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16화 (216/281)

216. 흰둥이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을 습격했다가 도망친 청부업자가 접촉한 덕구파 조직원 말입니다.

그놈이 덕구파 조직원이라는 증거를 찾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청부업자는 곧 잡힐 테고, 그놈은 뭔가 나왔어?”

- 경기도 주택으로 이동했습니다.

“주변 환경은?”

- 시골 외진 곳에 있는 오래된 주택입니다. 거기 숨으면 목격자가 없을 듯합니다.

“일은 서울에서 저지르고 숨을 때는 경기도로 가는구나. 그 주택에 다른 사람은 있냐?”

선우현이 김수선에게 그놈을 감시하라고 한 건, 그놈이 다시 접촉하는 놈까지 찾기 위해서였다.

- 집의 전등이 꺼져 있다가 그놈이 들어간 후에 켜졌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덕구파 놈들이 한 곳에 모여 있어야 잡기 편한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네. 거기 체크하다가 다른 놈과 접촉하면 그놈도 추적해. 그러다 보면 대가리를 찾을 수 있겠지.”

- 제 일이 늘어나는군요.

“수선아. 에너지가 남아서 여유가 생겼다더니?”

- 선장님도 일하시라는 거죠.

“할 거야. 이제부터 며칠 바쁘게 움직이려고.”

- 겨우 며칠만 바쁘지 마시라고요.

◈          ◈          ◈

이튿날 낮에 박서윤이 남미연을 만났다. 장소는 남한강에 있는 카페였다.

남미연이 즐거워했다.

“서윤 씨를 이렇게 밖에서 만나니까 참 좋다.”

“일 때문에 만난 거잖아요.”

“에이. 일 핑계로 이렇게 놀고 그러는 거지.”

남미연이 씩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스래곤에서는 실장님이니까 땡땡이를 쳐도 맛이 덜할 텐데, 길성에서는 말단 대리니까 땡땡이치는 맛이 더 있지?”

“오늘은 길성 비서실에 출근하는 날인데, 스래곤에 출근해서 외근 나온 거로 처리했어요. 땡땡이 아니에요.”

“쳇. 리액션이 시시해.”

남미연이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그런데 옆에는 옥탑방 옥상에서 만난 그 학생이잖아. 여기는 무슨 일?”

신나리가 얼른 인사했다.

“홍보팀에서 나왔어요!”

박서윤이 설명했다.

“나리는 요즘 스래곤 홍보팀에서 알바 해요.”

“아. 홍보실에서 서윤 씨가 편한 사람을 데려왔구나. 혹시 알바 자리도 낙하산?”

“아뇨! 서윤 언니가 비서실장도 하는 거 회사 와서 알았어요.”

선우현이 스래곤의 사장이다. 그런데 신나리는 박서윤이 비서실장인 것조차 몰랐다고 했다.

남미연이 씩 웃었다.

“아.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

“네?”

“그런 게 있어요. 재미있네.”

그녀가 박서윤을 보며 물었다.

“스래곤 광고는 어떻게 할 거야?”

광고 제안은 남미연이 먼저 했다.

“스래곤은 톱스타 남미연 씨를 주연으로 이미지 광고를 할 여유가 없어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물품을 판매하는 회사도 아니고요.”

“에잇. 나도 주주잖아. 내가 인심 썼다. 출연료도 팍팍 깎아줄게. 물론 외부에는 출연료가 얼마인지 비밀로 하는 조건으로. 내 다른 광고 단가까지 내려가면 안 되니까.”

“그래도 안 돼요. 톱스타를 쓰면 TV나 신문, 인터넷 등등에 광고를 뿌려야 하는데, 그럴 돈이 있으면 연구 개발비로 써야죠.”

남미연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엠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흰둥이도 같이 나가는데? 세트로 할인해주는데?”

“엠투는 선우현 씨 개잖아요.”

남미연이 신나리를 슬쩍 보았다. 신나리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남미연이 말했다.

“그럼 상황이 바뀌면 다시 이야기해.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일하러 온 건데요?”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잖아. 조금만 가면 진짜 맛있고 경치 좋은 집 있어. 내가 살게.”

박서윤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신나리도 좋아한다.

신나리가 얼른 일어났다.

“제가 운전할까요?”

박서윤이 물었다.

“나리 너 운전면허 있어?”

“대학 들어올 때 땄어요. 차가 없어서 몰아본 적은 없지만.”

“그냥 내가 할게.”

남미연이 말했다.

“나도 그 차 타야겠다.”

“더 좋은 차 있으시잖아요.”

“그건 여기다 두고 가지 뭐. 어차피 여기로 돌아올 거잖아.”

이 남한강 카페는 주차장이 넓고 자리가 남아돌아서 차를 두고 산책갔다가 오는 손님이 종종 있었다.

“내가 그래서 이 카페로 왔잖아.”

“알았어요.”

세 사람은 박서윤이 가져온 회사 차에 탔다. 남미연도 그 차 뒷좌석에 앉았다. 엠투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목적지인 식당은 산속에 있었다. 박서윤이 산길로 차를 몰았다.

남미연이 엠투의 등을 만져주며 말했다.

“흰둥아. 너도 한 상 차려줄게.”

“멍!”

박서윤이 운전하면서 물었다.

“식당에서 그러면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할 텐데요?”

“골든벨을 울리면 괜찮지 않을까?”

조수석에서 신나리가 엄지를 올렸다.

“역시 톱스타!”

“골든벨은 농담이고, 칸막이 있는 구석 자리로 가면 돼. 괜히 그 식당으로 가는 거 아니야.”

“그 자리에 이미 손님이 있으면요?”

“내가 밥값 내고 요리도 몇 개 더 시켜주면서 자리 좀 양보해달라고 부탁하면?”

“역시 톱스타!”

◈          ◈          ◈

세 사람과 한 마리는 산속 식당 구석 칸막이 자리에 앉았다. 음식은 금방 나왔다.

“이런 날씨엔 역시 시원한 막국수지. 이 집 국수 맛있어.”

거기에 수육도 나오고 고기 경단도 나왔다.

신나리가 말했다.

“톱스타는 풀코스 요리만 먹는 줄 알았어요.”

“톱스타는 사람 아니니? 다 똑같은 거 먹어.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난 입맛이 원래 이래. 뭐 더 시켜줘?”

“그럼 수육이랑 대왕 동그랑땡 한 접시 더…. 저랑 서윤 언니는 많이 먹거든요. 이걸로 모자라요.”

“그래? 알았어.”

박서윤은 정말로 많이 먹었다. 대학교 1학년인 신나리도 잘 먹었다. 남미연도 휴식기에는 잘 먹는 편인데 두 사람의 식사량에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엠투도 있었다. 엠투도 잘 먹었다.

남미연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더 시켜줄까?”

박서윤과 신나리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남미연이 잘 먹는 박서윤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잘 먹는데 그 몸매가 유지된다니. 연예계에 체질적으로 날씬한 사람을 꽤 봤는데, 서윤 씨는 그 사람들과 비교해도 축복받은 체질이구나.”

신나리가 옆에서 물었다.

“저는요?”

“학생은 워낙 많이 움직여서 살이 빠지는 타입?”

“앗! 어떻게 알았지?”

남미연이 잘 먹는 박서윤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이 먹는데 그런 몸매가 유지되는 사람은…. 아. 한 명 있다.”

신나리가 물었다.

“누군데요?”

“내가 옛날에 알던 언니. 그 언니도 축복받은 체질이었거든.”

“그분도 연예인이에요?”

“그랬는데, 아주 옛날에 그만뒀어.”

◈          ◈          ◈

스래곤 홍보팀 사람들은 점심을 먹으며 신나리 이야기를 했다.

“신나리 씨는 비서실장님만 아는 게 아니라 남미연도 아는가 봐.”

“그러니까 실장님이 데려갔지. 광고 출연 제안을 거절하는 자리니까, 아는 사람이랑 가야 부담 안 가질 거라면서.”

“신나리 씨는 인맥이 왜 그렇게 좋아? 금수저야?”

“금수저가 왜 알바를 해?”

“금수저는 아닐걸? 신나리 씨 이야기로는 이 알바를 해서 돈을 벌어야 학교에 다닐 수 있다던데?”

그건 신나리가 용돈과 생활비를 모두 작전주에 몰빵했다가 홀라당 날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바를 안 하면 밥을 먹을 돈이 없다.

“생활에 여유는 없나 본데….”

“신나리 씨는 진짜 정체를 모르겠다.”

◈          ◈          ◈

세 사람과 한 마리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산길을 내려왔다.

남미연이 뒷좌석에서 말했다.

“하여간 스래곤 CF는 언제든 말만 해. 내가 진짜 파격 조건으로 나가준다.”

“길성에서는 필요하긴 해요.”

“난 길성 주식은 없으니까, 거기서 하면 출연료 제대로 받아야지.”

“스래곤은 계획이 없다니까요.”

맞은편에서 차가 한 대 올라왔다.

남미연의 옆에 엎드려 있던 엠투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멍?”

남미연이 물었다.

“왜 그래?”

“멍!”

“서윤 씨가 내 CF 필요 없다고 하니까 우리 흰둥이가 화내잖아.”

“멍멍!”

“응? 그게 아닌가?”

맞은편에서 올라오던 차가 박서윤의 차 범퍼를 살짝 건드렸다. 차 두 대가 즉시 정지했다.

상대편 차 운전석에서 남자가 내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봐! 운전 똑바로 해!”

남미연이 뒷좌석에서 화를 벌컥 냈다.

“지가 먼저 받아놓고 얻다 대고 성질이야! 야. 다들 뒷목 잡고 내려.”

박서윤이 급히 말했다.

“잠깐만요! 문 열지 마요!”

“왜?”

“제가 전에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어요. 태양 백화점 유소율 이사님이랑 같이 있을 때였어요.”

“그때는 어떻게 해결했어? 뒷목 잡았어?”

“납치됐어요.”

“어?”

“그때는 납치하려고 일부러 일으킨 사고였어요.”

맞은편 남자가 앞에서 삿대질했다.

“야! 내려!”

조수석에서 신나리가 말했다.

“그냥 화난 거 같은데요? 설마 그런 일이 또 있겠어요?”

남미연이 말했다.

“아니야. 내가 보기에도 수상하다.”

“서윤 언니 말을 믿는 거예요?”

“아니. 난 우리 흰둥이 말을 믿는 거야. 흰둥이는 저 차가 가까이 올 때부터 경고했잖아.”

“네? 엠투가 어떻게 알고요?”

“개는 귀가 좋잖아. 저 차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라도 들었겠지.”

“그런가?”

박서윤이 말했다.

“일단 차를 뒤로 좀 빼볼게요. 반응 보면서 식당 있는 곳까지 올라가려고요.”

“그래. 그게 좋겠다.”

박서윤이 차를 천천히 후진시켰다.

소리를 지르던 사람이 당황했다가 손을 크게 흔들었다. 갑자기 그쪽 차 문이 좌우로 활짝 열리면서 남자 둘이 튀어나왔다. 한 놈은 손에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남미연이 소리를 질렀다.

“진짜였어! 더 빼!”

박서윤이 빠르게 후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뒤를 보고 있던 신나리가 소리를 질렀다.

“위에서 차가 내려와요!”

“그래? 목격자가 있으면 저놈들도 포기…. 안 하네?”

앞에 있던 놈들이 계속 달려왔다. 뒤에서 내려오는 차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엠투가 뒤를 보며 짖었다.

“멍!”

“한패인가 봐! 이러다 잡히겠어!”

박서윤이 말했다.

“꽉 잡아요!”

“뭐하려고?”

“샛길로 빠질 거예요!”

옆쪽에 샛길이 하나 있었다. 박서윤이 차를 세웠다가 방향을 틀고 그 길로 들어갔다.

그 길은 차가 아니라 사람이 다니는 오솔길이었다. 폭은 차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고 도로의 굴곡은 차량으로는 천천히 이동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박서윤은 그런 도로에서 차를 빠르게 몰았다. 차가 당장 부서질 것처럼 덜컹거렸다. 차 바닥이 연달아 긁혔다.

신나리의 엉덩이가 튀어 올랐다. 그녀가 안전벨트를 두 손으로 잡으며 물었다.

“언니!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데요?”

“몰라! 어디든 여기보단 낫겠지! 빨리 경찰에 신고해!”

“아! 신고!”

신나리가 스마트폰을 급히 꺼냈다. 문제가 생겼다. 화면에 안테나가 뜨지 않았다.

“토, 통화권 이탈이에요!”

남미연도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했다.

“내 것도 안돼!”

“여긴 왜 휴대폰이 안 터지는데요!”

“저놈들이 전파 방해장치라도 쓰나 봐. 서윤 씨. 달려! 잡히면 진짜 큰일 날 거 같아!”

◈          ◈          ◈

선우현은 차를 몰고 남한강으로 가고 있었다.

“오늘은 쭈꾸미를 먹어야겠어.”

- 맛있는 거 혼자 드시니까 좋습니까?

“너도 요즘은 미제 우주 식량 먹잖아. 맛있다며.”

- 그렇긴 합니다.

“그리고 그냥 먹으러 가는 거 아니다. 정찰이야. 정찰.”

- 아, 예. 그러시겠죠.

“서윤 씨는 남미연 씨가 맛있는 거 사줬으려나?”

- 뭐 먹는지 구경이라도 해야겠습니다.

잠시 후에 김수선이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 선장님. 박서윤의 차량이 도주 중입니다.

“뭐? 어디서? 누구한테? 경찰은 아니지?”

- 정체를 알 수 없는 차량 두 대가 추격 중입니다.

“위치 보고해!”

- 남한강에서 북한강 쪽으로 가는 산속입니다. 현재 선장님의 위치에서 10km쯤 떨어져 있습니다.

선우현이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았다.

“지금 누가 운전하고 있지?”

- 박서윤입니다. 조수석에 신나리가 보입니다.

선우현이 신나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되지 않았다. 남미연에게도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 신나리가 휴대폰을 차량 앞유리 쪽으로 이리저리 옮겨보고 있습니다. 안테나가 잡히지 않나 봅니다.

“휴대폰 전파 방해장치인가?이 새끼들이 작정하고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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