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시험 생산 II
스래곤에서 만드는 연료전지 모듈은 제작되는 족족 국내외 여러 업체에 테스트용으로 제공됐다.
아직 M 연료전지로 자동차를 출시한 자동차 회사는 없었다. 아무리 괜찮아 보이는 연료전지라도 충분한 검증 없이 차에 달아서 팔 수는 없다.
차는 잘못 만들면 사고가 나고 사람이 죽기 때문이다.
대신에 다른 회사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검증을 마치고 추가 개발을 거쳐 연료전지 자동차를 출시하려는 회사는 많았다.
남들보다 더 빨리 차를 출시하려면 테스트를 더 열심히 돌려야 한다.
국내 최대 자동차 회사인 대성차도 마찬가지였다. 대성차는 외국 회사 중 제일 빠른 곳보다 며칠 더 빠르게 테스트에 들어갔다. 스래곤에 차를 몰고 가서 M 전지 모듈을 받아올 수 있어서 빠른 테스트가 가능했다.
대성차 그룹 회장 양중근이 경기도에 있는 회사 자동차 연구소를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M 전지 주행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양중근이 주행 테스트를 참관하며 말했다.
“저거 다 우리 차군.”
연구소장이 옆에서 설명했다.
“예. 그렇습니다. 앞에서 달리는 차들은 우리 회사의 전기차에서 배터리를 제거하고 대신에 스래곤의 연료전지 시스템을 설치했습니다.”
지금 자동차 주행 시험장에서 테스트 중인 차는 여러 대였다.
“다양한 버전의 테스트 차량을 준비되는 대로 계속 투입하고 있습니다.”
“뒤에 달리는 차들은 전기차 모델이 아니잖아. 저것도 개조한 건가?”
“예.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서 엔진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모터와 연료전지 시스템을 설치했습니다.”
“그렇게 할 거라는 보고는 받았는데, 잘 되던가?”
“우리 회사 연구원들을 스래곤에 파견해서, 우리 회사 엔진 자리에 바꿔 끼우는 방식의 테스트용 모듈을 따로 몇 종류 만들었습니다.”
“모터와 연료전지 제어장치를 붙여서?”
“예. 외형은 엔진과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손쉽게 연료전지차로 바꿔 생산할 수도 있겠군.”
“그렇기는 한데…. 테스트용을 그대로 출시할 수는 없습니다. 연비나 출력, 안정성을 생각하면 어차피 엔진룸은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구동계도 충분한 테스트가 필요합니다.”
“그거야 알지.”
양중근 회장이 주행 시험장을 달리는 차들을 보며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시험 주행 결과가 잘 나왔다지?”
이 테스트는 오늘 시작한 게 아니다.
대성차는 매일 테스트를 돌리고 있다. 테스트에 투입하는 차량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같은 모델을 다양한 설정으로 몇 대씩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예. 전기차를 개조한 경우는 연비가 경유 기준으로 리터당 평균 40km가 나오고 있습니다.”
“충전이 아니라 주유소에서 기름만 넣으면 달릴 수 있는데 리터당 40km라…. 차량 가격도 전기차보다 더 저렴해지고.”
“예. 대용량 배터리보다 연료전지 시스템이 훨씬 쌉니다.”
“주행거리를 늘리고 싶으면 배터리가 아니라 연료통만 키우면 되는데, 주유소가 곳곳에 있으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그렇습니다.”
양중근 회장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매연도 안 나오고.”
“반응 후 잔여 물질은 고체로 압축되어 나오기 때문에 그냥 꺼내서 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 시스템의 장점 중에는 대기 중에 매연을 뿜지 않는 것도 있다. 매연으로 나가야 할 물질은 고체 형태로 남는다.
양중근이 물었다.
“그러면 고객이 전기차를 살 이유가 있나?”
“연료비는 전기차가 그래도 더 저렴한 편입니다만….”
“차 가격이나 충전 문제 등등, 종합 경쟁력은?”
“M 연료전지차가 훨씬 더 우수합니다.”
양중근이 테스트 시험장을 달리는 차를 보며 말했다.
“지금 하는 걸 보니, 연료전지를 장착한 차량 개발은 어렵지 않겠어.”
“예. 기존의 수소연료전지 차량과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를 연료전지로 교체하면 됩니다. 물론 그 경우에도 정식으로 출시하려면 개발 기간이 따로 필요합니다.”
“신차 개발을 할 만큼은 아니지. 차체는 그대로 쓰니까. 배터리만 연료전지로 바꾸고 소프트웨어만 고치면 되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양중근이 연구소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면 연식변경 정도 일정을 생각하면 되나?”
연구소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것보다는 페이스리프트 개발을 하는 정도는 생각하셔야….”
양중근 회장이 혀를 찼다.
“쯧쯧. 나만 마음이 급했군. 연구소는 이렇게 여유가 있는데.”
“죄, 죄송합니다.
양중근이 시험 주행장을 달리는 차들을 보며 말했다.
“M 연료전지는 말이야. 우리만 차량용으로 사용하려는 게 아니야. 외국에 있는 자동차 회사들도 서둘러 적용하려고 총력을 기울인단 말이야.”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
양중근의 목소리에 서늘함이 묻어났다.
“국내 업체에서 개발한 기술이니까 M 연료전지차는 우리가 1등을 해야 하지 않겠어? 여건이 우리가 제일 좋잖아.”
연구소장이 자기도 모르고 목을 만지며 말했다.
“빠른 상용화에 역량을 더 집중하겠습니다.”
“생산 라인은 어떻게 됐어?”
박 전무가 옆에서 보고했다.
“연구소에서 개발이 완료된 모델이 하나라도 나오면 즉시 라인을 개조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잘했다. 그럼 이제 충분한 수량의 연료전지를 받을 수 있는지가 문제인데….”
양중근 회장이 물었다.
“우리 쪽에서 M 연료전지를 생산한다는 제안에, 스래곤에서 조건을 걸었지?”
대성차는 스래곤에서 핵심 부품만 받고 나머지는 자체적으로 생산해서 조립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 대성차는 더 많은 연료전지를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로열티가 따로 나가도 연료전지 모듈을 통째로 사는 것보다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대신에 스래곤은 연료전지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예. 협력업체에서 우리 연료전지를 만들 때 스래곤이 따로 팔 것도 같이 생산해달라는 조건입니다.”
양중근이 지시했다.
“원하는 대로 다 들어줘.”
박 전무가 조언했다.
“회장님. 그러면 그 연료전지가 외국 자동차 회사에 공급될 수도 있습니다만….”
“박 전무는 스래곤이 우리 연료전지만 생산하게 할 자신은 있고?”
“그게….”
“스래곤이 쉽게 휘둘리는 중소기업도 아니고, 이미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을 텐데 뭘 어떻게 하게?”
“죄송합니다.”
“우리가 거절해도 외국에 그 역할을 할 회사는 많아.”
대성차만 M 연료전지를 사용한 자동차를 만들려는 게 아니다. 여러 나라의 자동차 회사들도 같은 걸 목표로 달리고 있다.
양중근이 말했다.
“스래곤은 그래도 같은 한국 회사니까 우리한테 먼저 제안을 한 거겠지. 그러니까 기회가 왔을 때 단단히 잡아야 해.”
“알겠습니다.”
연구소 참관을 마친 양중근 회장이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차에서 말했다.
“역시 활토가 좋아. 그걸 먹고 나니까 이렇게 돌아다녀도 별로 피곤하지가 않아.”
비서실장이 옆에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제는….”
어제는 대성차 그룹 본사 비서실에서 활토를 구하지 못했다.
평소에는 재벌그룹의 인맥을 동원해 활토를 어떻게든 구하는데, 손발이 안 맞으면 구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양중근이 물었다.
“활토를 재배하려고 시도한 회사가 여럿 있지?”
“예. 씨앗이나 조직배양용 샘플을 구하기는 쉬우니까요.”
“성공한 곳은 아직 없고?”
“국내외 여러 회사가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합니다. 토마토는 잘 열리는데 그렇게 키운 건 활력 효과가 없습니다.”
활토를 키우려면 식물 급속성장촉진제가 필요하다. 그 촉진제가 없으면 씨앗을 심어도 그냥 평범한 토마토만 열린다.
그런데 그 촉진제는 지원위성에서 레드 포션을 조금 섞어야만 만들 수 있다.
당연히 지상에서 연구하는 모든 재배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양중근 회장이 물었다.
“활토를 만든 사람이 스래곤 사장일 수 있다고?”
비서실장이 대답했다.
“예. 정황을 보면 그럴 확률이 꽤 높습니다.”
“스래곤 사장이 젊다며?”
“예. 상당히 젊습니다.”
“미혼이고?”
“예? 예.”
“다른 집안 자제들과의 교류는? 남자는 됐고 여자 쪽으로.”
“이성 교제 말씀이십니까?”
“한창 젊은 나이잖아.”
“제가 알기로는 JHC 테크의 최종훈 사장은 노총각이고, 길성의 박길성 회장은 아들만 둘입니다.”
박서윤이 박길성의 딸이라는 건 아직은 몇 명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다만….”
“다만?”
“백화점 중에서는 태양이 활토와 R 크림을 독점 공급받고 있습니다. 태양 백화점의 활토 담당자인 유소율 이사가 사장의 손녀입니다. 그리고 미혼입니다.”
“그럼 한 명인가?”
“전호 그룹은 경영권 문제로 내부 전쟁 중인데, 전호 호텔의 전상미 사장이 이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호 호텔도 활토와 R 크림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전상미 사장도 미혼인가?”
“예. 전임 회장의 늦둥이 막내딸이라 나이도 젊습니다.”
양중근 회장이 혀를 찼다.
“쓰읍. 역시 좋은 투자처에는 눈치 빠른 사람이 발부터 담근다니까. 이거 경쟁이 치열하겠어.”
“회장님. 혹시….”
“왜? 나도 손녀가 있잖아. 우리 수진이가 이상한 놈 만나는 것보다 얼마나 좋아?”
◈ ◈ ◈
선우현이 구하니를 만났다.
구하니가 반가워했다.
“요즘 너무 바쁘시죠? 만나기가 어려워요.”
“내가 원래 이렇게 바쁜 사람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건 그래요. 참 여유롭게 사셨는데.”
“그냥 잠깐 바쁜 겁니다.”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잠깐만 바쁘지 마시라고요.
선우현은 구하니와 식사를 했다.
식당은 예전에 그녀와 들렀던 특별한 바비큐 전문점이었다. 그곳은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예약 자체가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선우현은 예외였다. 대표 셰프가 아예 가게를 비워놓고 혼자 기다렸다.
선우현이 말했다.
“쉬시는 날인데 이래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셰프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도 여기서 책을 읽으며 쉬다가 중간에 불 조절만 했습니다.”
구하니가 말했다.
“어머. 셰프님. 다른 사람은 인기 연예인이라도 예약 잡기도 힘들었는데, 선우현 씨는 특별대우인 거예요?”
“하하. 그게….”
선우현이 가져온 종이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별거 아닌데, 활토와 R 크림입니다.”
“아이쿠! 뭘 이런 걸! 매번 안 가져오셔도 괜찮은데.”
“그럼 매번 가져오던 활토는 다음에는 빼고….”
“다음에도 꼭 부탁드립니다.”
셰프의 얼굴이 대놓고 밝아졌다.
“와이프가 덕분에 건강을 많이 회복했습니다.”
구하니가 물었다.
“어머. 사모님께서 아프세요?”
“최근에 아팠는데 지금은 좋아졌습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아시겠지만 활토는 약은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활토를 먹고 활력을 되찾으니까 많이 움직이게 되고, 그러면서 컨디션이 좋아지더군요. 그래서 약도 더 잘 듣고, 지금은 많이 나았습니다.”
“다행이네요.”
구하니가 옆에서 말했다.
“와. 그래서 가게 쉬는 날에 나오셨구나.”
“제가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먼저 연락드렸습니다.”
구하니가 물었다.
“그럼 R 크림은요?”
그건 선우현이 대답했다.
“사모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다니시라고 넣었….”
쉐프가 얼른 말했다.
“그건 제가 쓸 겁니다.”
“예?”
“제가 불을 계속 만지다 보니 얼굴과 손이 거칠어져서….”
“아….”
“우리 와이프는 피부가 워낙 고와서 화장품이 필요 없습니다.”
“아, 네. 사모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지만요.”
두 사람은 식사를 시작했다.
대표 셰프는 자리를 비워주었다.
선우현이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를 말했다.
“스래곤 주식을 매집할 때 빌린 돈, 갚으려고요.”
구하니는 그때 오십억 원을 빌려주었다. 그건 그때 구하니가 융자를 포함해 단시간에 동원할 수 있는 돈 전부였다.
“저는 안 급하니까 더 쓰셔도 돼요.”
“이제 이정도는 괜찮습니다.”
선우현이 구하니의 계좌로 돈을 이체했다. 이체 한도는 이미 넉넉히 늘려놓았다.
구하니가 스마트폰에 뜬 입금액을 확인했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배, 백억이 넘는데요?”
“오십억은 원금, 오십억은 이자입니다.”
“네?”
“나머지는 세금 내는 데 보태라고 준 겁니다. 그때 그 돈을 투자로 처리해도 세금이 꽤 나올 겁니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많이는 좀….”
“괜찮습니다. 요즘 돈을 조금 벌어서.”
구하니도 스래곤의 M 연료전지 기술에 관한 뉴스는 보았다. 그 전에도 스래곤에 관한 기사는 자주 찾아보았다.
그녀가 물었다.
“그 연료전지가 벌써 팔린 거예요? 하지만 기사에서는 연료전지 전기차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던데요?”
“계약금을 미리 넉넉히 꽂아넣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M 연료전지 기술은 스래곤이 아니라 선우현이 가지고 있다.
스래곤은 생산과 판매를 담당하고 JHC 테크도 특허나 라이센스 공급 등을 지원하지만, 기술 자체의 대가는 선우현에게 들어온다.
“계약금을 벌써 그렇게 많이 줘요? 왜요?”
“그래야 나중에M전지를 더 빨리,더 많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