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집도
선우현은 세 사람과 함께 사건 현장인 창고로 돌아갔다.
남미연이 가면서 다짐했다.
“우리 흰둥이는 내가 데려가야지.”
“안 된다니까.”
“나를 지키다가 다쳤잖아요.”
“세 사람 다 지키려다 다친 겁니다.”
신나리가 슬쩍 말했다.
“서윤 언니는 몰라도 난 안 지켜주던데요?”
박서윤이 말했다.
“너를 노린 놈은 없어서 그런 거야.”
“나쁜 놈들한테조차 무시당한 거구나.”
“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들이 창고에 도착하고 잠시 후에 김수선이 보고했다.
“선장님. 안성준 형사가 도착했습니다.”
창고 밖에서 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차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안성준이 창고로 뛰어오며 소리를 질렀다.
“경찰이다!”
안성준 형사가 창고 내부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 끝났구나. 어쩐지 이럴 수도 있을 것 같더라니.”
선우현이 안성준에게 말했다.
“거 조금 빨리 오시지.”
“제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면서요. 같이 칠 줄 알았는데 왜 벌써 상황을 끝낸 겁니까?”
“기다리려고 했는데, 저놈들이 먼저 움직여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럼 이놈들이…. 어? 이 새끼는….”
안성준이 덕구파 천 실장에게 다가가 얼굴을 확인했다.
“천 실장?”
“아는 놈입니까?”
안성준이 설명했다.
“곽덕구의 오른팔입니다. 덕구파에 남은 놈 중에서 곽덕구 다음으로 중요한 놈입니다.”
“그런 놈이 직접 스래곤 비서실장을 납치하는 무리수를 둔 걸 보면 덕구파도 끝나가는군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완전히 끝내려면 곽덕구를 잡아야죠. 이놈이 곽덕구가 어디 있는지 알 겁니다. 그런데 상태가….”
천 실장은 턱이 깨져 기절했다.
“작살을 내셨네요.”
선우현이 설명했다.
“그놈이 저분들에게 총을 쏘려고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기 탄피 떨어져 있고, 저기 벽에 총알이 박혔으니까 확인해봐요.”
안성준은 이 사건을 덮어주면 덮어줬지 굳이 따질 생각이 없다.
“정말 어쩔 수 없으셨겠구나. 제가 팀원들이 도착하면 잘 이야기하겠습니다. 팀장님한테도요.”
“그럼 여기는 안 형사님한테 맡겨두고, 우리는 잠시 나가 있겠습니다.”
남미연이 나가자는 말을 듣고 걸어왔다. 안성준이 말했다.
“멀리 가시면 안…. 헉! 남미연 씨! 팬입니다!”
남미연이 투덜댔다.
“이제야 내가 보이셨나 보다.”
“형사라서 범죄 현장부터 봤습니다!”
“소리 안 지르셔도 돼요. 그런데 제 팬이시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선우현이 옆에서 말했다.
“저번에는 구하니 씨 팬이라더니.”
“가수는 구하니! 배우는 남미연!”
남미연은 흰둥이가 살아있는 걸 보고 와서 기분이 굉장히 좋아진 상태였다.
그녀가 물었다.
“사인 해드려요?”
“감사합니다! 그럼 제 수갑에….”
“네?”
“아, 아닙니다!”
안성준이 남미연 앞에서 허둥댈 때 선우현은 기절한 천 실장을 보았다.
“이놈은 도망치게 놔두려고 했는데….”
- 그러게요. 어디로 가는지 보고 있다가, 곽덕구를 만나는 것만 확인하면 싹 다 잡을 수 있었는데요.
“그러게.”
- 선장님이 그런 놈의 턱을 쪼개서 기절시키셨네요.
“너는 거기서 안 보였겠지만, 이놈이 서윤 씨를 쏘려고 했어.”
- 세 명이나 있는데 타깃이 박서윤이라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사심인가요?
“납치 목표가 서윤 씨였다잖아.”
- 총을 겨누고 협박하려 했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요?
“아…. 그랬을 수도 있겠네.”
-선장님?
◈ ◈ ◈
선우현은 경찰서로 이동해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나왔다.
밖에서 안성준 형사가 말했다.
“선우현 씨. 이번에도 납치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싸우신 거 압니다.”
“사실이잖습니까?”
“그렇죠. 사실이죠. 게다가 저를 통해 경찰에 신고도 하고 구하러 가신 거죠.”
안성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경찰에서 커버하기 어렵습니까?”
“지금은 어떻게든 덮고 있습니다만, 결국은 언론에서 알게 될 겁니다.”
“하긴. 이미 아는 기자도 있더군요.”
“예? 누구….”
“오경훈 기자라고 압니까?”
안성준이 아는 기자였다.
“아. 강력사건 전문 기자이죠. 오 기자라면 알 수도 있겠군요. 이런 사건은 다 쫓아다니는 사람이라서.”
안성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오 기자는 선우현 씨의 이름을 기사로 안 썼던데요.”
“스래곤 주가조작 사건 때 오 기자가 덕구파한테 잡혀 있었잖습니까? 그때 구해줬더니 그 기사를 쓸 때 이름은 빼주던데요.”
“아!”
◈ ◈ ◈
강력사건 전문 기자 오경훈은 덕구파 천 실장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덕구파 이 부장, 정 부장이 잡히고 조직이 경찰의 집중 수사로 갈려 나가더니, 이제는 곽덕구의 오른팔 천 실장까지….”
오늘 잡힌 건 천 실장 혼자가 아니다. 경찰 수사를 피해 도망쳤던 핵심 조직원 여섯 명도 같이 잡혔다.
“이러면 덕구파는 거의 끝났네. 곽덕구만 잡히면 완전히 망하겠어.”
그는 경찰서로 이동해 서장이 직접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오경훈이 발표 내용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피해자는 회사원, 대학생, 배우? 조합이 왜 이렇지?”
피해자가 누구인지는 경찰에서 밝히지 않았다.
다른 기자들은 피해자 중에 있다는 배우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배우 이름이 뭐야?”
“누군지 아는 사람이 없네?”
현장을 처음 장악한 건 안성준의 팀이다. 이후에는 관할 경찰서와 협조해 움직였지만 피해자의 신분은 확실히 숨겼다.
오경훈은 다른 데 관심이 있었다.
“덕구파가 저지른 사건을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는 사람은….”
오경훈은 그런 사건과 해결방식을 직접 경험해봤다.
그가 다른 기자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 사건은 선우현 씨가 처리했구나.”
◈ ◈ ◈
4선 국회의원 박재곤이 뉴스를 보고 화를 벌컥 냈다.
“덕구파 이 멍청한 새끼들이 또 실패했어!”
그가 벌게진 얼굴로 기사를 더 검색해보았다.
천 실장이 곽덕구의 오른팔이라거나, 덕구파는 경찰의 수사로 무너졌다는 기사들이 보였다.
덕구파 두목 곽덕구의 이름도 나왔다.
“젠장. 곽덕구 이 새끼. 완벽하게 준비해서 한 방에 확실히 처리해야지, 왜 매번 이렇게 실패할 짓만 하냐고.”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천 실장이라는 놈이 나랑 통화한 그놈 같은데, 설마 내 이름을 말하지는 않겠지?”
박재곤이 제자리를 맴돌았다.
“젠장. 초조해 죽겠네.”
◈ ◈ ◈
선우현은 엠투를 옥탑방 옥상으로 데려왔다.
그는 남미연에게 엠투를 동물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병원에서 엠투를 엑스레이로 찍어보면 내부가 기계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 난리가 난다.
“얼마나 손상됐는지 확인부터 하자.”
- 일단 총탄에 맞은 곳을 열어봐야 합니다.
엠투의 내부 모습을 철저히 숨기려면 옥탑방 안에서 작업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 김수선이 엠투를 볼 수 없다.
엠투의 정비 설명서는 탐사대 지원위성에 있다. 김수선이 그걸 보면서 작업을 보조하려면 옥상해서 해야 한다.
옥탑방 건물은 언덕 위에 지어져 있다. 옥상 상황을 엿볼 정도로 높은 건물은 주변에 없다.
“엠투. 일단 대기 모드를 해제하고 설명을 들어.”
“끼잉?”
“이제부터 네 배를 가를 건데.”
“끼잉!”
“고쳐보려고 그러는 거야. 가죽은 좀 찢어져도 나중에 네 몸속의 자가 수리장치로 고치면 되잖아.”
- 선장님. 에너지 전환장치가 멀쩡해야 자가 수리장치도 쓸 수 있습니다.
“그거 수리하지 못하면 어차피 엠투는 끝장이야. 강행해야 돼.”
- 선장님 손은 뭘 고치려고만 하면 터트리니까 걱정이 됩니다.
“끼잉!”
“엠투. 나를 믿고 신체 장비를 완전히 정지해. 전자두뇌를 제외하고는 동력을 차단해야 해. 그래야 네 내부를 볼 때 손상이 안 생긴다.”
“멍?”
“너 왜 나를 못 믿냐? 세상에 나만큼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어디 있다고.”
“멍멍.”
“물론 나도 내가 안 믿기긴 하지.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다. 동력 차단해.”
“멍….”
곧바로 엠투의 몸에서 움직임이 사라졌다.
“끝까지 안 믿기는.”
선우현이 칼을 가져왔다. 그가 칼로 엠투의 총에 맞은 부분을 자르기 시작했다.
“가죽이 잘 안 잘리는데?”
- 총알에는 뚫렸는데요?
“총알은 못 막는데 칼은 막나 보다.”
- 야생동물이나 창칼로 무장한 상대와의 전투를 상정하고 방검 성능에 집중해서 만들었나 봅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힘으로 갈라야지. 어차피 엠투 가죽은 나중에 복구되니까.”
선우현이 총에 맞은 부분을 힘으로 잘라냈다. 잘 잘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칼날보다 튼튼한 건 아니었다. 힘을 강하게 주자 가죽이 결국 잘렸다.
선우현이 잘라낸 부분을 벌린 후에 내부를 확인했다. 한낮의 햇빛은 기본이고 주변에 조명도 몇 개 더 세워서 엠투의 내부 구석구석까지 빛이 닿게 했다.
“이러니까 수술대 같다.”
- 제가 어시를 하겠습니다.
선우현이 엠투의 내부를 자세히 보았다.
“안쪽은 복잡하지는 않은 구조구나.”
- 탐사대 현장에서 장거리 정찰 임무를 수행해야 하니까요. 구조가 복잡하면 고장 위험도 커지고 수리도 어려우니까 일부러 더 단순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자가 수리장치로 고장 난 부분을 고칠 수 있는 거겠지.”
- 총알은 찾았습니까?
“찾았다. 여기. 보이냐?”
- 보입니다.
총에 맞은 부분은 쉽게 찾았다. 총알이 내부에 찌그러진 채로 들어 있었다.
김수선이 관측 카메라로 엠투의 내부를 보면서 정비 매뉴얼과 비교했다.
- 에너지 전환장치가 제일 크게 손상됐습니다. 구동계도 좀 손상되고, 신호 전달 체계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필 급소를 맞았네. 자가 수리장치는?”
- 괜찮습니다.
“휴. 그건 다행이다. 그러면 에너지와 자재만 충분히 공급하면 손상된 부분은 대부분 고칠 수 있겠지?”
- 선장님. 에너지 전환장치가 손상돼서 에너지를 공급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자가 수리장치로 못 고칩니다.
“알아. 그럼 손상된 전환장치를 분리해서 봐야겠다. 분리가…. 가능하겠지?”
- 엠투는 야전 정비를 고려해 설계됐습니다. 당연히 모듈별로 분리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김수선이 매뉴얼을 보고 설명했다. 선우현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손상된 부분을 조금씩 해체했다.
- 선장님. 거기가 아니라 그 옆입니다. 거기를 분해하면 엠투는 꼬리를 못 흔듭니다.
“옆을 하려고 했어.”
- 거기는 뒷다리입니다!
“그냥 만져만 본 거야.”
- 아닌 것 같은데요!
에너지 전환장치를 통째로 분리하는 건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다만 말로 설명을 들으면서 분리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결국 분리는 성공했다. 선우현이 에너지 전환장치를 엠투의 몸에서 떼어냈다.
“곤란한데. 딱 봐도 제일 중요해 보이는 부인이 망가졌어.”
- 그러게 말입니다.
“이걸 고칠 방법은?”
- 정비 매뉴얼에는 에너지 전환장치 자체를 교체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건 불가능하잖아. 다른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어.”
- 선장님. 모듈을 분리하는 것도 어려워했는데, 수리를 어떻게 하시게요?
“공부해서라도 해내야지. 엠투를 포기할 수는 없어.”
- 저도 자료를 계속 찾겠습니다. 파편화되어 흩어진 메모리도 검색하겠습니다.
김수선은 요즘 얼굴 없는 가수로도 활동한다.
그런데 김수선이 부른 노래는 메모리의 파편을 뒤져서 지구연합의 히트곡 일부분을 복원한 후에 나머지 부분을 채워 넣은 것이다.
- 완전한 자료는 없을 수도 있지만, 뭔가 남아 있을 겁니다.
◈ ◈ ◈
박길성은 박서윤이 납치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번에도 전처가 개입했다고 생각했다.
“또 그놈들이냐! 내가 그 여자를 가만 안 둘 테다!”
하지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박서윤이 무사히 구출됐다는 걸 알게 됐다.
박길성은 내색하지 않고 이튿날까지 기다렸다. 그런 후에 출근한 박서윤을 불러 물었다.
“왜 하필 거기야!”
- 현재 엠투는 추가 에너지 공급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현재는 남은 에너지로 버티고 있을 텐데, 오래는 못 버틸 겁니다.
“에너지 전환장치를 엠투의 자가 수리 기능으로 고칠 수 있냐?”
- 아니요. 불가능합니다.
“젠장!”
- 선체에 엠투의 예비 부품이 있나 찾아보겠습니다.
“예비 부품 같은 건 없잖아!”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