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매니저 II
선우현과 구하니는 중고차 시장에서 그녀가 예전 소속사에서 타던 차를 샀다.
두 사람은 그 차를 몰고 중고차 시장을 나와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운전은 선우현이 했다.
구하니는 차의 뒷좌석에서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내부 설비를 확인했다. 연예인용으로 개조된 실내는 그녀가 타던 때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와. 음료수 보관함 안쪽에 내가 붙여놓은 스티커가 아직도 있어요.”
“무슨 스티커입니까?”
“옛날에 행사 갔을 때 어떤 꼬마가 준 거예요. 그날도 되게 힘들었는데, 이게 뭐라고 되게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여기 붙여놨죠.”
“눈에 안 보여서 안 뗐나 봅니다.”
“그냥 손을 안 댔네요. 시트 긁어먹은 것까지 다 그대로거든요. 진짜 내부가 하나도 안 바뀌었어요.”
“인테리어는 그대로 써도 되겠군요.”
“그런데 엔진 소리랑 진동은 예전보다 커진 것 같아요. 디젤차라서 그러나?”
“회사에서는 그동안 정비를 안 하고 막 굴렸을 겁니다. 중고차 업체에서는 차를 팔아야 하니까 굴러갈 수 있을 정도로만 손봤겠지요.”
“그럼 어떻게 하죠?”
“어차피 이 차의 구동계와 관련된 부품은 싹 다 갈아치울 겁니다.”
“네? 지금도 차는 잘 움직이는데….”
“그래야 누가 손대면 표가 나니까요. 지금은 손댔는지 아니면 원래 상태가 나빴는지 구분하기 어렵잖습니까?”
“아!”
“그리고 보안장치도 달아야죠.”
“맞다. 보안장치.”
구하니의 차가 한강 공원에 주차되어 있을 때 차의 바퀴에 수작을 부렸던 놈들이 있다. 그놈들은 붙잡았지만, 어젯밤에 비슷한 시도가 다시 있었다.
이미 여러 번 일어난 일은 또 일어날 수 있다.
“지난번처럼 허튼수작을 부리는 놈이 있으면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겁니다.”
선우현은 그 차를 몰고 명함 가게를 방문했다.
그곳은 사장 혼자 운영하는 소규모 매장이었다. 그곳에서는 즉석 명함도 제작했다.
사장이 말했다.
“즉석 명함은 금방 나오는데, 고급 명함은 시간을 좀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곧바로 다음 스케줄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한 시간 안에 고급 명함이 나오면 백만 원.”
사장이 다양한 샘플이 들어 있는 명함 보관철을 펼쳤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디자인부터 고르시죠.”
◈ ◈ ◈
고급 명함은 40분 만에 나왔다.
선우현이 차에 탄 후에 말했다.
“다음은 방송국이군요.”
“네. 지금 가면 안 늦을 거예요.”
“메이크업 샵에는 안 들려도 됩니까?”
“오늘은 예능 관계자와 미팅만 하니까 화장 정도는 차에서 직접 해도 돼요.”
선우현이 출발했다. 구하니가 뒤에서 거울을 보며 화장을 조금 손보았다. 그러면서 운전하는 선우현을 힐끗거렸다.
“왜 자꾸 봅니까?”
“선우현 씨가 제 매니저를 해주는 날이 올 줄은 몰랐거든요. 아니, 옛날에는 그걸 원했는데 지금은 스래곤 사장님이시잖아요.”
“어차피 출근 안 하는 날이 많아서 시간 많습니다.”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자랑이십니다.
“내가 그래도 엠투를 고칠 때는 매일 출근했잖아.”
- 보통은 매일 출근하는 게 당연합니다만?
“난 보통이 아니잖아.”
- 장하십니다.
두 사람은 방송국에 도착했다. 선우현이 운전석에서 내려 뒷문을 열어주었다.
구하니가 부끄러워했다.
“안 이러셔도 되는데….”
“방송국에는 보는 눈이 많습니다.”
“아! 그래서 진짜 매니저처럼 위장하는 거군요.”
“지금은 진짜 매니저입니다.”
선우현은 임시 출입증을 받았다. 인기 가수 구하니가 그를 매니저로 소개하자 방송국 임시 출입증은 즉시 나왔다.
구하니는 며칠 뒤에 촬영하는 예능 방송에 게스트로 들어간다. 오늘은 구체적인 사항을 협의하러 왔다.
그 회의실에는 선우현도 들어갔다.
그곳에는 같은 방송에 게스트로 참여하는 배우 소병훈이 먼저 와 있었다. 그는 구하니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보면 인사 정도는 하는 배우였다.
“어. 하니 씨. 반가워요.”
“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같이 오신 분은 누구신지?”
구하니가 대답했다.
“제 매니저예요.”
“아. 이제 하니 씨도 매니저를 쓰는구나. 소문에는 혼자 다닌다던데.”
“이제 안 그러려고요.”
소병훈의 옆에 앉아있던 매니저 고성찬이 말했다.
“그런데 인사성은 없는 매니저네. 후배 같은데 인사도 안 하고 말이야.”
선우현이 물었다.
“언제 봤다고 후배라고 하는지?”
고성찬의 목소리가 당장 커졌다.
“어? 뭐? 나 SNY 고성찬 실장이야.”
“아. SNY. 거긴 사람들이 참 일관성이 있네.”
예전에 만난 SNY의 실장은 부풀려서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SNY의 가수 천호성은 선우현에게 시비를 걸다가 멱살을 잡혔다.
고성찬이 몸을 일으켰다.
“지금 그거 무슨 뜻이야!”
배우 소병훈이 고성찬의 팔을 슬쩍 잡았다.
“지금 뭐하는 거야? 하니 씨 앞이야. 참아.”
고성찬이 팔을 빼며 말했다.
“신입 매니저가 건방지잖아.”
선우현이 구하니의 매니저를 맡은 건 누가 그녀를 노리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상대 배우의 매니저가 처음부터 적대적으로 나왔다.
선우현이 구하니에게 물었다.
“이 분위기는 뭘까요? SNY에서 하니 씨한테 시비를 거는 건가?”
“저도 의심하는 중이에요.”
문이 벌컥 열렸다. 피디가 작가와 들어오다가 멈칫했다.
“어? 무슨 일 있습니까?”
매니저 고성찬이 얼른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매니저끼리 의견 충돌이 조금 있었습니다.”
피디는 어차피 남의 일이라 간단하게 생각했다.
“거 벌써부터 분량 싸움을 하고 그러시나.”
회의가 시작됐다. 예능 촬영해서 피디나 작가가 원하는 그림을 말했다. 그렇다고 그걸 다 들어줄 수는 없다. 구하니와 소병훈은 그중에서 문제가 되는 건 걸러냈다.
선우현은 옆에 앉아서 돌아가는 꼴을 구경했다.
어차피 이런 협의는 구하니가 직접 처리해왔다. 선우현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반면에 소병훈의 매니저는 적극적으로 끼어들었다.
“피디님. 우리는 들어주고 싶지만, 그런 거 하면 우리 소 배우의 팬들이 항의할 겁니다.”
“아. 이거 넣고 싶은데.”
“꼭 넣고 싶으시면 구하니 씨한테 양보할 테니까….”
선우현이 그건 끼어들었다.
“어디서 약을 파시나. 자기가 하기 싫은 걸 남한테 넘기면서 왜 양보래?”
“뭐요?”
분위기가 나빠지자 피디가 얼른 손을 들었다.
“이건 뺍시다. 다른 거 넣으면 되죠. 다른 거.”
회의가 다시 진행됐다.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수선아. 역시 SNY를 용의자에 올려야겠다.”
- 저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매니저의 얼굴이 파악이 안 됩니다.
“나중에 사진이라도 구해서 보여줄게.”
- SNY를 상시 추적할 시간은 없는 거 아시죠?
“알아. 저 매니저 놈만 가끔 들여다봐. 뭐가 걸릴지도 모르니까.”
회의는 한 시간 정도 걸렸다.
회의가 끝난 후에 매니저 고성찬은 예능국 사람들에게 인사하러 갔다. 그는 가기 전에 선우현을 째려보는 걸 잊지 않았다.
선우현이 말했다.
“나도 예능국에 인사하러 가야 하나….”
구하니가 고개를 흔들며 말렸다.
“스래곤 사장님이 왜 인사를 다녀요. 그러지 마요.”
“지금은 구하니 씨 매니저인데?”
“나 구하니예요. 내 매니저는 인사 안 다녀도 돼요.”
“그럼 그냥 가도 되겠네요.”
고성찬은 방송국 PD 박성훈을 발견했다. 그가 얼른 박성훈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박 피디님.”
박성훈은 기획 서류를 보면서 지나가다가 인사를 받았다.
“아. 네.”
박성훈은 전에는 조연출로 일하다 지금은 정식으로 자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같이 일하는 작가는 구하니와 친한 안유정이다.
고성찬이 박성훈을 따라가면서 말했다.
“저희 소병훈 배우가 피디님 작품에 관심이 많습니다.”
박성훈이 고개를 들었다.
“아. 그래요? 그럼 나중에….”
고개를 들었더니 저쪽에 서 있는 선우현이 보였다.
“어?”
박성훈이 갑자기 후다닥 뛰어갔다.
고성찬은 당황했다.
‘뭐지? 왜 갑자기 뛰어? 방송국 사장이라도 왔나?’
고성찬이 그가 뛰는 방향을 보았다. 구하니와 선우현이 보였다.
“아. 구하니를 섭외하려고 저러네. 역시 구하니의 인기는….”
박성훈이 두 사람에게 뛰어가더니 구하니가 아니라 선우현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성찬은 당황했다.
“왜….”
방송국 PD 박성훈이 선우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박성훈은 조연출 시절에 안유정과 함께 산속 식당에 들렀다가 덕구파 출신 칼잡이 조성철에게 붙잡혔던 일이 있었다.
그때 선우현이 팔찌형 통신기를 찾으러 갔다가 박성훈과 안유정을 구해주었다.
선우현이 인사했다.
“아. 성훈 씨. 반가워요.”
“방송국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하니 씨 매니저로 왔습니다.”
박성훈은 선우현이 스래곤 사장이라는 건 모른다.
그가 아는 선우현은 무술 실력이 엄청나고 구하니를 가끔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정도다.
“아. 이번에도 구하니 씨 매니저를 맡으셨군요. 구하니 씨는 든든하시겠습니다.”
구하니가 웃었다.
“그럼요. 엄청 든든해요.”
박성훈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럼 하시는 김에 우리 방송에 연예인과 매니저가 같이 출연하시는 건….”
구하니가 얼른 거절했다.
“안돼요. 우현 씨는 방송에 얼굴 나가는 거 안 좋아하세요.”
“아…. 진짜 나오기만 하시면 대박인데.”
배우 소병훈이 매니저 고성찬에게 다가갔다.
“뭘 봐?”
고성찬이 턱짓을 했다.
“저기. 피디가 구하니 씨 매니저한테 인사를 하네.”
“그래? 방송국 출신인가?”
“방송국 출신이 매니저를 한다고?”
“방송국에 피디만 있는 것도 아닌데 뭐. 구하니의 매니저라면 할 수도 있지.”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소병훈이 물었다.
“왜? 가서 사과라도 하게?”
“쪽팔리게 어떻게 그래? 됐어. 방송국 출신은 무슨. 아마 학교나 동네 선배일 거야.”
◈ ◈ ◈
선우현과 구하니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들이 오늘 산 차 앞에 다른 사람이 몇 명 서 있었다.
기획사 JXK의 팀장 주종환이 차 앞을 떠나려다가 구하니가 다가오는 걸 보고 멈칫했다.
“어?”
그는 구하니를 봤다가 다시 차를 보았다. 그러고 다시 구하니를 보더니 이죽거렸다.
“이 차를 누가 샀나 했더니 구하니 너였냐? 똥차라서 버린 걸 산 거 보면 요즘 어렵나 봐?”
구하니도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내가 타던 차를 일부러 찾아내서 산 거야. 내가 설마 새 차를 살 돈이 없겠어?”
선우현은 스래곤 주식을 매집할 때 구하니한테서도 50억 원을 빌렸다. 그건 구하니가 단기간에 대출이나 인맥을 통해 동원할 수 있는 현금 최대치였다.
선우현은 최근에 그 돈을 100억으로 갚았다. 세금 낼 돈도 추가로 준 덕분에 구하니의 통장에는 거의 100억이 그대로 꽂혔다.
그래서 구하니는 요즘 돈이 풍족했다. 더 좋은 차를 사고 싶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주종환이 계속 시비를 걸었다.
“나야 모르지. 어딘가에 투자했다가 다 날렸다는 소문도 있고.”
“헛소문이야. 투자 성공해서 돈 많이 벌었어.”
50억 원이 100억 원으로 불어나서 돌아왔다.
주종환의 인상을 찌푸렸다. 구하니에게 시비를 걸었는데 씨도 먹히지 않았다.
그가 화살을 옆으로 돌려 선우현에게 물었다.
“그런데 넌 뭐냐?”
“구하니 씨 매니저.”
주종환이 험악한 인상을 썼다.
“너 누구 허락받고 구하니의 매니저를 하냐?”
선우현이 코웃음을 쳤다.
“이 새끼가 한국에 살면서 헌법을 무시하네?”
“뭐?”
“직업선택의 자유보다 네 허락이 더 높냐?”
주종환이 선우현의 멱살을 잡으려고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 새끼가! 너 내가 누군지 알….”
선우현이 그 손을 잡아 꺾었다.
주종환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손! 손!”
“그러는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냐?”
“모, 몰라! 손!”
“아. 모르는구나. 혹시나 했다.”
선우현이 주종환을 툭 밀었다. 주종환이 뒤로 비틀거리며 밀려났다가 겨우 멈췄다.
주종환이 왼손으로 꺾였던 오른손을 잡으며 화를 냈다.
“너 이 새끼….”
선우현이 앞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주종환이 자기도 모르게 뒤로 두 걸음이나 후다닥 물러났다.
그는 방금 선우현에게 팔을 잡혔을 때 압도적인 힘으로 꺾였던 걸 기억했다. 주종환도 멱살을 잡으려고 손에 힘을 준 상태였는데 그 팔이 너무 쉽게 젖혀졌었다.
‘무슨 힘이…. 운동선수 출신 매니저인가?’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수는 없다. 주종환은 아직 패를 가지고 있다.
주종환이 목을 꺾으며 말했다.
“나 JXK의 주종환 팀장이다.”
“하니 씨 옛날 소속사구나.”
“그래. 이 바닥에서 JXK한테 찍히고 매니저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 상황을 알았으면 당장 머리부터 숙….”
“거기서 하니 씨를 목이 상할 때까지 굴렸다던데.”
주종환이 화를 벌컥 냈다.
“이 새끼가! 너 이 바닥에서 일하기 싫어? 이 바닥 좁다.”
“좁긴 하더라. 벌써 두 놈을 만나네.”
- 맞습니다. 구하니의 매니저가 되자마자 시비를 거는 놈이 벌써 둘입니다. 이래서 그동안 혼자 다녔나 봅니다.
주종환이 협박했다.
“나 JXK 실장이야! 내가 전화 몇 통만 돌리면 너 같은 건 이 업계에 발도 못 붙이게 할 수 있어!”
“JXK 그거 얼마나 하냐?”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