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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27화 (227/281)

227. 출생의 비밀

박길성 회장이 옛날이야기를 계속했다.

“남녀가 일주일 동안 위험한 곳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연애감정이 생길 수 있다더라. 우리도 그랬지.”

그가 추억을 떠올렸다.

“나는 비바람을 뚫고 그 사람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해오고, 그 사람은 물에 빠진 나를 구해주었지. 섬에 들어올 때 가져온 라면이나 통조림은 아껴서 나눠 먹었어.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일주일을 버텼지. 그래서 그때는 그 감정이 계속될 줄 알았는데.”

박길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주일 뒤에 바다가 잔잔해지고 배가 섬으로 들어와 다시 육지로 나오고 나니까, 생각이 바뀌더라. 그 사람과의 미래가 안 그려졌어. 그 사람은 젊은데 나는 이미 자식이 둘이나 있고, 회사도 책임져야 했으니까.”

박길성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아니야. 사실 그건 다 핑계였지.”

박서윤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박길성이 말했다.

“나는 그 섬에서 나온 후에 그냥 서울로 올라왔어. 그 일주일은 한여름 밤의 꿈인 줄 알았지. 다 내 잘못이야.”

박서윤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러네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박길성이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내가 네 아빠다.”

“회장님. 아임 유어 파더는 영화 대사인데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이번에는 박서윤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엄마는요. 배우가 됐던 걸 후회한다고 하셨어요. 영화계에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더는 버틸 수 없어서 섬으로 갔대요. 그런데 그곳에서 참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대요.”

“그….”

“그래서 다시 살 힘을 얻고, 저를 얻었다고 하셨어요. 한여름 밤의 꿈. 그거 우리 엄마도 했던 말인데.”

“서윤아.”

“그래서 저는 배우를 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대신에 엄마가 자주 이야기하던 길성에서 일하고 싶었죠. 이런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 줄 모르고요.”

박길성이 처연한 얼굴로 사과했다.

“내가 잘못했다. 다 내 잘못이다.”

박서윤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했다.

“그런 것 같네요. 그래도 엄마는 회장님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제가 태어나서 정말 행복하다고 하셨어요.”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엄마 생각이 나네요. 저 나가봐도 될까요?”

“그, 그래.”

박서윤이 의자에서 일어나 박길성에게 꾸벅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박길성은 문이 닫힌 후에 크게 탄식했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나쁜 놈이야.”

최종훈과 비서실장이 서재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최종훈이 물었다.

“박 회장님. 박서윤 대리가 찬바람을 뿌리며 나가던데, 혹시….”

“다 이야기했다.”

“아….”

최종훈은 박서윤이 박길성의 딸이라는 걸 안다.

그런 상황을 모르는 비서실장이 물었다.

“회장님. 무슨 이야기를….”

“김 실장. 이제 자네도 알아야지.”

“예. 말씀하십시오.”

“서윤이가 내 딸이야.”

“아….”

“왜 별로 안 놀라나?”

비서실장이 대답했다.

“놀라긴 했습니다. 그래도 서윤 씨가 회장님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람이라는 건 짐작하고 있어서 덜 놀랐나 봅니다.”

“어떻게?”

“평소에 박서윤 대리를 대하시는 게 다른 직원과 다르셨잖습니까?”

“내가 그랬나?”

“예.”

박길성이 한숨을 내쉰 후에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앞으로는 김 실장이 신경 많이 써줘. 내 전처나 아들놈들이 허튼수작을 부리려 하면 나한테 보고하고. 내가 다 처리할 테니까.”

“회장님이 회사를 다시 장악하셨는데 감히 그럴 사람이 있겠습니까?”

박길성은 건강이 나쁠 때는 회사 경영에서 손을 거의 놓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박길성은 활토를 먹어가며 본사와 계열사를 뒤집어엎고 이사들이 다시 줄을 서게 만들었다.

비서실장이 말했다.

“혹시 문제가 생길 조짐이 보이면 제가 그쪽에 미리 언질을 주겠습니다. 그게 회장님도 편하실 겁니다.”

“그래. 김 실장은 그렇게 해. 나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최종훈이 옆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박 회장님. 박서윤 대리가 길성으로 계속 출근할까요?”

박길성도 그게 걱정이었다.

“나도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길성에는 안 오더라도 스래곤에는 계속 출근했으면 좋겠다. 거기서는 서윤이가 비서실장이니까.”

◈          ◈          ◈

박서윤이 옥탑방 옥상으로 올라왔다.

엠투가 반응했다.

“멍?”

선우현이 물었다.

“응? 오늘은 출근 안 했어요?”

“조퇴했어요.”

“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얼굴이 영 말이 아닌데….”

박서윤이 의자에 앉았다.

“우현 씨. 우리 술 마실래요?”

“나가서?”

“그냥, 여기 이 옥상에서요.”

“나리 시켜서 술 사 오라고 해야겠네요. 나리가 집에 있는지 확인부터 하고요.”

“아니요. 우리 둘이서 마시고 싶어요.”

“어…. 그러죠. 안주는 배달시키고, 술은 내가 쟁여놓은 게 있으니까 그거 마십시다. 전에 최종훈 사장님이 선물로 가져온 와인이….”

“더 독한 거 마시고 싶어요.”

“남미연 씨가 전에 맡겨놓고 간 꼬냑이 있으니까 그거 마시면 되겠네요.”

◈          ◈          ◈

남미연이 콧노래를 부르며 옥탑방 옥상으로 찾아갔다.

“우리 흰둥이는 좋아하는 갈비 사주고, 나는 선우현 씨랑 술이나….”

옥상 문은 열려 있었다. 그녀가 문을 열고 옥상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의 분위기는 그녀가 생각하던 것과 달랐다.

박서윤은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반면에 선우현은 조금 굳은 표정으로 술을 홀짝였다.

“뭐지? 이 분위기는?”

“술 마시는 분위기지요.”

남미연이 선우현에게 따졌다.

“지금 서윤 씨만 술을 잔뜩 먹인 거예요? 아니, 왜? 무슨 꿍꿍이로? 우현 씨 그렇게 안 봤는데!”

“같이 마셨는데 서윤 씨가 더 취한 겁니다. 일어나면 집으로 보낼 겁니다. 계단만 내려가면 집이니까.”

남미연이 박서윤의 어깨를 흔들었다.

“서윤 씨. 정신 좀 차려봐. 뭔데 이렇게 마셨어? 어? 울었어?”

박서윤이 남미연을 보더니 훌쩍였다.

“이모!”

“이, 이모라니! 언니라고 해!”

“우리 엄마가요. 이모가 나오는 영화 진짜 좋아했어요.”

“언니라니까? 어머니가 영화 좀 볼 줄 아시네.”

“그쵸? 히히히.”

남미연은 당황했다.

“와. 언제나 차분하던 서윤 씨가 도대체 왜 이렇게 취했을까? 무슨 일이야? 나쁜 놈들한테 납치됐을 때조차 당당했는데 도대체 왜….”

선우현이 말했다.

“박길성 회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네.”

- 그러게 말입니다.

남미연이 깜짝 놀라 물었다.

“뭐야? 서윤 씨 회사에서 잘렸어? 와. 너무하네! 그깟 길성 관둬버려! 어차피 스래곤 비서실장이 더 높잖아!”

박서윤이 풀린 눈으로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나 안 잘렸어요. 잘린 거 아니에요.”

“서윤 씨. 회사 그만두고 그냥 나랑 같이 배우 하자. 서윤 씨는 배우 하면 금방 뜰 거야. 배우지도 않은 연기를 그 정도로 하면 타고 난 거야.”

“안 해요. 난 배우는 안 할 거야. 절대로 안 해.”

박서윤이 결국 탁자 위에 엎어졌다.

“와. 진짜 만취했네. 얼마나 마신 거야?”

선우현이 대답했다.

“선물로 받은 술을 좀 꺼냈습니다. 꼬냑 한 병, 와인 한 병, 10년 숙성 소주도 한 병, 18년짜리 소주도 한 병.”

“사람을 죽일 생각인가? 내가 안 왔으면 어떻게 하려고?”

“말릴 수가 없어서.”

“술이 없다고 하면 되지!”

“서윤 씨는 내가 무슨 술을 선물 받았는지 대충 알고 있어서.”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데요?”

“집에 보내야지요.”

선우현이 신나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지금 어디냐?”

- 집인데요?

“옥상에 올라와서 서윤 씨 좀 집으로 데려가.”

- 네?

“많이 취해서 혼자 못 가.”

신나리가 한달음에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녀가 옥상 상황을 보더니 따졌다.

“와. 나만 빼놓고 술 마셨어!”

“넌 다음에 술 사줄게.”

“나중에라고 말한 사람들은 결국 안 사주던데.”

“일단 데려가.”

“나 혼자서는 언니 부축 못 해요.”

남미연이 나섰다.

“같이 가자.”

“앗! 귀하신 톱스타 배우님이 이런 험한 일을 어떻게….”

“서윤 씨 팔이나 잡아.”

“넹!”

두 사람이 박서윤을 부축해 아래로 내려갔다.

남미연이 뒤따라오는 선우현에게 말했다.

“이 건물에는 왜 엘리베이터가 없을까?”

“4층 건물이니까.”

두 사람은 박서윤을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선우현은 현관문이 닫히는 걸 보고 나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선우현이 옥상에 널려진 흔적을 치우며 말했다.

“안주라도 좀 더 먹지. 그걸 깡으로 다 들이붓나.”

- 그러게 말입니다.

“내일 속이 많이 쓰릴 거야.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되게 활토라도 하나 갈아줘야겠다.”

- 지금 상태로 활토 주스를 마실 수 있겠습니까?

“일어났을 때 눈앞에 있으면 마시겠지.”

선우현이 활토를 하나 따서 씻은 후에 믹서에 갈았다.

“하나로 모자라겠지?”

- 활토는 더 먹는다고 효과가 더 나오진 않습니다만?

“대신에 맛있잖아.”

선우현이 활토를 하나 더 갈았다. 그렇게 활토 두 개짜리 토마토 주스를 만들어 텀블러에 담는데 최종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최종훈이 물었다.

- 선우현 씨. 혹시 박서윤 대리가 집에 돌아왔습니까?

“술 마시고 자고 있습니다.”

- 아…. 예? 자고 있다는 걸 어떻게….

“나리와 남미연 씨가 집으로 데려갔으니까요. 술을 많이 마셨으니까 자겠죠.”

- 혹시 남미연 씨가 술을 마실 때….

“오늘 나만 아는 이야기가 하나 생겼는데, 최 사장님도 아는 이야기입니까?”

- 들으셨군요.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선우현이 불평했다.

“아니, 박 회장님은 사람이 왜 그런답니까?”

- 몰랐답니다.

“진짜입니까?”

- 예. 박 회장님도 최근에 알게 되어서, 그래서 은퇴 계획을 접고 활토를 먹으면서 회사를 다시 장악한 겁니다.

“왜요?”

- 그래야 회사에서 그 누구도 박서윤 대리를 공격하지 못할 테니까요. 박 회장님은 아들이 둘이나 있고, 외부에는 그 아들들의 어머니인 전처가 있으니까….

“전처? 설마 양다리?”

- 아! 그건 아닙니다! 박서윤 씨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이혼한 전처입니다.

“음…. 박 회장님에게 보내는 활토를 확 끊어버릴까 했는데, 계속 보내야겠군요.”

- 아! 박 회장님이 고마워할 겁니다.

“서윤 씨를 위해서입니다. 박 회장님이 서윤 씨를 보호하는 데 실패하면 나는 실망 많이 할 겁니다.”

- 그 문제라면 믿으셔도 좋습니다.

◈          ◈          ◈

박서윤은 이튿날 길성 비서실에 출근했다.

숙취는 없었다.

어제 선우현이 보내준 활토 주스는 잠이 깼을 때 마셨다. 덕분에 속도 쓰리지 않았고 숙취도 딱히 없었다.

그렇다고 컨디션이 완전히 정상인 건 아니었다.

그녀와 친한 비서실 과장이 물었다.

“박 대리. 무슨 일 있어? 오늘 좀 부어 보인다.”

“아니에요.”

“나 박 대리가 붓는 거 처음 봤어.”

“그냥 컨디션이 나쁜 거예요.”

비서실장이 다가왔다.

“박 대리. 잠깐 볼까?”

“네.”

비서실장이 박서윤을 데리고 휴게실로 갔다. 오전에 조금 바쁠 때라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서실장이 말했다.

“이제 출근하지 않는 건가 하고 걱정했는데….”

그녀가 차분하게 말했다.

“저 안 잘렸잖아요.”

“그렇지. 당연하지. 누가 감히 자르겠어. 다만, 박 대리는 스래곤에서는 비서실장이니까 혹시 앞으로는 그 일에만 집중하는 건 아닐까 하고….”

박서윤이 단호하게 말했다.

“길성에 계속 출근할 거예요. 제가 잘못한 거 없어요.”

“그럼. 당연하지. 박 대리는 잘못이 없어. 잘못은….”

박길성이 했다.

“커피 다 마셨는데요.”

“아. 가자. 일해야지. 일.”

◈          ◈          ◈

박길성이 비서실장의 보고를 받았다. 그가 은근히 기대하며 물었다.

“서윤이가 출근했다는 건, 나를 미워하는 건 아니란 뜻이겠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어? 왜 몰라?”

“박 대리는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고 잘리지도 않았으니까 출근한 거라고 말해서요. 그리고 화가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

“회장님. 이제 어떻게 하실 건지….”

박길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서윤이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서, 아침부터 회장실에서 나가지를 못하고 있어.”

“박 대리는 오후에 스래곤에 간답니다. 신형 연료전지 사업 때문에 처리할 일이 있다더군요.”

“그럼 점심은 서윤이가 나간 후에 먹을까?”

“저도 그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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