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기밀 프로젝트
이튿날 선우현이 스래곤 연구소를 방문해 연구소장실을 둘러보았다.
김정수 이사가 호출을 받고 소장실로 들어왔다.
“사장님. 저를 본사로 부르시면 되는데 왜 굳이 여기까지….”
예전 연구소장은 전임 사장의 최측근으로 연구비 횡령에 깊게 관여했다. 그래서 이사진을 날릴 때 전임 소장도 날아갔다.
이 소장실은 선우현이 스래곤의 사장이 된 후로는 비어 있는 상태였다.
선우현이 연구소장실을 보며 말했다.
“와. 넓다. 먼지는 많지만.”
“그동안 아무도 안 쓰던 공간이라….”
“이 공간을 놀리지 말고 당분간 TF팀 사무실로 쓰면 되겠군요. 나도 연구소에 오면 여기를 쓰고요.”
“예? 아!”
김정수 이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사장님께서 정찰형 매순이 양산 프로젝트를 도와주시려고….”
“그건 아니고요.”
“역시 아니군요.”
“여기를 사무실로 쓰는 건 연구소장이 임명될 때까지이지만.”
김정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씀은 혹시 새 연구소장을 조만간 영입….”
“이사진은 어지간하면 내부 승진을 하는 중입니다만? 연구소도 마찬가지죠. 아실 텐데?”
“그럼요. 알지요.”
그 방침 덕분에 김정수는 고참 팀장에서 연구소 이사가 되었다.
“그럼 오늘은 왜….”
최 팀장이 숨을 약간 몰아쉬며 연구소장실에 들어왔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최 팀장님도 오셨네요. 다 모였으니 이제 시작합시다.”
연구소장의 방에는 회의용 대형 테이블이 있었다.
선우현이 테이블 위에 상자를 올려놓았다.
“미리 말하는데, 이건 기밀 프로젝트입니다.”
매순이 프로젝트 때는 통상적인 보안 관리는 했어도 기밀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김정수가 즉시 대답했다.
“정보가 새지 않게 철저히 관리하겠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원은 두 분이 고르셔야 합니다.”
“최고의 실력자를 선발하겠습니다.”
“실력도 중요한데 더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선우현이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이 명단 안에서 골라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그 명단을 확인했다. 최 팀장이 물었다.
“사장님. 혹시 이 명단에는 없는데 프로젝트에 딱 맞는 인재가 있다면….”
“원래는 안 되는데, 꼭 필요하면 후보에 올려봐요. 괜찮은지 확인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선우현이 상자에 손을 대며 말했다.
“내가 뭘 좀 개발하다가 망가뜨렸습니다. 이걸 고치는 게 이 기밀 프로젝트의 목표입니다.”
김정수 이사는 기밀이라는 말에 긴장했다가, 수리만 하면 된다는 말에 마음을 놓고 큰소리쳤다.
“맡겨만 주십시오. 확실히 고쳐놓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일단 물건을 보고 하시죠.”
선우현이 상자를 열었다. 엠투의 내부 에너지 전환장치에서 총에 맞아 망가진 부분이 나왔다.
선우현은 망가진 부분과 그 주변만 분해해서 가져왔다.
에너지 전환장치 본체는 가져올 수 없었다. 본체를 가져오면 지구의 기술로 만들었다고 말해도 안 믿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지금 떼어온 부분만 해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어떻게든 둘러댈 수 있다.
최 팀장이 그 장치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계 부품처럼 보이는데…. 사장님. 이게 어떤 기능을 하는 건지 말씀해 주시면 수리에 도움이 될 겁니다.”
선우현이 대답했다.
“에너지 전환장치입니다.”
“예?”
“물질에서 에너지를 직접 뽑아내는 장치요. 그걸 만들어보는 중입니다.”
김정수와 최 팀장이 눈을 껌뻑였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다 최 팀장이 말했다.
“아! 혹시 연료전지….”
“아!”
“네?”
- 연료전지가 에너지 전환장치보다 더 자연스럽군요.
“여러분은 TF팀을 만들어서, 연료전지 핵심 부품인 이것을 수리해야 합니다. 그게 이 기밀 프로젝트의 목적입니다.”
◈ ◈ ◈
선우현이 연구소를 나간 후에 김정수 이사가 최 팀장에게 물었다.
“고칠 수 있겠어?”
“모르겠습니다.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도 모르는 데다가, 많이 망가져 있잖습니까?”
“연료전지라며. 세상에 없는 신기술도 아닌데 수리 정도는 가능해야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라서요. 그리고 사장님이 촉매의 성분이나 연료로 뭘 쓰는지도 가르쳐주지 않았잖습니까? 이쪽 전문가들을 모아서 연구해 봐야죠.”
김정수가 말했다.
“이거 기밀 프로젝트야. 그러니까 사장님이 주신 명단에 있는 사람 중에서 모아야 하는 거 알지?”
“당연히 압니다. 그런데 김 이사님. 사장님이 이 명단을 작성한 근거가 뭘까요?”
김정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모르겠다. 인맥, 학연, 지연? 아니면 검증팀이라도 만들어서 내사를 하셨나?”
최 팀장이 은근히 기대했다.
“이러면 우리도 사장님의 명단에 들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습니까?”
“어디 그냥 들어 있기만 하냐? 우리보고 사람을 뽑아서 쓰라고 하셨잖아. 우리가 이 명단보다 위에 있다는 뜻이지.”
“저번에 나사 우주왕복선 사고 예측 프로젝트 때 제가 사장님께 잘 보인 걸까요?”
“그럴 수도 있지. 어쨌든 최 팀장. 이거 꼭 성공하자. 그럼 우리 앞에 고속도로가 깔릴 수도 있어.”
“기밀도 반드시 유지하면서요.”
“당연하지. 연구 정보가 새어나가면 우리는 그날로 찍히는 거야.”
◈ ◈ ◈
김정수 이사와 최 팀장은 선우현이 준 명단에서 이번 일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선별했다.
일단 전문분야가 연구 목적과 맞아야 했다.
“연료전지 쪽으로 잘 아는 사람은 꼭 있어야겠죠?”
“있나?”
“명단에는 화학공학 전공은 있네요.”
“금속 공학은? 여기 사용된 재료도 분석해야 하잖아.”
“그쪽은 여러 명 있습니다. 우리 회사 제품에 금속이 많이 사용되니까요.”
“너무 많은 사람을 뽑으면 기밀 유지가 어렵겠지?”
“그러니까 소수정예로 잘 뽑아야죠.”
그렇게 두 사람은 TF팀 멤버로 네 사람을 더 뽑았다.
김정수와 최 팀장은 그 네 명을 다 만나본 후에 TF팀 멤버로 넣었다. 그들에게는 뭘 연구해야 하는지는 아직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 전에 선우현의 결재가 필요했다.
선우현은 두 사람이 가져온 명단을 확인했다.
“그런데 여기 이 두 명은 후보입니까?”
“예. 사장님께서 주신 명단에는 없지만, 이 프로젝트에 꼭 필요한 연료전지 전문가가 회사에 두 명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후보로 올렸습니다.”
선우현은 창가에 서서 명단을 보았다.
“수선아. 어때?”
김수선이 말했다.
- 첫 번째 사람은 안 됩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입이 가볍습니다. 두 번째는 명단을 만들 때 최종 후보군에는 포함됐던 사람입니다.
“제외한 이유는?”
- 제가 모든 임직원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은 눈에 보이는 문제는 없지만 관찰한 시간이 짧아 제외했습니다.
선우현이 김정수에게 말했다.
“꼭 필요하면 두 번째 사람만 추가하시죠. 기밀 관리는 철저히 하시고.”
김정수가 장담했다.
“제가 확실히 확답받겠습니다.”
◈ ◈ ◈
TF가 만들어졌다. 김정수 이사가 TF 팀장을, 최 팀장이 TF의 실무를 담당할 부팀장을 맡았다.
김정수 이사가 말했다.
“사장님이 주신 시간은 일주일입니다. 그 안에 성공해야 합니다.”
연료전지 전문가인 팀원이 물었다.
“어떤 프로젝트인지 아직 못 들었습니다.”
“사장님이 직접 연구하시던 신기술이 있습니다.”
연구소에서는 선우현을 천재 과학자라고 생각한다. 천재가 만든 신기술이라는 말에 다들 긴장했다. 눈을 반짝이는 사람도 있었다.
김정수가 에너지 전환장치의 망가진 파트를 보여주었다.
“이 장비는 사장님이 연구하면서 만드신 것입니다. 연구 도중에 손상이 생겼는데, 우리 능력으로 수리하면서 발전시켜보라고 하셨습니다.”
선우현이 말한 건 수리까지다. 그런데 김정수는 기왕이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길 원했다.
“그리고 이건 사장님께서 일을 열심히 하라고 주신 건데.”
김정수가 상자를 열었다. 활력 토마토 일곱 개가 들어 있었다.
연구원들은 깜짝 놀랐다.
“어? 그건?”
“활토?”
선우현은 매순이 프로젝트 때 참가자들에게 포상으로 활토와 R 크림을 선물했다. 그래서 연구원들은 활토가 뭔지 알고 있었다.
김정수가 단서를 달았다.
“집에 가져가면 안 되고, 여기서 먹어야 합니다.”
그 말에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김정수가 추가 조건을 말했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활토를 따로 챙겨주신다고 했다.”
“와…. 꼭 성공해야겠네요.”
“그리고 활토는 매일 하나씩 챙겨주실 겁니다.”
“예? 이 귀한 걸요?”
김정수가 살짝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이게 좋아할 일인지 모르겠군요. 다들 회사에 접이식 침대가 들어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잖습니까? 이 활토는 접이식 침대 같은 겁니다.”
퇴근을 할 수 있다면 회사에 침대가 필요할 리 없다.
“이 귀한 활토를 우리는 매일 먹을 겁니다. 그 말은….”
팀원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잠 잘 시간도 아껴가면서 일해야 하는군요.”
“그렇지요.”
◈ ◈ ◈
TF가 만들어진 후에 최 팀장이 집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서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
- 그걸 갑자기 말하면 난 어떻게 해?
“오늘 갑자기 결정 났어.”
- 아니, 그 회사는 왜 그래? 요즘 회사 상황이 좋아진다 싶더니 갑자기 직원을 쥐어짜? 너무한 거 아니야? 나 혼자 애들을 어떻게 케어하라고! 나는 뭐 직장 안 다니니?
“그래도 프로젝트가 끝나면, 사장님이 활토랑 R 크림을 좀 챙겨주신다고….”
- 잠깐! 지금 R 크림이라고 했어?
“어. 성공하면 R 크림을 세 개쯤은 받….”
- 꺅! 세 개나?
“왜 비명을 질러?”
최 팀장의 아내 목소리가 나긋하게 바뀌었다.
- 자기야. 일주일 야근한다고 안 죽지?
“활토를 매일 먹으면서 할 거니까 건강에는 문제가 없….”
- 어머. 사장님이 진짜 통이 크시다. 그 귀한 걸 매일? 일주일만 야근하면 돼? 그러면 해야지. 당연히 해야지. 애들은 내가 일주일 동안 엄마 찬스를 써서라도 케어할게.
“이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국물도 없긴 한데.”
- 실패하면 집에 들어와도 국물이 없을 거야. 꼭 성공해.
“어?”
- 성공해서 내 R 크림 세 개 꼭 받아오고.
“어어? 네 거라니?”
- R 크림으로 탑을 쌓는 사치를 부려봐야지. 나 미리 자랑할 거니까, 실패하면 정말 국물도 없다?
◈ ◈ ◈
선우현은 매일 출근했다. 연구소도 자주 들렀다.
연구소장실은 TF팀이 사무실로 사용했다.
선우현이 창가에 서서 보고를 들었다. 화이트보드도 창문 근처에 하나 가져다 놓았다.
최 팀장이 보고했다.
“사장님이 이 부분을 만드실 때 사용한 금속과 기타 다양한 소재의 성분비는 알아냈습니다.”
“잘했네요. 그럼 그대로 새로 만들면 됩니까?”
선우현은 몰라서 질문한 건데, 최 팀장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우리 실력을 테스트하시는구나.’
“아닙니다. 재료를 단순히 녹여서 섞은 게 아니라는 건 알아냈습니다. 현재 구성 성분만이 아니라 복합 소재의 형태와 배치, 그리고 합금의 분자 배열까지 분석하는 중입니다.”
“잘 됩니까?”
“죄송합니다. 아직 연구를 더 해 봐야….”
김수선은 지원위성에서 참고할만한 자료를 계속 찾고 있다.
- 선장님. 아까 내부 구조를 설명한 문서를 하나 찾아냈는데,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수선아. 단순하면서 자세히 설명해.”
-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선우현이 김수선의 설명을 들으며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렸다. 에너지 전환장치에 사용된 소재의 복합 분자구조에 관한 그림이었다.
선우현이 그림을 대충 그린 후에 물었다.
“이게 뭔지 알겠습니까?”
“그….”
연구소장실에는 TF 팀원이 모두 있었다. 뒷자리에 있던 팀원이 손을 들었다.
“어?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이거와 똑같습니까?”
“아니요. 똑같지는 않은데, 소재를 그런 식으로 배열하는 방법이 있다는 건 압니다.”
김수선이 얼른 말했다.
- 비슷한 게 있으면 일단 갖다 써 보시죠!
“그럼 그건 어디에 씁니까?”
“딱히 쓸 곳이 없어서 사용되는 곳은 없습니다. 만들 수 있다는 것만 들었습니다.”
“이것과 차이가 난다고 했지요? 그래서 쓸 곳이 없는 겁니다. 이렇게 만들어봐요.”
“예? 그 그림을….”
선우현이 화이트보드에 그린 그림은 누가 봐도 대충 그린 것이다. 선우현도 김수선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린 것이라 더 자세하게 묘사할 수가 없었다.
“이건 설명을 위해 대충 그린 겁니다. 똑같이 하라는 건 아닙니다. 최대한 이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서 테스트해봐요.”
“네!”
선우현은 하는 김에 김수선이 찾은 참고 자료의 내용도 말로 설명했다.
그는 매순이 프로젝트 때 참고 자료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다가 거기 적힌 이론 이름 때문에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 그건 이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론의 이름은 빼고 참고 자료의 내용만 적당히 말했다.
연구원들이 질문을 위해 손을 들었다.
선우현이 말했다.
“궁금한 건 스스로 알아내요. 난 임원 회의가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
선우현이 나간 후에 최 팀장이 말했다.
“다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
팀원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최 팀장이 말했다.
“천재들은 연구는 잘해도 가르치는 건 못한다더니….”
“본인한테는 너무나 당연한 거라서, 왜 이해를 못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던데요.”
“나도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잘했는데, 내가 못하는 쪽이 될 줄은 몰랐네.”
“그래도 사장님이 설명해주신 걸 연구하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최 팀장이 말했다.
“더노력해봅시다.프로젝트 기한은 이제5일 남았습니다.그 안에 수리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