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 토끼굴
김수선은 문을 부수라고 제안했다.
선우현이 말했다.
“이 룸살롱이 스프링클러를 터트린 놈의 아지트라는 증거는 없어. 그놈이 이 건물에 들어오는 것만 봤지, 여기 들어오는 건 못 봤잖아.”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이 언제부터 증거 확인하고 사고 치셨다고요?
“수선아. 사고는 네가 치라고 하는 중이야.”
- 아. 그러네요.
“그리고 여기를 털었는데 그놈은 다른 층에 있으면, 그놈이 가만있겠냐? 튀지.”
- 추적당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면 교란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귀찮아지겠군요.
“맞아.”
- 그런데 그 문을 부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여기서 습격당했을 때 출입구가 하나면 독 안에 든 쥐 꼴이 된단 말이야.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니까, 이놈들이 토끼라면 문이 더 있겠지.”
선우현이 방금 확인한 주방으로 쓱 들어갔다.
그곳은 원래 웨이터가 수시로 들락거리는 곳이라서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누가 들어와도 잠깐은 신경 쓰지 않았다.
주방 안쪽에 다른 곳으로 연결되는 문이 보였다. 선우현은 주방 직원들이 그를 알아보기 전에 그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이건 역시 안 잠겨 있어.”
선우현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룸살롱 사무실이 있었다.
“여긴 문이 세 개나 있네? 토끼굴 맞구나?”
그 사무실에는 주방으로 연결되는 문과 룸살롱 내부로 연결되는 문, 건물 밖으로 탈출할 때 쓰는 문이 있었다.
“토끼도 네 마리 있고.”
사무실에는 네 명이 있었다.
중간에 앉아 있는 덩치가 말했다.
“야. 저 손님 빨리 룸으로 보내드려. 많이 취하셨나 보다.”
선우현과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덩치가 일어났다.
“예. 형님.”
선우현은 그들이 아니라 구석 테이블에 앉아서 술을 홀짝이는 놈을 보았다.
“수선아. 아까 그놈. 회색 셔츠에 청바지, 머리카락은 얼굴을 반쯤 가리고. 맞지?”
선우현은 쫓는 놈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김수선은 실내에 있는 놈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인상착의만 간단히 설명했다.
- 맞습니다만, 그것만으로 동일인이라고 판단하긴 어렵습니다. 흔한 모습이니까요.
“하필 여기서 그 복장인 놈이 있는 게 우연은 아니겠지. 확인해보자.”
선우현이 구석에서 있는 놈에게 물었다.
“야. 너지? 아까 스프링클러 터트린 놈.”
술을 마시던 놈이 화들짝 놀랐다.
“켁. 켁. 어? 뭐?”
“맞네.”
사무실 안쪽에 앉아 있던 영업부장 박주열이 벌떡 일어났다. 그가 이 룸살롱의 실소유주다.
박주열은 살짝 긴장한 상태였다.
‘그걸 어떻게 벌써 알아냈지? 형사인가? 유명 연예인이라서 경찰에 빽이 있는 건가?’
박주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스프링클러 회사에서 나왔다.”
박주열은 당황했다.
“어? 그게 무슨 개소리야?”
“스프링클러값 받으러 왔다고.”
박주열은 선우현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깨달았다.
“너. 형사는 아니구나?”
형사라면 신분을 밝히지 저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박주열의 표정이 좀 펴졌다. 선우현이 그 꼴을 보며 물었다.
“넌 내가 스프링클러 이야기를 왜 하는지 아나 보다? 네가 시켰구나?”
박주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누가 보냈냐?”
“회사에서 나왔다니까 믿지를 않네. 야. 그런데.”
선우현이 박주열을 보며 말했다.
“네가 여기 부장이냐?”
“나를 찾아왔나?”
“맞네.”
- 그놈이 거기 대가리입니다. 그놈을 조지십시오.
박주열이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저 새끼 일단 조져라. 어디서 보냈는지 알아야겠다.”
사무실에 있던 덩치 두 놈이 어깨를 휘적거리며 선우현에게 걸어갔다.
먼저 다가간 놈이 선우현에게 말했다.
“가만히 있어라. 반항하면 뒈진…. 켁!”
선우현이 덩치의 목을 툭 쳤다. 덩치가 짧은 비명과 함께 고꾸라졌다.
“뭔 말이 많아?”
뒤에서 따라가던 놈은 깜짝 놀랐다. 그놈이 반사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이 새끼…. 끄아악!”
선우현이 그 팔을 잡아 꺾었다.
“내가 새끼는 아니지.”
“아아악!”
상대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선우현이 상대의 다리를 툭 차며 옆으로 집어 던졌다.
덩치가 허수아비처럼 휙 날아가 책상에 처박혔다.
“케엑!”
박주열이 급히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에서 단검이 하나 나왔다.
박주열이 칼집에서 단검을 뽑아 선우현을 겨누었다. 잘 갈린 날카로운 칼날이 시퍼렇게 빛났다.
박주열이 으르렁댔다.
“너 이 새끼! 죽고 싶어?”
선우현이 피식 웃었다.
“뭐야. 권총이 아니네?”
- 약한 놈이네요.
“잔챙이야.”
- 뒤에 누가 더 있을 겁니다.
선우현이 박주열에게 걸어갔다.
“야. 누가 시켰냐?”
“네, 네가 때려 부수고 있으면서 누가 시켰냐니!”
“스프링클러 누가 터트리라고 시켰냐고.”
박주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 정말로 스프링클러 회사에서 나왔….”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이제 칼날이 닿는 거리였다.
박주열의 눈이 번뜩였다. 그가 선우현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배가 좀 나오긴 했지만 단검을 뻗는 각도 하나는 예리했다.
하지만 느렸다. 속도와 힘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데 통할 리가 없다.
선우현이 박주열의 팔을 콱 붙잡아 비틀었다. 관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으아악!”
단검이 박주열이 손에서 빠져나왔다.
선우현이 그 단검을 공중에서 잡아 옆으로 휙 던졌다.
단검이 날아가 밖으로 탈출하는 데 쓰는 철문에 퍽 꽂혔다. 단검에 실린 힘이 워낙 강해 칼날이 철판을 뚫고 손잡이가 철판을 때렸다.
그 문으로 탈출하려던 놈은 얼굴 바로 옆 철문에 박힌 단검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히익!”
선우현이 도망치려는 놈에게 말했다.
“네가 그 문을 열고 도망치는 게 빠를까? 내가 네 목을 이놈 팔처럼 비트는 게 빠를까?”
박주열의 오른팔은 이미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히이익!”
“저놈들 있는 쪽에 가서 대가리 박아.”
도망치려던 놈이 덜덜 떨면서 다른 놈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박았다.
선우현이 그놈에게 물었다.
“너한테 스프링클러 터트리라고 여기 이놈이 시켰지?”
“그, 그게….”
“넌 지금 돌아가는 꼴이 눈에 안 보이냐? 내가 안 무섭나 보다? 나 경찰 아니다?”
“저, 저는 그냥, 파티 하나만 망치라고 해서…. 누, 누굴 다치게 한 건 아닙니다!”
“계속 박고 있어.”
“네!”
선우현이 박주열의 다리를 툭 찼다. 박주열이 바닥에 나자빠졌다.
“누가 시켰냐?”
박주열은 오른팔이 탈골됐다. 뼈가 부러진 건 아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선우현의 압도적인 힘과 거친 공격에 기가 죽은 상태였다. 부하들은 한 놈은 목을 잡고 꿈틀댔고, 다른 놈은 책상에 처박혀서 꿈틀댔다.
박주열이 선우현을 힐끗 보았다.
‘이 새끼는 손을 쓸 때 망설임이 없었어.’
그래서 겁이 나기는 했지만, 일단 협상을 걸었다.
“겨우 그 정도 일로 왜 이러십니까?”
“겨우?”
“보상이 필요하시면 하겠습니다.”
“아. 그래. 야. 여기는 스프링클러 작동 잘 되냐?”
“스프링클러를….”
이곳은 담배 연기 때문에 화재 경보가 가끔 울리는 걸 막으려고 아예 경보기를 꺼놓고 스프링클러 밸브도 잠가놨다.
“여기 스프링클러를 터트려서 똑같이 보복하려고 그러시나 본데, 그거 잠가 놨….”
“여기 불 지르려고.”
“예?”
“내가 원래 받은 건 이자 쳐서 갚는 성격이거든.”
“히이익!”
선우현이 책상 위를 보았다. 라이터와 재떨이가 있었다.
그가 라이터로 불을 켜고 책상 위에 있는 종이들을 둘둘 말아 불을 붙였다.
그가 횃불처럼 불타는 종이 뭉치를 천장의 스프링클러에 갖다 댔다. 그 상태로 좀 있어도 물은 쏟아지지 않았다.
“야. 너희 넷은 다 죽겠다. 내가 너희를 다 기절시키고 저 철문은 닫아놓을 거거든. 이 사무실이 홀라당 타면 내가 그랬다는 증거는 안 남을 거야. 그치?”
박주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 살려….”
“괜찮아. 화재 경보기를 수동으로 켜서 사람들을 내보낼 테니까, 손님이나 직원들은 안 죽어. 너희야 기절해서 그 소리를 못 듣겠지만.”
“아, 안….”
“누가 시켰냐?”
박주열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선우현이 말했다.
“머리 굴리는 소리 들린다.”
박주열은 겁이 났다.
‘이 새끼는 위험해. 진짜로 죽일 것 같아.’
그는 시궁창에 굴러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죽는 것보다는, 사고 좀 내라고 한 그 새끼 이름 대는 게 낫잖아. 그 새끼가 나한테 보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청부를 한 놈과 관계가 틀어지면, 이 룸살롱 소속 여자를 TV나 영화에 단역으로 나오게 하는 것도 끝난다.
그런데 그게 아까워서 버티면, 진짜 불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선우현의 눈빛이 진심처럼 보여서 더 무서웠다.
박주열이 외쳤다.
“고성찬입니다! 고성찬이 시켰습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소병훈의 매니저군요.
선우현이 모르는 척 물었다.
“고성찬이 누구야?”
“인기 배우의 매니저입니다! 그놈이 파티만 망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희는 누굴 다치게 할 생각도 없었고, 다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진짜입니다!”
“그게 끝이라고?”
“네!”
“그런데 왜 네 눈동자는 계속 돌아가냐?”
“그, 그게….”
“불 질러야겠네.”
고성찬이 급히 말했다.
“파티 장소를 못 쓰게 만들어서 팬 미팅을 길거리나 공원, 아니면 카페처럼 접근이 쉬운 곳에서 하면!”
“그러면?”
“바람잡이를 써서 매니저 욕을 하라고 그놈이 시켰습니다!”
“응? 매니저를 왜?”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모릅니다! 살려주십쇼!”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구하니가 아니라 선장님이 타깃이라는데요? 헛다리 짚으신 거 아닌지?
“날 노린 거면 더 나쁜 놈이지.”
- 아, 네.
“가서 그놈을 잡아야겠다.”
- 고성찬이 지금 기획사나 집에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선우현이 불붙은 종이를 툭 던졌다. 종이가 소파에 떨어졌다. 종이 한 장이 아니라 둘둘 말았던 것이 주르륵 펴지며 불이 커졌다.
박주열과 다른 놈들이 그걸 보고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아악!”
선우현이 박주열에게 말했다.
“야. 그게 다가 아니잖아.”
“네?”
“고성찬이 너한테 시켰다는 거, 내가 믿으려면 증거가 있어야지?”
“그, 그게….”
“없으면 뭐, 내가 네 말을 믿을 이유가 없고, 그러면 다 죽어야지.”
이미 소파에 불이 붙고 있다.
박주열이 허둥대며 일어나 책상에 숨겨진 비밀 공간을 열었다.
선우현이 말했다.
“거기에 권총이 있으면 꺼내보든가.”
“어, 없습니다!”
박주열이 그 공간에서 초소형 디지털 녹음기를 꺼냈다.
“여, 여기 있습니다!”
“켜봐.”
“켜겠습니다!”
박주열이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고성찬이 청부할 때 했던 말이 그대로 녹음되어 있었다.
- 팬미팅 장소 하나 문 못 열게 문제 일으켜 놓고, 야외에서 하는 팬미팅에 프락치 심어서 매니저 욕이나 좀 하면 돼. 건방진 매니저 새끼가 있거든.
녹음파일을 다 재생할 시간은 없다. 지금도 소파에 불이 붙어 있다.
박주열이 음성이 재생되는 상태에서 급히 말했다.
“보, 보험 삼아 녹음한 겁니다. 그 새끼가 나중에 딴소리하면 안 되니까요!”
선우현이 그 녹음기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 여기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거다. 오늘 일이 밖에서 들리면, 다음엔 여긴 불바다가 되는 거야.”
박주열이 불붙은 소파를 계속 힐끗거리며 외쳤다.
“입 꽉 다물겠습니다!”
“CCTV는 어디 있냐?”
박주열이 옆쪽을 가리켰다. 구석 자리 책상에 컴퓨터 한 대와 모니터가 있었다. 모니터에는 9분할 된 화면으로 룸살롱 복도와 건물 바깥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선우현이 컴퓨터 케이스를 뜯고 내부 저장장치를 다시 뜯어냈다. 그가 그걸 박살 낸 후에 말했다.
“불만 있냐?”
“없습니다!”
“나를 다시 보게 되면, 오늘처럼 좋게 넘어가지 않아. 알아서 잘 피해 다녀라.”
선우현이 사무실 문으로 걸어갔다. 박주열이 속으로 다급히 말했다.
‘빨리. 가라. 빨리… 왜 돌아오는데!’
선우현이 사무실을 나가다가 돌아왔다.
“야. 돈 내놔.”
“네?”
“내가 안 써도 되는 돈을 썼어.”
선우현은 여기 들어올 때 웨이터에게 입장료를 줬다.
“네가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