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15화 (215/281)

215. 바지사장 II

나사 직원 조세핀이 물었다.

“손님? 여기서 누굴 만나기로 한 거예요?”

“손님은 비유를 그렇게 한 거고, 포위됐다니까요. 누가 날 노리는 것 같은데.”

수상한 움직임을 먼저 감지한 건 김수선이다. 그것도 지금이 아니라 아까 감지했다.

선우현은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일부러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퇴근하던 조세핀을 만났다.

조세핀만 집으로 보내면 오히려 그녀가 위험해질 수 있어서 그때부터는 아예 데리고 다녔다.

그러다 그가 CCTV도 없고 목격자도 없는 곳으로 이동하자 놈들이 그를 앞뒤에서 포위했다.

골목 양쪽에서 검은색 마스크와 모자를 쓴 남자들이 나타났다. 앞쪽과 뒤쪽에 두 명씩 모두 네 명이었다.

우두머리인 청부업자가 선우현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이며 말했다.

“어이. 조용히 따라오면 살려는 준다.”

조세핀은 한국어는 모르지만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는 바로 깨달았다.

“저 사람들이 선우현 씨를 협박하는 거예요? 어디서 누가 왜요?”

“그건 내가 묻고 싶은 건데. 조세핀 쪽에서 움직인 건 아닙니까?”

“나사나 미국 정부가 굳이 이런 식으로 접근할 리 있어요? 공식적으로 연락해도 충분한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혹시나 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녀는 선우현이 대단한 과학자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사이 나쁜 나라에서 선우현 씨의 능력을 원해서….”

여기는 한국이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설마 노스 코리아?”

“오!”

“진짜인가요?”

“간첩을 잡으면 포상금이 꽤 되니까 진짜면 좋겠군요. 그런데 그건 아닐 겁니다. 내가 간첩이랑 엮일 일이 없으니까. 그런데 미국도 아니면.”

선우현이 청부업자에게 물었다.

“덕구가 보냈냐?”

청부업자가 도로 물었다.

“덕구가 누구야?”

“야. 덕구파 덕구 모르냐?”

청부업자의 눈이 커졌다.

“뭐? 곽덕구 회장?”

“놀란 눈으로 그렇게 부르는 걸 보면 직속은 아닌데 그래도 같은 계통에는 있는 놈이구나. 그러면 하청인가? 덕구가 머리 썼네.”

청부업자는 선우현의 말이 사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 돈을 포기할 수는 없지. 나는 돈만 받고 빠지면 되니까.’

청부업자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말로 해서는 못 알아듣는 놈이구나. 저 입에서 예의 바른 말이 나올 때까지 잡아놓고 패라.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

그의 부하 셋이 즉시 선우현을 향해 돌진했다. 한 놈은 특히 더 빠르게 뛰었다.

조세핀은 덩치 큰 남자들이 어두운 골목길에서 갑자기 돌진하자 겁을 먹고 비명을 질렀다.

“꺄악!”

선우현이 제일 먼저 달려드는 놈을 향해 발을 내질렀다. 고속으로 쭉 뻗어 나간 발이 적의 배에 작살처럼 꽂혔다.

“꾸에엑!”

달려들던 놈은 돼지 멱 따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선우현이 갑자기 조세핀의 허리를 왼팔로 감싸며 뒤로 휙 돌았다. 그러면서 옆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조세핀의 몸이 옆으로 휙 끌려갔다.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 두 번째 놈이 두 팔을 앞으로 내밀며 돌진했다. 그는 선우현의 허리를 붙잡고 넘어뜨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우현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적은 두 팔로 허공만 휘저었다.

선우현이 왼팔로 조세핀을 안은 채로 발을 툭 올려 찼다. 허공을 휘젓던 놈이 턱을 얻어맞고 고꾸라졌다.

“켁!”

뒤따라 공격하려던 놈이 황급히 돌진을 멈추었다. 그는 동료 둘이 순식간에 당하는 걸 보고 혼자서는 선우현을 못 이긴다는 걸 깨달았다.

“이, 이 새끼가….”

“너는 왜 들어오다 마냐?”

그놈이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냈다. 칼날이 튀어나왔다.

“오, 오지 마!”

“네가 오던 중이었다만.”

그놈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뒤로 휙 돌아 도망쳤다.

“으아아!”

“약한 놈이네.”

선우현이 다시 뒤로 돌아섰다. 청부업자도 뒷걸음치고 있었다.

청부업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냥 바지라더니….”

“나를 핫바지로 본 거냐?”

- 선장님. 그 바지가 아닐 겁니다. 바지사장 이야기겠죠.

“역시 덕구파가 보낸 거 맞네.”

청부업자가 점점 더 뒤로 물러났다. 선우현은 굳이 쫓아가지 않았다.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지자 청부업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도망쳤다.

선우현이 그놈을 보며 말했다.

“수선아.”

- 두 놈이 도망쳤습니다. 어느 놈을 추적할까요?

“당연히 대가리지. 저놈이 덕구파한테 일을 받았을 테니까.”

그러려고 일부러 놓아주었다.

- 추적 시작합니다.

옆에서 조세핀이 갑자기 선우현의 허리를 두 팔로 꽉 껴안았다.

“무서웠어요!”

“이거 놓고 말합시다.”

“제 허리를 먼저 안고 있잖아요.”

“아차. 이건 저놈한테 맞을까 봐 그런 건데.”

선우현이 즉시 조세핀을 밀어냈다.

밀려난 조세핀이 아쉬운 표정으로 선우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과학자가 싸움을 이렇게 잘해요?”

“과학자도 운동할 줄 압니다.”

“진짜 순식간에 팍팍 쓰러뜨렸잖아요. 동양 무술인가요?”

“지구… 근접 격투술입니다.”

- 사실 대인 격투술은 아니죠. 사람을 상대로도 쓸 수 있을 뿐.

조세핀이 골목 길바닥에 쓰러진 두 놈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신고해야죠.”

“아! 911. 아니, 한국이니까 112.”

“거기도 해야 하지만.”

선우현이 먼저 안성준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형사님. 바쁘십니까?”

- 모처럼 안 바빠서 일찍 퇴근하고 술 마시러 왔습니다.

“뭐, 바쁘시면 다른 곳에 넘겨야죠. 쉬세요.”

- 별일은 아니지요?

“물론 별일 아닙니다. 청부업자 넷이 습격하길래 두 놈을 잡아놨을 뿐입니다.”

- 선우현 씨한테 넷이면 진짜 별거 아니군요.

“이놈들한테 청부한 게 아무래도 덕구파 같습니다만, 112에 신고부터….”

나른하던 안성준의 목소리가 당장 바뀌었다.

- 마침 제가 시간이 남으니까 당장 가겠습니다!

“술 드셔야죠.”

- 방금 술 끊었습니다.

◈          ◈          ◈

선우현을 습격했다가 도망친 청부업자가 다른 장소에서 덕구파 조직원을 만났다. 그는 덕구파 천 실장의 직속 부하였다.

조직원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왜 혼자 왔지? 바지사장을 데려오라고 했는데?”

청부업자가 화를 벌컥 냈다.

“씨발. 그 새끼 뭐야?”

“무슨 소리냐?”

“실력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내 부하 둘이 순식간에 당했어!”

조직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흐음. 평범한 바지사장은 아니라는 건가?”

“뭐? 잠깐.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설마 날 이용해서 그 새끼 간을 본 거야? 씨발. 그러면.”

청부업자가 물었다.

“이번 일 말이야. 진짜로 곽덕구 회장님이 시킨 일이냐?”

조직원의 표정이 굳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놈이 그렇게 묻더라. 당신 표정 보니까 맞나 보군. 그럼 난 여기서 손을 떼겠다. 요즘 덕구파랑 잘못 얽히면 골치가 아파져서.”

덕구파 조직원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청부업자가 즉시 뒤로 조금 물러나며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들은 잠시 서로를 노려보았다.

덕구파는 원래 이런 일을 할 때는 여럿이 몰려다닌다. 다만 지금은 조직이 갈려 나가는 중이라 조직원 혼자서 왔다.

그런데 청부업자도 밑바닥에서 폭력으로 먹고사는 놈이다.

조직원이나 청부업자 둘 다 주머니 속에 잭나이프 하나쯤은 들어 있었다.

지금 싸우면 조직원이 혼자서 청부업자를 제거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서로 칼을 맞을 확률이 꽤 높았다.

조직원이 갈등하는 걸 본 청부업자가 오른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로 왼손을 흔들었다.

“나는 말려들고 싶지 않으니까 어디 가서 오늘 일을 떠들고 다니진 않을 거다. 경찰이 눈에 불을 켜고 덕구파를 찾고 있는데, 내가 왜 거기 끼겠냐고.”

조직원이 으르렁댔다.

“입 잘 다물어야 할 거다. 소문내면 죽는다.”

“내가 덕구파 뒤통수를 칠 리는 없잖아.”

청부업자가 그렇게 말하며 뒤로 물러나다가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그는 골목을 돌아가자마자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후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후욱. 후욱.”

덕구파 조직원은 쫓아오지 않았다.

청부업자가 이죽거렸다.

“덕구파가 예전에나 대단했지, 조직이 통째로 갈려 나가는 지금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다고 이 일을 떠들고 다닐 생각은 없다. 그는 손을 확실히 떼고 싶었다.

“괜히 나까지 말려들면 엿…. 아. 젠장.”

그의 부하 셋 중에 둘이 잡혔다.

“젠장. 내가 덕구 똥을 밟았구나. 당분간 잠수나 타야겠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부하들도 모르는 곳에 가 있으면 괜찮겠지.”

◈          ◈          ◈

김수선이 선우현에게 보고했다.

- 선장님. 청부업자가 다른 놈과 접촉한 후에 갈라섰습니다.

“분위기는?”

- 분위기만 보면 위험한 일을 맡겼다고 항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둘이 싸울 것처럼 굴더니 싱겁게 헤어졌습니다.

“지금은?”

-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동 중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청부업자가 접촉한 놈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 그놈이 덕구파일 테니까.”

- 그러면 청부업자는요?

“그놈은 차종과 차 번호만 확인해.”

선우현이 습격당했던 곳은 이미 경찰이 출동해 정리하는 중이다. 선우현은 안성준 형사를 만났다.

안성준이 말했다.

“체포된 놈들이 자기들은 덕구파가 아니라고 주장하던데요.”

선우현이 설명했다.

“덕구파가 고용한 청부업자입니다.”

“그래 보기긴 합니다. 그런데 저놈들은 덕구파 놈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더군요.”

“청부업자 두목에게 물어보시죠.”

“그놈은 이미 도망쳤잖습니까?”

선우현이 차 번호를 하나 적어주었다. 적는 김에 차종과 차의 색도 같이 적었다.

“이 번호는….”

“청부업자 두목의 차입니다. 가짜 번호판이거나 대포차일 테니까 잘 찾아봐야 합니다.”

안성준이 눈을 껌뻑였다.

“이 번호를 어떻게 아셨습니까?”

김수선이 방금 지원위성에서 관측 카메라로 확인했다.

선우현이 둘러댔다.

“도망칠 때 봤습니다. 그놈이 차를 타고 튀는 바람에 잡지는 못했지만요.”

“아!”

“너무 늦으면 이놈이 다른 차로 갈아탈 수 있습니다.”

“당장 수배하겠습니다.”

안성준이 팀원들이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선우현은 청부업자 쪽은 안성준에게 맡겼다. 어차피 청부업자는 잔챙이다. 진짜는 덕구파다.

선우현이 물었다.

“수선아. 덕구파 놈은?”

- 사람이 많은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거기서 누구를 만나냐?”

- 아니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지 않고 대포폰으로 보고하나 보다. 꼼꼼한 놈들 같으니라고.”

- 어떻게 할까요?

“음…. 수선아. 에너지와 자원에 여유 생겨서 선체 상태가 좀 좋아졌지?”

김수선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 수리모듈을 다시 선체 외부에 배치했습니다. 에너지에 여유가 있으니까 이렇게 편합니다.

수리모듈은 자원이 넉넉한 상황에서 쓰려고 만든 것이라 절약 모드가 없었다. 그래서 모듈을 유지하는 데도 에너지를 먹고, 외부의 균열을 수리할 때도 사람이 직접 아껴서 작업하는 것보다는 자원을 많이 썼다.

선우현과 김수선은 자원과 에너지 부족이 극심해진 최근에는 그걸 좀 아껴보려고 직접 수리하러 외부로 나가곤 했다.

- 지난번에 우주왕복선을 구해줄 때 입수한 화물 덕분에 에너지에 여유가 생기니 이렇게 편합니다.

“이제 시간이 남겠네. 그럼 그 조직원 놈을 관찰하면서 누구를 만나는지 확인해. 나중에라도 덕구와 만날 수도 있잖아.”

- 자주 들여다보겠습니다.

◈          ◈          ◈

덕구파 천 실장은 직속 부하의 보고를 대포폰으로 받았다.

“실패라고? 어째서? 괜찮은 업자를 섭외했다더니?”

- 바지사장의 실력이 상당해서, 청부업자가 습격했다가 오히려 당하고 도망쳐 왔습니다. 업자의 부하들은 붙잡혔다고 합니다.

“평범한 바지는 아니구나. 그럼 그 청부업자는?”

- 청부업자의 부하들은 아는 게 없습니다. 그리고 업자 놈은 입을 다물겠다고 하면서 도망쳤습니다.

천 실장이 화를 버럭 냈다.

“그걸 왜 도망치게 놔둬! 잡았어야지!”

- 죄송합니다.

“너는 얼마나 노출됐지?”

- 청부업자는 제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제 얼굴은 확실히 가렸습니다. 다만, 이번 일이 우리 조직의 일이라는 건 청부업자도 눈치챘습니다.

“네 얼굴을 모르는데 어떻게?”

- 바지사장이 알려준 것 같습니다.

“끄응. 그 바지는 우리 쪽 상황을 아는 놈이군.”

- 어떻게 할까요?

“너는 안전한 곳에서 대기해. 우리 일이 끝날 때까지 외부에 노출되지 마라.”

- 알겠습니다.

천 실장은 전화를 끊고 장소를 옮겼다. 그런 후에 다른 대포폰으로 곽덕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방금 부하에게 들은 이야기를 보고했다.

곽덕구가 말했다.

- 역시 그 사장은 바지가 확실하구나. 일부러 무술 고수를 바지로 썼어. 우리가 습격할 때를 대비해서 그런 거겠지.

“청부업자를 시켜 진행했으니까, 우리를 의심하더라도 직접적인 증거는 없을 겁니다.”

- 그래도 실패는 실패야.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불리한 영향을 끼칠 거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 이미 시작했으니까 멈출 수 없다. 다음 단계를 진행해.

“알겠습니다.”

곽덕구가 명령했다.

-이번에는 청부업자에게 맡기지 마. 천 실장이 직접 처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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