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12화 (212/281)

212. 조세핀

선우현이 토마스의 기자회견 영상을 보며 말했다.

“수선아. 너보고 엔젤이란다.”

김수선이 투덜댔다.

- 고릴라처럼 생겼는데도 불쌍해서 구해줬더니, 엔젤이요?

“엔젤이 어때서.”

- 고대 문명의 현지협력자에게 여신으로 숭배받던 접니다. 겨우 엔젤이라니. 목숨을 구해줬는데 도대체 몇 등급이나 떨군 겁니까?

“그러게 말이다. 토마스가 예의가 없네.”

- 괜히 구해줬습니다.

“근데 여신 소리가 얼굴을 실제로 보고 말한 건 아니잖아? 현지협력자가 네 얼굴을 봤으면 여신 소리는 안 나왔지.”

- 선장님. 왜 출근 안 하십니까?

“엔젤. 난 오늘은 놀 거야.”

- 엔젤이라고 하지 마시라고요.

“알았어. 김엔젤.”

◈          ◈          ◈

나사에서는 스래곤의 위성 궤도 분석 능력을 원했다.

“초당 계산 능력은 우리 슈퍼컴퓨터가 월등하겠지. 하지만 계산 속도만 빠르다고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잖아. 소프트웨어가 받쳐줘야 해.”

“맞아. 스래곤은 자기네 시스템으로 사건 이틀 전에 위험을 예측해냈어. 그 분석 기술을 우리 슈퍼컴퓨터에 적용하면, 훨씬 더 놀라운 결과가 나올 거야.”

그래서 나사는 인공위성 고도의 추적시스템 업그레이드 사업에 스래곤의 참여를 제안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사 간부가 당황했다.

“스래곤에서 우리 제안을 거절했다고?”

“예. 정중히 거절한다고….”

“거절한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그 충돌은 우연히 알아낸 거라서, 같이 연구하기 어렵다면서 거절했답니다.”

“그게 정말 우연이었나?”

담당자가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예측 경로와 시간이 너무 정확했습니다.”

“그러니까 스래곤은 기술 이전이 싫다는 거군.”

“당연히 그렇겠지요. 기술을 넘겨주고 나면 남는 게 없으니까요.”

“명성이 있잖아! 우리와 기술제휴를 했다는 명성!”

“그게 우리 예상만큼 필요한 건 아닌가 봅니다.”

다른 간부가 물었다.

“한국의 스래곤이 우리 쪽에 부품을 납품하고 싶어 한다더니? 그런 처지에 이렇게 나와도 되나?”

“제가 그걸 슬쩍 떠봤습니다만, 자기네 물건을 받기 싫으면 말라던데요.”

나사 간부가 불평했다.

“오만하군.”

다른 간부는 생각이 달랐다.

“그럴 자격이 있지. 이번에 스래곤에서 경고해주지 않았으면, 우주왕복선과 대원들은 물론이고.”

그가 회의실을 돌아보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반쯤은 목이 달아났을 테니까.”

“그거야 뭐…. 인정 안 할 수가 없군.”

“납품 건은 긍정적으로 판단해보자고. 부품이 기준 스펙을 통과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안 쓸 이유는 없잖아.”

“하긴. 그래야 다음에 급할 때 다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간부가 목소리를 슬쩍 낮추었다.

“이번 일의 공식 발표를 조금만 늦춰달라고 슬쩍 부탁할 수도 있고.”

다른 간부가 맞장구쳤다.

“스래곤이 이번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결국 알려지겠지만, 그 시기를 늦춰주기만 해도 우리야 고맙지.”

“그게 알려질 때쯤에는 과거의 실수는 지난 일이 되고 영웅만 남아 있을 테니까.”

◈          ◈          ◈

선우현이 며칠 뒤에 회사에 출근했다.

회의실에서 영업 담당 이사가 활짝 웃으며 보고했다.

“나사에 우리 제품을 직접 납품하기로 했습니다. 위성 수리용 부품은 물론이고, 지상에서 사용하는 제품도 여러 가지 공급할 예정입니다”

그럴 예정이긴 한데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 조건이 걸려 있었다.

“물론 품질 테스트를 통과한다는 조건입니다만.”

그렇게 납품을 해도 회사의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꽤 쏠쏠하긴 한데, NASA 한곳과 거래하는 것만으로 회사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대신에 다른 쪽으로 시너지가 발생한다.

홍보 담당 이사가 말했다.

“우리 회사가 나사에 여러 부품과 제품을 직접 납품한다는 걸 적극적으로 홍보하겠습니다. 고객사들의 반응이 좋을 겁니다.”

“좋군요.”

“거기다 사장님이 이번 사태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다는 걸 알리면….”

영업 담당 이사가 말렸다.

“잠깐만. 나사에서 그건 당분간은 좀 자제해달라고 비공식적으로 요청했습니다. 발표하더라도 사태가 수습된 후에 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사장님이 해결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저쪽에서도 양해를 부탁하는 거 아닙니까?”

선우현이 말했다.

“그냥 원하는 대로 해줍시다. 이걸로 시끄러워지면 나도 피곤하니까.”

- 어떻게 계산했는지 누가 물어보면 대답할 방법이 없는 거겠죠.

“그러니까 피곤하지.”

선우현이 이사들에게 말했다.

“내 이야기는 빼도 되니까, 회사가 단물을 쪽쪽 빨아먹읍시다.”

◈          ◈          ◈

선우현은 하루 나왔다고 또 며칠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회사 일에 아무도 신경을 안 쓴 건 아니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 지난 며칠간 선장님이 회사에 안 계실 때 이사들이 어디서 모이거나 외부에서 누구와 만나는지를 체크했습니다. 딱히 수상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선아. 내가 너 믿는 거 알지? 나 오늘도 놀아도 되지?”

- 저 믿지 말고 출근하시라고요. 체크 작업을 확 그만두는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출근하려고 했어. 진짜야.”

선우현이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김정수 이사가 찾아왔다.

“사장님. 나사에서 자체적으로 위성 궤도 추적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생각인가 봅니다.”

“알아서 잘하라고 하세요.”

“데이터를 비교하겠다면서, 현재 위성 궤도에 있는 물체 몇 개의 경로만 예측해 달라고 하던데, 어떻게 할까요?”

“지난번처럼 좌표 찍어달라는 겁니까?”

“예. 그 정도만 해줘도 될 겁니다. 자기들의 예측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하니까요.”

선우현이 피식 웃었다.

“그게 아니겠지요. 유사시에 나한테 추적 계산을 맡겨도 되는지 확인하려고 하나 보네.”

“아….”

“뭐, 그 정도는 어려운 건 아닌데, 맨입으로?”

“예?”

“뭐지? 진짜 나사에서 맨입으로 요구한 건가? 내가 그 사람들한테 쉽게 보였나?”

“정식으로 제안하라고 다시 요청하겠습니다. 물론 비용은 받아야지요.”

◈          ◈          ◈

나사 담당자들이 스래곤에서 보내준 예측 궤도 좌표를 확인했다.

“다른 건 다 같은데, 여기 이건 사흘 후에 오차가 생기네.”

“어느 쪽이 맞는 걸까?”

“두고 보면 알겠지.”

“이번에도 스래곤이 맞는다면?”

“지난번 일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뜻이지. 유사시에는 도움을 요청해야겠어.”

“우리 추적시스템에 결함이 있는 게 확실해졌으니까 서둘러 업그레이드해야겠군.”

“스래곤에서 해냈으니까 우리도 할 수 있겠지.”

◈          ◈          ◈

스래곤이 나사에 부품과 일부 제품을 직접 납품한다는 기사가 떴다.

그것 자체는 일반인에게는 큰 이슈가 아니다. 그저 그 회사가 기술력이 좀 있나 보다 하는 정도의 인식만 주었다.

반면에 스래곤 주주들에게는 그런 기사가 중요했다. 그 기사가 나면서 스래곤의 주가가 더 올랐다.

남미연은 스래곤의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녀가 주가를 확인하며 방긋 웃었다.

“주식을 따라서 산 것뿐인데 내 재산이 계속 늘어나네? 역시 선우현 씨하고는 평생 친하게 지내야겠어.”

◈          ◈          ◈

나사 직원 조세핀이 한국에 들어왔다.

그녀의 공식 일정은 한국에서 열리는 세미나 참석이었다. 그 세미나에는 스래곤 연구소의 김정수 이사도 참석했다.

김정수가 조세핀을 힐끗거렸다.

‘예쁜데?’

그러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조세핀이 김정수 쪽으로 걸어왔다.

김정수는 깜짝 놀라 시선을 피했다.

‘훔쳐봤다고 따지러 오는 건가?’

“김정수 이사님?”

상대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김정수는 당황했다.

“어? 누구…. ”

“나사의 조세핀이에요. 우리 통화 자주 했죠?”

김정수가 활짝 웃었다.

“아. 조세핀. 실제로 보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저도 그러네요. 지난번에는 고마웠어요.”

김정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내 얼굴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우리 쪽에 이사님 동창이 있던데요.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줬어요.”

“아. 그 친구. 같이 대학을 다녔습니다. ”

그녀가 주변을 슬쩍 보았다. 엿듣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도와주신 덕분에 우리 대원들이 무사히 귀환했어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정말 큰 도움이 됐죠. 그런데요.”

그녀가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분은 안 오셨나요?”

“누구….”

“우주 쓰레기와 인공위성의 충돌, 그리고 파편의 비산 방향까지 계산한 분이요.”

“어…. 그분이 누군지 모르십니까?”

“전화통화만 했어요. 누군지는 당연히 모르죠. 이름도 안 가르쳐주던데요?”

“CIA나 뭐 그런 곳을 통하면….”

조세핀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평범한 나사 직원이에요. 제가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알아요?”

“하긴. 그렇겠네요.”

김정수는 선우현이 사장이라는 걸 말해도 되나 잠시 망설였다.

‘아니다.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다는데, 내가 함부로 결정하면 안 되지.’

“직접 전화해보시죠. 만날 수 있는지.”

“지금은 근무시간일 텐데요?”

“출근을 자주 하지는 않는 분이라서.”

“아. 프리랜서인가요?”

“아니요. 그냥 출근을 가끔 하십니다.”

조세핀은 당황했다.

“네? 왜요?”

“혹시 만나주시거든, 직접 물어봐요. 왜 그러시는지. 나도 궁금하니까.”

◈          ◈          ◈

김수선이 선우현에게 보고했다.

- 선장님. 요즘 옥탑방 건물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가끔 보입니다.

“누군데?”

- 모르겠습니다.

“여기를 감시하나?”

-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가끔 목격되긴 합니다.

“수선아? 누군지 추적은 안 해봤나 봐?”

- 바빠서 그렇습니다.

“우주식 먹느라 바빠서?”

김수선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 이번에 입수한 보급품에 튜브 타입 우주식만 있는 게 아니더군요. 전부 다 밀봉형 즉석 식량이기는 한데, 재료가 분리 가능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걸 조합해서 요리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 선체에 조리도구가 있냐?”

- 만들어야죠. 발열 장치와 프라이팬 정도는 만들 수 있습니다.

“에너지와 자원이 항상 모자란다더니?”

- 선장님만 지상에서 좋은 거 혼자 드시니까 좋습니까?

“냄비도 하나 만들어. 끓여 먹는 것도 맛있어. 이번에 보급품이 생겼으니까 그 정도는 낭비할 수 있잖아.”

- 낭비라니요? 필수품입니다.

“그래. 조리도구 만들고 요리도 해서 먹어라. 그러고 나서 다음에 또 어슬렁거리는 사람을 보면 추적해봐. 어디서 왔나 보게.”

- 당연히 그러려고 했습니다.

“퍽이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를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스팸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잠시 후에 문자가 날아왔다. 전화를 받아달라는 문자였다.

“응? 그 나사 직원이네?”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여보세요.”

- 통화가 참 힘드네요.

“이거 국제전화가 아닌데?”

- 세미나 참석차 한국에 왔어요. 온 김에 당신을 만나보고 싶어서요.

“나 만나서 뭐하게요?”

-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요. 어떻게 그런 계산을 했는지, 이론적 배경은 뭔지, 도대체 정체가 뭔지.

그중 단 하나도 알려줄 수 없다.

“세미나 잘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요.”

- 네?

“우주왕복선이 또 위험해진 것도 아닌데, 회사 밖에서 일 이야기하는 거 안 좋아해서.”

- 아니, 그래도.

“잘 가요.”

- 자, 잠깐만요! 그럼 일 이야기는 안 할게요!

“음….”

- 그냥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래요!

“굳이?”

- 고마워서!

“음…. 그러면 뭐, 밥이나 먹읍시다.”

- 좋죠!

“한강 공원으로 와요.”

- 네? 공원이요?

◈          ◈          ◈

조세핀은 한강 공원에서 선우현을 기다렸다.

“밥을 먹자고 하더니 왜 여기로….”

선우현이 조세핀에게 다가왔다.

“혹시 나사?”

“아! 맞아요. 그럼 당신이 혹시….”

“오늘 밥 먹자고 한 사람 맞습니다.”

“제가 아직 이름을 모르네요. 저는 조세핀이에요.”

“선우현.”

그는 지금까지는 조세핀에게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그동안은 전화통화만 하고 사건이 터졌을 때 필요한 정보만 주고받고 끝낸 관계였다.

조세핀이 인사했다.

“덕분에 대원들이 모두 무사히 귀환했어요. 다들 선우현 씨한테 엄청 고마워해요.”

“말로만?”

“네?”

“밥이나 먹읍시다. 그러고 보니 밥도 내가 사네.”

선우현이 편의점에서 라면을 두 개 샀다. 그걸 즉석조리기로 끓이며 말했다.

“역시 이건 여기서 먹어야 더 맛있다니까.”

조세핀은 당황했다.

“이게 뭐….”

“두 유 노우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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