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앞잡이 II
차가 비틀거렸다.
기획사 JXK의 매니저 주종환이 급히 운전대를 잡으며 룸미러를 확인했다. 뒷좌석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히익!”
심지어 그 사람이 말도 했다.
“야. 운전 똑바로 해라. 흔들리잖아.”
주종환이 차를 급히 길가에 세웠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너 누구야! 누군데 내 차에…. 어? 구하니의 매니저?”
“어. 나야.”
주종환이 운전석 문을 활짝 열고 차에서 뛰어내렸다.
“씨발!”
선우현은 느긋하게 뒷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주종환이 혼란에 빠진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내 차에 탄 거야?”
“차는 문 열고 타야지.”
“문을 따면 차량 경보기가 울렸을 텐데!”
“그런 조잡한 경보기로는 나를 못 막아.”
김수선이 말했다.
- 경보기에 손댄 게 아니잖습니까?
“수선아. 내가 원래 오염지역 침투 작전도 뛰었던 베테랑이야. 저놈이 차에 탈 때 슬쩍 같이 타는 것도 나니까 가능한 거야.”
주종환이 술집에서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 탈 때, 선우현은 동시에 뒷좌석에 탔다. 주종환이 문을 열 때 뒷문을 동시에 열고 들어갔다가, 문을 닫을 때도 같이 닫았다.
그때 주종환은 차의 앞쪽만 신경을 쓰고 있어서 선우현이 뒤로 잠입한 걸 보지 못했다.
대신에 주종환도 차 문이 조금 어색하게 닫혔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때는 창문이 살짝 열렸나 하고 넘어갔다. 선우현은 앞뒤 좌석 사이에 은폐 상태로 있어서 룸미러로는 보이지 않았다.
주종환은 술을 마신 상태라 일일이 차량 내부를 점검하지도 않았다.
주종환은 차량 경보기가 뚫렸다고 생각했다.
“너 이 새끼. 정체가 뭐야? 차 도둑 출신이야? 도대체 어디서 문 따는 법을 배웠지?”
“말해줘도 너는 모르는 부대에서 배웠다.”
- 그놈이 지구연합군을 알 리가 없죠.
주종환은 긴장했다.
‘특수부대 출신이구나. 거기서는 적 후방에 침투한 후에 쓰는 기술들을 배운다던데.’
주종환이 더 묻기 전에 선우현이 질문을 던졌다.
“야. 네가 고성찬한테 하니 씨 팬 미팅을 망치라고 시켰지?”
주종환은 당황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방금 뒷좌석에서 들은 소리를 가지고 떠보는 건가?’
주종환이 일단 잡아뗐다.
“무슨 개소리야? 난 아무 말도 한 적 없어.”
선우현이 조그마한 장치를 보여주었다.
“이건 녹음기라고 하는 거야. 버튼을 누르면 목소리를 녹음해.”
“뭐? 그거 설마….”
선우현이 녹음된 음성을 조금 재생했다.
- 이번에 스프링클러를 터트린 것 같은 일을 다시 하다가 현장 담당이 걸리면, 고성찬이 알아서 꼬리를 잘라야지. 고성찬까지 걸리면 내가 고성찬을 자르고.
“그, 그건….”
“네가 방금 떠들던 거다.”
그건 조금 전에 주종환이 차를 몰면서 했던 말이다.
“노, 녹음은 불법이야! 불법 도청이다!”
“불법인지 아닌지를 내가 왜 신경 써야 하냐?”
“뭐?”
“이거 경찰에 넘길 거다. 이걸 증거로 못 쓰면 경찰이 알아서 다른 증거를 찾겠지.”
“무, 무슨 죄로….”
“연예인과 수많은 팬을 방화 살해하려 한 죄?”
김수선이 말했다.
- 피해자 규모를 부풀리셨군요. 잘하고 계십니다.
주종환이 큰소리로 잡아뗐다.
“아니야! 나는 그런 일을 시킨 적이 없다!”
“녹음한 거 들었잖아.”
“차에서는 그냥 술에 취해서 아무 말이나 한 거다!”
“고성찬이 네가 시켰다고 다 불었어.”
“뭐?”
선우현이 다른 작은 장치를 꺼냈다.
“이것도 녹음기야.”
조금 전에 들려준 건 룸살롱 영업부장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지금 이 녹음기는 선우현이 따로 챙겨간 것이다. 두 개는 모양은 다르지만 크기는 비슷했다.
선우현이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고성찬의 목소리가 나왔다.
- 다 주종환이 시켜서 한 거야! 나는 진짜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고!
주종환이 욕을 내뱉었다.
“고성찬 개새끼. 배신자 새끼.”
선우현이 말했다.
“앞으로 네가 하니 씨에게 개기면 이 파일은 바로 경찰서로 넘어간다.”
주종환의 눈이 반짝였다.
‘협박하려는 건가? 뭔가 얻어내려고? 이러면 말이 통하겠는데?’
“그럼 내가 가만히 있으면 신고는 안 한다는 뜻이지?”
선우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고성찬이 눈치를 보며 제안했다.
“물론 나도 공짜로 그러라는 건 아니다. 얼마면 되겠냐?”
“거지새끼가 딜을 거네?”
“뭐?”
“돈은 넣어둬라. 앞으로 돈이 필요할 테니까.”
“무슨….”
“네가 가만히 있으면 이건 너희 회사로 넘어갈 거야.”
“뭐?”
“너 잘릴 거라고. 연예계에 다시는 발도 못 붙이겠지. 그래도 그게 감방에 가는 것보단 낫잖아?”
주종환이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 새끼….”
선우현이 손을 들었다.
“이게 자꾸 욕이네?”
주종환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선우현이 말했다.
“알았으면 꺼져라.”
주종환의 눈이 선우현의 손에 들린 초소형 녹음기로 향했다.
‘녹음기만 없으면 증거도 없어!’
주종환이 갑자기 선우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거 내놔!”
선우현이 주종환의 손을 툭 쳐냈다. 주종환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선우현이 휘청이는 놈의 뒷덜미를 잡고 옆으로 던졌다.
주종환이 옆으로 휙 날아가 데굴데굴 굴렀다.
“케엑!”
“야. 보내줄 때 가라.”
주종환은 선우현에게 덤벼봤자 상대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저 새끼는 진짜 특수부대 출신이구나!’
선우현이 차 운전석으로 갔다.
“아. 그렇지. 블랙박스.”
그가 차의 블랙박스에서 메모리카드를 뽑았다.
“여기에도 네가 운전하면서 한 말이 녹음되어 있겠네.”
선우현이 그것까지 챙긴 후에 주종환에게 말했다.
“마지막 기회다. 가라.”
주종환이 선우현의 눈치를 보며 차에 올라탔다가 급히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러면서 룸미러로 뒤를 보았다.
뒷유리의 틴팅이 짙어서 선우현의 윤곽만 겨우 보였다.
주종환이 운전대를 치며 욕을 했다.
“씨바알! 저 새끼 가만 안 둘 거야!”
차가 또 흔들렸다.
선우현이 멀어지는 차를 보며 말했다.
“갔네.”
김수선이 보고했다.
- 경찰차가 곧 도착합니다.
“왔네.”
갑자기 경찰차가 앞쪽에서 나타나 사이렌을 울리며 주종환의 차를 막아섰다.
선우현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수선아. 내가 딱 맞게 신고했지?”
- 제가 경찰 도착 예정 시간을 딱 맞춰 알려드린 거지요. 그래서 저런 상황이 벌어지기 딱 좋은 때에 움직이신 거잖습니까?
“어쨌든 음주운전 신고는 내가 했잖아.”
주종환은 당황했다. 그가 경찰에게 항의했다.
“으, 음주단속을 왜 이런 길거리에서 합니까!”
경찰은 누군가 신고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가 음주측정기를 들고 말했다.
“차가 흔들리고 있잖습니까? 그래서 세웠습니다. 이거 부세요. 후.”
주종환이 살살 불었다.
“후.”
“더 세게.”
“후.”
“이분 안 되겠네. 차에서 내려서 다시 부세요.”
이미 경찰차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여기서 도망치면 일이 커진다. 차 번호판을 경찰이 봤고 얼굴도 봤으니 남이 운전했다고 할 수도 없다.
주종환이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렸다. 단속을 나온 경찰이 그의 옷을 보았다.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바닥에 구를 정도로 술을 많이 드셨나 보네.”
“아니, 이건 어떤 새끼가 날 집어 던져서 그런 겁니다. 내가 넘어진 게 아닙니다!”
선우현이 던졌다.
“그렇게 말씀하지만, 던져진 것치고는 다치신 것 같지 않습니다만?”
“그건 그 새끼가 기술적으로 던져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요.”
주종환이 선우현을 만난 장소를 돌아보았다. 거리는 이미 제법 멀어져 있었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부세요.”
“후. 아니, 내가 사실 폐에 병이 있어서 숨이 약합니다.”
“선생님. 더 세게 안 부시면 정식으로 검사할 겁니다.”
“후우.”
이번에는 음주 감지기에 수치가 제대로 떴다. 경찰이 말했다.
“면허정지 수치군요.”
“네? 아니, 난 술을 안 마셨….”
“입에서 술 냄새가 납니다.”
“술을 조금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마셨으면 운전하지 마셨어야지요. 그리고 조금 드신 게 아닌데요.”
◈ ◈ ◈
선우현은 모퉁이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주종환은 이제 음주운전으로 면허정지나 취소가 떨어질 거야.”
- 그 정도로 마시지 않았을 수도 있잖습니까?
“지금 저기 분위기 봐라. 최소 면허정지야.”
선우현은 주종환을 일부러 그냥 보내주었다. 때리거나 부러뜨리지도 않았다. 바닥에 한 번 기술적으로 굴린 게 전부다.
“매니저가 음주운전으로 면허정지에, 인기 가수 구하니의 팬 미팅을 망치려고 방화미수까지 했다는 게 회사에 알려지면.”
- 잘리겠죠.
“주종환은 안 잘리고 회사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겠지.”
- 정상적인 회사라면 넘어갈 리가 없습니다만.
“주종환한테 이 일을 시킨 놈이 있다면, 그놈한테 매달려야지. 그놈에게 이런 사건을 덮고 넘어갈 힘이 있다면 말이야.”
- 그럼 고위층이겠군요.
선우현이 경찰 앞에서 변명하는 주종환을 보며 말했다.
“이제 저놈이 누구를 만나는지 보자.”
◈ ◈ ◈
주종환이 한밤중에 기획사 JXK의 이사 송정구를 찾아갔다.
송정구가 짜증을 냈다.
“주 팀장.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주종환이 굽실거렸다.
“죄송합니다. 워낙 다급한 일이라서….”
“뭔데?”
주종환이 음주운전부터 이야기했다.
송정구가 인상을 구겼다.
“매니저가 음주운전으로 걸려? 그걸 지금 자랑이라고 떠드냐?”
“죄송합니다. 몇 잔 안 마셨는데….”
“일하다 보면 술은 마실 수 있어. 그런데 네가 뭘 마시던, 얼마나 마시던 걸리지 말았어야지!”
“그때 일이 좀 있어서….”
“그리고 그게 한밤중에 나를 불러낼 만큼 급한 일이야?”
“그게 아니라….”
주종환이 선우현과 만났다는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송정구가 음주운전을 덮어줄 눈치는 아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본론을 꺼냈다.
이야기를 들은 송정구가 화를 벌컥 냈다.
“너 이 새끼! 그걸 왜 들켜!”
“죄송합니다. 그놈이 특수부대 출신이라 워낙 은밀하게 움직여서….”
“증거는?”
“제가 차에서 혼자 말한 걸 그 새끼가 녹음했습니다. 거기에 문제가 될 발언이….”
“하. 이 새끼. 가지가지 한다.”
주종환이 급히 말했다.
“제가 구하니를 앞으로 안 괴롭히면 신고 없이 녹음 파일만 회사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제보만 덮어주십시오.”
“그 새끼가 한 약속을 어떻게 믿고?”
“예?”
“회사가 녹음 파일을 받았는데 아무 조치도 안 하면, 그 새끼가 신고 안 하겠냐?”
“그게, 제 차에 몰래 침투해서 불법으로 녹음한 거니까 신고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송정구가 주종환을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 파일에 내 이름도 있어?”
주종환이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송 이사님이 시키셨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송정구가 생각했다.
‘주 팀장이 감방에 가게 되면 내 이름도 말하겠지? 혼자 뒤집어쓸 놈은 아니니까.’
그가 물었다.
“녹음 파일을 가진 그 새끼 어디 살아?”
“그건 아직 저도 잘….”
송정구가 화를 버럭 냈다.
“넌 도대체 아는 게 뭐야!”
“죄송합니다! 그래도 그 새끼는 구하니의 매니저니까, 구하니를 미행하면 그 새끼 사는 곳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송정구가 시계를 보았다. 이미 한밤중이다.
“시간은 적당하군. 너 나랑 어디 좀 가자.”
“어디를….”
“그 새끼를 족쳐서 녹음 파일을 도로 빼앗아야 할 거 아냐!”
“그 새끼가 특수부대 출신이라….”
“그래서 그냥 감방 갈 거야?”
“아, 아닙니다.”
선우현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걸 보았다. 실내로 들어갈 수 없어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선우현이 송정구를 보며 말했다.
“저놈이 시켰네.”
- 뭐라고 합니까?
“소리는 안 들려. 손목시계를 보더니 움직인다. 어디 가려나 보다.”
- 차로 이동하겠군요.
선우현은 이곳에 택시를 타고 왔다. 주종환이 탄 택시를 김수선이 지원위성에서 보고 위치를 알려주었기 때문에 따라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가 계속 차로 이동하면 선우현도 교통수단이 필요하다.
“수선아. 난 오토바이라도 가져와야겠다. 넌 저놈들이 어디로 가는지 보고 있어라.”
◈ ◈ ◈
송정구가 주종환과 함께 조금 으쓱한 동네로 이동했다. 허름한 2층 건물이 있었다.
“송 이사님. 여기는….”
“내가 옛날부터 일 시키는 동생 사무실이야. 따라와.”
두 사람은 1층으로 들어갔다. 건물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아 1층 전체가 한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구석에 화장실 하나만 따로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났다.
“송 이사님. 오셨습니까.”
“어. 박 사장.”
박석진이 이미 일어서서 대기하고 있던 네 명에게 말했다.
“뭐해? 인사드리지 않고.”
“안녕하십니까! 형님!”
“이 새끼들이. 이사님이다. 이사님.”
“예! 이사님.”
송정구 이사가 말했다.
“애들 잠깐 나가 있으라고 해.”
“뭐해? 나가!”
“네!”
네 명이 얼른 건물 밖으로 나갔다.
송정구가 말했다.
“박 사장. 최근에 내가 실망 많이 한 거 알지?”
“그게 말입니다. 저희가 직접 하면 잘할 수 있는데, 하청을 줘서 그렇습니다. 그 새끼들이 자꾸 붙잡혀서….”
송정구가 주종환을 향해 턱짓을 했다.
“이제 하청이나 줄 때가 아니야.여기 주 팀장이 꼬리를 밟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