나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위성이 하나 빠진 채로 로켓 발사를 강행하는 케이스를 찾으면, 잘하면 끼어들기가 가능할지도?”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그런 자리가 잘 나는 것도 아니고, 나더라도 경쟁이 없다고는 못하겠네요.”
“어쨌든 가능은 하다는 거군요. 그럼 좀 알아봐 줘요.”
조세핀이 궁금해했다.
“그런 거 알아보는 것도 제 일이긴 하니까 어렵지는 않은데요. 스래곤에서는 어떤 위성을 발사하게요? 그 회사에서는 위성용 장비나 부품은 만들어도 위성을 직접 만들지는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선우현이 둘러댔다.
“실험용 위성을 쏴 볼까 합니다. 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요?”
“앗! 좋죠. 어디로 갈까요?”
“저 앞에 김밥헤븐?”
“나한테 위성 발사 스케줄을 알아봐 달라면서요?”
“농담입니다. 저 아래 중식당으로 갑시다. 마침 탕수육도 사야 하니까.”
◈ ◈ ◈
선우현이 조세핀과 저녁을 한 번 더 먹고 옥탑방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두 번 먹으니까 배가 부르다.”
- 부럽습니다.
“멍!”
선우현이 엠투의 앞에 포장해 온 탕수육을 내놓았다.
“볶먹으로 가져왔다.”
“멍멍!”
“그냥 먹어. 어디서 찍먹 타령이야.”
선우현이 옥상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수선아. 소형 위성에 소고기나 과자를 넣어서 보내는 건 역시 무리다. 위성에 폭발물이나 다른 수상한 건 없는지, 발사하는 쪽에서 확인한다잖아.”
조세핀과 저녁을 먹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슬쩍 물어봤다. 조세핀은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대답했다.
- 방법이 정말 없을까요?
“음식만 우주로 보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냐?”
- 그럼 자재라도 보내주시죠.
“지금 선체 수리에 필요한 소재들을 불러봐. 그걸로 위성의 동체를 만들어보자.”
- 한둘이 아닙니다.
“종류가 많아도 상관없어. 잘 조합해서 만들라고 하면 되니까. 연구용이라고 둘러대면 되겠지.”
- 그거 좋은 핑계입니다. 그럼 위성 외부는 우리 선체 수리용 금속으로 만드는데, 알맹이는요?
“의심 안 받을 만한 것으로 잘 채워 넣어야지.”
- 위성 인터넷이 가능한 장비를 원합니다.
“인터넷 접속 위치가 위성 궤도로 뜨면 사람들이 참 좋아하겠다. 그치?”
- 쳇. 그럼 대량의 영상과 음악, 전자책을 모아서 보내주십시오. 저쪽에서 위성에 어떤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지 점검한다 해도 하드웨어만 보겠지요. 메모리 내부까지 들여다보진 않을 겁니다.
“오케이. 요즘은 다운로드 되는 OTT도 많으니까, 인터넷이 안 되어도 당분간은 아쉽지 않을 만큼 충분히 모아서 보내줄게. 모으는 건 나리한테 알바 시키면 되겠지.”
- 그 파일들을 볼 수 있는 장비도요. 우리 선체의 장비는 지상의 데이터 파일과 호환이 안 됩니다.
“노트북이나 PC를 한 대 보내면 되겠네.”
- 녹음용 장비도 필요합니다. 충분한 수량의 메모리카드도요.
“그건 왜?”
- 신곡 녹음을 여기서 해서, 선장님한테 레드 포션을 보낼 때 같이 보내게요.
“그거 좋은 생각이다. 연구소에 영상 재생과 전문 녹음기능까지 있는 실험장비를 만들라고 하자.”
선우현과 김수선은 소형 위성에 담을 것들을 골랐다. 마치 쇼핑 사이트에서 장바구니에 물건을 넣는 느낌이었다.
문제가 있었다. 넣고 싶은 건 많은데 소형 위성의 크기를 무작정 키울 수는 없다.
“통신 장비는 빼자.”
지원위성에서 지상으로 통상적인 방식의 통신을 하면 위치가 노출될 수 있다.
- 어차피 쓸모없으니 빼죠.
대신에 메모리카드처럼 편법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은 충분히 넣기로 했다.
◈ ◈ ◈
선우현은 이튿날 연구소를 찾아갔다. 김정수 이사와 최 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우현이 말했다.
“인공위성을 우주로 보낼 겁니다.”
김정수 이사가 물었다.
“프로젝트 기간은 언제까지입니까? 인공위성을 발사하려면….”
“당장.”
“네?”
김정수는 당황했다.
그는 선우현이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다. 위성은 스래곤 연구소에서 어떻게든 만들 수 있지만, 로켓을 개발하려면 여러 산업 분야에서 참여해야 한다.
“사장님. 우리 회사에서 로켓을 개발하는 건 무리….”
“당연히 다른 회사의 로켓을 써야죠.”
“아. 역시 그렇죠?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 로켓 중에 소형 위성 여러 개를 한 번에 쏘는 게 있습니다. 그 발사 스케줄에 빈자리가 나오면 끼어들려고 하는데, 거기 쓸 위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장님. 인공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려면 개발해야 할 게 많습니다. 허가받아야 할 것도 많고, 또 궤도도 할당받아야 하고….”
“아. 위성 궤도에 띄울 건 아닙니다.”
“네?”
선우현이 하늘을 가리켰다.
“궤도 밖 우주로 날려 보낼 겁니다. 그러니까 1회용이지요.”
김정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걸 왜….”
“데이터 수집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위성은 나중에라도 만들 수 있으니까, 지금은 일단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그럼 대기권을 탈출한 후에 위성이 로켓에서 분리됐을 때 쓰는 추진기는….”
“나사에서 기존에 사용하는 걸 사다가 붙일 겁니다. 이번 발사는 추진기도 새로 개발할 필요가 없습니다.”
김정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니까 데이터 수집 기능만 있는 더미 위성을 만드는 거군요.”
“그렇죠.”
“그쯤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선우현이 미리 준비해온 목록을 펼쳤다.
“일단 위성의 동체는 이 재료들로 만들고요.”
“예? 왜 이런 소재를…. 아니, 뭐. 어차피 더미니까 상관없겠지요.”
“내부에는 이런 걸 채울 겁니다. 이 내부 장비들은 연구소에서 만들어보세요.”
최 팀장이 옆에서 문서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사장님. 왜 더미 테스트용 장비에 이런 엉뚱한 장비들을 탑재하시는 건지….”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서?”
최 팀장의 장점은 선우현이 뭘 시키든 따지지 않는 것이다.
“아, 예. 이대로 제작하겠습니다.”
“이 위성은 궤도를 도는 게 아닙니다. 우주로 날아갈 때까지 고장만 안 나면 됩니다.”
스래곤은 원래 항공우주 분야의 장비와 부품을 만드는 회사다. 로켓이 발사될 때의 충격을 버티는 장비나 부품은 많이 만들어봤다.
최 팀장이 물었다.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만들면 되겠습니까?”
“빨리 만들면 남는 R 크림을 제작팀에 뿌릴까 하는데.”
최 팀장의 눈이 반짝였다.
“이건 기존 장비들을 분해 조립만 해도 만들 수 있습니다! 추진기를 제외한 더미 위성은 1주일 안에 완성하겠습니다!”
◈ ◈ ◈
조세핀은 선우현이 말한 걸 조사하기 위해 나사에 있는 동료와 연락했다. 그녀는 한국에 파견 와 있는 상태라 나사에 남아 있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동료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물었다.
- 그 위성의 목적은?
“데이터 수집용으로 발사한대.”
- 위성 궤도를 돌면서?
“아니. 우주 멀리 날려버릴 거래.”
동료는 살짝 당황했다.
- 응? 궤도를 돌지 않고 그냥 우주로 날아가? 어디로? 태양? 달?
“그냥 우주 공간으로. 방향만 적당히 지정해 주겠대.”
-그게 무슨 돈 지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