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37화 (237/281)

237. 그 선우현

촬영 스태프 몇 명이 선우현과 양수진을 보며 말했다.

“재벌 3세가 가수 매니저한테 되게 친절하네?”

“내가 전에 다른 촬영장에서 양수진 과장을 본 적 있는데, 그때는 차도녀 느낌이었거든? 지금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나사라도 하나 빠진 것 같잖아.”

“저 매니저가 물에 빠진 걸 구해줘서 꽂혔나?”

“겨우 물가에 빠진 걸 도와준 것뿐인데 꽂힌다고?”

“꽂히는 데 이유가 필요하냐? 계기가 필요하지.”

대화하던 스태프가 탄식했다.

“아깝다.”

“뭐가?”

“내가 먼저 구해줬으면 나한테 꽂혔을 텐데.”

“넌 거울한테 미안하지 않냐?”

◈          ◈          ◈

기획사 SNY의 가수 천호성이 매니저에게 물었다.

“오늘 대성차에서 내 이름으로 커피차 보내준다며? 왜 아직도 안 와?”

매니저가 머뭇거렸다.

“어…. 그게 말이다.”

“뭐야? 뭔데?”

“커피차가 여기로 오다가 방향을 틀었다더라.”

천호성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차가 고장 났나?”

“아니. 그게…. 다른 사람한테 보냈다고….”

천호성이 벌떡 일어났다.

“뭐? 누구야? 어떤 놈이야! 나 천호성이야! 누가 내 커피차를 인터셉트했는데!”

“구하니.”

“어?”

“여기로 오던 커피차가 갑자기 구하니가 촬영 중인 제작 현장으로 갔다더라.”

천호성이 화를 벌컥 냈다.

“내 커피차가 왜 하니한테 가는데! 내가 하니보다 급이 떨어져? 대성차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런 거야?”

매니저가 얼른 반박했다.

“이건 대성차가 실수한 거지!”

“그치? 실수한 거 맞겠지? 그런데 형은 표정이 왜 그래? 혹시 형도 내가 하니보다 급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 아니야. 절대로 아니지.”

천호성이 구하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니도 이러면 안 돼! 알아서 자기가 거절했어야지!”

구하는 지금 촬영 중이라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선우현이 대신 받아주지도 않았다.

천호성은 구하니에게 매니저가 생겼다는 걸 아직 몰랐다.

“하니 이건 도대체 매니저는 언제 뽑으려는 거야! 내가 불편하잖아!”

◈          ◈          ◈

그날 야외 예능 촬영을 마친 후에 양수진이 선우현과 구하니를 차로 30분쯤 가야 하는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그 음식점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는데 옥상에도 식사 공간이 있었다.

옥상에는 테이블이 널찍한 간격으로 여러 개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른 테이블들은 모두 비어 있었다.

양수진이 말했다.

“루프탑을 내가 통째로 빌렸으니까 여긴 이제 우리밖에 없어요. 여기서는 구하니 씨도 편하게 식사해도 돼요.”

선우현이 옥상에서 주변 풍경을 보며 말했다.

“여기는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좋네요.”

“어떤….”

“나도 옥상에 살거든요.”

양수진은 그 말을 다르게 이해했다.

‘옥상 정원이 딸린 펜트하우스에 사나 보다. 그래. 스래곤 사장인데 그 정도는 살아야지.’

선우현이 물었다.

“그런데 옥상을 다 빌리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양수진이 웃었다.

“어머. 소박한 면이 있으시다.”

“음….”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선장님. 없이 지낸 티 좀 내지 마십시오. 우리가 먹을 게 없었지 다른 게 없었습니까?

“에너지도 없었고 자원도 없었잖아.”

- 그건 그러네요. 항상 모든 게 부족했지요.

선우현이 혼자 웅얼거리는 걸 보고 양수진이 살짝 긴장했다.

“혹시 선우현 씨가 누구신지 제가 알면 안 되는 거였나요?”

“아니요. 아까 우리 밴에 태울 때 알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짐작하고 계셨구나. 그런데도 왜 저를 그 밴에….”

“그때는 뭐, 젖은 상태로 둘 수 없었으니까.”

그녀가 눈을 반짝거렸다.

“고마워요! 되게 친절하시다.”

“대성차 집안의 사람이니까 소문내지 않을 테고요.”

“당연하죠! 제가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그래서 촬영장에서도 스태프들 앞에서는 스래곤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했잖아요.”

양수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 우리 실컷 먹고 마셔요.”

선우현은 마시는 쪽은 거절했다.

“나는 차를 가져와서 술은 안 됩니다.”

“운전할 사람 부를게요!”

“대성차 사람을?”

“네? 아…. 이상할까요?”

“우리 차에는 아무나 태울 수가 없습니다. 누구를 부르던 운전을 해보면 이상하다는 걸 깨달을 겁니다.”

양수진은 그의 말에서 ‘아무나’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 차에 탔으니까 아무나가 아니네?’

양수진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선우현 씨는 무알콜 맥주로 준비해달라고 할게요. 저는 오늘 좀 마셔야 할 것 같아서요.”

양수진은 구하니와 술을 마셨다.

선우현은 무알콜 맥주로 대신했다.

“이건 처음 마셔보는데 맛이 맥주랑 꽤 비슷하네.”

구하니와 양수진은 음식은 조금만 먹었다.

선우현이 양수진의 앞에 놓인 접시를 가리켰다.

“그거 손도 안 댔는데 안 먹을 겁니까?”

“네. 오늘 여러 일을 겪었더니 음식에 손이 별로 안 가서요.”

“그럼 그건 내가 먹어야겠네.”

“네?”

선우현은 양수진의 옆쪽에 있던 접시를 가져와 먹었다.

“맛있네요.”

- 선장님. 먹을 거 없이 산 거 티 내지 마시라니까요?

“수선아. 우리의 오천 년 역사가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야.”

- 선장님이 깨어있던 기간은 백오십 년입니다만?

“어쨌든 길잖아. 그걸 금방 바꿀 순 없다.”

- 저도 저번에 챙긴 우주 식량이나 하나 까야겠습니다.

양수진은 당황했다.

남이 그녀의 음식 접시를 가져간 걸 당황한 건 아니다. 그걸 가져가서 먹는 사람이 스래곤 사장 선우현이라서 놀랐다.

‘요리를 더 시키면 되지 왜….’

그러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랑 밥을 나눠 먹고 싶어서?’

그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선우현이 잘 먹는 걸 보며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선장님. 지상은 먹을 게 풍족한데 꼭 옛날 버릇이 나오셔야겠습니까?

“수선아. 너는 우주식량을 먹다 버리냐?”

- 저는 당연히 우주식 튜브를 잘라 마지막 한 조각까지 핥아먹습니다만? 튜브 껍데기에서는 에너지와 자원을 추출하고요.

“난 그래도 접시는 안 핥잖아. 많이 발전한 거야.”

- 쌀 한 톨 흘린 걸 찾겠다고 선체 바닥을 샅샅이 뒤지시던 옛날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이거 손도 안 댄 거다?”

- 아깝긴 하네요. 남기지 말고 다 드십시오.

“당연하지.”

◈          ◈          ◈

양수진이 오늘 촬영장에서 겪은 사고와 그 후의 일은 그녀의 아버지 양덕호 사장에게 알려졌다. 양덕호는 대성차 양중근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양덕호가 인상을 썼다.

“우리 수진이가 연예인에게 커피차도 보내고 같이 술도 마셔? 그것도 다른 연예인에게 가던 커피차를 빼돌려서? 이번에는 어떤 놈이냐?”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놈이 아니라….”

“그럼 뭔데!”

“커피차는 가수 구하니에게 보냈습니다.”

“그래?”

양덕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수진이는 여자 연예인한테는 관심 없던 거 아니었나?”

“그게….”

“왜 머뭇거려?”

“촬영장에서 작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양수진 과장이 계곡물에 빠져서….”

양덕호가 벌떡 일어났다.

“뭐? 그걸 왜 지금 이야기해!”

“물가에 빠졌다가 바로 구출됐습니다. 위험하진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양덕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휴. 깜짝이야. 다친 곳은?”

“물에 젖은 것뿐이랍니다. 그 후에 촬영 현장으로 커피차도 보내고 술도 마셨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잠깐. 커피차를 물에 빠진 후에 보냈어? 그것도 다른 연예인에게 보내던 걸 급히 돌려서? 구하니한테? 왜? 구하니가 우리 수진이를 구해줬나? 그러면 이해가 가긴 하는데….”

비서가 얼른 대답했다.

“촬영팀에 사람을 보내서 물어봤더니, 구하니의 매니저가 양수진 과장을 구해줬다고 합니다.”

양수진은 계곡 한복판까지 끌려 들어가 죽을 뻔하다가 선우현에게 구출됐다. 그런데 현장에서 그 상황을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 구하니도 나중에 들었다.

스태프들은 모두 그녀가 물가에 잠깐 빠졌다 나온 줄 알았다.

“잠깐. 그러니까 이제 배우도 아니고 매니저랑 놀겠다는 거야? 우리 수진이가?”

“설마 그러겠습니까?”

“그치? 내 딸이 먼저 그럴 리는 없지? 그럼 구해줬다는 그 매니저 놈이 수상한데?”

“네?”

양덕호가 인상을 썼다.

“우리 수진이를 일부러 물에 빠뜨리고 나서 접근한 거 아냐?”

비서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수진 과장 혼자 제작 현장을 촬영하다가 물가에 빠졌습니다. 물론 얕은 곳에요.”

“어? 그래?”

“예.”

양덕호가 인상을 풀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찾아가서 봉투라도 주면서 우리 수진이한테 접근하지 말라고 해.”

“알겠습니다.”

“아. 그 매니저의 이름이 뭐야?”

“선우현입니다.”

“이름은 좋네.”

◈          ◈          ◈

이튿날 선우현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원래는 모르는 번호는 잘 받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구하니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업무용 휴대폰도 하나 더 만들었다.

지금 전화는 그 업무용 휴대폰으로 걸려왔다. 이 전화번호는 명함에 찍어서 돌렸기 때문에 방송 관계자의 전화일 확률이 높다.

선우현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선우현 씨?

“예.”

- 대성차입니다. 양수진 과장님 일로 잠깐 보시죠.

양수진은 대성차의 홍보팀 과장이다.

“그러시죠.”

선우현이 약속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후에 박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니저 일로 미팅이 잡혀서 오늘은 출근하기 어렵겠군요.”

- 회사는 그 미팅 끝나고 오시면 되죠.

“역시 그렇죠? 나도 점심 먹으러 회사로 가려고 했습니다.”

- 임원 회의는 오후로 변경할게요.

전화를 끊은 후에 선우현이 말했다.

“서윤 씨한테는 안 통하는구나.”

- 그 핑계로 오늘 회사는 제끼려고 하셨습니까?

“그랬는데 실패했어0.”

◈          ◈          ◈

선우현이 카페에서 대성차 양덕호의 비서를 만났다.

비서가 물었다.

“양수진 과장님이 누구신지는 아시죠?”

“홍보팀 과장?”

“지금 농담합니까?”

“농담 맞습니다.”

“그냥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비서가 두툼한 하얀 봉투를 하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걸 받으시고, 다시는 양수진 과장님에게 접근하지 마시죠.”

“뭡니까? 이게?”

“양 과장님 아버님, 그러니까 양덕호 사장님께서 주시는 사례금입니다. 양 과장님이 물가에 살짝 빠졌을 때 조금 도와줬다면서요.”

“아.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거구나. 그럼 양 사장님 본인이 직접 나왔으면 물이라도 끼얹었으려나?”

“뭐요?”

“돈이나 받고 떨어지라니. 누굴 제비로 아나.”

비서가 인상을 썼다.

“이봐요. 양 과장님이 누구신지 모릅니까? 대성차 양중근 회장님의 손녀입니다. 당신이랑은 사는 세계가 다릅니다.”

“양중근 회장이라….”

비서가 삐딱하게 말했다.

“그럼 알아들은 거로 알겠습니다. 그 돈은 지금 확인해봐요. 나중에 다른 소리 안 나오게.”

“와. 사람을 제비 취급한 거로 모자라서 이젠 거지 취급까지 하네?”

“뭐요?”

“왜? 영수증도 필요한가?”

“이 사람이!”

선우현이 봉투는 놔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중근 회장. 진짜 잘 기억해둬야겠네.”

◈          ◈          ◈

그 시간에 양중근은 양수진을 만나고 있었다.

양수진이 생글생글 웃었다.

“할아버지. 무슨 일인데 기분이 그렇게 좋아 보이세요?”

“너한테 좋은 이야기가 있어서.”

“네?”

“너 혹시 말이다. 사귀는 사람 있냐?”

“아뇨?”

“요즘은 연예인 만나고 다니지 않는 거지?”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그건 사귄 게 아니라, 그냥 촬영장에서 같이 밥만 먹는 거예요. 연예계 소식도 듣고 그러면서요.”

밥만 먹은 건 아니다. 가끔은 밖에서 같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

양중근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좋은 사람을 소개받아도 괜찮겠구나.”

양수진이 질색했다.

“네? 할아버지. 요즘 시대에 중매는 좀….”

“그런 거 아니다. 그리고 엄한 놈 만나고 다니는 것보다 나을 거다.”

“에이. 엄한 놈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시는데요? 겉보기만 멀쩡한 놈이 얼마나 많은데요.”

“스래곤 사장은 천재로 유명하고 나쁜 소문은 없….”

양수진이 오른팔을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잠깐만요! 누구라고요?”

“스래곤 사장 선우현. 왜 그러니?”

“혹시 이미 이야기가 다 된 거예요?”

“아직 말도 안 넣어봤다. 상대가 상대니만큼 경쟁도 심하겠지. 그래서 네 생각이 중요한데, 어떠냐? 관심이 가냐?”

양수진이 뺨을 살짝 붉혔다.

“아니, 뭐, 일단 만나보는 것 정도라면야….”

◈          ◈          ◈

양수진이 활짝 웃으며 양중근의 저택을 나왔다.

“이게 바로 인연인가?”

그녀가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의 아버지 양덕호였다.

- 오늘 집에 잠깐 들러라. 할 말이 있으니까.

양수진은 집에서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다.

“네에! 갈게요!”

-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그럴 일이 있어서요.”

- 끄응. 아니다. 와서 이야기하자.

◈          ◈          ◈

양덕호는 양수진에게 오늘 일을 설명했다.

그가 선우현에게 비서를 보내 돈 봉투를 주고 쫓아냈다는 말을 듣고 양수진은 경악했다.

그녀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아빠! 미쳤어요?”

양덕호의 목소리도 커졌다.

“넌 아무리 남자한테 꽂혔어도 아빠한테 미쳤다가 뭐냐!”

“그 선우현이 그 선우현이란 말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한국어로 해라!”

양수진이 가슴을 쳤다.

“아니,그러니까,그 선우현이 그 선우현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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