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기밀 프로젝트 II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 남미연이 건물 앞에 도착했습니다. 화가 많이 났나 봅니다.
선우현이 엠투의 몸에 손을 대고 말했다.
“엠투. 대기 모드를 잠깐 해제해야겠다. 남미연 씨가 쳐들어왔다.”
잠시 후에 배우 남미연이 옥상 출입문의 벨을 눌렀다. 문도 쾅쾅 두드렸다.
“우리 흰둥이 어디 있어! 당장 내놔!”
선우현이 리모컨으로 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남미연이 문을 활짝 열고 옥상으로 들어오며 따졌다.
“병원에 데려간다고 하고서 벌써 며칠이 지났는지 알아? 우리 흰둥이 내놔!”
엠투가 옥상에서 머리를 들었다.
“멍!”
“앗! 흰둥아!”
남미연이 활짝 웃으며 엠투에게 달려가 껴안으려고 했다.
선우현이 그녀의 앞을 막았다.
“잠깐!”
“왜!”
“흰둥이는 아직 안정이 필요합니다. 껴안으면 안 됩니다.”
“다친 거 아니라더니! 다 괜찮다더니!”
“갈비뼈 여러 대에 금이 갔습니다. 뼈가 붙을 때까지는 절대 안정이 필요합니다.”
남미연이 선우현의 뒤로 고개를 내밀어 엠투를 확인했다. 엠투는 엎드린 자세로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남미연이 말했다.
“그럼 깁스라도 해야죠!”
“갈비뼈는 깁스가 안 됩니다. 그래서 몸에 보호대를 채워놨잖습니까?”
개용 보호대를 몸통에 씌우긴 했다. 그런데 그건 뼈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갈라놓은 가죽을 가리기 위해서 씌웠다.
“알았어요. 쓰다듬기만 할게요.”
선우현이 옆으로 비켜주었다.
남미연이 엠투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흰둥아. 괜찮아서 진짜 다행이야.”
“멍.”
이 옥상에는 있는 화분에는 활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앗! 맞다! 흰둥이한테 활토를 먹여봐요! 그럼 더 빨리 나을 거야!”
“활토가 만병통치약인 줄 아나.”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활토 먹고 의사의 예상보다 빨리 나은 사람이 있다고요!”
활력 토마토를 키우려면 식물용 급속성장촉진제가 필요하다. 그 촉진제를 만들 때는 소량의 레드 포션이 들어간다.
선우현이 말했다.
“그런 건 내가 할 테니까 일단 나갑시다. 흰둥이는 쉬어야 합니다.”
“겨우 다시 만났는데!”
선우현도 그건 알지만 오래 만나게 할 수는 없다. 엠투는 지금 에너지 전환장치가 제거된 상태다. 이렇게 깨어 있으면 남아 있는 에너지가 계속 소모된다.
스래곤 연구소에서 에너지 전환장치를 고치지 못하면 에너지 잔량은 더 중요해진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낭비할 수 없다.
“엠투가 다 낫고 나면 실컷 봐요.”
“언제 다 낫는데!”
“며칠만 더 기다려요. 일주일쯤 후에는 건강해지는 게 목표니까.”
“너무 길어요! 내일 또 올 거야!”
“그럼 내일도 와서 괜찮은지만 보고 가던가.”
그녀가 미심쩍은 눈으로 선우현을 보았다.
“진짜 그래도 돼요?”
“진짜입니다. 그러니까 나갑시다. 난 옷 좀 갈아입고 나갈 테니까 밑에서 기다려요.”
선우현은 남미연의 등을 밀어 밖으로 내보냈다. 그런 후에 옥상 문을 닫고 엠투에게 다가갔다.
“엠투. 이제 다시 대기 모드로 들어가. 남미연 씨가 찾아오는 바람에 아까운 에너지만 더 썼네.”
“멍멍.”
“아니긴. 쉬어라. 지금 전환장치를 수리할 방법을 연구 중이니까.”
김수선이 말했다.
- 연구소에서 성공했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 ◈ ◈
스래곤 연구소 TF팀이 환성을 질렀다.
“으아아! 된다!”
“전기가 검출됐어!”
소식을 듣고 김정수 이사가 달려왔다.
“됐다고?”
TF팀의 명목상 팀장은 김정수다.
그런데 그가 맡은 건 이사의 권한으로 외부 문제를 해결하고 연구 예산과 장비를 몰아주는 일이다.
실질적인 프로젝트 리더는 최 팀장이 맡았다.
최 팀장이 신나서 대답했다.
“네!”
“연료로 뭘 썼는데?”
“에탄올입니다!”
“역시 연료전지는 알코올이지! 어디 있어? 직접 좀 보자!”
“바로 앞에 있잖습니까?”
“어?”
선우현이 준 장치는 크기가 손으로 쥘 수 있을 만큼 작았다. 그런데 지금 연구팀이 쓰는 건 전기밥솥만큼 커다랬다.
“잠깐. 이건 왜 이렇게 커?”
최 팀장이 설명했다.
“사장님이 주신 장치를 크게 복제해서 테스트했습니다. 그래야 연구하기 쉬우니까요. 이 테스트 버전으로 성공했습니다.”
“그럼 이제 이걸 작은 크기로 축소해서 적용하면 되겠네?”
“그렇죠. 그런데 소형화는 연구 개발을 더 해야 합니다.”
“연구 개발이라니?”
김정수가 손을 쥐는 시늉을 했다.
“사장님은 이미 작은 크기로 만들어서 주셨는데? 요만했는데?”
“저희가 사장님의 설명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작게는 못 만듭니다. 지금 이것도 크기를 많이 줄인 겁니다.”
김정수가 걱정했다.
“아니, 이래도 되나 싶은데….”
최 팀장이 말했다.
“우리 프로젝트의 원래 목표는 사장님이 주신 장치를 수리하는 거잖습니까? 그건 프로젝트 기간 안에 가능할 겁니다.”
김정수의 얼굴이 확 펴졌다.
“그래? 그거면 됐어!”
◈ ◈ ◈
선우현은 퇴근해서 집에 있다가 김정수의 전화를 받았다.
- 사장님! 대형화한 복제품으로 전기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선우현이 벌떡 일어났다.
“믿고 있었습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대형 복제품은 엠투의 몸에 설치할 수 없습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소형화 가능하겠습니까?”
- 그건 연구를 더 해야 알 수 있습니다. 대신에 사장님이 주신 장치는 프로젝트 마감일 전에 수리할 수 있습니다!
그게 프로젝트의 원래 목표였다.
“지금 가겠습니다!”
선우현이 전화를 끊고 엠투를 깨웠다.
“야. 엠투. 너 고칠 수 있을 것 같다.”
“멍?”
“기다려. 가서 확인하고 올 테니까.”
- 선장님. 빨리 가시죠. 저도 마음이 급합니다.
선우현이 바로 출발하려다 화분으로 갔다.
“잠깐만. 활토 몇 개 따가자.”
◈ ◈ ◈
선우현이 한밤중에 연구소에 도착했다.
“결과부터 보죠.”
TF팀의 팀원들이 대형 복제품에 에탄올을 넣었다. 복제품에는 다양한 제어장치와 계측장치가 붙어 있었다.
최 팀장이 연료전지 장치를 작동했다. 소음이나 진동은 없었다. 대신에 계측장치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보시다시피 에탄올에서 전기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연료전지의 출력이 상당히 높습니다.”
“에탄올이면 에틸알코올. 그러니까 술의 원료군요.”
“물론입니다.”
“엠투가 술을 좋아하긴 하지.”
“예?”
“아. 연료를 구하기 쉽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효율도 좋습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그럼 다른 건 어디까지 됩니까?”
“예?”
“다른 연료는 실험 안 해봤습니까?”
“아직….”
“에틸알코올만 하지 말고 메틸알코올도 해보시고.”
“아! 그러겠습니다.”
“다른 기름도 해보시고.”
“예? 다른 기름….”
“음식도 테스트해보시고.”
“으, 음식이요?”
엠투는 원래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에너지를 뽑아냈다.
“이것저것 다 시험해 보시죠. 뭐가 되는지.”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선우현이 상자를 열었다. 활토 일곱 개가 들어 있었다.
“오늘은 일단 퇴근하시죠. 피로를 풀고 맑은 정신으로 연구해야 결과가 좋을 겁니다. 이건 피곤하시면 하나씩 드시고요.”
거의 일주일 만에 퇴근하게 된 연구원들의 표정이 대놓고 밝아졌다.
“알겠습니다!”
◈ ◈ ◈
TF팀 연구원들은 이미 오전에 활토를 하나씩 먹었다. 맛이 좋으니 또 먹어도 되지만, 워낙 귀한 거라 기왕이면 다른 곳에 쓰고 싶었다.
연구원들은 활토를 먹지 않고 하나씩 잘 포장했다.
“드디어 퇴근이다.”
“나는 데이트하러 갈 겁니다!”
“데이트는 목욕부터 하고 가! 너 냄새 나!”
“지, 진짜요?”
연구원 중에는 활토를 가족에게 주려는 사람도 있었고 애인에게 주려는 사람도 있었다.
혼자 사는 여자 연구원은 다른 생각이 있었다.
‘활토 팩은 R 크림보다 훨씬 더 효과가 좋다던데. 워낙 귀해서 아무나 못 하는 거라던데. 그러니까 지난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일하면서 고생한 내 피부한테 줘야지.’
◈ ◈ ◈
선우현은 TF팀이 사무실로 사용한 연구소장실에 혼자 남았다.
“수선아. 지구연합의 기술을 지상에서 재현하는 게 가능하구나.”
- 이번엔 탐사대의 현장 지원기술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소형 금속 부품 제작기술이나 정찰형 드론 매순이는 현장 지원기술이다. 그건 처음부터 탐사대가 현장에서 만들거나 수리하기 쉽게 개발됐다. 그래서 선우현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엠투의 에너지 전환장치는 현장 지원기술이 아니다. 그건 지구연합에서 만든 장비다.
“아직은 알코올만 가능하다고 확인됐지만, 이게 어디냐.”
- 엠투가 술주정뱅이가 되겠군요.
◈ ◈ ◈
이튿날 밝은 얼굴로 출근한 TF팀은 다양한 원료를 준비해 연료전지용으로 테스트했다.
TF팀은 연구소 여기저기에서 사람을 모아 급조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조금 서먹한 사이였다.
그런데 지난 일주일 동안 모여서 먹고 자고 했더니 서로 말은 편하게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들은 장비를 새로 세팅하고 1차 테스트를 진행했다.
최 팀장은 테스트 결과를 보고 당황했다.
“알코올 종류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는데….”
김정수 이사도 이번에는 다른 일은 다 미뤄두고 TF팀과 같이 움직였다. 김정수도 결과를 보고 당황했다.
“왜 휘발유에서도 전기를 다이렉트로 뽑을 수 있지?”
“경유도 됩니다.”
“혹시 등유도 되나?”
“해봐야죠.”
팀원이 보고했다.
“최 팀장님. 식용유도 되는데요?”
“어? 뭐? 식용유라니?”
“구내식당에서 밥 먹을 때 참기름이 있길래 조금 얻어왔습니다. 오늘 메뉴 중에 비빔밥이 있어서요. 그걸로 테스트했습니다.”
“아니, 연료전지에 참기름이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되는데요.”
“빨리 다른 기름도 테스트해봐!”
◈ ◈ ◈
그날 오후에 연구소 TF팀이 선우현에게 보고했다.
“일단 알코올은 메틸알코올과 에틸알코올 둘 다 연료전지로 쓸 수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다른 건요?”
“다양한 기름을 확인해 봤습니다. 모든 기름이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기름에서….”
“음식도 됩니까?”
“예?”
“음식은 안 됩니까?”
선우현은 어제 음식도 연료로 쓸 수 있는지 테스트하라고 했다. 최 팀장은 그 말이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팀원이 오늘 구내식당에서 얻어온 참기름에서 전기를 뽑는 데 성공했다. 그걸 보고 즉시 추가 테스트를 진행했다.
‘하마터면 사장님의 질문에 대답 못 할 뻔했네.’
“오늘은 첫날이라 일단 구내식당에서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음식으로 실험했습니다.”
“결과는요?”
“음식에 있는 기름 성분도 연료전지로 쓸 수 있었습니다. 모든 기름이 다 되는 건 아니고 된다 해도 효율이 제각각이지만, 괜찮은 데이터가 나온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돼지비계에서 추출한 기름의 효율이 꽤 괜찮았습니다.”
“그러니까 음식 자체가 아니라, 거기 포함된 기름기에만 반응한다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원래 엠투의 에너지 전환장치는 음식은 물론이고 음식이 아닌 것에서까지 직접 다양한 에너지를 뽑을 수 있었습니다. 기름만 가능하다면 심하게 다운그레이드된 겁니다.
“그렇긴 해. 연구소에서 복제해서 만든 건 성능이 좀 아쉽네.”
-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 기름을 먹이면 에너지 전환장치에서 알아서 변환해서 쓸 테니까.”
- 그건 그렇습니다.
“엠투한테 삼겹살 자주 먹여야겠다.”
선우현이 최 팀장에게 물었다.
“그럼 모든 기름이 다 되는 건 아니라는 거군요.”
“예. 그렇지만 휘발유와 경유, 등유는 효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너무 높아서 당황하는 중입니다.”
“효율이 어느 정도입니까?”
“더 실험해봐야 알겠지만, 확실한 건.”
최 팀장이 침을 꼴깍 삼켰다. TF팀은 이 데이터를 확인하고 나서 경악했다.
“엔진을 돌려서 연료를 태우는 것보다 에너지 효율이 훨씬 더 높습니다.”
“어….”
지금 여기에는 TF팀이 다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며 선우현의 반응을 기다렸다.
선우현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 모르셨잖습니까?
“나는 처음부터 휘발유를 사용하는 연료전지를 연구한 겁니다.”
김정수 이사가 감탄했다.
“역시 전기차를 생각하고 연료전지를 만드신 거군요!”
“그렇죠.”
최 팀장과 연구원들도 한마디씩 했다.
“배터리 대신에 우리 연료전지가 들어가는 전기차라니!”
“어…. 그렇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면 충전이 끝나는 그런 전기차!”
“그렇구나…. 아니,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만든 겁니다!”
“휘발유를 쓰는데 매연이 안 나오는 차!”
“어? 매연이 없….”
선우현이 즉시 창가로 가서 두 팔을 하늘로 뻗으며 외쳤다.
“푸른 하늘을 위하여!”
연구원들이 신나서 같이 팔을 창밖 하늘로 뻗으며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 푸른 하늘!”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엠투를 고치려고 수리를 맡기신 거잖습니까? 연료전지 전기차나 푸른 하늘이 아니라요.
“뭐 어때. 지금부터 하면 되지.”
- 역시 뻔뻔하십니다.
“수선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을 먹으면 우주왕복선이 꿈이 아니게 된다?”
-앗!푸른 하늘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