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파이어
이 룸살롱의 주인은 영업부장 박주열이다. 사장은 단속에 걸렸을 때를 대비해 박주열이 내세운 바지사장이다.
박주열은 선우현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돈을 어디서 썼다는 거고, 그걸 왜 나한테 달라는 거야?’
그렇다고 그걸 따질 생각은 없다.
박주열이 방금 초소형 녹음기를 꺼낸 책상 속 비밀 공간을 손으로 더듬었다. 거기에는 비상금 오백만 원이 들어 있었다.
박주열이 돈뭉치를 꺼냈다. 그걸 그냥 주려다가, 얼른 흰 봉투를 하나 찾아 거기에 돈을 넣었다.
그가 왼손으로 봉투를 공손히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선우현이 봉투를 받은 후에 말했다.
“너 어젯밤에 돼지꿈이라도 꿨나 보다?”
“예?”
“사지가 멀쩡하게 끝났잖아.”
“팔이 빠졌…. 아, 아닙니다!”
선우현이 사무실을 나갔다. 그는 들어올 때는 주방 쪽으로 들어왔는데 나갈 때는 룸살롱 내부로 연결된 문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박주열이 소리를 질렀다.
“불 꺼! 불!”
선우현은 조금 전에 불붙은 종이 뭉치를 소파에 던졌다. 그 불이 번져 이미 소파가 불타고 있었다. 선우현이 있을 때는 감히 그 불을 끄지 못했다.
“소화기! 저기 소화기!”
박주열은 한쪽 팔이 탈골돼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무실에 비치된 빨간색 소화기는 한 손으로는 쓰기 어려웠다.
“빨리 저 소화기 가져와서 불 끄라고!”
부하 두 놈은 얻어맞은 충격이 심해서 일어나지 못했다.
머리를 박고 있던 놈이 황급히 일어나 잘 보이는 곳에 비치해둔 소화기를 가져왔다. 그가 그 소화기의 핀을 뽑고 레버를 당겼다. 주둥이는 소파로 향한 상태였다.
빨간색 소화기에서 소화 분말이 쏟아져나왔다.
박주열은 룸살롱의 화재 경보기를 꺼놓고 스프링클러도 잠가놓았지만, 그나마 소화기는 제대로 된 걸 가져다 놨다. 소파에 붙은 불은 순식간에 꺼졌다.
대신에 사무실 내부가 소화 분말로 가득 찼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켁켁!”
박주열은 룸살롱 쪽으로 대피하려다가, 선우현이 그쪽으로 나갔다는 게 생각났다. 그가 급히 주방으로 대피했다.
◈ ◈ ◈
선우현은 조금 전에 밥을 먹은 방을 열었다.
웨이터가 그 방에 들어와 있었다. 술을 따르러 들어왔던 여자가 그 웨이터에게 따지고 있었다.
“화장실에 없다니! 그럼 먹튀잖아! 이거 이제 다 어떻게 할 건…. 앗! 손님?”
“먹튀 아닌데?”
“어머. 변비셨나 보다.”
“변비도 아니고.”
선우현이 방금 털어온 돈 봉투에서 지폐를 조금 빼내고 나머지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거로 계산하고 남은 건 팁으로 나눠 가져라.”
“네?”
“여기 밥이 맛있더라고.”
선우현이 룸살롱 밖으로 나갔다. 그는 방금 빼낸 지폐를 트럼프 카드처럼 펼쳤다.
“열아홉 장? 오만 원 손해 봤네.”
- 밥 드셨잖습니까?
“아. 그렇지. 오만 원짜리 식사였구나. 어쩐지 맛있더라.”
◈ ◈ ◈
주방에 있던 종업원들은 요리 담당이라 룸살롱 쪽 일은 몰랐다. 박주열은 그들은 사무실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소파에 붙은 불은 완전히 꺼졌다. 그는 아까 스프링클러를 터트린 놈을 시켜 부하 두 명을 주방으로 끌어냈다.
선우현에게 맞아 처박혔던 부하 두 명은 주방으로 끌려 나와서도 기침을 뱉고 있었다.
“켁켁.”
소파의 불은 완전히 꺼졌지만, 분말형 소화기의 가루가 사무실 전체에 깔려있었다. 거기로 다시 들어가는 건 무리였다.
네 사람은 사무실은 포기하고 손님이 없는 룸으로 갔다.
영업부장 박주열이 소파에 앉아서 말했다.
“씨발. 이건 뭐 트럭에 치이고 폭탄까지 맞은 꼴이잖아.”
선우현에게 덤비다 책상에 처박혔던 놈이 물었다.
“부장님.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어떻게 해?”
“그 새끼를 그냥 그대로 두실 겁니까?”
“그 새끼 정체도 모르잖아.”
“그런 놈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거기다 스프링클러 일과 관계가 있을 테니까, 수소문해보면….”
“누군지 알아내면 어쩌려고? 네가 가서 조질래?”
복수하자던 부하는 화들짝 놀랐다.
“예? 아, 아닙니다.”
“그 새끼 혼자서 우리 다 순식간에 작살 내고 불까지 지르고 나가는 거 못 봤어?”
“봐, 봤습니다.”
박주열이 왼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 새끼는 미친놈이야. 거기다 싸움도 잘하고 불도 잘 질러. 조지려다가 실패하면 다음엔 우리가 다 뒈져, 이 새끼야.”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그리고 그 새끼가 녹음파일을 가지고 있다. 그거 터트리면 난 뒈지고 여기는 쫄딱 망해.”
박주열이 부하들에게 경고했다.
“오늘 여기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괜히 소문나면 손님만 떨어진다. 그러면 그 새끼가 다시 찾아오기 전에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거야. 다들 입 닥치고 있어.”
“알겠습니다.”
박주열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고성찬의 전화였다.
박주열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그가 전화를 끊고 차단까지 걸었다.
“이 새끼 때문에 내가 지금 무슨 꼴을 당했는데 왜 전화질이야!”
◈ ◈ ◈
배우 소병훈은 야간 촬영을 하는 중이다. 매니저 고성찬이 세트장 뒤에서 투덜댔다.
“씨발. 박 부장 새끼는 그런 간단한 일 하나 제대로 못 해?”
그가 전화를 걸었다. 박주열은 받지 않았다.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고성찬이 짜증을 냈다.
“이 새끼는 왜 전화는 안 받아? 이렇게 나오면 내가 룸살롱 아가씨를 드라마에 꽂아줄 줄 알아?”
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걱정하진 않았다. 룸살롱 영업부장 박주열이 다시 연락할 거라고 생각했다.
“돈이 걸려 있으니까 먼저 숙이고 들어오겠지.”
촬영은 한밤중에 끝났다.
배우 소병훈이 말했다.
“피곤하다. 빨리 집에 가자.”
고성찬은 이렇게 방송이나 영화 촬영이 있을 때는 로드 매니저를 쓰지 않고 직접 움직인다. 그러면서 본인의 얼굴을 방송 관계자들에게 알린다.
그래서 오늘은 고성찬이 운전했다.
“어. 타.”
고성찬은 소병훈의 집으로 가면서 스마트폰을 힐끗 보았다.
‘이 새끼가 왜 연락이 아직도 없지? 슬슬 할 때가 됐는데?’
차가 소병훈의 집 앞에 도착했다.
소병훈이 차에서 내리다가 멈칫했다. 집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사생팬이나 기자인가 했다.
그러다 선우현을 알아보았다.
“어? 구하니 씨의 매니저?”
배우 소병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하니 씨가 나를 기다렸나? 어디 있지? 차는 어디 세웠습니까?”
선우현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이번 일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배우라서 모르는 척하는 연기를 잘하는 걸까?”
- 족쳐보시죠.
“고성찬이 입을 열지 않으면 족쳐야지.”
고성찬도 차에서 내렸다. 그가 선우현을 보더니 인상을 확 썼다.
“너 뭐야? 왜 여기 있어?”
“너 기다렸다.”
“뭐? 이 새끼가 건방지게!”
선우현이 대놓고 물었다.
“오늘 하니 씨 팬 미팅 장소, 네가 시켰지?”
고성찬이 멈칫했다가 오히려 목소리를 더 키웠다.
“어디서 뺨 맞고 와서 나한테 개소리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나 보다?”
“내가 연예계 정보는 빠삭하니까 알았다! 팬 미팅 후기가 인터넷에 떴어!”
“핑곗거리는 찾아놨구나.”
“그런데 이 새끼가 자꾸 건방지게!”
소병훈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이봐요. 구하니 씨 팬 미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왜 우리한테 따집니까?”
“오늘 하니 씨 팬 미팅 장소의 스프링클러가 터졌거든.”
소병훈이 계속 고성찬의 편을 들었다.
“아니, 그거야 터질 수도 있는 거지. 저번에 두 사람이 대기실에서 언성 좀 높인 건 아는데, 그게 그런 짓을 저지를 만한 일은 아니잖아!”
“고성찬이 시켰다더라.”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선우현이 초소형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고성찬이 룸살롱에서 영업부장 박주열에게 청부하는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병훈은 당황했다. 바로 옆에 있는 매니저의 목소리를 모를 수가 없다.
“어? 어?”
고성찬이 깜짝 놀라 녹음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건 조작이야! 다 가짜야!”
선우현이 고성찬의 손을 툭 쳐낸 후에 뒤로 밀었다. 고성찬이 뒤로 세 걸음이나 밀려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녹음기에서는 룸살롱 박주열과 단역 자리를 거래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 “나 소병훈을 키운 매니저야. 지금 방영 중인 드라마에 30초 정도 출연하는 자리가 있는데, 내가 거기 한 명 꽂아줄 수 있다. 대사도 한 줄 있어. 그거면 되겠냐?
- 룸에 있는 TV에 담당 아가씨가 출연한 장면 딱 띄워주면 손님들이 좋아서 환장한다. 연예인이랑 노는 줄 알아. 흐흐흐.
고성찬이 주저앉았다가 허겁지겁 일어났다.
소병훈이 구겨진 얼굴로 고성찬을 돌아보았다.
“이게 뭐야? 룸살롱이랑 드라마 배역으로 장사했어?”
“아니야! 그거 다 오해야! 녹음파일의 목소리를 조작한 거라고!”
“구하니의 팬 미팅도 망치라고 시키고?”
“아니라고!”
소병훈이 화를 벌컥 냈다.
“야 이 새끼야! 내 이름 팔아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선우현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소병훈은 배우니까 연기하는 걸 수도 있지만, 고성찬까지 배우 수준의 연기력이 있는 건 무리지?”
- 소병훈은 정말 몰랐나 봅니다.
소병훈이 선우현을 휙 돌아보았다.
“난 몰랐어! 내가 그런 일에 내 이름 팔아먹게 할 리가 없잖아! 나랑 구하니가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데! 우린 마주치면 인사는 하는 사이라고!”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말이야.”
선우현이 고성찬에게 말했다.
“소병훈이 조금 전에 한 말처럼, 겨우 말싸움 조금 한 거로 이렇게 일을 저지르는 건 이상하지?”
고성찬이 얼른 맞장구쳤다.
“맞다! 그러니까 다 오해….”
“그러니까 널 부추기거나, 너한테 시킨 놈이 있을 거야. 넌 얼씨구나 하고 받았겠지.”
“아니, 나는….”
고성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녹음파일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게 된다. 그러면 뒷감당이 어렵다. 당장 소병훈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회사에서도 잘릴 게 뻔하다.
고성찬이 잡아뗐다.
“그 녹음파일은 조작된 거라니까!”
“국과수에 넘기면 조작인지 아닌지 분석해주겠지.”
“어? 뭐? 겨우 그런 일로 국과수를….”
“네가 입 다물고 있으면 난 이걸 경찰에 넘겨야지. 건물에 불을 지르려고 한 건 중범죄니까.”
“겨우 스프링클러가 터진 건데….”
“불을 지르려다가 스프링클러가 터져서 실패한 건지 누가 알겠어? 그걸 확인해야 하니까 경찰은 국과수로 이 파일을 넘겨서 조사하겠네?”
“그, 그러면 안….”
“인기 가수 구하니를 노리고 방화? 감방 가야지?”
“헉!”
“이거 경찰에 넘기면 네 인생은 끝나.”
소병훈도 옆에서 말했다.
“연예인의 팬 미팅 장소에 불을 지르려던 놈을 써줄 회사는 없어! 교도소에서 몇 년 썩다 나온 후에도 이 바닥에는 발도 못 붙일 거다!”
고성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그는 이제 소병훈을 맡지 못하거나 기획사에서 잘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 살려줘.”
선우현이 물었다.
“누가 시켰냐.”
“그, 그걸 말해주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선우현이 소병훈을 돌아보았다.
소병훈이 화난 얼굴로 말했다.
“자백해도 회사에서는 잘라야지! 저런 새끼를 어떻게 옆에 두라고!”
선우현이 고성찬에게 말했다.
“너 다른 일 알아봐야겠다.”
고성찬이 반항했다.
“그럼 내가 그걸 말할 이유가….”
“그럼 감방에서 몇 년 푹 썩던가. 인기 연예인을 노린 방화 시도. 아홉 시 뉴스에 나겠네.”
고성찬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바닥에서 퇴출당하더라도 교도소는 안 가는 게 그나마 나은 선택지다.
고성찬이 창백한 얼굴로 이름을 내뱉었다.
“주종환.”
“기획사 JXK의 매니저 주종환?”
고성찬이 서둘러 말했다.
“그래. 그 새끼가 팬 미팅 정보도 알아오고 계획도 다 세웠어. 나는 그냥, 그 새끼가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야.”
변명도 했다.
“심하게 할 생각은 없었어. 그냥 구하니의 매니저 자리에서 잘리는 정도만….”
“내 밥줄을 끊으려 했다는 거네?”
- 선장님 밥줄이요? 구하니가 매니저로 일해주면 월급은 준다고 했습니까?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아니.월급 이야기는 까먹고 안 했어.그런데 저놈은 그걸 모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