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40화 (240/281)

240. ROOM

룸살롱 실소유주인 영업부장 박주열이 말했다.

- 4층 파티 장소만 망쳐놓으면 된다더니, 안 되는데?

배우 소병훈의 매니저 고성찬이 따지듯이 물었다.

“뭔가 잘못 처리한 거 아냐? 새 장소를 섭외할 시간을 너무 준 거 아니냐고!”

- 그건 아니야. 팬 미팅 한 시간 전에 스프링클러를 터트렸으니까.

“직전에 터트리라고 했잖아!”

- 그러면 사람들이 들어오니까 터트릴 기회가 없다. 목격자가 있어서 그놈이 붙잡히면 우리까지 다 곤란해지잖아. 그 정도는 알 텐데?

“그거야….”

고성찬도 이런 수작질이 대놓고 걸리면 일이 복잡해진다는 걸 안다. 그래서 사고로 위장하려고 스프링클러만 터트렸다.

고성찬이 다시 따졌다.

“이상하잖아! 갑자기 강남에서 어떻게 전시관을 빌려! 그것도 겨우 한 시간 남겨 놓고! 박 부장. 일 시킨 놈은 믿을만해? 그놈이 배신하고 저쪽에 정보를 팔아먹은 거 아냐?”

- 그 전시관은 오늘이 하필 휴관일이라더라.

“어?”

- 그걸 보고 유명 가수의 이름값으로 어떻게든 한 거겠지.

고성찬이 생각하기에도 그렇게 설명하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씨발. 운 더럽게 좋네.”

- 우리한테는 운이 나쁜 거고.

“아니, 씨발. 그러면 프락치 심어서 바람 잡는 건?”

- 거기는 전시관이라서 입구부터 보안 시설이 있어. 바람잡이가 팬인 척하면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고.

“박 부장. 지금 변명할 때야? 이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 나야 시킨 대로 진행한 것뿐인데 어떻게 하냐니?

“결과가 나쁘잖아. 결과가! 박 부장. 진짜 나랑 이제 안 볼 거야? 배역 필요 없어?”

필요하다.

고성찬이 30초짜리 단역 자리 하나만 꽂아줘도 박주열의 룸살롱 매출이 올라간다.

아쉬운 게 많은 박주열이 살살 달랬다.

- 이 일은 어차피 한 번에 안 끝날 수 있다며? 다음번에는 더 잘 준비해서 잘 처리할게. 그러면 되잖아.

“그래. 다음에는 꼭 성공해야 한다.”

- 한번 들러. 술이라도 마시고 가.

“다음에.”

고성찬이 전화를 끊었다.

기획사 JXK의 매니저 주종환이 물었다.

“잘 안 됐대?”

“구하니가 그 근처 전시관을 바로 빌려서 옮겼단다. 거기가 하필 오늘이 휴관일이라서 가능했다더라.”

주종환이 혀를 찼다.

“쯧.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걸 실패하나.”

“다음에는 제대로 처리할 거다.”

“신입 매니저 한 놈 엿 먹이는 걸 이렇게 어려워해서야….”

고성찬이 짜증을 냈다.

“다음엔 제대로 할 테니까 구하니의 스케줄 정보나 더 모아봐!”

◈          ◈          ◈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 추적 대상이 강남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팬 미팅 현장에서 2km쯤 떨어진 곳입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건물이라…. 어느 층으로 갔는지 보여?”

- 안 보입니다. 그런데 그 건물에 룸살롱이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알았어?”

- 간판이나 입구 분위기가 딱 룸살롱입니다. 저런 거 뉴스에서 많이 봤습니다.

“그럼 맞겠지.”

- 일반 사무실보다는 룸살롱이 적의 거점일 확률이 높습니다.

“대낮부터 술 마시러 간 건 아닐 테고.”

- 아직 간판에 불도 안 켰습니다.

“여기 일 다 정리하고 나서, 거기는 밤에 방문해 확인해야겠다.”

- 룸살롱이 영업 시작한 후에요?

“그렇지.”

- 뭐 먹으려고 밤에 가려는 건 아니시죠?

“내가 아직 그런 곳에서는 어떤 밥이 나오는지 먹어보지 못해서.”

- 선장님?

◈          ◈          ◈

팬 미팅이 끝난 후에 구하니의 팬클럽 카페에 후기와 감상이 올라왔다.

- 원래 팬 미팅을 하려던 파티룸에서 스프링클러가 터져서 장소가 갑자기 변경됐는데, 더 좋아요.

- 분위기 진짜 좋은 전시관을 빌렸더라고요.

- 선물도 쩔었음. 꽝 뽑으면 옜다 이거나 받아라 하면서 주는 게 태블릿 PC임. 그것도 12.9인치짜리로. 참고로 30명이 꽝을 뽑았음.

- 그럼 태블릿 PC만 30대를 뿌린 거네요. 대박이네.

- 잠깐. 꽝이 태블릿 PC면, 그 위는요?

- 당첨은 최고 사양 프리미엄 스마트폰. 그것도 유심만 갈아끼면 되는 자급제폰으로. 당첨자는 열여섯 명임.

- 장난 아니네요. 구하니는 50명 소규모 팬 미팅에 돈을 얼마를 쓴 거죠?

- 우리가 어디 그냥 팬인가요? 구하니가 고생할 때도 응원하던 찐팬임.

- 역시 빛하니. 찐팬을 위해서 전시장도 빌리고 선물도 비싼 거로 팍팍 쓰고.

- 거기서 포장 뜯으면 그 자리에서 태블릿이나 폰에 사인도 해줬어요. 나도 스마트폰에 사인받았어요.

다른 걸 묻는 사람도 있었다.

- 잠깐만. 50명 참석에 46명이 뭔가 받았으면, 나머지 네 명은? 손가락만 빨았나요?

- 네 명은 대박상.

- 대박은 상품이 뭔데요? 스마트폰보다 위에 있는 게 뭐죠?

- R 크림을 줬어요.

- ??

- ???

- R 크림을 어떻게 줘요? 말이 안 되잖아요.

- 주던데요?

- 대박상이 네 명이라면서요.

- 그래서 네 개 줬어요.

- !!

- !!!!

곧바로 탄식이 올라왔다.

- 나는 왜 팬 미팅에 참석하지 않았던 건가!

- 내가 갔어야 했는데!

그 후기를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 아니, 연예인들도 구하기 어려워서, 직거래로 팔면 연예인 본인이 나와서 받아가기도 한다는 그 R 크림 맞아요? 짝퉁 아니에요?

다른 팬 미팅 참석자도 댓글을 달았다.

- 제 친구가 대박상 받았어요. 진퉁 맞아요. 그리고 난 태블릿 PC 받았어요. 친구가 반띵을 안 해줘요. 한 번 발라나 보게 해주지.

- 이해가 안 가서 그래요. 태블릿 PC 30대? 최신 스마트폰 16대? 비싸긴 하지만 돈 화끈하게 쓰면 선물로 뿌릴 수 있어요.

- 맞아요. 우리 구하니가 그 정도는 되잖아요.

- 그런데 말이죠. 연예인들도 하나 구하기 힘든 R 크림을 어떻게 네 개나 구했는데요? 아니, 구했다고 해도 그걸 팬한테 뿌린다는 게 말이 되나?

- 되던데요?

R 크림은 하나로 천년만년 쓰는 게 아니다.

한 통에 50g이 들어 있는데, 당연히 쓸 때마다 조금씩 사라진다. 효과가 워낙 좋아서 자주 쓰게 되니까 일반 크림보다 빨리 줄어든다.

특히 연예인들은 매일 바르기 때문에 더 빨리 소모된다.

그래서 R 크림을 이미 가지고 있는 연예인도 어떻게든 더 구하려고 애썼다. 한 통에 들어 있는 50g쯤은 연예인의 활동기에는 정말 빨리 사라진다.

R 크림은 원래 여유분이 있다고 해서 남에게 나눠주는 물건이 아니다.

- 역시 빛하니.

- R 크림을 선물로 네 개나 주는 건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 다음 팬 미팅은 언제 하나요?

- 에이. 설마 또 R 크림을 주겠어요?

◈          ◈          ◈

구하니가 팬카페에 올라오는 글을 보며 말했다.

“오늘 팬 미팅 반응이 정말 좋아요. 특히 R 크림이 대박이래요.”

“마침 가방에 몇 개 굴러다녀서 다행이었죠.”

구하니가 웃었다.

“R 크림이 가방에 굴러다니는 사람은 우현 씨밖에 없을 거예요.”

선우현이 구하니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오늘 스케줄은 여기까지. 다음 스케줄 있을 때 다시 올게요.”

그녀가 몸을 살짝 꼬며 소리를 냈다.

“웅….”

“뭔가 할 말이라도?”

“다음 스케줄을 언제 잡아야 하나 해서요. 내일 당장 잡을까요?”

“당분간은 스케줄 무리해서 안 잡아도 됩니다.”

“네?”

“오늘 스프링클러 터트린 놈을 잡으면 뭔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놈이 누군지 알고요?”

“찾았습니다.”

“아…. 벌써 찾은 거예요?”

그것 자체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선우현이 납치된 사람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는지를 몇 번이나 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아쉽다.”

“어째서?”

그녀가 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니, 아니요. 그게 아니라요. 미끼 놓고 범인 기다리는 거 재미있었잖아요. 그 이야기에요.”

“뭐, 그놈이 우리가 찾던 범인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일단 기다려봐요.”

“네에.”

선우현이 그녀를 집 앞에 내려주고 그곳을 떠났다. 구하니가 멀어지는 차를 보며 말했다.

“범인 오늘 꼭 안 잡아도 되는데. 오늘 잡는 놈은 그냥 잡범이면 좋겠다.”

◈          ◈          ◈

선우현이 룸살롱이 있는 건물 앞에서 물었다.

“수선아. 여기냐.”

- 맞습니다. 그놈이 룸살롱으로 들어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건물에 들어간 건 확실합니다.

그 룸살롱은 강남역 사거리 대로변이나 전철역처럼 사람의 통행량이 많은 곳과는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확인은 이제부터 해야지.”

룸살롱은 지하에 있었다. 선우현이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건물 밖에서는 막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지하로 내려가자 룸살롱 문 앞에 사람이 서 있었다.

웨이터 복장의 남자가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밥 먹으러 왔다.”

“여기는 술을 파는 곳입니다.”

“그럼 술도 마시면 되겠네.”

웨이터가 선우현이 입고 있는 옷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선우현은 평소에는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다닌다. 스래곤 사장으로 출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려고 일부러 스래곤에 복장 자율화를 정착시켰다.

그런데 오늘은 구하니의 매니저로 일했다. 그럴 때는 가격대가 제법 나가는 양복을 입고 다닌다.

신입 매니저가 명품 양복을 입고 다니면 범인이 의심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중고가 양복을 입되 명품이라고 불리는 선은 일부러 넘지 않았다.

그 정도만 입어도 돈이 좀 있어 보이긴 했다.

웨이터가 물었다.

“누구 소개로 오셨습니까?”

“그냥 왔다.”

웨이터의 자세와 말투가 조금 삐딱하게 변했다.

“우리 가게에 오시는 손님은 대부분 다른 손님의 소개를 받아서 오시는데? 지나가다 들어오는 손님은 잘 안 받는데?”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입구에서 커트 되신 겁니까?

선우현이 웨이터에게 말했다.

“대부분 소개를 받는다는 건, 예외도 있다는 뜻이네?”

“그거야 좋은 손님이 오시면….”

“그게 바로 나야.”

웨이터가 의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명함 있어요?”

선우현이 지갑에서 5만 원짜리를 뽑았다. 한 장이 아니라 스무 장이었다.

그가 웨이터에게 백만 원을 내밀며 말했다.

“여기 내 명함.”

잠깐 삐딱해졌던 웨이터가 얼른 공손하게 두 손으로 돈을 받았다.

“정말 좋은 명함을 가지고 계시군요! 환영합니다. 사장님.”

웨이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사장님.”

선우현이 웨이터를 따라가며 말했다.

“수선아. 이 친구가 내가 사장인 걸 안다.”

- 거기서는 팁 많이 주면 다 사장인 거겠지요.

그가 안내해준 곳은 그 룸살롱에서 중간 등급 정도의 방이다.

선우현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일단 밥부터 좀 가져와. 내가 식전이라 밥이 필요해. 술은 밥 다 먹고 나서 나중에.”

선우현은 이미 백만 원을 팁으로 주었다. 웨이터는 밥만 먹으러 온 사람이 그런 팁을 뿌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예. 사장님.”

웨이터가 나간 후에 선우현이 말했다.

“수선아. 아까 그놈이 아직 여기 있을까?”

- 이미 몇 시간이 지났습니다.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누구를 털어야 답이 나올까?”

- 거기 대가리를 털어보시죠.

“역시 넌 내 마음을 잘 알아. 일단 밥 좀 먹고.”

룸살롱 테이블에 안주를 조합해 만든 식사가 차려졌다. 술은 나중이라고 했는데도 위스키가 한 병 같이 들어왔다.

선우현이 말했다.

“뚜껑 따.”

“예. 사장님.”

웨이터가 즉시 위스키의 뚜껑을 땄다.

같이 들어온 여자는 술을 따르고 같이 마시려고 했다. 그런데 선우현이 말했다.

“밥부터 먹자. 배고프면 같이 먹고. 여기 음식이 양이 많네.”

“술도 좀 드세요.”

“내가 반주를 안 좋아해서.”

“아, 네.”

선우현은 진짜로 밥을 맛있게 먹었다.

“여기 밥이 아주 맛집이다. 룸살롱 갈아엎고 식당을 차려도 장사 잘 되겠어.”

“어머. 재미있는 사장님이다. 이 좋은 곳을 왜 갈아엎어요?”

“그거야 여기 사장이 이제부터 하는 거에 따라 달라지겠지.”

“에이. 우리 부장님 장사 잘해요.”

“부장?”

“부장님이 사장님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아아. 무슨 상황인지 알겠네.”

- 부장을 족치십시오.

선우현이 밥을 맛있게 먹은 후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잘 먹었다.”

여자가 술을 따랐다.

“이제 술도 좀 드세요.”

선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가 물었다.

“왜….”

“화장실 가려고.”

“아, 네.”

선우현이 방을 나갔다. 여자가 남아서 고개를 갸웃했다. 음식이 다 사라져 있었다. 안주로 쓸 것도 남지 않았다.

“찬호가 이 손님이 팁 많이 줄 거라더니, 왜 굶고 다닌 사람처럼 먹은 거야?”

술병은 이미 뚜껑을 따놓았다. 그러면 마시든 안 마시든 술값은 내야 한다.

“밥 먹고 나니까 신호가 오나?”

그건 조금 부러웠다. 그녀는 요즘 변비로 고생 중이다.

◈          ◈          ◈

선우현은 룸을 나온 후에 복도를 걸었다.

목적지는 당연히 화장실이 아니었다. 룸살롱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룸의 문과는 다른 문이 보였다. 그곳에서 음식 냄새가 났다.

“주방은 찾았다.”

선우현이 조금 더 움직였다. 이번에는 방화 철문이 보였다.

“여기는 창고 아니면 사무실일 텐데, 문이 잠겨 있네?”

-부수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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