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14화 (214/281)

214. 바지사장

이튿날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 조세핀이 옥탑방 건물 근처에 나타났습니다.

“응? 어제 밥 먹여서 보냈는데 여기를 왜 와?”

- 저야 모르죠. 확인해보시죠.

선우현이 옥상 캠핑 의자에서 일어났다. 마시던 얼음 담긴 음료수는 캠핑 탁자에 올려놓았다.

“나가서 물어나 봐야겠네. 왜 자꾸 이러는지.”

- 해수욕장용 꽃무늬 반바지를 입고 나가시게요?

“좀 그런가?”

- 많이 그렇죠.

“에이. 귀찮네.”

선우현이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조세핀은 가까운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조세핀. 여기는 어쩐 일입니까?”

조세핀이 고개를 휙 돌렸다가 선우현을 보고 활짝 웃었다.

“앗! 선우현 씨. 이 근처에 살아요?”

“내가 이 동네에 산다는 건 어제 말했는데?”

“바로 이 근처인 줄은 몰랐죠. 진짜 잘됐다.”

“여기서 뭐 하냐니까?”

조세핀이 설명했다.

“나 한국에 파견 왔잖아요. 그러니까 최소한 1년은 있을 텐데요.”

“아니, 뭘 그렇게 오래….”

“그동안 지낼 방을 얻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호텔이라는 좋은 숙박시설이 있습니다만?”

“호텔은 계속 있기엔 비싸요.”

“나사 예산으로 해결이 안 되나?”

“이 파견은 책임지고 전담하는 부서가 없어요. 그래서 예산이 충분히 안 나와요.”

“그래도 나오긴 하나 보네.”

“방을 얻을 정도만 나오죠. 그런데 내가 한국에 아는 사람이 없어요.”

“아는 사람이 왜 없을까? 파견 온 부서에 있는 동료들은?”

“내 전임자는 최근에 미국으로 돌아갔어요. 책상이 아예 비어 있었는데 내가 그 자리로 간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는 나밖에 없어요. 완전 혼자 일하죠.”

선우현이 손뼉을 쳤다.

“아! 그러면 사무실에 접이식 침대라도 놓고 살면 되겠네!”

“그,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나는 제대로 된 방이 필요해요.”

“그래서 여기로 왔다?”

조세핀이 배시시 웃었다.

“내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선우현 씨잖아요. 그러니까 한동네에 살면 좋잖아요.”

“난 딱히 좋을 게 없어 보이는데.”

조세핀이 한국에 파견 온 건 사실이다. 그것도 그녀가 원해서 왔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팀원이 아무도 없었다. 원래 있던 한 명이 이번에 복귀하고 그녀가 그 자리로 대신 들어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업무 인수인계도 문서 쪼가리 몇 개로 대신해야 했다.

“그래서 방을 얻어야 해요. 선우현 씨가 사는 곳에는 빈방 없어요?”

옥탑방 건물에는 빈방이 많다.

그런데 그 건물에는 사람을 새로 들일 계획이 없다. 건물 4층은 이미 활토 스마트 농장을 설치했다. 나중에는 3층에도 다른 시설을 만들 생각이다.

“아! 빈방!”

“네!”

“없습니다.”

“와. 단호해.”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수선아. 근처에 둬서 나쁠 건 없겠지?”

- 딱히 위험해 보이진 않습니다.

“내가 노는 모습은 안 보이는 곳이어야 할 테고.”

- 그 모습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는 계시군요.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문제는 아닌데, 좀 그렇잖아.”

- 그러면 조세핀을 감시하는 건 제가 해야 하나요? 감시 대상이 늘면 늘수록 찾아보는 시간은 짧아집니다. 저 바쁩니다.

“굳이 감시까지야 할 필요 있겠냐? 어쨌든 조세핀이 근처에 있으면, 나사에 급하게 연락할 일이 있을 때 도움이 되겠지.”

- 그런 우주 조난 사고가 설마 또 나겠습니까?

“잘 아는 사이가 되면 우주로 로켓을 쏘는 법을 물어보기 좋잖아.”

- 우주왕복선을 손에 넣는 데에 손톱만큼이나마 도움이 되겠군요. 옥탑방에서 가까운 곳에 두시죠.

선우현이 제안했다.

“부동산에 같이 가줄 테니까 좋은 곳이 있나 찾아봅시다.”

“어머! 친절하시다!”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선우현이 조세핀과 같이 다니며 방을 알아보았다. 그러다 옥탑방 건물과 거리는 가깝지만 직접 보이지는 않는 곳을 하나 찾아냈다.

“여기 괜찮겠네.”

조세핀이 물었다.

“선우현 씨는 어디 살아요?”

“가깝습니다. 조금 전에 지나오면서 본 언덕 꼭대기 건물 옥탑방에 사니까.”

조세핀이 슬쩍 제안했다.

“옥탑방이요? 그 실력으로 왜 한국에서 그런 고생을 해요? 나사에 오면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어요.”

“집을 살 돈을 준다고요?”

“당연히 월세겠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          ◈          ◈

새로 얻은 집은 비어 있는 상태라 바로 들어올 수 있었다.

조세핀은 혼자 호텔로 돌아간 후에 미국에서 가져온 짐을 챙겨 오늘 얻은 곳으로 돌아왔다.

새로 얻은 집은 호텔보다 훨씬 넓었다. 그녀에게 지원되는 파견지 주거비는 호텔에서 머물 만큼은 안 되지만 투룸을 빌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녀는 대충 짐을 정리하고 근처 가게에서 생활필수품을 샀다. 어느새 밤이 됐다.

그녀가 선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웃에 이사 왔는데, 인사라도 하러 가려고요.”

- 난 밥 먹을 건데….

“잘됐네요. 맥주 있는데 가져갈까요?”

- 그러던가요.

조세핀이 전화를 끊고 거울을 보며 화장을 점검했다.

“좋아. 완벽해.”

한국에 파견을 오는데 맥주를 가져왔을 리는 없다.

그녀는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찾았다. 냉장고에는 그녀가 미국에서 마시던 맥주도 있었다.

“두 유 노우 소리를 들은 건 다 맛있었으니까, 맥주도 한국 맥주를 사자.”

그녀가 한국 맥주를 네 캔 사서 선우현이 있는 언덕 꼭대기 건물로 갔다.

“이 건물 옥탑방에 산다고 했는데.”

건물 1층에는 디지털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는 1층부터 보안 설비가 있네?”

그녀가 1층에서 초인종을 찾았다. 그런데 문 근처에 초인종이나 호출 버튼이 보이지 않았다.

“응? 비밀번호를 모르면 전화를 걸어서 열어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건가? 보안구역에서 쓰는 방식이네?”

이 출입구는 비밀번호를 모르면 전화를 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배달 음식을 시켜도 1층 앞에 두고 가게 한다.

갑자기 1층 잠금장치가 풀렸다. 옥상에서는 1층을 열어줄 수 있었다.

“CCTV도 있나 보다.”

CCTV도 물론 있지만, 이번에는 김수선이 그녀가 방문했다는 걸 선우현에게 알려주었다.

그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긴 한데 좀 낡았다.”

이 건물은 4층까지 있다. 엘리베이터는 없다.

그녀가 계단을 걸어서 올라갔다.

“계단 중간마다 CCTV가 있네.”

4층은 복도부터 철문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안쪽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건물은 낡았는데 묘하게 보안이 철저한 것 같단 말이야. 4층 창문 바깥에도 안쪽을 못 보게 하는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던데.”

그녀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 문도 잠겨 있었다. 대신에 이번에는 호출용 벨이 있었다.

그녀가 벨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조세핀이 옥상에 들어가면서 맥주 네 캔이 담긴 봉지를 위로 들었다.

“맥주 가져왔….”

그녀가 멈칫했다. 옥상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박서윤과 신나리였다.

선우현이 말했다.

“사람이 넷인데 맥주를 겨우 네 캔만 사 왔네.”

“다른 분도… 계셨네요?”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해서.”

“나랑 저녁 약속이….”

“이 약속이 먼저였는데? 우리 먹는데 온다길래 그러라고 한 건데.”

“아….”

그녀가 머쓱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박서윤과 신나리도 일어서서 돌아섰다. 엠투는 엎드린 상태로 고개만 들었다.

선우현이 설명했다.

“이쪽은 박서윤, 신나리. 이 건물 주민. 저쪽은 조세핀. 오늘 저 아래에 있는 건물로 이사 왔습니다.”

조세핀은 당황했다. 그녀는 본인의 미모에 자신이 꽤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박서윤을 보자마자 기가 팍 죽었다.

그녀가 물었다.

“혹시 영화배우?”

선우현이 대신 대답했다.

“그냥 회사원입니다.”

“아니, 왜 배우를 안 하고….”

“능력 있습니다.”

“능력까지 있어요? 세상에.”

신나리도 당황했다. 그녀는 손님이 온다는 것만 알았지 외국 여자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건 그럴 수 있었다.

그녀가 당황한 건, 조세핀과 선우현이 영어로 대화한다는 부분이었다.

“와. 옥상 오빠. 영어 잘하네요? 혹시 영어만 공부하다 망한 케이스인가?”

“넌 저녁 먹기 싫지?”

“아뇨. 이렇게라도 식비 아껴야죠.”

신나리가 조세핀에게 음식을 권했다.

“두 유 노우 짜장면?”

“왓?”

“일단 트라이. 트라이.”

선우현이 말했다.

“나리야. 너 그 영어 실력으로 어떻게 그 학교 갔냐? 수능 볼 때 잘 찍었냐?”

“외국인 앞에서는 입이 마비되는 병이 있어서 그래요.”

“그래. 그러시겠지.”

◈          ◈          ◈

덕구파 천 실장이 부하의 보고를 받고 인상을 찌푸렸다.

“스래곤 사장이 옥탑방에 살아?”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펜트하우스 아냐?”

“아닙니다. 오래된 4층 건물의 옥상 옥탑방입니다.”

“스래곤 사장이 도대체 왜?”

부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사장이 아닌 거 아닐까요?”

천 실장도 자세한 건 모른다. 박재곤 의원을 통해 선우현이 사장이라는 것만 들었다.

“내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군.”

◈          ◈          ◈

천 실장이 덕구파 두목 곽덕구를 찾아갔다.

곽덕구가 보고를 받은 후에 인상을 썼다.

“바지사장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스래곤을 순식간에 인수한 진짜 사장이 허름한 건물 옥탑방에 살 리가 없으니까요.”

곽덕구나 천 실장은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당장 덕구파만 해도 여자를 부를 수 있는 고급 술집을 차려서 바지사장을 세워놓고 장사하곤 했다.

지금은 그 술집도 경찰에게 탈탈 털려 문을 닫았다.

그런데 그 술집의 온갖 불법 혐의를 뒤집어쓰고 경찰에 체포된 건 곽덕구나 천 실장이 아니라 바지사장이다.

그 바지사장은 경찰에 체포될 때를 대비해서 세워놓는 허수아비였다.

“그러면 그놈은 스래곤의 바지사장이 맞을 거야. 박재곤은 그런 것 하나 제대로 알아보지도…. 젠장.”

“어떻게 할까요?”

“뒤에 진짜 전주가 누구인지 알아내야지. 준비는?”

“입이 무거운 애들로 모았습니다. 청부업자도 준비했습니다.”

곽덕구가 지시했다.

“그러면 바지사장도 계획에 포함하자. 슬슬 시작해.”

◈          ◈          ◈

이틀 뒤 밤에 선우현이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난 이 동네가 참 좋은데 아쉬운 것도 있다. 맛집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 선장님은 이사 가시면 안 됩니다. 건물 4층에 스마트 농장 만들어놓으신 데다가, 언덕 꼭대기라 방어하기 좋습니다. 방어 포탑도 이미 옥탑방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이사 간다는 게 아니야. 이 동네에 맛집이 많이 들어오게 하고 싶다는 거지.”

- 아예 몇 개 차리시게요?

“그건 아니지. 남이 만들어주는 걸 먹어야 더 맛있으니까. 내가 직접 차리면, 설사 내가 요리하지 않는다 해도 좀 그렇지.”

- 선장님. 조세핀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응? 그 아가씨가 이제 나 미행하나?”

- 지금 퇴근하는 것 같습니다만?

“아. 그렇겠구나.”

선우현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조세핀이 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게 더 빨랐다.

“어머! 선우현 씨. 나 마중 나온 거예요?”

“그럴 리가.”

“아닌 척해도 다 알아요.”

“하나도 모르는 것 같은데.”

선우현이 위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집에나 가요. 난 산책 중이니까.”

“산책 좋죠. 같이 해요. 나 아직 이 동네를 잘 몰라요.”

“그냥 가는 게…. 아니다. 같이 가는 게 낫겠다.”

조세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역시 내 미모는 한국에서도 먹히는구나.’

“가요.”

선우현이 골목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이 시간까지 일합니까?”

“내가 파견 온 부서는 직원이 나밖에 없으니까요. 업무에 적응하려면 봐야 할 게 많아요.”

“나사도 일을 참 주먹구구로 하네요.”

“정규 지사가 아니라서 그래요. 물론 선우현 씨처럼 파트 타임은 아니고요.”

“나는 파트 타임이…. 음. 일하는 시간을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 파트 타임 사장이라니. 반성하시죠.

“수선아. 내가 할 줄 모르는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반성이야.”

“뭐라고 했어요?”

“혼잣말입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좀 전부터 어슬렁거리던 놈들이 골목 앞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선장님 쪽으로 접근 중입니다. 포위됐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좀 돌아다녀 봤는데, 역시구나.”

- 그러게 말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손님도 있지만.”

선우현이 손님 조세핀에게 말했다.

“내가 조세핀을 집에 먼저 보내지 않은 건, 지금 나랑 만난 후에 혼자 가면 그게 더 위험할 수 있어서입니다.”

“네? 서울의 밤거리는 안전하다고 들었는데요?”

“원래는 안전한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가끔 예외가 있어서.”

선우현이 지금 걷고 있는 골목은 한쪽에는 축대가, 다른 쪽은 불이 꺼진 건물 벽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CCTV도 없고 목격자도 없다.

선우현이 골목 앞쪽을 가리켰다.

“포위했,아니지.포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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