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개조 II
선우현은 구하니를 집에 데려다주고 최종훈 소유의 창고로 향했다. 오늘은 아직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JHC 테크 비서 김찬혁이 한적한 곳에 있는 창고에 사장 최종훈과 같이 나왔다.
선우현이 말했다.
“최 사장님까지 오실 필요는 없는데요.”
“에이. 선우현 씨의 일인데 당연히 제가 뭐라도 해야죠.”
그 창고에 구하니의 사고 난 차가 있었다. 그 차는 김찬혁이 견인차를 불러 이곳에 옮겨놓았다.
차는 카센터에서 쓰는 거치대에 올려져 있었다. 그 거치대는 소식을 들은 최종훈이 중고로 급히 사서 설치했다.
김찬혁이 하체에 조명을 비추며 설명했다.
“제가 우리 회사 전문가에게 술을 사주고 점검을 부탁했습니다. 물론 구하니 씨의 차라는 건 말하지 않고요.”
“뭐가 나왔습니까?”
“다른 바퀴 세 개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그가 조수석 앞바퀴가 연결되어 있던 구동계 부품을 보여주었다.
“누군가 손을 댄 흔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경찰이나 보험사가 조사했으면 그걸 알았을까요?”
“아니요. 만약 사고가 크게 나서 이 근처가 많이 부서졌으면 몰랐을 수 있다고 합니다. 사고로 파손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요.”
“사고가 작으면 어차피 자세히 조사하지 않았을 테고요.”
“그렇죠.”
“역시 그 사고는 우연이 아니군요.”
알고는 있었다. 이 조사는 단순 사고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서 진행했다.
◈ ◈ ◈
선우현이 이튿날 아침에 스래곤에 출근했다.
그는 어지간한 일은 회사 임직원들에게 맡겨둔다.
그렇다고 무작정 믿고 맡긴 건 아니다.
임원 중에 다른 업체를 만나 정보를 팔아먹으려는 사람이나, 따로 자주 모여서 뭔가 꾸미는 사람이 있는지는 김수선이 체크했다.
그러다 의심스러운 케이스가 나오면 그때는 선우현이 직접 조사했다. 아직은 임원 중에서 대놓고 배신하는 사람은 발견되지 않았다.
직원에게 맡기지 않고 선우현이 직접 출근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도 있다. 임원 회의나 회사의 진행 방향, 계약 관련 중요 결재 업무가 그런 것이었다.
선우현이 회사에 나오는 날은 박서윤도 스래곤에 출근한다.
선우현이 밖에서 사 온 커피를 박서윤과 마시며 구하니가 당한 사건을 설명했다.
“그래서 난 당분간 구하니 씨의 매니저를 할 겁니다.”
박서윤은 쉽게 받아들였다.
“우현 씨가 하는 일에는 다 이유가 있겠죠.”
“역시 서윤 씨는 나를 믿는다니까.”
“그래도 회사에 출근하는 날을 줄이시면 안 돼요.”
“어…. 그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벌써 눈치챘네요?”
“표 나요.”
“많이 납니까?”
“네. 많이 나요. 당장 오늘만 해도 중요한 계약이 있잖아요. 임원 회의도 주관하셔야 하고요. 앞으로 자주 나오셔야 해요.”
“그런데 내가 당분간 구하니 씨의 매니저를 꼭 해야 해서 자주는 좀….”
“제가 알기론, 구하니 씨는 스케줄을 조금밖에 안 잡잖아요. 매니저 알바는 며칠에 한 번 하시면 되죠? 다른 날에는 출근하면 되겠네요.”
“역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니까.”
“오늘처럼 오전에 출근하고 오후에 스케줄 가셔도 되고요.”
“이렇게 바빠지는 건 계산에 없었는데.”
박서윤이 장담했다.
“제가 두 회사에서 동시에 일하니까 잘 아는데요. 우현 씨도 둘 다 할 수 있어요.”
“그중 한 자리는 내가 맡긴 거라서 할 말이 없네요.”
스래곤 비서실장 자리는 선우현이 그녀에게 맡겼다.
“괜찮아요.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요.”
그녀가 방긋 웃었다.
“우현 씨 덕분에 월급을 양쪽에서 받잖아요.”
◈ ◈ ◈
선우현은 오전에 스래곤에 출근했다가 오후에 퇴근했다.
그가 원래 타던 차는 정비소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당장 쓸 차를 랜트카 회사에서 빌렸다.
선우현이 구하니의 집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도착했습니다.”
이미 구하니는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그녀가 밖으로 나와 두리번거렸다.
선우현의 차는 틴팅이 진하게 되어 있어 실내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차 유리를 내렸다.
“여기입니다.”
구하니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이 차는 뭐예요?”
“차를 개조하는 동안 써야 해서 랜트카 업체에서 제일 튼튼한 놈으로 가져왔습니다.”
그가 가져온 차는 군용 차량처럼 각진 모습이었다.
“와. 차가 되게 튼튼해 보여요.”
“방탄판이라도 붙이면 더 튼튼할 텐데, 그게 좀 아쉽긴 합니다.”
“에이. 한국에서 누가 차에 그렇게까지 해요.”
“그렇긴 하죠.”
두 사람은 차를 타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구하니가 물었다.
“정말 바쁘실 텐데, 이러셔도 돼요?”
- 그러게 말입니다. 선장님은 바빠야 하는데요.
“어차피 밥은 먹어야 하니까요.”
- 꼭 밥을 드십시오.
식사는 별실이 따로 있는 고깃집에서 했다.
- 고기를 드시네요.
박대석이 자랑했다.
“여기 바비큐가 그렇게 맛있습니다. 아주 일품이지요.”
구하니는 최근에 선우현과 연예인도 예약하기 어려운 곳에서 바비큐를 먹었다. 그래도 그걸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맛있네요.”
실제로 이곳 고기도 꽤 맛있었다.
그런데 걸그룹 은하소녀 네 명은 바비큐와 채소만 먹었다.
선우현이 물었다.
“반찬은?”
오민하가 대답했다.
“저희는 며칠 뒤에 방송 출연이 있어서요. 오늘은 고기랑 채소만 먹을 거예요.”
“편식하면 건강 해치는데.”
“괜찮아요. 내일부터는 고구마 먹으면 돼요.”
“고생이 많다.”
오민하의 목소리는 밝았다.
“아니에요. 고생할 기회조차 없을 때보다 얼마나 좋은데요.”
선우현이 보이그룹 에이투원을 보며 물었다.
“너희들은 그냥 막 먹네?”
에이투원은 공깃밥에 잔치국수도 시켜놓고 먹었다. 고기도 흡입하듯이 먹어댔다.
멤버들이 한마디씩 했다.
“저희는 원래 많이 먹어요.”
“옛날에 못 먹고 연습할 때 생각나서 맛있는 고기를 보면 못 참아요.”
“이따가 냉면도 먹을 거예요.”
“많이 먹은 건 운동으로 빼면 돼요.”
선우현이 말했다.
“많이 먹고 운동으로 해결하려다가 건강한 돼지가 되는 수가 있다.”
박대석이 선우현에게 물었다.
“혹시 김수선 씨는 신곡은 생각이 없답니까? 유럽 팬들이 많이 기다리던데요.”
“수선이도 슬슬 신곡을 내려고 합니다. 작곡가를 섭외해서 좋은 곡을 받으면 낼 겁니다.”
구하니가 옆에서 말했다.
“제가 작곡가를 소개해주기로 했어요.”
박대석이 얼른 제안했다.
“우리 회사에서도 작곡가들에게 연락해 곡을 좀 받아봐도 될까요?”
김수선이 기획사 폴리시를 통해 곡을 받으면 당연히 신곡도 폴리시에서 내게 된다.
김수선이 말했다.
- 저는 곡만 좋으면 상관없습니다. 특히 그 기획사는 제가 누구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음원을 내주니까 더 좋습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어차피 신곡은 폴리시에서 내려고 했습니다. 수선이가 곡을 마음에 들어 해야 하지만요.”
“오늘 당장 연락 돌리겠습니다. 하하하.”
홍은성이 물었다.
“이번엔 형님이 작곡 안 하시고요?”
김수선이 말했다.
- 최근에는 엠투의 수리 정보를 찾고, 스래곤 임원들이나 구하니를 노리는 놈들의 외부 활동도 체크하느라 바빴습니다. 저는 지금 곡 파편 정보를 뒤져볼 여유가 없습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내가 요즘 바빠서.”
여기 모인 사람 중에 선우현이 스래곤의 사장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구하니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스래곤은 알아도 사장의 이름은 모른다.
설사 사장의 이름을 안다 해도 선우현과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하지 같은 사람이라는 걸 눈치채기는 어려웠다.
홍은성이 아쉬워했다.
“우리도 형님 곡 진짜 받고 싶었는데.”
“곡이 나오면 수선이부터 줘야지.”
옆에서 구하니가 한마디 했다.
“아니면 나한테 주시던가.”
오민하도 한마디 했다.
“아니면 우리가 받을 거야. 넌 제일 마지막이면서 어딜 들이대니?”
홍은성이 발끈했다.
“우리가 그래도 은하소녀보다는 위지!”
“어머! 어딜 들이대니? 누가 봐도 우리가 위인데!”
선우현이 말했다.
“너희들 그러다 연애라도 하겠다?”
박대석이 펄쩍 뛰었다.
“연애라니! 이제 겨우 뜨는데! 민하야!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돼!”
“미쳤어요? 내가 왜 저런 거랑!”
홍은성도 펄쩍 뛰었다.
“저런 거라니! 저런 거가 뭔데!”
“너 말이야! 너! 콕 집어서 너라고!”
◈ ◈ ◈
선우현이 이틀 뒤에 스래곤 연구소를 방문했다.
최 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보닛을 열어서 내부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기존의 디젤 엔진은 제거하고 M 연료전지 키트를 설치했습니다.”
“겉보기엔 비슷하군요.”
“엔진 커버를 그대로 사용했고 구동계와의 연결 부품도 그대로 썼으니까요. 일반인이 힐끗 보는 정도로는 잘 모를 겁니다. 사고만 안 내시면 됩니다.”
“성능은 잘 나옵니까?”
“기존 엔진보다 출력을 더 높여놨습니다. 다만, 차 자체가 못 버틸 수 있으니 과속은 자제하셔야 합니다.”
“위급한 상황만 아니면 과속은 안 할 겁니다.”
최 팀장이 타이어를 손으로 만졌다.
“혹시 몰라 타이어는 펑크가 나지 않는 특수 타이어로 교체했습니다. 외국에서는 방탄차에 사용하는 타이어입니다. 승차감은 좀 떨어지지만 대신에 총에 맞아도 안 터집니다.”
“그거 좋네요.”
“떨어진 승차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서스펜션과 관련 부품을 고급품으로 바꿨습니다. 그 외에도 상태가 조금이라도 안 좋다 싶은 부품들은 전부 새것으로 교체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보안 시스템은요?”
최 팀장이 차량 하부의 확대 사진을 몇 장 보여주며 말했다.
“차량 하부 부품을 교체할 때 내부에 센서를 여러 개 숨겨놨습니다. 차가 주차된 상태에서 누군가 차 바닥을 건드리면 바로 감지됩니다.”
“건드린 놈 얼굴도 찍히고요?”
“예. 카메라도 여러 개 설치했습니다. 겉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초소형 카메라입니다.”
최 팀장은 차의 문을 가리켰다.
“물론 보닛이나 문에도 센서를 설치했습니다. 누군가 차 문을 몰래 열려고 하면 다 걸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지된 정보는 사장님의 휴대폰으로 전송될 겁니다.”
최 팀장이 계속 설명했다.
“테스트용 차량으로 등록했으니까 이런 감지장치가 나중에 문제가 돼도 충분히 해명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 며칠 사이에 많이 처리하셨네요.”
“사장님이 시키신 일이라 제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아. 혼자 한 건 아니고, 보고드렸다시피 몇 명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선우현이 쇼핑백을 하나 주었다.
“이건 같이 작업한 분들이랑 하나씩 드시죠.”
쇼핑백에는 활토와 R 크림이 인원수대로 들어 있었다.
“매번 이런 걸 주시니까…. 고맙습니다!”
“이 일은 비밀인 건 아실 테고.”
“물론입니다. 누구 차이며 어떤 용도인지는 저만 알고 있습니다. 도와준 사람들은 이것도 회사 프로젝트로 알고 있습니다.”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연구 개발이든 차량 개조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겠습니다!”
◈ ◈ ◈
선우현이 개조한 연예인용 밴을 타고 구하니를 데리러 갔다.
오늘은 예능 촬영 스케줄이 있다. 지난번에 방송국에서 회의한 바로 그 예능이었다.
그녀는 선우현이 연락하자마자 집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오늘은 여행용 캐리어가 두 개나 있었다.
선우현이 가방을 받아서 차에 넣었다.
“어머. 고마워요.”
“매니저인데 이 정도야 뭐.”
“이러니까 진짜 매니저 같아요.”
“당분간은 진짜 매니저입니다. 그런데 캐리어 가방이 두 개나 되네요?”
“각종 화장품, 촬영 현장 상황에 따라 갈아입을 옷 몇 벌, 거기에 혹시 일박이일이 될 때를 대비한 추리닝, 세면도구, 기타 등등이 있거든요.”
“그럼 이건 그냥 차에 놔두는 용도?”
“그쵸. 이제부터 이 차에 필요한 짐을 하나씩 채워야죠.”
구하니가 뒷자리에 타서 내부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 차를 가져가서 다 고치신다더니, 변한 건 없어 보여요.”
“실내는 하니 씨가 마음에 들어 해서 손대지 않았는데, 갈아엎을까요?”
“아뇨. 저는 지금이 익숙해서 더 좋아요. 옛날에 타던 차 그대로니까요. 이 차 타고 참 많이도…. 어머나!”
“왜 놀랍니까?”
그녀가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다.
“차 유리 바깥 풍경이 갑자기 뒤로 가서요. 차가 출발하는 줄도 몰랐어요. 시동 거는 소리도 안 들렸는데.”
차는 이미 출발했다. 구하니가 손바닥을 문에 댔다.
“세상에. 무슨 차가 진동도 없고 소리도 없어요?”
“지금은 저속으로 이동해서 그렇습니다. 속도를 올리면 소리는 조금 날 겁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차 왜 이렇게 조용해요?”
저번에 선우현이 최 팀장과 이야기할 때 구하는 차 안에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차를 어떻게 개조할지 듣지 못했다.
선우현이 말했다.
“원래 달려 있던 엔진을 떼어버리고.”
“아무리 엔진을 새것으로 바꿨어도 너무….”
“M 연료전지 시스템을 달았으니까요.”
“네?이 차에 뭘 달았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