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독 안에 든 쥐
청부업자 박석진이 방아쇠를 당겼다. 6연발 권총의 회전탄창이 한 클릭 돌아가면서 총탄이 발사됐다. 총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때렸다.
이 건물은 실내에서 비명을 지를 일이 가끔 있는 곳이다. 그래서 유리창은 방음 기능이 있는 이중창문을 설치했다.
박석진이 사용한 총기도 권총이라 소총보다는 총소리가 작았다.
덕분에 건물 밖으로 나간 총소리는 밖에서 쏘는 것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었다.
박석진이 방아쇠를 당기면서 생각했다.
‘한 발 정도는 괜찮아. 총소리가 나도 아무 일이 없으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타이어가 터졌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니까 괜찮….’
괜찮지가 않았다.
총탄이 선우현 근처로도 가지 않았다. 선우현이 옆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한참 빗나갔다.
선우현이 옆으로 움직였다가 박석진을 향해 성큼 걸었다. 보폭이 보통 사람의 몇 배나 됐다.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박석진은 당황했다.
‘이제 진짜 총인 걸 알 텐데 어떻게 정면에서 덤비지?’
박석진은 생각이 너무 많았다. 총소리가 두 번이나 나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손가락의 반응을 느리게 만들었다. 뒤늦게 방아쇠를 당기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선우현이 바닥을 발로 디디며 들고 있던 알루미늄 배트를 앞으로 던졌다.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배트가 손에서 떠나자마자 그 끝이 박석진의 어깨를 때렸다.
뭉툭한 배트는 창이 아니라서 박석진의 어깨를 뚫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대신에 어깨뼈를 부러뜨렸다.
박석진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악!”
어깨가 젖혀질 때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탄은 선우현의 근처로도 가지 못했다.
그 총탄은 매니저 주종환의 옆에 꽂혔다.
쓰러져 있던 주종환은 총탄이 바닥을 때릴 때 튄 시멘트 파편에 얼굴을 맞았다.
주종환은 총에 맞은 줄 알고 비명을 질렀다.
“히이익! 나 죽어! 나 죽는다!”
선우현이 박석진의 팔을 잡고 비틀어 꺾었다. 어깨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팔까지 꺾인 박석진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손이 힘을 잃으면서 권총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선우현이 팔을 더 비틀며 말했다.
“야. 나를 꼭 죽이려고 두 발이나 쐈네?”
“끄아악!”
“나를 죽이려던 놈을 내가 살려둘 이유가 없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그 건물에 아군은 없습니다. 불을 지르면 증거를 모두 태워버릴 수 있습니다.
선우현이 박석진을 툭 밀며 말했다.
“여기 확 불 질러버릴까?”
선우현은 권총을 쏴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박석진의 부하들도 순식간에 쓸어버렸다. 눈빛도 농담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일이 너무 커졌다. 권총이 두 발이나 발사됐다.
박석진은 겁을 집어먹었다.
‘수틀리면 진짜로 죽이려는 거야!’
“사, 살려주십쇼.”
선우현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사고로 위장한 청부사건들.”
“내, 내가 안….”
“나 속는 거 싫어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했습니다!”
“네가 원해서 구하니 씨를 위협하라고 청부한 건 아닐 거야. 그렇지?”
박석진은 미끼로 던진 변명거리를 덥석 물었다.
“맞습니다! 제가 원한 게 아닙니다! 저도 시켜서 한 일입니다!”
“누가?”
박석진이 청부업자가 된 건 흥청망청 살기 위해서다. 그 일에 무슨 의기나 대의명분이 있는 건 아니다.
“송 이사가 시켰습니다!”
“저 새끼가?”
송정구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나, 난 아니야!”
선우현이 박석진에게 물었다.
“증거는 있지?”
“예?”
“증거가 없으면 내가 널 믿을 이유가 없잖아.”
“있습니다! 녹음해뒀습니다!”
“내놔. 그게 네 목숨값이다.”
“하, 하지만 그러면….”
선우현이 박석진의 옆구리를 툭 걷어찼다. 가볍게 찼는데도 부러진 어깨의 반대쪽 갈비뼈에 금이 갔다.
“으아악!”
“아이쿠. 네가 쏜 총알을 피하다가 발이 미끄러졌네! 다음에는 네 목으로 미끄러지겠는데?”
박석진이 총을 쏜 건 1분 전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선우현의 발이 목으로 미끄러지면 죽는다.
“드, 드리겠습니다!”
선우현이 송정구를 보며 말했다.
“이제 너도 나랑 대화해야지?”
“대, 대화? 그렇지. 대화로 풀어야….”
“이놈들도 나랑 대화로 풀었잖아. 말을 주고받는 거 너도 봤지?”
선우현과 대화한 놈들은 뼈가 부러져 바닥을 구르고 있다.
송정구가 덜덜 떨면서 소리를 질렀다.
“너, 너 내가 누구인지 알아?”
선우현이 청부업자들에게 구타당해 쓰러진 주종환에게 물었다.
“저놈이 자기가 누구인지 아냐는데? 누구냐?”
주종환이 재빨리 대답했다.
“송정구 이사다!”
“이름을 묻는 거겠냐?”
“사장의 측근이다! JXK 사장 말이다!”
주종환은 이제 선우현이 이 전투의 승자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주종환이 머리를 굴렸다.
‘송정구나 청부업자 새끼들은 나를 죽일 것처럼 팼어.’
그는 그들은 적이라고 판단했다. 그것도 원한이 쌓인 적이다.
‘그런데 저놈은….’
선우현은 주종환이 수작을 부리던 대상이다. 게다가 수작질을 들켰다.
‘저놈도 아군은 아니지만….’
어쨌든 주종환을 두들겨 팬 건 박석진 패거리와 송정구다. 선우현은 주종환을 집어 던지긴 했어도 죽도록 패지는 않았다.
이제 주종환이 송정구를 위해 입을 다물 이유는 없다.
“내가 구하니한테 모질게 군 건 송정구가 시킨 거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피해자처럼 말하지 마라.”
“송정구의 뒤에는 분명히 누가 더 있어! 난 사장이 뒤에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랬어!”
“증거는?”
매니저 주종환은 움찔했다.
청부업자 박석진은 녹음파일이라도 있는데 주종환은 없다. 게다가 송정구의 뒤에 사장이 있다는 주장은 주종환이 혼자 짐작한 것이다.
“그야 당연히 사장의 측근이니까….”
“그럼 증거가 없네?”
“JXK에서 다년간 일한 내가 확신한다. 그게 증거야!”
“그런 건 추측이라고 하는 거다. 증거가 아니라.”
김수선이 제안했다.
- 선장님. JXK 사장도 조지시죠.
“수선아. 그러다 다른 놈이 범인이면, 사장을 터는 동안 범인이 도망치겠지. 증거는 없어도 되지만, 누구 짓인지 확신할 정도의 근거는 필요해.”
- 그건 그렇습니다. JXK 사장을 당분간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그럼 거기는 어떻게 수습하시게요?
주종환은 어차피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다쳤다. 송정구는 사지가 멀쩡하지만, 밖으로 나가려면 선우현의 옆을 지나가야 한다. 그러니 나갈 수가 없다.
선우현이 휴대폰을 꺼내 안성준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성준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선우현 씨. 이 시간에 전화를 주시니까, 또 뜨끔합니다. 이번엔 아니죠?
“납치사건입니다.”
- 예? 피해자가 누구입니까?
“피해자라고 해도 되나 모르겠군요. 이놈들이 자기들끼리 내분이 나서 납치하고 두들겨 패던 중이라서.”
- 아. 흔한 일이군요.
“그렇죠. 나한테 총을 쏜 놈이 있지만.”
- 저기…. 안 다치셨죠?
“빗나갔습니다.”
- 제가 매번 궁금하던 건데요. 빗나간 거 맞습니까?
“쏜 놈이 권총에 익숙하지 않았나 봅니다. 나를 죽이겠다면서 쐈는데 빗나갔습니다.”
- 참 신기하지요? 매번 총탄이 빗나가는 거 말입니다.
“그렇죠?”
- 이번에도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처리되겠네요.
“그래서 이 건을 맡으실 생각이?”
- 혹시 그 사건이 덕구파 곽덕구와 관계가 있습니까?
선우현이 청부업자들과 송정구 이사를 보았다.
“그건 아닌 듯합니다.”
- 아쉽네요. 덕구파는 이제 곽덕구만 잡으면 되는데. 그러면 시간이 늦었으니까, 제가 관할 경찰서에 연락해서….
“구하니 씨를 사고로 위장해 몇 번이나 습격한 놈들입니다. 청부한 놈도 같이 잡았습니다.”
안성준은 구하니의 팬이다. 그의 목소리가 당장 변했다.
- 예? 감히 우리 하니 씨를요? 내 그 새끼들을!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미리 아셔야 하는데, 나한테 총을 쏜 놈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좀 팼습니다.”
- 역시 이번에도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선우현 씨의 이름이 안 나가게 노력해보겠습니다만, 이제 슬슬 한계입니다.
“요즘 내가 구하니 씨 매니저로 일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이놈들을 추적하다 총까지 맞을 뻔했습니다.”
안성준은 선우현이 스래곤의 사장이라는 건 모른다.
- 아! 그럼 그쪽으로 이야기를 잘 만들어보겠습니다. 주소 보내주시죠. 바로 가겠습니다.
선우현이 전화를 끊은 후에 문자를 보내면서 말했다.
“다 같이 경찰서 가서 사이좋게 자백해라.”
송정구는 선우현이 경찰에 신고했다고 판단했다.
‘죽이진 않을 건가 보다! 신고했으니까 더 패지는 않겠지!’
송정구가 소리를 질렀다.
“이거 고소할 거야!”
“해라.”
“어?”
“고소하려면 피해자가 있어야겠네?”
“이렇게 많잖아!”
“아. 그렇지. 이 청부업자 놈들은 감방에서 나오면 전부 사고가 나서 죽겠지만, 그 전에는 고소할 수 있겠구나.”
청부업자 박석진이 겁먹은 소리를 냈다.
“히이익!”
“왜 놀라? 너희가 잘 쓰는 수법이잖아. 나를 고소하면 너희 수법으로 돌려받아야지.”
“저는 혼자 넘어져서 다쳤습니다!”
박석진의 부하들도 다급히 말했다.
“저는 계단에서 굴렀습니다! 살려주십쇼!”
“트럭에 받혔습니다!”
선우현이 송정구 이사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너는 뭐, 네가 청부할 때 녹음된 파일 있잖아. 넌 감방 갈 걱정이나 해라.”
송정구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협상하자! 녹음파일을 나한테 넘기면 고소는 안 하고 돈도 줄 테니까….”
“돈은 됐고, 고소는 우리 변호사랑 이야기해. 우리 변호사가 이런 일을 많이 해봐서 유능해.”
◈ ◈ ◈
안성준 형사는 팀원들과 함께 현장에 와서 범인들을 인계받았다.
선우현도 참고인 조사는 받아야 했다. 안성준이 회의실로 선우현을 안내했다.
안성준이 말했다.
“박석진은 청부업자 전과가 있습니다. 요즘은 걸리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것 같더니….”
“리스크가 있는 의뢰는 다른 청부업자한테 하청을 줬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안 걸렸군요.”
“하청을 준 조직이 하나가 아닙니다. 내가 잡은 놈들도 있고요. 그러니까 박석진은 청부업자를 여럿 알고 있을 겁니다.”
안성준이 웃었다.
“잘 족치면 청부조직을 몇 개는 더 잡을 수 있겠군요. 흐흐흐.”
“평소보다 더 좋아하십니다?”
“선우현 씨가 잡은 걸 넘겨받는 것도 실적에 도움이 됩니다만, 그건 윗분들도 우리가 한 게 아니라는 걸 압니다. 그런데 이건.”
안성준이 다시 웃었다.
“흐흐흐. 박석진을 족쳐서 나온 청부조직들은 완전히 우리 실적이 될 겁니다.”
안성준의 옆에 앉아 있던 다른 형사도 같이 웃었다.
“흐흐흐. 형님. 올해에는 승진이 꿈이 아닙니다.”
선우현이 주종환의 사진을 가리켰다.
“이놈은 기획사 JXK의 매니저인데, 박석진의 부하들에게 맞아 죽을 뻔했으니까 털어놓을 게 많을 겁니다.”
“청부조직에 대해서요?”
“아니요. 청부조직에 대해 아는 건.”
선우현이 송정구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송정구 이사. JXK의 이사인데, 이놈이 박석진에게 청부했습니다. 주종환한테서는 송정구의 비리를 알아내고, 그걸로 송정구를 털면 뱉는 게 있겠지요.”
안성준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JXK는 꽤 큰 연예기획사잖습니까? 빽이 많을 겁니다. 회사 차원에서 압력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건 내가 처리하면 됩니다.”
안성준이 얼른 손을 흔들었다.
“어우. 그렇다고 기획사에 쳐들어가서 다 때려 부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경찰에서도 못 막아줍니다.”
“내가 매번 다 때려 부수는 건 아닙니다만?”
지금 테이블 위에는 사건 현장 사진도 있었다.
“어…. 여기 보시면 선우현 씨는 오늘도….”
“오늘은 하필 부수는 날이었네요.”
“아, 네.”
◈ ◈ ◈
선우현은 그날 간단한 참고인 조사만 받고 갔다. 박석진 패거리와 송정구는 청부폭력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됐다. 박석진이 사람을 폭행하고 총까지 쐈으니 잡아둘 명분은 충분했다.
이튿날 아침에 안성준이 밤새 조사한 것을 팀장에게 보고했다.
팀장이 물었다.
“또 선우현이야?”
“우리야 선우현 씨 덕분에 실적이 쌓이니까 좋잖습니까? 이번에는 박석진을 잘만 파면 우리 팀 단독 실적도 생기겠던데요.”
“그러다 그동안 덮어둔 게 터지면 어떻게 수습할까 걱정된다.”
“그냥 덮은 건 아니죠. 항상 명분은 충분했습니다. 전에는 납치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한 거잖습니까? 그걸 누가 태클 걸겠습니까?”
“애매한 사건들은?”
“그거야 선우현 씨가 했다는 증거는 없잖습니까?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으니까 우리는 모른다고 하면 되죠.”
“어젯밤 사건은?”
“감히 우리 구하니를 노린 놈들입니다. 매니저가 담당 연예인을 위해 조사하다가 폭행 현장을 목격하고 개입한 겁니다만?”
팀장이 물었다.
“너 구하니 팬이냐?”
“네.”
“장하다.”
“팀장님도 구하니의 노래를 들어보시면….”
“우리 애들이 좋아해서 많이 들어봤어.”
“흐흐.”
“그런데 선우현이 구하니의 매니저라고?”
“예. 얼마 전에 시작했답니다.”
“구하니가 무술 실력 쩌는 사람을 매니저로 고용했네.”
“자꾸 수상한 일이 일어나니까 그랬겠죠.”
팀장이 손을 흔들었다.
“알았어. 넌 일단 퇴근해서 좀 자라. 사람 꼴이 아니네.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넵!”
“아. 선우현 씨 신원조회는?”
“예전에 해둔 거 있는데요?”
“새로 할 때도 됐지.그것도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넌 빨리 가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