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13화 (213/281)

213. 조세핀 II

나사 직원 조세핀은 당황했다.

“알죠. 라면이 뭔지는 당연히 아는데….”

선우현이 한강 편의점 즉석 조리기에서 라면을 끓이며 달걀도 하나 넣었다.

“취향이?”

“네? 무슨 취향이요?”

“달걀 어떻게 넣어 먹냐고요. 깨는 타입? 안 깨고 넣는 타입? 안 넣는 타입?”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럼 그냥 넣는 거로 먼저 먹어봐요.”

선우현이 라면 두 개를 편의점 근처 야외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내가 사는 겁니다.”

“여기서 먹어요?”

“두 유 노우 김치도 해야 하나?”

“맛만 볼게요.”

조세핀이 라면을 한 젓가락 먹은 후에 말했다.

“어머. 맛있네요?”

“맛있다니까.”

선우현은 전자레인지에 돌린 핫바도 같이 먹으며 물었다.

“세미나에 참석하러 온 김에 겸사겸사 나를 만난 겁니까?”

조세핀이 고개를 단호하게 옆으로 흔들었다.

“아뇨. 선우현 씨를 만나러 온 김에 세미나도 참석한 거예요. 그래서 출장 경비 처리가 가능했죠.”

“머리 잘 썼네.”

- 나사도 예산이 줄줄 새는군요.

“그런데 세미나 장소에 선우현 씨가 안 계시더라고요. 그 세미나에 스래곤에서도 참석한다고 해서, 오실 줄 알았는데요.”

“난 그런 거 원래 잘 안 가서.”

- 가서 들으면 아시겠습니까?

“나 지구연합 출신이야. 아는 게 있을걸?”

- 선장님께 질문이 들어오면 대답은요?

“내가 그래서 안가.”

조세핀이 물었다.

“김정수 이사님에게 들으니까, 선우현 씨는 출근을 자주 안 하는 자리에 있다고….”

“그렇죠.”

- 선장님이 논다는 소문이 미국까지 났군요.

조세핀이 제안했다.

“나사로 오세요.”

“잉? 갑자기?”

조세핀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스래곤은 선우현 씨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프리랜서 비슷한 일을 맡겼겠죠. 내가 스래곤 사장이면 당장 팀장 자리를 줬을 거예요.”

선우현이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고. 팀장이라니. 그건 아니지요.”

- 선장님. 사장에서 팀장이면 도대체 몇 단계가 강등되는 겁니까?

“수선아. 네가 여신에서 엔젤로 강등된 기분이 이런 거구나.”

조세핀은 선우현이 좋으면서 아닌 척하는 줄 알고 더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나사로 오면 제대로 일할 수 있어요.”

“응? 제대로라니?”

“당신의 능력을 최대로 펼칠 수 있다고요.”

“내가 일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네?”

“능력을 최대로 펼치려면 일도 최대로 해야겠네. 나는 그런 거 싫어합니다.”

조세핀은 당황했다.

“아니, 그게 무슨….”

“그리고 오늘은 일 이야기는 안 하기로 했을 텐데?”

“그야….”

“핫바도 하나 드실?”

“아…. 네. 주세요.”

◈          ◈          ◈

조세핀은 선우현을 만나 라면과 핫바만 얻어먹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러려고 한국에 갔던 게 아닌데.”

나사에 돌아온 후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남아 있었다.

최근에 우주왕복선과 대원들이 통째로 날아갈 뻔한 사건이 있었다. 그녀는 한국 회사 스래곤의 경고를 무시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인명피해를 막았다.

그렇게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이 상쇄돼 그녀는 간단한 경고 외에는 징계를 받지 않았다.

문제는 앞으로 그녀가 해야 할 일이다.

상부에서는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그녀가 기존 업무를 계속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녀의 상관이 말했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은 그만둬야 할 거야.”

“나사에서 잘리는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다만, 나중에 지금 자리로 복귀하더라도 당분간은 다른 일을 하는 게 조세핀한테도 좋잖아. 그러니까 부서 이동이지.”

그녀가 잠깐 생각하다 물었다.

“그럼 어디로 갈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나요?”

“그거야 원하는 부서에 자리가 있고 그쪽에서도 오케이 하면 가능한데….”

“나사 내부 부서가 아니에요.”

“그럼? 워싱턴으로 가고 싶은 거야?”

“한국으로 파견 신청을 하고 싶어요.”

상관이 눈을 깜빡였다.

“응? 한국에 우리 시설이….”

상관의 반응이 떨떠름한 걸 보고 그녀가 얼른 설명했다.

“연구나 관측을 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한국 정부기관이나 민간 연구소들과 업무 협의를 담당하는 팀이 있을 거잖아요. 한국에 가서 그 일을 하고 싶어요.”

상관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그런 거라면 꼭 우리 시설이 아니어도 되겠네? 우리는 없을 수 있어도 정부에서 보낸 팀은 한국에 있겠지. 내가 한국 쪽에 빈자리가 있는지 알아보지.”

◈          ◈          ◈

스래곤은 나사에 여러 가지 물품을 납품하기로 했다. 벌써 부품 몇 개와 상품 몇 개는 나사에 테스트해보라고 제공했다.

나사만이 아니라 미국 항공 장비 회사들도 바이어를 스래곤에 보냈다.

며칠 만에 출근한 선우현에게 임원들이 자랑했다.

“계약 실적이 쑥쑥 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미국 항공기 회사와 협의하는 중입니다.”

“홍보가 먹히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국방부에서 정찰형 매순이는 언제 만들어줄 거냐고 문의가 왔습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응? 매순이요?”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나라 군대가 정찰형 매순이를 원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에서 개발하고 있을 텐데요?”

스래곤 연구소 김정수 이사가 대답했다.

“양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릴 듯합니다.”

“난 프로토타입을 금방 만들었는데.”

“그러니까 사장님이 개발팀을 도와주시면 더 빨리 양산에 성공할 수 있….”

선우현이 얼른 말을 바꾸었다.

“오래 걸리더라도 확실히 만들어요. 직접 해봐야 실력이 늘지.”

“알겠습니다.”

홍보 담당 이사가 말했다.

“우리 회사의 이름이 인터넷에 언급되는 비율이 예전의 열 배 이상 늘었습니다. 회사 인지도가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주가조작 사건 때보다 더 늘었습니까?”

“예? 아니요. 그거는 빼고, 일반적인 상황과 비교했을 때….”

“에이. 난 또.”

김정수 이사가 보고했다.

“나사 쪽의 위성 궤도 추적시스템 공동 연구 제안은 거절했습니다.”

“그건 어차피 안 되는 겁니다. 내 계산법은 상황에 따라 달라져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건 무리니까.”

다른 이사가 말했다.

“지금 논의되는 주문이 절반만 체결돼도 현재 시설로는 다 처리할 수 없습니다. 공장 증설이 필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하하.”

“공장 더 지으려면 돈 더 벌어야겠네요.”

◈          ◈          ◈

선우현은 이사들이 구내식당 밥을 먹어야 밥맛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사들도 외부 약속이 없으면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이사들은 처음에는 불만이 좀 있었는데 요즘은 만족하는 편이었다.

이사 두 명이 구내식당 한쪽에 앉아서 밥을 먹으며 말했다.

“작은 출장 뷔페 업체를 아예 인수해서 구내식당과 통합시킬 때만 해도 돈을 허투루 쓰는 줄 알았는데.”

“맛있네.”

“구내식당에 예산을 쏟아붓고 있으니까.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써서 그런지 더 맛있어.”

“어지간한 식당보다 여기가 낫지.”

두 사람은 다른 이야기도 꺼냈다.

“은행에서 공장 증설을 위한 사업자금 대출을 추가로 해줄 테니까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더라.”

다른 이사가 말했다.

“대출 더 내줄 수 없다고 외면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러게 말이야.”

이사가 구내식당 밥을 보다가 식당을 둘러보았다. 밥을 먹는 직원들의 표정이 밝았다.

“사장님 한 명 바뀌었다고 회사 상황과 분위기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나?”

“나도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

◈          ◈          ◈

박서윤은 스래곤에 출근할 때는 비서실장이지만 길성에 출근할 때는 비서실 대리로 일한다.

그녀는 원래도 길성 비서실에서 박길성 회장을 보조하는 일을 자주 했다. 요즘은 전보다 박길성의 곁에서 일하는 때가 더 많았다.

박길성 회장이 말했다.

“스래곤이 요즘 잘나가더구나.”

박서윤이 서류를 챙기던 손을 멈추고 대답했다.

“네. 성장 속도가 놀라울 정도입니다.”

“선우현 씨는 일은 열심히 하나?”

“며칠에 한 번 출근합니다.”

그건 딱히 비밀이 아니다. 선우현이 출근하는 날이 많지 않다는 건 스래곤 직원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박길성이 웃었다.

“선우현 씨가 회사에 매달려 열심히 출근하는 모습은 상상이 안 가기는 해.”

“그건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성과를 낸단 말이지.”

“대단한 분입니다.”

박길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원래 알고 있었지. 활력 토마토만 해도….”

활토는 건강 문제로 은퇴까지 고려하던 박길성이 다시 활발하게 움직여 회사를 장악하게 해주었다.

그는 요즘은 일주일에 서너 개의 활토를 받는다. 그걸 먹은 날은 이십 년쯤 젊어진 것처럼 활동량을 늘려도 부담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활력이 늘어난 상태로 활동했더니 자연스럽게 건강도 많이 회복됐다. 이제는 활토를 먹지 않는 날도 충분히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박길성이 말했다.

“보약도 그런 보약이 없지. 산삼보다 나아. 내가 활토를 먹고 건강을 회복한 걸 보고, 다른 기업가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더군.”

다른 기업가들은 활토를 일주일에 하나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기업가 중에는 박길성과 최종훈만 특별대우였다.

◈          ◈          ◈

박길성은 활력이 넘치게 움직이면서 그동안 본사는 물론이고 계열사를 수시로 찾아가 탈탈 털었다.

길성 계열사 이사 두 명이 퇴근 후에 술을 마셨다. 이사가 상무에게 물었다.

“상무님. 회장님이 저렇게 건재하시니까, 경영권 승계는 물 건너간 거겠지요?”

“말이라고 하냐? 이미 자제분들한테 줄 섰던 임직원들이 상황을 깨닫고 돌아섰어. 김 이사도 빨리 결정해.”

김 이사도 줄을 서긴 했다.

“그래도 어떻게 갑자기….”

상무가 혀를 찼다.

“김 이사는 모르지? 회장님 성격이 옛날에 얼마나 엄청나셨는데. 계열사들을 왜 털고 다니실 것 같아? 걸리는 놈 있으면 몇 명이 됐든 목을 날리실 거야.”

“헉.”

“김 이사는 지금 목이 간당간당해. 그걸 지금 본인만 몰라.”

당황한 김 이사가 물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장님 밑으로 다시 줄을 서야지. 당연한 거 아니야? 옛날엔 다들 그 줄을 섰어.”

◈          ◈          ◈

박길성은 활토 덕분에 본사와 계열사를 도로 장악했다. 아들 두 명은 여전히 상당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지만, 박길성의 권력은 그 두 명의 위에 있었다.

그런데 박길성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음….”

JHC 테크 사장 최종훈이 물었다.

“고민이 있으십니까?”

“이제 서윤이에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박서윤 대리가 사실은 박 회장님의 딸이라는 거 말입니까?”

박길성은 그걸 비서실장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회사 내부인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박서윤의 일로 도움이 필요할 때는 최종훈에게 부탁했다. 최종훈은 회사 외부인이면서 박길성과 개인적으로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낸 사이다.

박길성이 말했다.

“서윤이에게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아. 내가 너무 미안해서.”

“박 회장님은 딸이 있다는 걸 몰랐잖습니까?”

“내가 죄가 많아. 다 내 탓이야.”

“박서윤 씨의 나이를 보면, 그때는 박 회장님이 이미 돌싱이 되신 후입니다. 그러면 불법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게 있어. 그래서 입이 떨어지지 않아 계속 미루게 돼.”

최종훈은 더 보채지 않았다.

“부녀간의 일은 박 회장님이 결정하셔야죠. 저야 뭐, 당사자가 아니니까요.”

◈          ◈          ◈

나사 직원 조세핀이 선우현을 만났다.

선우현이 물었다.

“뭐지? 왜 아직 한국에 있습니까? 돌아간 줄 알았는데?”

“나사로 돌아갔다가 다시 한국에 파견 왔어요.”

“갑자기?”

“그 난리가 났는데 담당자인 내가 계속 그 일을 할 수는 없어서요.”

“잘렸구나.”

“아뇨. 파견 왔다니까요?”

“내가 일자리를 알아봐 줄 수 없는데.”

“내 말 안 듣고 있군요. 그리고 왜 ‘있는데’가 아니라 ‘없는데’죠?”

“그래서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조세핀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선우현 씨는 어디 살아요?”

“그런 게 왜 궁금할까? 아. 일단 밥이나 먹읍시다. 오늘도 내가 사야겠네.”

선우현이 조세핀에게 비빔밥을 사주었다.

조세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음식은 이상해요. 왜 음식을 일부러 뒤섞어서 먹어요?”

“평소에 미국 음식을 먹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 않나?”

“미국 음식이 어때서요? 햄버거가 있잖아요. 프라이드 치킨도 맛있어요.”

“아. 치킨. 두 유 노우 양념치킨?”

“그건 또 뭐죠?”

“나중에 먹어봐요. 맛있습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그래도 미국이 우주에서 먹는 식량은 잘 만듭니다.

“수선아. 네가 먹는 그거 미국 전통 음식이 아닐 거야. 전 세계 음식을 가져다 만들었겠지.”

-그래서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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