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47화 (247/281)

247. 락

가수 기획사 JXK의 사장 천호균이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며 물었다.

“송 이사가 체포됐어?”

송정구 이사의 밑에 있는 직원이 어깨를 움츠리며 보고했다.

“예. 지금 광수대에 잡혀 있습니다.”

“그것도 광수대에…. 그럼 음주운전은 아니겠군. 체포된 이유가 뭐야?”

“송정구 이사를 만나본 변호사 말로는….”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청부업자를 동원해 주종환 팀장을 폭행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이 안 되잖아.”

“예. 뭔가 착오가….”

“이사가 팀장을 폭행하는 일에 왜 청부업자가 필요해?”

“예?”

천호균은 멈칫했다.

“아니, 잠깐만. 맞은 사람이 주종환 팀장이라고?”

“예. 사장님.”

천호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청부업자를 동원한 이유가 따로 있지? 주종환은 덤이잖아. 그렇지?”

“그게…. 구하니의 매니저도 폭행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왜?”

“경찰 쪽 말로는, 그 청부업자들이 구하니의 차에 손을 댔다는 혐의도 있답니다. 매니저가 그걸 조사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젠장.”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천호균이 손을 내저었다.

“내가 해결할 테니까 가서 변호사나 다시 만나봐. 새로운 소식 들어오면 나한테 다이렉트로 즉시 보고해.”

“알겠습니다.”

천호균이 사장실에 혼자 남아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일이 많이 꼬였네. 일단 송 이사부터 빼내고, 경찰 수사도 막아야겠어. 일이 커지기 전에 빨리.”

천호균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국장님. JXK 천호균 사장입니다. 예. 잠시 뵐 수 있을까요? 아. 지금 근무시간이시죠? 물론 알고 있습니다. 다음에 또 좋은 곳으로 모실 테니까.”

천호균은 그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 당장 수사를 막아야 한다.

“지금은 밖에서 잠깐만 만났으면 합니다.”

천호균이 약속을 정한 후에 시계를 확인했다.

“한 명으로는 불안해. 오늘 한 명 더 만나야겠어.”

그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본부장님. JXK 천호균 사장입니다.”

◈          ◈          ◈

안성준 형사는 밤새 조사하고 아침에 퇴근했다가, 저녁때 다시 광수대 사무실로 출근했다.

광수대 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안성준이 다가와 물었다.

“팀장님. 왜 그러십니까? 혹시 박석진이 입을 안 엽니까? 그러면 폭행당한 주종환을 이용해서 송정구 이사부터 털어야죠.”

“그거 때문이 아니야.”

팀장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성준아. 너 선우현이 구하니의 매니저로 일한다고 했지?”

“예. 최근에 시작했습니다.”

“구하니가 선우현을 매니저로 고용한 거라며?”

안성준이 그렇게 보고했다.

“그렇죠?”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안성준은 당연히 된다고 생각했다.

“선우현 씨도 먹고살아야죠. 선우현 씨가 무술 고수이긴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싸움만 잘한다고 해서 쌀이 나오는 건 아니잖습니까?”

“너 선우현이 누구인지 몰라?”

“알죠.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이미 청부조직 여러 개를 작살 낸 무술 고수입니다.”

팀장이 인상을 쓰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너 퇴근해서 자러 간 사이에 내가 선우현의 신원조회를 했다.”

“우리야 선우현 씨가 누구인지 알지만, 그래도 서류 작성하려면 새로 하는 게 좋긴 하지요.”

“스래곤 사장이더라.”

안성준이 살짝 긴장했다.

“혹시 스래곤 사장도 이 사건하고 관련이 있습니까? 거물이 얽혔….”

“스래곤 사장 이름이 선우현이라고.”

“네? 그래요?”

“몰랐냐?”

“제가 스래곤 사장 이름을 어떻게 압니까? 당연히 몰랐죠.”

안성준이 피식 웃었다.

“에이. 난 또 뭐라고. 이름이 같은 게 뭐 그리 신기한가요? 당연히 동명이인이죠.”

“내가 선우현의 신원조회를 오늘 새로 했다니까?”

“그렇…죠?”

팀장이 이마의 주름을 손가락으로 눌러 펴며 말했다.

“같은 사람 맞아. 우리가 아는 그 선우현이 스래곤 사장 선우현이야. 동명이인 아니고 동일인이다.”

안성준은 당황했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저 놀리시는 거죠? 신원조회 서류 어디 있습니까? 좀 보여주세요.”

“서류는 없어.”

안성준이 웃었다.

“거봐요. 무슨 농담을 진담처럼 하시….”

“신원 정보에 락이 걸려있더라.”

“네?”

“그리고 그 정보를 관리하는 쪽에서 나한테 전화가 왔어. 왜 신원조회를 했냐고 묻더라.”

“아니, 진짜요?”

“난 그때는 무슨 상황인지 몰랐으니까 우리 사건과 관련이 있어서 조회했다고 했지. 그러면서 왜 락을 걸었냐고 도로 물었지.”

“혹시 기밀 특수부대 출신이라서 그렇게 잘 싸우는 걸까요?”

“그러면 지난번에도 신원조회에 락이 걸려있었어야지. 근데 그때는 조회됐잖아.”

“어…. 그러네요.”

“거기서 그러더라.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서 락이 걸렸다더라.”

“민간 회사 사장인데요?”

“그 뭐냐. 정찰드론도 개발하고, M 연료전지도 개발했잖아. 일반 산업은 물론이고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중요한 인물인가 봐.”

“그래서 거기서 뭐라는데요?”

“앞으로는 조회하지 말래. 스래곤 사장이라는 것만 겨우 들었어.”

“네?”

“우리는 전에도 신원조회를 했고 선우현 관련 사건을 자주 담당하니까 그것만 알려준다더라.”

안성준이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팀장님. 혹시 보이스 피싱에 걸리신 거 아니죠?”

“보이스 피싱이 경찰 신원조회에 어떻게 락을 거냐? 조회하니까 전화도 다시 왔는데.”

안성준도 이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선우현 씨가 어떻게 스래곤 사장이 됐는데요?”

“네가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 우리 팀에서 선우현과 연락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안성준이 허탈하다는 듯이 말했다.

“와…. 선우현 씨가 스래곤 사장이라니…. 배신감 드네요.”

“아니, 몰랐을 수는 있지 배신감까지야….”

“있는 놈이 더하다더니, 스래곤 사장이 나한테 삼겹살을 얻어먹었어.”

팀장이 물었다.

“어? 설마 네가 샀냐?”

“실적 넘겨줘서 고맙다고 샀죠. 그 전에 뭐 좀 물어보러 가서도 샀고. 생각해보니 처음 만났을 때도 제가 샀네요.”

“에라이. 벼룩이 알아서 간을 빼다 바쳤구나.”

안성준은 억울했다.

“내가 벼룩이라니!”

“다음부터는 소고기 얻어먹어.”

“저는 공무원인데요?”

공무원이 비싼 밥을 얻어먹으면 부패방지법에 걸린다. 상대가 업무와 관계가 있다면 더 확실히 걸린다.

선우현은 참고인 조사를 여러 번 받았으니 관계성은 확실하다.

팀장이 말했다.

“아. 그렇지. 스래곤 구내식당 밥이 그렇게 맛있다던데 그거라도 먹던지.”

“진짜 그래야겠네요. 와. 진짜 선우현 씨 너무하네.”

팀장이 궁금해했다.

“그런데 말이야. 스래곤 사장이 구하니 매니저를 왜 하는 걸까? 월급 받아봐야 표도 안 날 텐데. 너 뭐 아는 거 있어?”

“두 사람이 원래 아는 사이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안성준이 손가락을 튕겼다.

“언더 커버일 겁니다.”

“어?”

“수상한 놈들을 잡으려고 잠깐 매니저를 한 거겠죠.”

“그냥 사람 쓰면 되잖아. 돈도 많은데.”

“선우현 씨처럼 그런 일을 잘하는 사람을 돈으로 고용할 수 있을까요?”

팀장이 그 부분은 쉽게 납득했다.

“하긴. 직접 나서는 게 제일 확실하겠구나.”

안성준은 다른 것이 생각났다.

“아! 선우현 씨가 그랬습니다.”

“그러다니?”

“JXK가 빽을 써서 수사를 방해하면 선우현 씨가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쳐들어가서 박살 낸다는 소리인 줄 알고 말렸는데, 스래곤이 나서겠단 소리였군요!”

팀장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래애? 그런 게 있으면 빨리 말했어야지! 오늘 낮에 전화가 여러 곳에서 와서 곤란했다고!”

“선우현 씨가 스래곤 사장인 거, 저는 지금 알았는데 어떻게 빨리 말씀드려요?”

“빨리 연락해서 커버 좀 빨리 쳐달라고 해. 아주 튼튼한 방탄 커버 부탁한다고 꼭 좀 말해라.”

“이미 전화 몇 통 받으셨다면서요? 그건 그럼 어떻게….”

팀장은 신났다.

“우리 빽이 더 세다는 거 슬쩍 알려주면 돼. 자기들이 어쩌겠어? 흐흐흐.”

“당장 선우현 씨를 만나러 가겠습니다.”

“아직도 안 갔냐? 빨리 가.”

◈          ◈          ◈

박서윤은 오늘은 길성에 출근했다가 저녁때 퇴근했다.

선우현은 옥탑방 옥상에서 배달 음식으로 박서윤과 저녁을 먹었다. 그러면서 어젯밤에 처리한 사건을 설명했다.

JXK의 매니저 주종환과 송정구 이사를 잡았다는 것과, JXK의 사장이 배후일 수도 있다는 것도 말했다.

선우현이 최근에 구하니의 매니저를 하는 이유는 박서윤도 알고 있었다.

박서윤이 말했다.

“저한테 미리 말했으면 제가 도와드렸을 텐데요.”

“어젯밤에 갑자기 처리한 일이라서요. 그런데 어떤 도움이 가능합니까?”

“길성에는 연예계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계열사가 있어요. 그 계열사에서 길성 전시관을 빌려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기도 해요. 그래서 회사 소속 코디네이터도 있어요.”

“그럼 길성에서 JXK에 대해 알아봐 줄 수 있겠군요. 알다시피 스래곤이나 JHC 테크는 기술 전문 회사라 연예계 쪽 정보는 밝지 않습니다.”

“제가 출근하면 알아볼게요.”

이제 박서윤이 박길성 회장의 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조금 생겼다. 그중 한 명이 길성의 비서실장이다.

옆에서 엠투가 작게 짖었다.

“멍.”

“넌 그렇게 먹고서 더 달라는 거냐? 이건 개인가, 돼지인가. 아. 개돼지구나.”

“멍멍!”

선우현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안성준 형사였다.

“그래서 짖은 게 아니구나.”

선우현이 전화를 받았다. 안성준이 말했다.

- 지금 댁 근처에 왔습니다. 이번 사건에 관해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잠깐 만날 수 있겠습니까?

“음…. 옥상으로 오시죠. 차 한 잔 정도는 대접할 테니까요.”

- 금방 가겠습니다.

박서윤은 통화를 마치길 기다렸다가 물었다.

“누구 전화예요?”

“안성준 형사. 이번 일을 넘겼는데, 할 이야기가 있나 봅니다.”

“그 사람이 전에도 이 옥상에 온 적이 있나요?”

“이 근처에서는 몇 번 봤지만 여기는 처음입니다.”

“그럼 준비를 해야겠어요.”

박서윤이 옥상 한쪽에 세워둔 가림막으로 걸어갔다.

가림막은 마치 병풍처럼 접혀 있었다. 그녀가 가림막 한쪽을 잡고 옆으로 걸었다. 가림막 밑에는 베어링이 들어간 우레탄 바퀴가 달려 있었다. 그녀가 걷는 속도를 따라 가림막이 마치 병풍처럼 펴졌다.

순식간에 병풍형 가림막이 활토 화분들을 가렸다. 이제 탁자 쪽에서는 화분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자리로 돌아왔다. 선우현이 말했다.

“뭘 그렇게 할 것까지야.”

“바퀴에 모터라도 달아야겠어요. 버튼만 누르면 가림막이 펼쳐지게요.”

“리모컨 버튼만 누르면 되게요?”

“어머. 리모컨. 그거 좋은 생각이에요. 스래곤 연구소에 의뢰할까요? 아니다. 그 정도는 길성 연구소에 맡겨도 되겠어요.”

길성도 자체 연구소가 있다. 스래곤이나 JHC 테크처럼 첨단기술을 연구하지는 않지만, 판매용 제품을 개발하는 곳이라 이런 간단한 건 충분히 제작할 수 있다.

선우현이 가림막을 보았다. 저 가림막은 평소에는 접어둔다. 안티 버그 레이저 포탑의 요격 경로를 가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림막에 그림이라도 붙일까? 지금은 단색이라 좀 밋밋하네요.”

“그림이요?”

“최종훈 사장님의 동생이 화가니까, 그리다 망쳐서 버리는 거 있으면 얻어와서 붙여볼까 하고요.”

“굳이 버리는걸….”

- 자원 재활용은 선장님과 제가 오천 년 동안 유지한 정체성이지요.

“자원 재활용입니다.”

몇 분 뒤에 안성준 형사가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가 옥상에 들어오며 말했다.

“여기는 처음 와봅니다.”

“와본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안성준이 옆에 서 있는 박서윤을 보고 놀란 소리를 냈다.

“와…. 스래곤 비서실장 박서윤 씨.”

“네. 안녕하세요.”

안성준은 이곳에 오면서 스래곤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았다. 선우현에 대해 찾으려 했는데, 그의 얼굴이 나오는 기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가 찾아본 기사에는 선우현이 아니라 박서윤의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스래곤 비서실장님이 옆에 있다는 건…. 진짜 선우현 씨가 스래곤 사장이군요.”

선우현이 물었다.

“몰랐습니까?”

“말해준 적 없잖습니까?”

“형사니까 그 정도는 알 줄 알았는데.”

“신원조회 해보기 전에는 모르죠.”

“그럼 이번에 안 건?”

“이번에 넘기신 사건 서류 작업 때문에 신원조회를 했다가 알았습니다.”

선우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러시구나.”

“그런데 신원조회에 락이 걸려있던데요?”

“나한테요?”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이 누구인지 들킨 건 아니겠죠?

“설마 그건 아니겠지.”

안성준이 설명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핵심 인재라서 신원조회에 락을 걸었다던데요.”

박서윤이 기뻐했다.

“어머.어딘지 몰라도 사람 볼 줄 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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