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팽
주종환이 꼬리를 밟혔다는 말을 듣자마자 청부업자 박석진의 눈이 번뜩였다.
“맡기실 일은 뭡니까?”
송정구 이사가 말했다.
“주 팀장이 차에서 떠든 걸 녹음한 놈이 있다. 그놈을 잡아서 녹음파일을 회수해.”
“한 놈입니까?”
송정구가 주종환을 돌아보았다. 주종환이 얼른 설명했다.
“1인 기획사의 매니저라서 혼자일 겁니다. 그런데 그놈이 싸움을 굉장히 잘합니다.”
송정구가 설명을 보탰다.
“특수부대 출신이라더라.”
청부업자 박석진이 실실 웃었다.
“서로 총 들고 싸우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특수부대 배때지도 칼은 들어갑니다. 아무리 강한 놈도 다구리치면 다 죽습니다.”
“죽이진 마라. 그러면 일이 너무 커져.”
“제가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닌데, 설마 그 정도도 구분하지 못하겠습니까?”
청부업자 박석진이 제안했다.
“죽지는 않을 만큼, 앞으로는 설치지 못하게. 그리고 녹음파일 회수. 그 정도면 되겠습니까?”
송정구가 손가락을 튕겼다.
“역시 박 사장은 말이 통해.”
“비용은 이번에는 반값으로 할인해 드리겠습니다. 전에 실패한 거 보상 개념으로요.”
“역시 박 사장은 개념이 있어. 이래서 박 사장이랑 일하면 편하다니까.”
옆에서 주종환이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송 이사님. 그 새끼를 조져버리는 겁니까? 밥숟가락도 못 들게요?”
“그 정도는 아니고, 칼침 두세 방에 절름발이 정도면 되겠지.”
“흐흐. 그게 어디입니까? 그러면 이제 다 해결이 되는 겁니까?”
“아니. 하다 더 처리해야지.”
주종환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혹시 구하니까지….”
“너 말이야. 너.”
“네?”
송정구가 박석진에게 말했다.
“박 사장. 일이 잘 안 풀려서 여기 주 팀장이 감방에 가면 말이야. 입을 열 거 같아. 그러면 내가 시켰다고 떠들겠지.”
“송 이사님. 그런 놈을 여기 데려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잡히면 나만 끝나? 박 사장도 끝장이잖아. 그래서 데려왔어. 입 못 열게 해.”
박석진이 실실 웃었다.
“역시 이사님이시라 생각이 깊으십니다. 그런 일은 저희 전문 분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비용은요?”
“이건 박 사장의 안전을 위해서도 해야 하는 일인데?”
“무료봉사는 안 하는 거 아시잖습니까?”
“방금 할인해준 절반. 마저 채워줄 테니까 그걸로 퉁 치자고.”
“그러면 그 매니저 놈과 같은 가격이니까, 그러시죠.”
주종환은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가 계속될수록 농담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종환이 더듬거렸다.
“뭐, 뭐야 이게? 송 이사님?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주 팀장. 네가 입을 열면 여러 사람이 곤란해져. 나도 어쩔 수 없어. 그냥 받아들여.”
“씨, 씨발! 이건 아니지!”
주종환이 뒤로 돌아 문으로 뛰었다. 박석진과 송정구는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주종환이 문을 벌컥 열었다.
“헉!”
“밖에는 조금 전에 박석진이 내보낸 부하 넷이 서 있었다. 네 명이 문앞을 막고 있어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청부조직 두목 박석진이 말했다.
“어이. 주 팀장이라고 했나? 독 안에 든 쥐라는 말 알아? 그게 너야.”
◈ ◈ ◈
선우현은 송정구와 주종환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걸 본 후에 오토바이를 가지러 갔다. 그런 후에 그들이 이동한 곳을 따라 움직였다. 두 놈이 들어간 건물의 위치는 김수선이 알려주었다.
선우현이 그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오토바이를 세우며 말했다.
“수선아. 그놈들 아직 저기에 있냐?”
- 둘 다 밖으로 나온 적은 없습니다. 지하에 연결통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직 안에 있을 겁니다.
“저런 작은 건물에 지하철 연결통로 같은 건 없겠지. 내부 상황은?”
- 유리창이 모두 새까맣습니다.
그러면 지원위성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다.
“두 놈이 다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 선장님이 도착하시기 전에, 밖에 나와 있던 놈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누군가 나오려던 걸 막으려 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선우현이 오토바이에서 내려 건물로 걸어갔다.
“저 안에서 문제가 생겼나 보다. 들어가 봐야겠어.”
건물 현관은 일반적인 방화 철문보다 튼튼한 문이었다. 선우현이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철문은 잠겨 있었다.
“잠겼네.”
그가 옆에 달린 벨을 눌렀다.
김수선이 말했다.
- 이번에는 느긋하게 정문에서 벨을 누르시네요?
선우현은 예전에는 납치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기도 했다. 오토바이로 유리창을 박살 낸 적도 있었다.
“또 오토바이를 부숴 먹을 순 없잖아. 우리 편이 아닌 놈들을 만나려고 그렇게까지 할 건 없어.”
- 그건 그렇습니다.
철문이 스르륵 열렸다.
“문에 모터를 달았구나.”
선우현이 건물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내부는 불이 꺼져 있었다.
문 안쪽 바로 옆에는 한 놈이 야구 배트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가 너무 어두워 선우현의 모습은 사람 형태의 흐릿한 윤곽만 보였다.
그놈은 선우현이 들어오자마자 배트를 크게 휘둘렀다. 배트가 허공을 가르다 철문을 때렸다.
알루미늄 배트가 튼튼한 쇠를 때리는 순간 불꽃이 튀었다. 사람 형태의 흐릿한 윤곽이 어느새 사라졌다.
금속으로 쇠를 때릴 때의 강력한 반동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공격한 놈은 손에 충격을 받고 짧은 신음을 흘렸다.
“큭!”
기습 공격은 빗나갔다. 그놈이 소리를 지르며 배트를 위로 들었다.
“이 새끼 어디 있어!”
뭔가가 눈앞에서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응할 틈도 없었다. 갑자기 목이 기계에 끼인 것처럼 꽉 눌렸다.
“케켁!”
적이 다급히 배트를 휘두르려고 했다.
손에 쥔 배트가 기계로 뽑아가듯이 휙 빠져나갔다. 목에 가해지는 압력이 더 커졌다.
“켁!”
갑자기 창고 내부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선우현은 오른손으로 습격한 놈의 목을 잡고 있었다. 그놈의 눈은 이미 흰자위만 보였다.
선우현이 적의 목을 잡은 채로 안쪽을 보며 말했다.
“손님 접대가 왜 이래? 인사가 거칠잖아.”
JXK 매니저 주종환은 한쪽에 쓰러져 있었다.
주종환은 옷이 반쯤 찢어진 상태였다. 온몸에는 피멍이 들었다. 그 옆에는 주종환을 각목으로 두들겨 패던 두 놈이 서 있었다.
선우현과 주종환 사이에 한 놈이 더 있었다.
선우현이 옆을 보았다. 두목 박석진은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전등 스위치도 박석진의 옆에 있었다.
박석진이 느긋한 동작으로 책상 위 버튼을 눌렀다. 선우현의 뒤쪽 철문이 스르르 닫혔다. 모터의 힘으로 여닫을 수 있는 문이었다.
선우현이 말했다.
“거기서 CCTV로 내 얼굴을 보고 열어준 거네.”
박석진이 실실 웃었다.
“너도 독 안에 든 쥐가 된 거지.”
선우현이 붙잡은 놈을 옆으로 밀었다. 이미 기절한 놈이 옆으로 우당탕 소리를 내며 나가떨어진다.
선우현이 바닥에 쓰러져서 꿈틀대는 주종환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너 많이 맞았다?”
주종환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선우현을 가리켰다.
“저 새끼가 그 새끼입니다! 저 새끼가 녹음파일을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아. 너 여기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구나?”
“저 새끼만 잡으면 난 놔둬도 되잖아! 살려주십쇼!”
“그러니까 너 지금 나를 팔아서 살려는 거구나?”
박석진이 CCTV 화면이 나오는 모니터 옆을 툭툭 치며 말했다.
“흐흐. 내가 이 건물 주변을 둘러봤는데, 너 혼자 왔더라?”
“하여간 이런 새끼들은 그걸 그렇게 궁금해한다니까. 혼자 왔으면 뭐 달라지냐?”
송정구 이사가 옆에서 말했다.
“저 새끼가 맞는다니까, 일단 잡아서 조져.”
청부업자 박석진이 엄지와 검지를 비볐다.
“저 새끼가 그 새끼라도, 꼬리를 밟히셨으니 추가금을 내셔야겠습니다.”
“꼬리는 내가 아니라 주 팀장이 잡혔어. 아마 처음부터 주 팀장을 미행했을 거야.”
“주 팀장이 돈을 낼 수는 없잖습니까?”
“박 사장. 난 일이 틀어져도 착수금은 안 돌려받았잖아.”
“그래서 할인해드렸잖습니까?”
“쓰읍. 알았어. 추가 비용은 낼 테니까 처리해.”
“역시 시원시원하십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야. 그 틀어진 일이란 게 뭐냐?”
박석진이 말했다.
“넌 네 목숨이나 걱정해야 할 텐데?”
“그래. 일단 다 잡아놓고 듣자.”
박석진이 인상을 썼다.
“미친놈인가?”
그가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뭐해? 조져.”
그의 부하 셋이 각목을 들고 움직였다.
박석진이 짜증을 냈다. 이미 부하 하나가 당했는데 다른 부하들이 여유를 부렸다.
“이 새끼들아! 연장 제대로 챙겨!”
“예! 형님!”
그의 부하 셋이 방향을 틀어 칼을 보관한 벽장으로 가려고 했다. 그곳에 단검이 아니라 장검을 보관해 두었다.
선우현이 앞으로 쓱 전진했다. 한 걸음의 보폭이 남들이 뛰는 것보다 넓었다. 그는 순식간에 건물 중간에서 움직이던 놈의 앞으로 다가갔다.
“헉!”
그놈이 반사적으로 각목을 휘둘렀다. 하지만 선우현의 알루미늄 배트가 몇 배는 더 빨랐다.
배트가 적의 허리를 파고들었다. 적의 허리가 마치 옆으로 접혔다.
“케엑!”
한 놈이 고꾸라졌다. 선우현이 나머지 두 놈에게 말했다.
“무기를 바꿀 때까지 내가 기다릴 거라고 생각한 거냐? 이놈들 이거, 순진하네?”
박석진이 의자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그냥 쳐!”
다른 놈이 선우현을 향해 각목을 휘둘렀다.
선우현이 알루미늄 배트로 받아쳤다. 배트가 마치 칼처럼 공간을 갈랐다. 바람 소리가 날카롭게 났다.
배트가 적의 각목을 마치 자른 것처럼 부러뜨렸다.
적은 손이 허공을 휘젓는 느낌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으헉!”
선우현이 적을 발로 밀어 차며 동시에 배트를 옆으로 휘둘렀다. 옆에서 습격하던 놈의 팔이 배트에 맞아 뚝 부러졌다.
“끄아악!”
선우현이 옆에서 비명을 지르는 놈의 허리를 걷어찼다. 그놈은 방금 밀어 찬 놈이 넘어진 곳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아악!”
“시끄럽네.”
선우현이 그 두 놈에게 걸어가 배트로 두들겨 팼다.
“으아악!”
“시끄럽다고!”
“아악!”
“조용해질 때까지 패야겠구나.”
“악.”
매니저 주종환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저 새끼가 이 새끼들보다 더 세구나!’
주종환이 선우현을 향해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살려줘! 우리 아는 사이잖아!”
“넌 나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냐?”
“나, 나는 다 시켜서 한 거야!”
“누가?”
“송 이사님이…. 송정구 저 새끼가 다 시켰어!”
“뭘?”
선우현은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주종환은 지금은 뭔가 숨길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까…. 예전부터 구하니의 활동을 방해하라고 시켜서….”
선우현이 송정구를 돌아보았다.
“왜?”
송정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박석진을 닦달했다.
“박 사장. 설마 이게 다는 아니지?”
박석진은 표정에 여유가 있었다.
“송 이사님. 애들 몇 당했다고 나 어떻게 안 됩니다. 저런 새끼는 한 방이면 컷입니다.”
박석진이 믿는 건 본인의 싸움 실력이 아니다. 부하들도 아니다.
그는 선우현이 밖에 나타난 걸 보고 미리 권총을 챙겼다. 그가 믿는 건 권총이다.
‘아예 안 꺼내면 더 좋았지만, 지금은 목격자를 신경 쓸 때가 아니니까.’
박석진이 선우현에게 제안했다.
“어이. 너. 이쯤에서 그만하지?”
“왜? 쫄리냐?”
“너를 위해서 하는 소리다. 여기서 더 하면 너 뒈진다.”
선우현이 물었다.
“야. 한적한 도로에서 자동차 사고를 위장한 습격, 한강 공원 주차장에서 차의 바퀴에 수작 부린 거. 이 중에 아는 거 있냐?”
박석진의 표정이 굳었다. 선우현이 그걸 보고 말했다.
“표정이 단계별로 변하네? 둘 다 아는구나?”
“그것까지 알고 왔으면, 너는 여기서 살아서 못 나간다.”
“야. 내가 너 찾아다녔다. 드디어 만나서 반갑다. 너는 안 반갑겠지만.”
박석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뭐, 의뢰를 받은 거라서. 구하니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다. 물론 이제부터 일어나는 일도 너한테 유감이 있어서는 아니니까.”
박석진이 권총을 쓱 꺼냈다.
“네 뒤에 누가 얼마나 있는지 순순히 털어놔라. 안 그러면 배때지에 구멍 난다.”
선우현이 물었다.
“그거 진짜 총이냐?”
“당연….”
선우현이 휙 움직였다.
박석진은 원래는 권총을 쏠 생각은 없었다. 목격자가 여럿 있는 곳에서 총을 쏘면 일이 복잡해진다.
그는 권총으로 위협만 해도 선우현이 겁먹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선우현이 움직였다.
조금 전에 박석진의 부하들은 선우현이 갑자기 움직이자마자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그 모습을 똑똑히 본 박석진은 선우현이 움직이자마자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목격자가 있다는 건 생각할 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