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34화 (234/281)

234. 양수진

구하니는 당황했다.

“그러니까 뉴스에 나온 그 M 연료전지 시스템을 이 차에 설치했다고요?”

선우현이 설명했다.

“그래서 진동이나 소음이 사라지고 이렇게 조용한 겁니다.”

“아니, 어떻게….”

“조용한 차가 더 좋지요?”

“그야 그렇지만, 이런 게 가능해요?”

“가능하니까 지금 차가 굴러가지요?”

그녀가 최근에 본 기사를 떠올렸다.

“아직 스래곤의 연료전지를 적용한 차는 출시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요?”

“출시는 아직 멀었지만, 테스트용 연료전지 차량은 국내외 여러 회사가 개조해서 시험하고 있습니다.”

선우현이 앞쪽으로 가리켰다.

“여기에는 그런 차에 쓰는 연료전지와 모터 세트를 설치한 겁니다.”

구하니가 차의 문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와…. 그러니까 우리 차에 최첨단 장치를 설치한 거네요? 이래도 되나요?”

선우현이 운전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사장이라서.”

“아. 그렇죠. 그럼 이래도 되겠네요.”

“사실 이 차는 테스트용으로 등록은 했지만,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걸쳐 있습니다.”

“네?”

“엔진을 바꿨다는 걸 들켜도 해결할 수는 있는데, 기왕이면 안 들키는 게 좋습니다.”

구하니가 눈을 껌뻑이다가 물었다.

“이 차 진짜 타고 다녀도 괜찮아요?”

“내가 지상의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아니라서.”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지구연합의 법도 딱히 지키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여기는 지구연합이 아니잖아.”

- 지구의 법도 잘 안 지키시잖습니까?

“난 지구연합 출신이잖아.”

- 역시 선장님이십니다.

◈          ◈          ◈

예능 제작진은 이미 경기도 펜션에 자리를 잡고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펜션의 넓은 마당이 촬영지였다.

M 연료전지 시스템을 장착한 차가 그곳에 도착했다.

구하니가 감탄했다.

“우리 차는 소음과 진동만 없는 게 아니라 승차감도 대박 좋아졌어요.”

“승차감과 관련된 부품은 고급으로 싹 다 갈았으니까요.”

“고마워요.”

“뭘요. 나도 자존심이 상해서 그놈을 잡으려고 하는 건데.”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이 촬영장에는 선우현이 아는 사람이 없다. 그가 아는 피디나 스태프는 다른 방송을 만들고 있다.

조연출이 구하니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구하니 씨 오셨습니까!”

“네. 저희가 늦지 않았죠?”

“늦기는요. 딱 좋을 때 오셨습니다.”

조연출이 구하니를 자리로 안내했다. 선우현이 따라갔다.

SNY 소속 배우 소병훈이 먼저 와 있다가 구하니를 보고 손을 들었다.

“어. 구하니 씨.”

“일찍 오셨네요.”

“나는 딱 맞춰 온 건데. 피디님이 나랑 하니 씨랑 알려준 시간이 다른가 본데요? 역시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건가?”

“그럴 리가요.”

소병훈의 옆에서 매니저 고성찬이 선우현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저번처럼 대놓고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여기는 보는 사람이 많아 대기실에서처럼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게다가 그는 저번에 본 것이 마음에 걸렸다.

‘박성훈 피디가 저놈한테 인사를 먼저 하던데. 정체가 도대체 뭐야?’

저번에는 선우현이 흔한 신입 매니저인 줄 알고 미리 기를 죽여놓을 생각으로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 상대의 인맥에 피디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함부로 대하기 불편했다.

‘젠장. 어떤 놈인지 빨리 알아봐야겠다. 회사에 가면 아는 사람이 있겠지’

선우현이 스태프들에게 명함을 돌렸다. 그 정도는 해야 그가 매니저라는 걸 남들이 의심하지 않는다.

고성찬은 나중에 스태프에게 접근해 선우현이 준 명함을 빌려보았다. 그런데 그 명함에는 구하니의 매니저라는 것과 이름, 연락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입 주제에 명함 종이는 되게 고급을 썼네.”

고성찬은 그날 촬영을 마치고 기획사 SNY로 돌아갔다.

그가 회사 직원들에게 물었다.

“구하니의 새 매니저가 어떤 놈인지 아는 사람 있어?”

“구하니가 매니저가 있어요?”

“있더라고. 새로 뽑았나 봐. 이름이 선우현이라던데. 누구 몰라?”

그가 물어본 직원 중에는 기획사 업계의 소문에 밝은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이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는데?”

고성찬은 홍보팀 직원도 만나 물었다.

“혹시 방송국에서 일하던 사람인가 해서.”

홍보팀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설사 방송국 출신이라도 유명한 사람은 아닐 거야. 인지도 있는 사람이면 내가 모를 리가 없으니까.”

고성찬이 SNY의 동료 매니저 몇 명에게도 물어봤지만 선우현을 안다는 사람이 없었다.

고성찬이 콧김을 뿜었다.

“그럼 딱히 대단한 놈은 아니란 소리네. 그런 새끼가 구하니의 매니저라고 건방을 떨어?”

구하니는 인기 가수이긴 하지만, 혼자 활동하기 때문에 기획사 사이에서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고성찬이 소병훈의 스케줄을 확인했다. 며칠 뒤에 다른 장소에서 구하니와 겹치는 스케줄이 있다.

“그 새끼 엿을 한 번 먹여야겠는데….”

◈          ◈          ◈

구하니는 목이 상했다가 회복된 후로는 공식 활동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방송 출연은 가끔 하지만 행사는 거의 뛰지 않는다.

그래서 선우현은 평소에는 구하니와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선우현이 스래곤에 출근했다.

“내가 아무래도 실수한 거 같아.”

- 뭐가 말입니까?

“노는 날이 너무 줄어들었어. 하니 씨 매니저를 안 하는 날은 스래곤에 출근해야 하잖아.”

- 저는 노는 날이 계속 없었는데요?

“어….”

- 일이나 하시죠?

“하려고 했어.”

임원 회의에서 대성차와 진행한 생산 협상 결과가 보고됐다.

담당 이사가 말했다.

“대성차에서 M 연료전지를 직접 생산할 때 우리 회사 물량도 같이 만들기로 했습니다.”

연료전지의 핵심 부품은 스래곤에서 만든다.

스래곤의 협력업체들은 그 부품에 나머지 부품을 조립해 연료전지 모듈을 생산한다.

최근에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 회사인 대성차에서 그 핵심 부품을 공급받고 싶다고 제안했다.

“우리 연료전지 모듈의 전체 생산량이 많이 늘어나겠군요.”

“예. 대성차는 직접 생산 방식으로 더 많은 연료전지 모듈을 손에 넣고, 우리도 추가 물량을 더 확보할 수 있습니다.”

“잘됐네요.”

담당 이사가 말했다.

“대성차에서는 이 협약으로 연료전지 핵심 부품을 더 많이 공급받게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료전지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은 앞으로도 스래곤에서 직접 생산할 예정이다. 그래서 스래곤은 그 부품만 만드는 자체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선우현이 말했다.

“연료전지의 핵심 부품을 얼마나 줄지는.”

대성차와 협상을 진행한 이사가 침을 꼴깍 삼키고 대답을 기다렸다.

“대성차가 하는 거 봐서 내 마음대로 정할 겁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죠. 하, 하하.”

회의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면서 박서윤이 물었다.

“구하니 씨의 매니저 일은 재미있으세요?”

“촬영 현장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지원위성에 있을 때는 멀리서 관측 카메라로 촬영하는 모습을 보기만 했다. 그걸 직접 현장에서 보니까 모니터로 볼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매니저 알바는 언제까지 하실 건데요?”

“범인을 잡을 때까지?”

박서윤이 말했다.

“빨리 잡혔으면 좋겠네요.”

◈          ◈          ◈

며칠 뒤에 선우현이 구하니를 데리러 갔다.

구하니는 최근에는 방송 출연을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며칠 간격으로 스케줄을 잡았다.

선우현이 말했다.

“하니 씨한테 미끼 역할을 시키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합니다.”

“어머. 미끼가 되더라도 해야죠. 선우현 씨가 도와줄 때 그놈을 못 잡으면, 다음에는 저 혼자 상대해야 하는데요.”

방송국 안에서 촬영하는 스케줄을 잡으면 범인이 접근하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구하니는 일부러 야외 스케줄을 잡았다.

“그놈을 빨리 잡아야겠군요.”

구하니가 손을 흔들었다.

“아뇨. 서두르지 마세요. 안전이 최고죠. 천천히 해도 돼요.”

“그러다 일이 오래 걸릴 수도 있는데.”

“저는 괜찮아요!”

“뭐, 그럼 마음 편하게 움직일까요?”

“네. 좋아요!”

차가 도로를 달렸다. 구하니가 감탄했다.

“진짜 이 차는 너무 편안하고 조용해요.”

“엔진 대신에 연료전지와 모터를 달았으니까요.”

“M 전지는 진짜 대단해요. 이걸 만든 선우현 씨는 더 대단하고요.”

선우현이 손을 슬쩍 흔들었다.

“더 해요. 더.”

두 사람은 이런저런 잡담을 하면서 촬영 현장으로 갔다. 구하니는 창문을 열고 바람도 쐬면서 신나 했다.

구하니의 오늘 촬영 스케줄은 주로 오후에 몰려 있었다. 지금은 다른 게스트들이 촬영 중이다.

피디가 구하니를 반갑게 맞았다.

“구하니 씨가 게스트로 와주셔서 제가 정말 든든합니다. 하니 씨 덕분에 이번 회 시청률은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머. 저는 그냥 거들뿐인데요. 시청률이 잘 나오면 피디님이 잘 만드셔서겠죠.”

“하하하.”

구하니가 피디를 상대하는 동안 선우현은 다른 매니저들처럼 스태프들에게 명함을 돌렸다.

그는 매니저 활동을 위해서 휴대폰도 하나 더 개통했다. 명함에는 그 번호가 찍혀 있었다.

오늘 현장에는 SNY의 배우 소병훈도 출연한다. 그래서 매니저 고성찬도 따라왔다.

촬영에 참여하는 연예인은 또 있었다. 구하니의 예전 소속사 JXK의 걸그룹이 매니저인 주종환과 함께 와 있었다.

고성찬이 한쪽에서 주종환에게 말했다.

“구하니의 매니저 새끼. 마음에 안 들어.”

주종환도 이죽거렸다.

“그건 나랑 똑같네. 나도 저 새끼가 싫어.”

“그런데 저 새끼, 방송국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더라.”

“기획사 쪽으로도 아는 사람이 있어.”

“그래도 엿을 먹이고 싶은데….”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고. 이렇게 남들이 보는 곳 말고 안 보는 곳에서 엿을 먹어야 뒤탈이 없지.”

“흐흐. 우리는 역시 통한다니까.”

대성차 홍보팀 과장 양수진이 촬영 현장에 나타났다.

오늘 촬영에는 대성차 PPL이 들어간다. 이 예능이 방송될 때도 대성차의 광고가 붙는다.

양수진이 그런 상황을 핑계로 현장에 왔다.

그런데 그녀가 굳이 여기 온 건 다른 목적도 있어서였다.

그녀가 연예인들을 보며 활짝 웃었다.

“힐링하려면 역시 연예인을 만나야지.”

그녀는 걸그룹에는 관심이 없었다. 원래 남자 연예인만 좋아했다.

“어머. 구하니다.”

구하니는 인기 가수라 눈이 더 가기는 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는 게스트로 온 배우 소병훈을 보았다.

“오늘 점심은 소병훈이랑 먹을까?”

잘생긴 연예인과 밥도 먹고 술도 먹는 게 그녀의 힐링 취미였다. 그녀는 특히 오늘처럼 촬영 현장에서 연예인과 함께 밥차 밥을 먹는 걸 좋아했다.

“그래도 일은 해야지.”

홍보팀 직원이 현장에서 인기 가수 구하니를 못 본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 그녀가 구하니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구하니 씨. 대성차 홍보팀 과장 양수진이에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옆에 분은?”

선우현이 명함을 주었다.

“구하니 씨의 매니저입니다.”

양수진이 명함을 받아 슬쩍 보았다.

“어머. 이름이 선우현이에요? 유명한 사람이랑 이름이 같네요?”

“그렇습니까?”

양수진은 명함을 가방에 대충 집어넣었다.

그녀의 목적은 어차피 구하니가 아니다. 그래서 인사만 간단히 하고 소병훈을 만나러 갔다.

“소병훈 씨. 반가워요. 대성차 홍보팀 과장 양수진이에요.

소병훈은 의자에 앉아서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아, 네.”

갑자기 피디가 뛰어와 머리 숙여 인사했다.

“아이쿠. 양수진 과장님. 여기까지 다 와주시다니요. 고맙습니다.”

“어머. 제가 더 고맙죠. 호호.”

피디의 깍듯한 태도를 보고 소병훈이 슬그머니 의자에서 일어났다.

“누구신데….”

피디가 설명했다.

“아. 모르시는구나. 양수진 과장님은 양중근 회장님의 손녀분이십니다.”

소병훈이 자세를 똑바로 했다.

“대성차 양중근 회장님 말씀이십니까?”

양수진이 슬쩍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머. 피디님. 괜히 그런 이야기 하시면 선입견 생기시잖아요.”

그녀가 누구인지는 이미 이 촬영장 스태프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피디가 굳이 설명한 건, 게스트로 온 소병훈이 알아서 잘 처신하기를 바라서였다.

소병훈의 태도가 깍듯하게 변했다.

“양수진 과장님. 영광입니다.”

“어머. 그렇게 안 하셔도 돼요. 호호호.”

한쪽에서 그걸 보며 구하니가 말했다.

“재벌 3세였구나. 그래서 저 사람이 우현 씨 이름을 아는 거였네요.”

“이름만 알지 내가 누구인지는 모를 겁니다.”

“우현 씨가 제 매니저를 한다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요? 당연히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하겠죠.”

선우현이 물었다.

“하니 씨. 대성차랑 엮인 거 없지요?”

“없어요. 광고 한 번 한 적 없는데요. 아. 지금 우리 차가 대성차에서 만든 거긴 하네요.”

선우현이 양수진을 보며 말했다.

“그럼 저 사람은 용의자에 넣을 필요는 없겠군요.”

“그게 다예요?”

“더 관심 가질 이유가?”

“하긴. 스래곤 사장님이 양중근 회장님도 아니고 손녀한테 굳이 신경 쓸 이유는 없죠.”

“지금은 하니 씨 매니저입니다.”

구하니가 방긋 웃었다.

“그래서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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