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38화 (238/281)

238. 그 선우현 II

대성차 그룹은 회장 밑에 사장이 여러 명 있다. 양중근 회장의 둘째 아들 양덕호도 그런 사장 중 한 명이다.

양덕호가 양수진을 큰소리로 꾸짖었다.

“네가 아무리 그놈에게 꽂혔어도 나한테 이렇게 대들면 안 되지! 그것도 겨우 매니저 한 놈 때문에! 내가 널 그렇게 키우지는 않았어!”

양수진은 답답했다.

“그 선우현이 그 선우현이라니까요?”

“넌 자꾸 이상한 말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만 하는구나!”

양수진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아시면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요!”

“여기서 아버지 이야기가 왜 나와!”

“지금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 사이에 M 연료전지 물량 확보 경쟁 붙은 거 뻔히 알면서!”

“M 전지 이야기는 또 왜 나오….”

양덕호가 멈칫했다.

“어?”

그는 구하니의 매니저 이름이 선우현이라는 건 알고 있다. 스래곤 사장의 이름도 선우현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양덕호는 그 둘이 이름만 같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동일인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양수진의 입에서 스래곤의 M 연료전지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그 말을 시작으로 그녀가 방금 한 말들을 맞춰보았다.

양덕호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으악! 그 선우현이 그 선우현이냐!”

양수진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렇다고 계속 말했잖아요!”

“말이 안 되잖아! 스래곤 사장이 왜 가수 매니저를 해!”

“실제로 하잖아요!”

양덕호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네가 잘못 알았겠지! 네가 틀렸어야 해!”

양수진이 숨을 고른 후에 설명했다.

“제가요. 어제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하다가 구출되고 나서 구하니의 차에 탔거든요?”

“잠깐! 죽을 뻔하다니? 너 물가에 빠졌었다고 들었는데….”

“계곡 제일 깊은 곳에 빠졌는데 선우현 씨가 거기로 뛰어들어서 구해줬어요. 아빠는 그런 사람을 쫓아낸 거고요.”

“아니, 나는 몰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구하니의 차는 우리 회사 밴을 리무진으로 개조한 거더라고요.”

“그 차는 종종 그렇게 개조해서 쓰지. 그게 왜?”

“제가 옷을 갈아입으려고 탔을 때 구하니가 그 차의 시동을 켰는데요. 진동이나 소음이 전혀 없었어요.”

“어?”

양수진이 물었다.

“그 밴의 엔진을 들어내고 스래곤의 M 연료전지와 모터를 설치하는 거 가능하죠?”

“당연히 가능하지. 지금도 우리 연구소에서는 그렇게 개조해서 테스트를 돌리고 있으니까.”

“우리 회사에서 연예인 차에 그 시스템을 장착해준 적 있어요?”

“전혀 없지. 모든 테스트 데이터는 연구 기밀로 관리하니까 외부로는 돌리지 않아.”

“그런데 그 차에는 M 연료전지가 장착되어 있더라고요. 엔진룸을 열어본 건 아니지만 확실해요.”

테스트용 교체 키트는 스래곤과 같이 만들었다. 그래서 스래곤에도 대성차용 개조 키트가 다양하게 있다. 심지어 스래곤에는 외국 자동차 회사용 개조 키트도 있다.

양덕호가 말했다.

“그럼 스래곤에서 그 차를 개조….”

양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구하니 씨한테 대놓고 물어봤어요. 그 선우현이 그 선우현이냐고.”

양덕호가 침을 꼴깍 삼켰다.

“진짜 그 선우현이래?”

“네. 그 선우현이 맞으니까 비밀로 해 달래요.”

양덕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왜? 스래곤 사장이 왜 연예인 매니저를 해?”

“저처럼 취미생활로 연예계를 경험하는 거래요. 그러니까 매니저 활동은 스래곤 사장의 은밀한 취미생활이죠.”

양수진도 촬영장을 자주 찾아가고 연예인과 밥을 먹는다. 그건 그녀가 포기한 꿈을 대신해 즐기는 취미생활이다.

양덕호는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더 부정하는 건 현실도피나 마찬가지다.

“진짜 그 매니저 선우현이 스래곤 사장 선우현이구나.”

양수진이 기세가 등등해서 따졌다.

“아빠! 이거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스래곤 사장을 거지 취급했잖아요!”

양덕호가 변명했다.

“내가 그래도 얼굴에 물은 안 뿌렸는데….”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할아버지가 아시면 아빠 진짜 큰일 나요!”

“수진아.”

“왜요?”

“비밀로 해줄 거지?”

◈          ◈          ◈

이튿날 대성차 회장 양중근이 회의실에서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나라 회사인 스래곤에서 M 연료전지를 만들었다. 이건 기회다.”

그가 사장단을 보며 말했다.

“우리 대성차가 세계 일류 연료전지차 회사가 될 기회가 찾아왔단 말이다.”

대성차는 국내 최대 자동차 회사이고 세계 자동차 회사 중에서 순위를 매겨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는 항상 외국의 다른 회사들이 차지했다. 회사 전체가 아니라 차종별로 따져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내연기관으로는 이루지 못한 그 꿈을 M 연료전지차로 이룰 기회가 왔다. 이번 기회를 잘 살리면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야.”

사장단 임원들이 앞다투어 발언했다.

“이건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입니다.”

“우리 자동차 연구소에서 스래곤 연구소까지는 차로 가면 한 시간도 안 걸립니다.”

“외국 회사들은 따라올 수 없는 최적의 환경입니다.”

“정부에서도 좋은 성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지간한 규제는 연구를 위해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쉽게 풀어줄 겁니다.”

양중근이 말했다.

“스래곤 사장과 만날 약속은 어떻게 됐어? 대장끼리 만나면 따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좀 봐야겠는데.”

양수진을 선우현에게 소개하는 것도 그런 이야기 중 하나였다.

비서실장이 일어나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회담을 제안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양덕호 사장은 그 말을 듣고 움찔했다.

‘왜 안 만나주는 거지? 혹시 나 때문인가?’

양중근 회장이 물었다.

“다른 자동차 회사들은 어때?”

“다들 스래곤 사장을 만나고 싶어서 접촉하고는 있습니다만, 회담이 성사된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양덕호 사장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다른 회사 오너들도 안 만나주니까, 나 때문은 아니….’

양중근이 물었다.

“양덕호 사장. 왜 표정이 자꾸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아닙니다!”

양중근이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외국 자동차 회사가 스래곤 사장을 먼저 만나는 일은 없어야 해. 내가 제일 먼저 만나야 한다. 반드시 성사시켜.”

◈          ◈          ◈

양수진이 선우현에게 연락해 잠깐 만나달라고 부탁했다. 선우현은 스래곤 본사 근처 카페로 오라고 했다.

그녀가 카페에서 사과했다.

“죄송해요! 우리 아빠가 딸 걱정에 오버하신 거예요!”

선우현이 손을 흔들었다.

“에이. 괜찮아요. 거지 취급 한두 번 받아본 것도 아닌데.”

“죄송해요. 정말 제가 드릴 말이 없어요.”

양수진이 그렇게 말하며 선우현의 눈치를 살폈다.

‘진짜 괜찮은 건가? 사람이 참 뒤끝이 없….’

선우현이 말했다.

“제비 취급은 처음 받아봤지만.”

“앗! 진짜 죄송해요!”

◈          ◈          ◈

양수진은 선우현에게 사과를 여러 번 하고 나서 양덕호가 있는 사장실로 찾아갔다.

양수진이 눈꼬리가 올라간 채로 물었다.

“아빠. 혹시 선우현 씨한테 돈만 준 게 아니라 제비 취급까지 했어요?”

“어? 어, 아니, 그게…. 너한테 수작을 부리는 놈들은 다들 속셈이 뻔해서….”

“미쳤어. 진짜.”

“내가 직접 한 건 아니고, 김 비서 시켜서 한 거다. 김 비서가 오버를 좀 하긴 했지.”

“내가 아빠 때문에 오늘 얼마나 사과한 줄 알아요? 너무 숙여서 허리가 다 아파요.”

양덕호가 벌떡 일어났다.

“어? 너 오늘 선우현 사장을 만났냐?”

“사과하려고 만났어요!”

“아니, 자동차 회사 오너들도 안 만나준다는데….”

“나는 사업가가 아니니까 만나주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됐어? 사과를 받아줘?”

“사과는 받아줬는데요.”

양덕호가 활짝 펴진 얼굴로 감탄했다.

“크으. 선우현 사장은 사람이 됐네. 됐어.”

“뒤끝은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으응? 뒤끝이라니?”

양수진이 걱정했다.

“선우현 씨가 제비집 이야기나, 강남 이야기 같은 걸 해서요. 아. 흥부와 놀부 이야기도 했어요.”

양덕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과를 받아준 거 맞아?”

“확실하진 않아요. 이거 진짜 어떻게 수습하실 거예요?”

양덕호가 목소리에 힘을 주고 진지하게 말했다.

“딸! 나는 너만 믿는다!”

“사고는 아빠가 쳐놓고 날 왜 믿냐고요!”

◈          ◈          ◈

매니저 주종환과 고성찬이 방송국에서 만났다. 그들은 서로 소속사는 다르지만, 지금은 공통의 목적이 하나 있다.

구하니의 예전 소속사인 JXK의 매니저 주종환이 물었다.

“구하니의 내일 스케줄 알아?”

소병훈의 매니저 고성찬이 짜증을 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구하니는 1인 기획사에 직원이라고는 매니저 그 새끼 하나밖에 없는데, 그 새끼한테 물어볼 수는 없잖아.”

JXK의 주종환이 씩 웃었다.

“그러면 코디를 통해서 알아내야지.”

“어? 구하니의 코디를 매수했어?”

“괜히 매수하려다가 정보가 역으로 빠져나가면 내가 거꾸로 당한다. 난 그렇게 어설프게 일하지 않아.”

“그럼?”

주종환이 설명했다.

“구하니의 일을 가끔 봐주는 코디가 우리 회사에 일하러 왔더라고. 우리 회사 행사에 사람이 부족한 날이 있었거든. 그래서 접근해서 슬쩍 떠봤지.”

“어떻게?”

“요즘 다른 일 뭐 하냐고. 우리 스케줄에 또 부르려면 일정 맞춰야 한다고. 그러니까 자기 스케줄을 줄줄 읊더라?”

“키야아. 머리 잘 썼네. 그래서 알아냈어?”

“구하니가 내일 팬클럽 정회원 중에서 오십 명을 뽑아서 팬미팅 이벤트를 한다더라.”

고성찬이 실망했다.

“뭐야. 그게 다야?”

“구하니 팬클럽 중에서 찐팬만 오나 봐. 그런데 말이야. 팬미팅 장소가 행사 직전에 문제가 생겨서 못 쓰게 되면, 누가 욕을 먹을까?”

고성찬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었다.

“장소 섭외는 매니저가 했겠지. 매니저가 욕먹겠구나.”

“장소를 새로 섭외할 시간이 없으면 팬미팅을 취소할까? 구하니 성격이면 길거리나 공원에서라도 팬미팅을 강행할걸?”

“구하니가 길거리 팬미팅이라니. 꼴이 우스워지겠네.”

“그러면 팬들이 신입 매니저 따위는 당장 잘라버리라고 난리가 날 거야. 거기 온 팬이면 진짜 찐팬인데 분위기 장난 아니겠지.”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잖아.”

“그러지 못하게 양념을 쳐야지. 길거리 팬미팅을 할 때 사람을 슬쩍 끼워 넣어서 매니저를 잘라버리라고 바람을 잡으면 돼.”

고성찬이 활짝 웃었다.

“정말 좋은 생각이다. 그러면 장소 섭외는 어떻게 망칠 계획이야?”

주종환이 고성찬을 가리켰다.

“그건 네가 해야지.”

“뭐? 아니, 그게 무슨….”

주종환이 히죽거렸다.

“정보도 내가 알아오고, 계획도 내가 다 짰어. 그럼 너도 뭘 해야지. 미팅 장소 망쳐놓는 것하고 프락치 심는 것 정도는 네가 해.”

고성찬이 잠시 궁리하다 물었다.

“그쯤은 내가 처리할 수는 있는데, 그 계획,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거 아니지?”

“그 새끼가 잘릴 때까지 계속해야지. 새로운 계획은 내가 세울 테니까 어떻게든 해봐.”

◈          ◈          ◈

배우 소병훈의 매니저 고성찬이 룸살롱에서 영업부장을 만났다.

이 룸살롱은 바지사장을 세워 장사한다. 진짜 주인은 영업부장 박주열이다.

매니저 고성찬이 말했다.

“일 하나 처리하고 바람도 좀 잡아야 하는데, 애들 좀 쓰자.”

“일할 장소는 어디인데?”

“강남.”

박주열 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면 문제가 좀 있는데….”

“왜? 무슨 일을 시키든 돈만 주면 할 놈은 많다며?”

“요즘 강남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야.”

“분위기?”

박주열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최근에 덕구파 조직이 다 갈려 나갔어.”

“그건 나도 뉴스에서 봤다. 그런데 여기가 덕구파의 룸살롱은 아니잖아. 이거 박 부장 거라며. 근데 왜?”

“곽덕구가 아직 안 잡혔거든. 지금 강남에서 일 크게 터트리면 괜히 조사만 더 받아. 그러면 피곤해져.”

고성찬이 손을 흔들었다.

“나 이제 배우 매니저야. 내가 그런 거 하라고 하는 거겠어?”

“그럼….”

고성찬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팬미팅 장소 하나 문 못 열게 문제 일으켜 놓고, 야외에서 하는 팬미팅에 프락치 심어서 매니저 욕이나 좀 하면 돼. 건방진 매니저 새끼가 있거든.”

박주열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 그 정도라면야 쉽지.”

“할만한 애들 있어?”

“요즘 움츠리고 있느라 돈이 떨어진 애들이 많아. 그놈들한테 시키면 그까짓 거 일도 아니야.”

고성찬이 웃었다.

“흐흐. 내가 이래서 박 부장을 믿는다니까.”

이 룸살롱의 실제 소유주인 영업부장 박주열이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는 건 바라는 게 있어서다.

“이거 해주면 배역 하나 줄 수 있지?”

고성찬은 박주열에게 일을 시킬 때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건 안다.

“나 소병훈을 키운 매니저야. 지금 방영 중인 드라마에 30초 정도 출연하는 자리가 있는데, 내가 거기 한 명 꽂아줄 수 있다. 대사도 한 줄 있어. 그거면 되겠냐?”

“아유. 되지. 1분이 더 좋지만 30초가 어디야. 우리 아가씨들이 TV에 나왔다는 게 중요하니까.”

“손님들이 좋아하지?”

박주열이 실실 웃었다.

“룸에 있는 TV에 담당 아가씨가 출연한 장면 딱 띄워주면 손님들이 좋아서 환장한다. 연예인이랑 노는 줄 알아. 흐흐흐.”

“대신에 이번 한 번이 아니라, 비슷한 거 몇 번 더 해야 할 수도 있다.”

박주열이 협상을 걸었다.

“그러면 우리 아가씨들도 더 꽂아줘야 계산이 맞지.”

“그때마다 꽂을 수는 없고, 다 퉁 쳐서 한 명만 더. 오케이?”

“오케이. 양주라도 서비스 넣어야겠는데? 심부름할 애도 부를 테니까 마시고 가. 흐흐흐.”

“좋지.흐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