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30화 (230/281)

230. 매니저

구하니가 말했다.

“아! 자동차를 먼저 출시하려고 미리 계약금을 많이 꽂는 거군요. 그러면 M 연료전지를 더 빨리 받으니까요.”

“다른 것도 있습니다. M 전지는 앞으로도 생산량이 주문량을 못 따라갈 겁니다. 그러면 자동차 회사는 원하는 만큼 연료전지차를 만들지는 못하겠지요.”

“그래서 연료전지를 더 많이 할당받으려고 계약금을 많이 넣는 거네요.”

“그렇죠.”

구하니가 궁금해했다.

“그럼 얼마를 넣으면 몇 개를 받는 거예요?”

“사실 계약금은 그거랑 상관없는데.”

“네?”

선우현이 대답했다.

“나는 계약금에 비례해서 연료전지를 주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회사가 그런 생각으로 계약금을 많이 넣으니까, 그 소문을 들은 다른 회사들도 너도나도 따라 하더군요.”

“선우현 씨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도요?”

“자기들이 알아서 돈 더 넣겠다는데 내가 뭐하러 말합니까?”

“네?”

“난 내 맘대로 줄 겁니다.”

구하니가 당황했다가 웃었다.

“자동차 회사들이 급했나 보네요.”

선우현이 정정해주었다.

“연료전지라는 게 전기차에만 쓰는 건 아닙니다. 다른 업계에서도 연락이 많이 옵니다.”

“다른 업계면, 오토바이요?”

“M 전지는 프로펠러 항공기에도 달 수 있고, 전봇대를 세우기 어려운 산속이나 섬의 발전기로도 쓸 수 있습니다. 우리 연료전지는 잠수함에도 쓸 수 있는 거 압니까? 국방부에서도 연락이 오더군요.”

구하니가 감탄했다.

“와…. 선우현 씨 엄청 잘나가시는구나.”

“내가 좀 나갑니다.”

갑자기 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부끄러워했다.

“나는 그런 분한테 매니저를 해달라고 했으니….”

구하니는 예전에 선우현에게 매니저 제의를 여러 번 했다.

“그게 왜 부끄러울 일입니까? 난 그때 일일 매니저 일당받아서 좋았는데.”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그때 일당 떼였다고 난리를 치셨는데요?

“수선아. 일당받아내라고 더 난리 친 건 너였다?”

- 그때는 한 푼이 아쉬웠습니다만?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그들은 선우현의 차를 타고 구하니의 작업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구하니의 차가 그곳에 있었다.

구하니가 조수석에서 물었다.

“김수선 씨는 요즘은 활동을 안 하세요?”

“수선이는 얼굴 없는 가수라서 공연이나 방송 출연은 안 하잖습니까?”

“신곡 말이에요.”

- 저 그거 할 겁니다. 좋은 곡만 있으면요.

선우현이 구하니에게 제안했다.

“그러면 다음에 만나면 곡 의뢰 이야기를 하죠. 수선이가 신곡을 내고 싶어 하니까.”

“어머. 좋죠. 제가 좋은 작곡가들을 추천해 줄게요. 그런데 김수선 씨는…. 계속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할 건가요?”

“일단은요.”

◈          ◈          ◈

구하니가 작업실 주차장에 세워둔 그녀의 차를 타고 먼저 출발했다. 선우현의 차가 그 뒤를 따라갔다.

차가 도로에 올라간 후에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우주왕복선을 손에 넣어서 제가 지상에 내려간다고 해도, 공개적으로 활동할 수는 없습니다만?

“네 얼굴만 보여주면서 노래하는 영상 정도는 괜찮잖아?”

- 그런 거라면 찬성입니다. 메이크업을 화려하게 해서 본모습을 감추고 여신의 모습으로 노래하면 딱 좋겠군요.

“응. 김엔젤.”

- 엔젤이라고 부르지 마시라고요. 고대 문명에서는 여신이라고 불렸다고요.

엔젤이라는 호칭은 인공위성 궤도에서 조난됐다가 구출된 토마스가 방송에서 쓰면서 알려졌다.

- 토마스를 구해줄 때 꿀밤이라도 때려줄 걸 그랬습니다.

“어쨌든 집에 가서…. 음? 수선아. 앞에 가는 하니 씨의 차가 이상하지 않냐?”

- 저도 지금 봤습니다. 약간씩 비틀거리면서 달리고 있습니다.

“술은 안 마셨는데?”

- 선장님! 저 차의 조수석 앞바퀴가 흔들립니다!

선우현이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았다.

“봤어!”

◈          ◈          ◈

구하니는 오늘 식사가 무척 좋았다.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즐겁고….”

거치대에 걸어놓은 스마트폰에 선우현의 이름이 뜨면서 전화가 걸려왔다.

구하니가 방긋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어머. 왜요?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우면 어디 가서 한잔….”

갑자기 구하니의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꺅?”

차의 자세 제어장치가 자동으로 반응했다. 바퀴가 드르륵거리며 도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갑자기 조수석 앞바퀴가 차에서 빠져 튕겨 나갔다. 구하니의 차는 중심을 잃고 옆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대로 두면 차가 전복될 수도 있었다.

“꺄악!”

갑자기 오른쪽에 새로운 차가 나타났다. 선우현의 차였다.

선우현은 구하니의 차 오른쪽으로 차를 바짝 붙였다.

두 대의 차 옆면이 충돌했다. 옆으로 움직이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아 어느 한쪽이 튕겨 나가지는 않았다. 대신에 철판에서 불꽃이 튀었다.

선우현이 외쳤다.

“속도 천천히 낮추면서 세워요! 급브레이크는 밟지 말고 살살!”

“네? 네!”

두 대의 차가 옆면을 완전히 붙인 채로 속도를 줄였다. 구하니가 줄이는 속도에 선우현이 맞추어주었다.

조금 더 굴러가던 차가 도로 위에 완전히 정지했다.

구하니가 숨을 몰아쉬었다.

“하악. 하악.”

선우현이 차에서 내려 뛰어왔다. 그가 운전석 문을 벌컥 열며 말했다.

“일단 내려요!”

“아, 알았…. 모, 몸에 힘이….”

선우현이 구하니의 안전벨트를 풀고 두 손을 그녀의 허리와 다리 사이에 끼웠다. 그런 후에 공주님 안기 자세로 그녀를 차 밖으로 꺼냈다.

선우현은 구하니를 안은 채로 인도로 나간 후에 자세를 낮추었다.

구하니의 발이 땅에 닿았다.

“이제 괜찮습니다.”

“지, 진짜요?”

“괜찮으니까 내 목을 껴안은 손은 놔요. 남들이 볼라.”

“아, 알았어요.”

한밤중이고 한적한 도로라 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곧 지나갈 게 뻔하다.

선우현이 구하니의 차에 가서 가방을 가져다주었다. 그녀의 가방 안에는 마스크와 선글라스, 모자가 있었다.

“일단 얼굴은 가려요.”

구하니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네, 네.”

선우현이 그의 차에서 점퍼를 꺼내 구하니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녀가 선우현을 쳐다보았다.

“이건 왜….”

“남들이 하니 씨 몸매만 봐도 연예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구하니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고마워요.”

구하니가 진정하는 동안 선우현은 그녀의 차를 확인했다.

“수선아. 오늘 이 차 주변을 체크한 적 있냐?”

- 아니요. 구하니의 작업실 주차장을 제가 왜 보겠습니까?

선우현이 구하니에게 물었다.

“이 차 정비는 합니까?”

“그럼요. 가끔 정비소에 가서 상태 안 좋은 건 다 바꿔달라고 해요. 지방 행사에 가야 하니까 정비는 잘하는 곳에서 제대로 받아요.”

선우현이 앞바퀴가 빠진 곳을 보며 말했다.

“그러면 차 바퀴가 저절로 빠질 리는 없지?”

- 덕구파 잔당의 짓일까요?

“덕구파라면 나를 노렸겠지. 하니 씨가 아니라.”

- 덕구파는 박서윤을 납치한 적이 있잖습니까?

“서윤 씨는 스래곤의 비서실장이니까 노린 거고.”

- 그럼 이건 덕구파가 아니라, 다른 놈이 구하니를 노린 거군요.

선우현이 인상을 쓰며 차를 보았다.

“수선아. 내가 예전에 하니 씨를 지방 도로에서 만났을 때 말이야.”

- 청부업자가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구하니를 습격했지요. 선장님은 그때 구하니를 살리려고 레드 포션을 쓰셨고요.

그때 선우현의 그녀의 목 상처에 사용한 레드 포션 덕분에 구하니는 목소리를 되찾았다.

“한강 공원에서도 하니 씨의 차를 청부업자가 노렸었지?”

- 그때 그놈들은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하는 놈들이라, 누가 의뢰했는지는 경찰에서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하니 씨를 노리고 청부하던 놈이 아직 포기 안 했나 보다.”

- 지금 계신 현장 주변은 제가 확인했습니다만, 딱히 수상한 놈은 보이지 않습니다.

“결과는 뉴스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굳이 미행하지 않았겠지. 조심성이 많은 놈이야.”

구하니가 선우현에게 물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음…. 도로에서 차량 두 대의 단순 접촉사고가 났는데, 부상자도 없고 서로 합의했으면 경찰을 부를 필요는 없지요?”

“네? 단순 접촉사고…는 아니지 않나요?”

“이건 그냥 접촉사고입니다.”

“아…. 접촉사고인 거로 할게요.”

선우현이 구하니에게 다가가 말했다.

“하니 씨. 아까 말한 매니저 말인데요.”

“네. 예전에 제 매니저 해달라고 한 거, 제가 정말 그 생각만 하면 부끄러워서….”

“그 제안 아직도 유효합니까?”

“네?”

“원하시면 당분간 할 수도 있는데.”

구하니가 눈을 깜빡였다.

“스래곤 사장님이 가수 매니저를 한다고요?”

“내가 누구인지는 우리 회사 직원들은 알아도 방송 관계자는 모를 테니까, 매니저로 활동해도 문제는 없을 겁니다.”

“왜요? 제가 이해가 잘 안 가서….”

선우현이 망가진 그녀의 차를 가리켰다.

“어떤 놈인지 잡고 싶어졌습니다. 감히 내 앞에서 여러 번 하니 씨를 노리다니. 그런데도 못 잡았다니. 자존심이 상하네요.”

◈          ◈          ◈

조용하고 차가 없는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라 인명피해는 없었다. 겉보기에는 그들의 차 두 대만 좀 망가졌다.

선우현은 최종훈의 비서 김찬혁에게 연락했다.

김찬혁은 일단 달려오긴 했는데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이제 스래곤 사장님이신데 왜 굳이 저한테….”

스래곤에는 비서실이 있고 법무팀도 있다.

“이번 일은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처리해야 해서요.”

“아! 그런 거라면 제가 또 잘합니다.”

“차량 두 대의 접촉사고로 처리해주시죠. 경찰에 신고는 안 할 겁니다. 이미 몇 번이나 신고했지만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라서.”

“네?”

“하니 씨는 연예인입니다. 괜한 소문이 나지 않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선우현 씨의 이런 일은 이미 여러 번 해봐서 익숙합니다.”

“이건 도와주는 값이라고 하면 그렇긴 한데….”

선우현이 쇼핑백을 들었다. R 크림 전용 쇼핑백이었다.

김찬혁이 얼른 쇼핑백을 받았다.

“자주 이용해 주십쇼!”

“찬혁 씨는 최 사장님의 비서인데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퇴근했으니까 괜찮습니다!”

선우현의 빠진 앞바퀴를 가리켰다.

“신고는 안 하지만, 차에 무슨 짓을 했길래 바퀴가 빠졌는지 정도는 분석했으면 합니다.”

“우리 회사 연구소에 분석 가능한 전문가가 있습니다. 제가 술이라도 사주면서 맡기겠습니다.”

◈          ◈          ◈

이튿날 선우현이 구하니를 찾아갔다.

구하니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진짜로 오셨어요?”

“매니저 한다는 거, 농담 아니었는데.”

“하지만 선우현 씨는 회사 경영이나 기술 연구에 바쁘시잖아요.”

“지금은 스크래치가 난 내 자존심이 더 문제라서. 내가 매니저로 일하는 데 필요한 절차가 있습니까?”

“전 어차피 1인 기획사예요. 바쁠 땐 유정이가 가끔 도와주지만요. 그러니까 그냥 매니저 명함만 하나 파면 돼요.”

“그럼 명함부터 파러 갑시다.”

“아. 차는….”

선우현의 차를 다시 타려면 수리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구하니가 얼른 말했다.

“저한테 차가 한 대 더 있는데, 좀 작아요. 동네 마실 다닐 때 쓰는 차라서.”

선우현이 그녀의 차를 확인했다. 신형이긴 한데 경차와 소형차의 경계에 걸쳐진 차였다.

“하니 씨가 이 차를 타고 방송국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수군거리겠군요.”

“구하니가 쫄딱 망했다는 소문이 돌겠죠.”

“일단 차부터 사러 갑시다. 우리는 지금 당장 탈 수 있는 차가 필요하니까.”

“네? 하지만 차는 지금 계약해도 나오려면 시간이….”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 장한평 야외 전시장을 확인했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연예인용 밴이 한 대 있습니다.

“택시 타고 갑시다. 올 때는 거기서 산 차를 몰고 와야 하니까.”

◈          ◈          ◈

두 사람은 장한평 중고차 전시장에 도착했다. 선우현은 구하니를 데리고 직진했다.

구하니가 물었다.

“알고 가시는 거예요?”

“봐둔 차가 있습니다.”

- 제가 봐둔 건데요.

구하니는 오해했다.

‘새벽부터 여기 와서 차를 확인했나 보다.’

선우현이 연예인용 밴이 주차된 곳에 도착했다.

구하니의 표정이 굳었다.

“어? 이 차는….”

“왜 그럽니까?”

“옛날 기획사에서 제가 타던 차예요. 이게 매물로 나왔구나.”

김수선이 말했다.

- 그래서 제가 추천한 겁니다.

“익숙한 차면 좋겠다 싶었는데, 기분 나쁘면 다른 차로 바꿀까요?”

“아뇨. 이 차로 참 많은 곳을 다녔어요. 이걸로 해요.”

선우현이 앞유리에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중고차 딜러가 즉시 찾아왔다.

그가 차의 상태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선우현이 말을 끊었다.

“차 내부만 확인하죠.”

“예? 아. 예.”

차 문이 열렸다. 구하니가 내부를 들여다본 후에 말했다.

“다 그대로네요.”

선우현이 딜러에게 말했다.

“지금 끌고 가고 싶은데.”

“예? 차 상태를 안 보시고요? 시동도 걸어보지 않으셨는데….”

“우리가 바빠서 말이죠.”

“아. 그럼 대금 결제는 어떻게….”

“현금 일시불.”

“감사합니다. 고객님. 서류만 작성하시면 바로 가져가셔도 됩니다.”

“우리가 바빠서.”

“지금 당장 작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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