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고대 전설
선우현은 옥탑방에서 지원위성의 김수선과 함께 엠투의 에너지 전환장치 수리법을 조사했다. 하지만 그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선우현은 옥상은 당분간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고 일단 스래곤에 출근했다.
비서실장 박서윤도 오늘은 스래곤으로 출근했다.
선우현이 물었다.
“서윤 씨는 그 사건으로 고생했으니까 쉬어도 되는데 왜 굳이 나옵니까?”
“우현 씨도 나오잖아요.”
“난 서윤 씨를 구하는 일이 힘들지 않았으니까요.”
박서윤이 살짝 웃었다.
“이미 길성에는 출근하고 있어요.”
“박 회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네. 휴가라도 좀 줘야지 말이야.”
“회장님은 좀 쉬라고 하셨는데 제가 괜찮다고 했어요.”
“그래도…. 아니다. 나도 지금 서윤 씨 도움이 필요하니까 출근 잘했습니다.”
박서윤이 살짝 걱정하며 물었다.
“그런데 엠투는 괜찮아요?”
박서윤은 엠투가 동물병원에 있다고 알고 있다.
“치료받는 중입니다. 다 나으면 데려올 겁니다.”
“빨리 봤으면 좋겠네요. 그날 엠투가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정말 용감하게 싸웠거든요.”
“남미연 씨를 위해서였겠지요.”
“엠투는 저한테 다가오는 놈도 막아줬어요. 물론 남미연 씨가 더 우선이었지만요.”
◈ ◈ ◈
배우 남미연이 선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흰둥이 어디 있어요!”
- 치료받는 중입니다.
“어딘데! 내가 문병 갈 거야!”
- 개한테 문병이라니!
“갈 거야!”
- 다 나으면 보러와요. 지금은 안정이 최우선이니까.
남미연이 걱정했다.
“별로 안 다쳤다더니 왜 안정이 필요해요?”
- 정신적인 충격?
“역시 흰둥이한테는 내가 필요해!”
- 아닐 텐데?
남미연이 당당하게 주장했다.
“우리 흰둥이가 환생해서 나를 찾아왔잖아요! 나를 보면 정신적인 충격쯤은 금방 나을 거야!”
- 환생 아니라고요.
◈ ◈ ◈
선우현은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으로 가던 중이다. 그가 전화를 끊은 후에 말했다.
“엠투를 수리할 때까지 계속 괴롭히겠네.”
- 차라리 번호를 차단하십시오. 남미연이 하루에 열 번씩 독촉전화를 하잖습니까?
“차단하면 그 성격에 가만히 있겠냐? 옥탑방으로 쳐들어오겠지. 지금은 엠투가 다른 곳에 있는 줄 알고 안 오는 거야.”
- 전화를 받기는 해야겠군요.
선우현이 구내식당에서 음식을 받으며 말했다.
“회사 구내식당을 갈아엎었더니 밥이 맛있는 게 나온다. 역시 돈을 써야 밥이 맛있어져.”
- 좋으시겠습니다.
선우현이 빈자리를 찾아 돌아섰다. 신나리가 자리에 앉는 모습이 보였다.
“나리도 출근했네.”
선우현이 신나리의 앞자리에 앉았다.
“너는 멘탈 괜찮냐? 알바 나와도 돼?”
신나리가 밥을 먹으며 고개를 들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어? 앗! 바지사장 오빠!”
“야. 호칭이 왜 그래? 바지사장이라니?”
신나리가 씩 웃었다.
“에이. 그날 다 들었어요.”
“뭘?”
“맨날 놀면서 뭐 해서 먹고사나 했더니 바지사장이라면서요?”
“그건 그놈 주장이고.”
“난 그날 옥상 오빠가 싸우는 거 보고 킬러 같은 거 하는 줄 알았네. 가끔 누군가 쓱싹 하고 피 묻은 돈으로 놀고먹는 그런 거.”
“차라리 바지사장이라고 해라.”
“네. 바지 오빠.”
덕구파 천 실장이 선우현과 싸우면서 했던 바지사장이라는 말은 신나리도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직도 선우현이 스래곤의 바지사장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옥상 오빠는 싸움을 왜 그렇게 잘해요?”
“전쟁터에서 오래 굴렀거든.”
“우리나라에 전쟁 났어요?”
“응?”
“아. 농담이구나.”
“뭐, 그렇지.”
“그런데 그날 보니까 영어를 되게 잘하던데. 설마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공부 잘했어요?”
“너보단 잘했겠지?”
그들이 있는 탁자에 인턴 알바 윤하늘이 앉았다.
“와. 여기 자리가 비어 있네.”
그가 친구 성준호에게 손짓했다.
“준호야. 여기 앉아. 나리도 있어.”
성준호가 한쪽에서 사색이 돼서 손을 옆으로 흔들었다.
윤하늘이 고개를 갸웃했다.
“쟤 왜 저래?”
윤하늘이 선우현을 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직원이시죠?”
“뭐, 그렇죠.”
“나리랑 잘 아시나 봐요?”
신나리가 설명했다.
“내가 사는 건물 옥탑방에 사는 오빠야.”
윤하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게 아는 사이구나. 그럼 나리는 알바 정보를 이분한테 들은 거야?”
“아니거든? 난 인터넷 보고 지원했거든? 그럼 하늘이 선배는 어떻게 여기 지원했는데? 준호 선배가 알려줬어?”
윤하늘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이런 알바가 있다는 걸 준호가 알려준 건 맞는데, 나는 내가 원해서 스래곤에 온 거야. 그때 다른 알바를 할 수도 있었거든.”
“준호 선배랑 친해서?”
“그게 아니라.”
윤하늘이 손가락을 위로 올려 하늘을 가리켰다.
“나는 우주에 관심이 많아. 스래곤은 항공우주 업계의 회사잖아.”
“우주? 그러니까 안드로메다 같은 거?”
“아니. 지구의 위성궤도.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윤하늘은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나서 설명했다.
“천공의 주시자 전설을 알아?”
“그게 뭔데?”
“고대 동아시아의 전설이야. 비슷한 것으로 고대 유럽에는 아이 오브 비홀더의 전설이 있어. 난 그 전설들이 같은 대상을 말한다고 봐.”
신나리는 밥을 먹으며 대충 들었다.
“응. 전설의 고향은 우주에 있었구나.”
“하늘 높은 곳,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인공위성 궤도 정도 되는 높이에서 지상을 보는 존재가 있다는 전설이지.”
“관음증인가? 변태?”
“응?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좀 더 신비한 이야기라고.”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그거 우리 이야기인데요?
“주로 네 이야기지.”
윤하늘이 말했다.
“가끔 오파츠도 발견돼.”
신나리가 그 말에는 반응했다.
“보석?”
“아니. 오팔 말고 오파츠. 그 시대 기술력으로는 만들 수 없는 유물을 오파츠라고 불러.”
“어머. 과학자들이 인정한 거야?”
윤하늘이 손가락을 살짝 흔들었다.
“물론 대부분의 오파츠는 그 시대의 기술로도 만들 수 있다고 밝혀지긴 했어. 현대 기술로 가짜를 만든 것도 있고.”
신나리가 피식 웃었다.
“에이. 난 또. 그럼 그냥 신기한 유물인 거네.”
“나는 원형이 따로 있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걸 보고 흉내 내서 만든 거라고 봐. 형태는 당시 기술로 비슷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유물에 사용된 개념은 그 당시에 존재할 수 없었으니까.”
선우현이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유물, 제대로 작동하나?”
“고대에 만든 거라서 대부분 형태만 좀 남아 있어요. 그런데 작동하는 것도 드물지만 있어요.”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 지상에 엠투의 에너지 전환장치 대체품이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알아.”
선우현이 인턴 알바 윤하늘을 보며 말했다.
“당시에는 기술 격차가 커서 흉내만 내는 정도였지.”
“그렇죠. 그래도 만약 지금 기술로 다시 만든다면, 제대로 만들 수 있을 걸요?”
“음….”
선우현이 궁리했다.
“수선아. 아직도 지구연합과 현재 지구는 기술 격차가 커.”
- 당연합니다.
“그래도 오천 년 동안 기술이 많이 발전했단 말이야.”
- 그중에는 옛날에 현지협력자를 통해 흘러나간 것도 조금 있습니다. 기초적인 기술이긴 합니다만.
“이제는 지구의 기술이 우주로 진출할 정도로 발전했으니까, 만들지는 못해도 수리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잖아?”
- 선장님. 엠투의 에너지 전환장치 말입니까? 그건 좀 어렵지 않을까요?
“수리를 시도해볼 수는 있지. 내 손으로 할 수 없으면 연구소의 엔지니어들에게 맡겨서 말이야.”
김수선이 우려했다.
- 엠투의 부품을 지구의 엔지니어들에게 보여주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내가 사장이잖아. 내 힘으로 문제 안 생길 방법을 찾아야지. 그게 우리 둘이 고민하는 것보다 성공확률이 높다.”
김수선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 그동안 제가 스래곤 연구소 임직원을 관찰한 보람이 있군요. 믿을만한 사람들을 선별하겠습니다.
“나는 일찍 퇴근해서 에너지 전환장치를 다시 확인해야겠다.”
신나리가 물었다.
“옥상 오빠도 이런 이야기 좋아하는구나. 되게 심각하게 듣네. 웅얼거리기도 하고.”
“밥 먹자. 나 오늘 바쁘다.”
“와…. 회사에 오니까 옥상 오빠가 바쁘다는 말을 다 듣는다.”
◈ ◈ ◈
그날 오후에 홍보팀 직원 세 명이 모여서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신나리 씨가 사장님하고도 아는 사이였어?”
“그렇다더라. 신나리 씨가 밥 먹는데 사장님이 거기 앉았대. 그런데 두 사람이 잘 아는 사이처럼 편하게 이야기했대.”
“신나리 씨는 진짜 정체가 뭐야?”
“학교를 계속 다니려면 돈이 필요해서 알바를 한다고 들었는데, 인맥은 비서실장님에 톱스타 남미연에 이제 사장님까지…. 진짜 짐작이 안 간다.”
녹차를 마시던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사장님을 바지사장이라고 불렀다던데요? 진짜일까요?”
커피를 마시던 직원이 피식 웃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사장님이 우리 회사 최대주주인데 어떻게 바지일 수가 있냐? 심지어 우호지분을 전부 다 합쳐도 실제 주식 보유량은 사장님이 압도적으로 많아.”
새로운 정보도 나왔다.
“맞아. 거기다 요즘도 주식을 계속 매집하실걸? JHC 테크와 길성에서도 사장님한테 지분을 좋은 값에 꽤 넘겼다더라. 어쩌면 이미 사장님 단독으로 과반을 확보했을 수도 있다.”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신나리 씨는 왜 실세 사장님을 바지사장이라고 부른 걸까요?”
“그러게. 물어볼까?”
다른 직원이 얼른 말렸다.
“사장님의 개인정보를? 그거 절대 금지인 거 몰라? 난 우리 회사 오래 다니고 싶은데?”
“저도요. 요즘 밥도 맛있어지고 분위기도 좋아지고 회사도 점점 잘나가는 게 보이잖아요.”
물어볼까 했던 직원이 머쓱해 했다.
“진짜로 물어볼 생각은 아니었어. 사장님 개인정보는 아는 사람이 없잖아. 기밀이니까 그렇겠지.”
다른 직원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장님이 펜트하우스에 사신다는 소문은 있던데….”
“부럽다. 펜트하우스.”
◈ ◈ ◈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에서 엠투의 에너지 전환장치를 관찰했다.
엠투는 잔여 에너지로 버티고 있다. 평소에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대기 모드로 잠들어 있다.
그러다 지금처럼 소통이 필요할 때는 잠깐 깨어났다. 그럴 때도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엠투의 자가 수리장치는 에너지와 자원을 대량으로 소모한다. 거기 쓸 에너지가 없어서 내부 수리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선우현이 디지털카메라로 에너지 전환장치를 촬영했다. 그 카메라는 옥상 모니터에 연결되어 있었다.
선우현이 화면을 짚었다.
“총에 맞아 파손된 부분은 여기야.”
- 거기가 해당 모듈에서 에너지를 전환하는 핵심 파트입니다.
“이 전환장치를 통째로 가져가면 연구원들은 이상하다고 느낄 거야. 이건 지구연합에서 만든 기계장치니까.”
선우현이 화면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망가진 이 부분만 따로 떼어가서 고쳐보라고 하자.”
- 그 부품은 어디서 났다고 해명하시게요?
“내가 연구해서 만들었다고 해야지.”
- 믿을까요?
“사장 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을 사람을 골라야지.”
- 제가 연구원 중에 후보를 선정했습니다. 그중에서 골라보시죠.
“그중에 김정수 이사도 있어?”
- 우선순위는 낮지만 있습니다.
“김정수 이사는 설사 의심이 들더라도 그냥 넘어갈 사람이지.”
- 맞습니다.
“그러면 사장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의심 없이 따를 사람은?”
- 연구소 최 팀장을 추천합니다. 저번에 R 크림을 따로 챙겨주셨을 때 무척 좋아했습니다.
“잘됐네.”
김수선은 사람들의 속마음까지 알지는 못한다. 선우현과 만난 후에 보이는 표정이나 회사 밖에서의 분위기로 호감도를 추측할 뿐이다.
“이번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R 크림과 활토를 넉넉하게 챙겨줘야겠다. 혹시 의심이 들더라도 그거 먹고 그냥 넘어가게.”
- 에너지에 여유가 생겨 레드 포션 복원량이 증가했습니다. 이럴 때 팍팍 쓰십시오.
“엠투를 위해서.”
- 엠투를 위해서.
선우현이 공구들을 확인했다.
“연구소로 가져가려면 손상된 부분만 분해해야지. 수선아.”
- 제가 찾을 수 있는 자료는 다 확인했습니다. 조심해서 작업하면 그 파트만 떼어낼 수 있을 겁니다.
선우현이 공구를 엠투의 내부에 집어넣었다.
“분해를 시작하자.”
- 선장님? 손을 왜 떠십니까? 실수하면 엠투가 심각한 손상을 입습니다.
“멍?”
“야.흔들린 거야.떤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