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엔젤
지표면이나 하늘이 아니라 인공위성 궤도에서 조난자가 발생했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특별한 일이다. 거기다 나사가 우주 조난자 구출작전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
일부 방송국은 그 영상을 받아 TV로 중계했다. 그렇게 지구 전체에 구출 영상이 퍼졌다.
나사 직원이 그 작업에 참여한 동료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인터넷으로 생중계할 생각을 한 거야? 그런 거 승인받기 어려웠을 텐데.”
동료가 그걸 결정한 건 아니지만, 내막은 알고 있었다.
“우주 쓰레기와 오래된 민간 인공위성의 충돌 말이야. 이미 며칠 전에 외부에서 그 사건을 예측한 회사가 있대. 우리 쪽 담당 부서는 미리 경고도 받았다더라.”
“어? 그런데 왜 미리 대응하지 않은 거야?”
“안 믿었으니까. 나사의 슈퍼컴퓨터는 그 두 추적 대상이 충돌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거든.”
“나사가 틀렸네. 그 회사가 맞았고.”
“심지어 그 회사는 충돌 후에 파편이 우주왕복선을 덮친다는 것까지 계산해냈대.”
“실력이 진짜 대단한데? 회사 이름이 뭐야?”
“드래곤은 아니고 그 비슷한 이름이었는데…. 한국 회사인 건 확실해.”
“그 회사가 아니었으면 여러 사람 목이 날아갔겠구나.”
“만약 토마스가 죽었으면 담당자와 윗선 몇 명은 해고가 문제가 아니라 기소됐을걸? 우주왕복선이 터졌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그 사람들은 진짜 죽다 살아났네. 그런데 그게 이번 인터넷 생중계와 무슨 상관이야?”
동료가 주변을 슬쩍 보았다.
“실수를 성공으로 덮는 거지. 구출작전이 성공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나사가 얼마나 많은 환호를 받았어?”
질문한 직원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었다.
“아! 그걸로 퉁 치자는 거구나.”
“그렇지. 공을 크게 세웠으니까 실수는 덮어달라는 거지. 담당자가 다 처벌받으면, 나사가 받은 칭찬이 퇴색되잖아.”
“이제야 이해가 간다. 왜 갑자기 생중계를 하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어서 생중계한 거지.”
“그런데 말이야.”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만약 구출작전이 실패했으면….”
◈ ◈ ◈
나사 간부가 회의실에서 말했다.
“인터넷으로 생중계까지 했는데 구출에 실패했으면, 그 결과는 끔찍했을 거야.”
“그때는 몇 명의 목이 달아나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지. 나사에 피바람이 불었을걸?”
나사에서 중계한 우주 조난자 구출 영상은 굉장한 시청률을 올렸다.
나사 간부가 조세핀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구출작전이 성공한다고 확신할 수 있었지?”
조세핀은 회의실에 불려와 있었다. 오늘 회의는 징계나 포상을 의논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앞으로의 대응을 위해 상황을 되짚어보는 자리였다.
위성 궤도 추적팀의 담당자인 조세핀이 대답했다.
“이번 사태를 사전에 예측한 한국 스래곤의 과학자에게 전화로 물어봤습니다. 구출작전의 성공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할 수 있냐고 물었죠.”
“확률이 높다던가?”
“반드시 성공할 거라더군요. 그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생중계를 진행하는 쪽에 한 표를 던진 다른 간부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동의했지. 사실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믿는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가 나태해서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한 게 아니야. 우리가 판단한 근거는 슈퍼컴퓨터의 계산이었어.”
“그건 우리 생각이지. 여론은 보통 결과를 보고 움직여. 우리가 나태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면, 이번에는 무능력하다고 비난했겠지. 그러면 나사에 피바람이 부는 건 마찬가지야.”
“그건 그렇지.”
“그래서 생중계라는 도박을 했는데.”
나사 간부가 대형 화면을 보았다. 우주왕복선이 지구로 귀환하고 있었다.
“성공했잖아. 저 사람들은 영웅이 됐고, 아무도 안 죽었어.”
구출에 성공한 우주왕복선 승무원들은 물론이고, 인공위성 궤도에서 사고로 조난됐다가 구출된 토마스에게도 찬사가 쏟아졌다.
나사는 몰라도 대원들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경고를 듣자마자 최선을 다해 탈출했고, 구출작전도 성공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다른 간부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 실수는 최소한의 징계로 덮을 수 있게 됐지. 다행이야.”
조세핀은 한국 업체 스래곤의 경고를 처음에는 무시했었다. 그것 때문에 징계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스래곤의 경고를 뒤늦게라도 적극적으로 알리고 다녔다. 덕분에 우주왕복선과 대원들이 살아남았다.
게다가 그녀가 스래곤의 정보를 무시한 것도 독단적인 판단은 아니라고 결론이 났다.
그녀는 외부 회사보다 NASA 자체 시스템의 판단을 더 신뢰했다. 다른 사람이 그녀의 위치에 있었어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을 거라는 것도 참작됐다.
실제로 간부 몇 명은 그녀의 주장을 처음에는 무시했었다.
조세핀이 말했다.
“스래곤이 문제 삼지 않는다면 그렇겠죠. 미리 계산하고 예측하고 경고까지 했는데, 이대로 넘어가면 가만히 있을까요?”
나사 간부가 물었다.
“그 회사는 원하는 게 뭐래? 권한 남용만 아니면 긍정적으로 검토하자고. 신세를 졌으면 갚아야지.”
◈ ◈ ◈
선우현이 오전에 옥탑방 옥상에서 뒹굴면서 말했다.
“수선아. 오늘도 출근하면 너무 자주 회사에 가는 거 아니냐? 그러면 직원들이 불편해할 거야.”
- 그게 무슨 씨도 안 먹히는 핑계이십니까?
“잠깐. 네 목소리가 왜 이상하지? 너 혹시 지금 뭐 먹냐?”
- 간식 먹는 중입니다.
“또? 우주식량이 그렇게 맛있냐?”
- 진짜 맛있습니다. 에너지바와는 비교도 못 할 정도입니다.
“그걸 너무 자주 먹으면, 다 떨어진 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김수선이 정색하고 말했다.
- 그렇게 되기 전에 선장님이 우주왕복선 회사를 손에 넣고 화물을 가득 실어서 여기로 보내주셔야죠.
“어…. 그렇지. 당연히 그래야지.”
- 그런 의미에서 냉큼 출근하십시오.
“가려고 했어.”
- 아직 일어나지도 않으셨습니다.
◈ ◈ ◈
선우현이 스래곤에 도착했다.
비서실 직원들은 선우현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평소보다 일어나는 속도가 빨랐다.
“음? 뭐지?”
선우현이 카페에서 산 커피 두 잔을 들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박서윤이 따라왔다.
“서윤 씨. 비서실에 무슨 일 있습니까? 오늘은 느낌이 좀 다른데?”
“이번 우주왕복선의 조난자 구출 사건에 사장님이 큰 도움을 주셨다면서요. 비서실 직원들이 그 사실을 알고 감탄해서 그런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비서실이니까요. 회사를 통해서 나사에 경고했으니까 비서실이 아는 건 당연하죠.”
“하긴.”
◈ ◈ ◈
선우현이 임원 회의에 들어갔다.
임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쳤다.
“사장님의 놀라운 업….”
선우현이 말했다.
“나 이런 분위기 싫어하는데.”
즉시 박수 소리가 사라졌다.
“다들 앉으시죠.”
연구소 김정수 이사가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사장님이 대단한 과학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모를 줄 알았습니다. 김 이사님은 내 계산을 안 믿었으니까.”
“처, 처음에만 조금 덜 믿은 겁니다. 계산 결과가 워낙 파격적인 결론이라….”
“뭐, 운이 좋았습니다. 내가 계산한 것 중에 문제의 그 우주 쓰레기가 있었던 건 우연이었으니까.”
- 선장님. 제가 먼저 찾아내고, 그걸 나사 자료와 비교해서 정확히 골라낸 겁니다만?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공식적으로는 우연히 찾아냈다고 해야 하잖아.”
- 그건 그렇습니다.
나사와 연락하는 영업 담당 이사가 말했다.
“사장님. 나사에서 당장 계약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번에 충격을 받았나 봅니다.”
“그래요? 뭘 납품해 달랍니까?”
“나사에서 기존의 위성 궤도 추적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겠다고 합니다. 이번에 계산하는 데 쓰신 이론을 적용할 테니 기술 지원을 해달랍니다.”
“잉?”
- 선장님. 선체의 추적시스템을 이용해 찾아낸 거라서, 구체적인 이론은 모릅니다만?
선우현이 말했다.
“거절하세요.”
“예?”
“안 합니다.”
“사장님. 이건 진짜 좋은 기회입니다.”
선우현이 둘러댔다.
“내가 상황에 따라 직접 계산해서 찾아낸 것일 뿐, 이론으로 정립하지 않았습니다.”
“예? 이론 정립이야 지금이라도 하시면….”
“간단하게 비유하면 이런 겁니다. 그 계산을 하려면 칠판 가득 수식을 적어야 하는데,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른 이론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추적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어렵습니다.”
“이것만 잘해도 앞으로 나사와 좋은 관계가….”
선우현이 갑자기 큰소리로 불평했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그 사람들 너무하네! 우주왕복선 한 척이랑 거기 탄 선원들이 다 끝장날 뻔한 거 구해줬잖습니까? 그거 터졌으면 나사 고위층들 모가지가 남아 있었겠습니까?”
“다 날아갔을 겁니다.”
“그렇게 도와줬으면 먼저 친하게 지내자고 나와야지, 더 안 도와준다고 뭐라고 하면 됩니까?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놓으니까 보따리 내놓으라고 멱살 잡는 건가?”
영업 담당 이사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제, 제가 공식적으로 거절한다고 연락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사에서도 불평은 안 할 겁니다. 좋은 뜻으로 제안했을 겁니다.”
둘러대기에 성공한 선우현이 말했다.
“그럼 뭐 다행이고.”
◈ ◈ ◈
우주왕복선이 귀환한 후에, 나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하는 팀이 움직였다.
그들은 지구로 귀환한 우주왕복선의 상태를 확인했다.
“손상이 여러 곳에 생기긴 했지만, 크게 위험하진 않았군.”
“파편이 덮치기 직전에 탈출했으니까 그렇지. 우주왕복선이 토마스를 구하겠다고 1분만 더 현장에 머물렀어도 어떻게 됐을지 몰라.”
“만약 파편이 덮친다는 걸 더 늦게 알았다면?”
“격추됐겠지.”
그렇게 예측할 수 있지만, 다른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행운이 도와주면 좀 늦게 탈출해도 파편이 빗겨 지나갈 수 있지 않나?”
“차라리 복권을 사. 토마스도 피격당했다는 걸 생각해보라고. 토마스는 왕복선보다 훨씬 작은데도 당했어.”
조사팀은 토마스의 우주복도 확인했다.
“파편에 이 부분을 맞았다는 건데….”
“부품이 아예 뜯겨나갔는데?”
그건 김수선이 일부러 뜯어냈다. 영상 저장장치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상태의 우주복을 입고 어떻게 우주왕복선 쪽으로 날아올 수 있었던 거지?”
“여기를 보면 녹은 자국이 있어. 토마스가 탈출한 후에 남은 연료로 우주복의 방향을 돌렸겠지. 그런 후에 우주복 제어장치가 더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간 걸까?”
“만약 그렇다면, 주인을 살리기 위해 최후까지 노력한 이 우주복의 장렬한 희생이 토마스를 살렸다고 봐야 하나?”
“에이. 그건 좀 너무 간 거 아닌가?”
“역시 그렇지?”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면 홍보팀에서는 좋아하겠군.”
◈ ◈ ◈
토마스는 지상에 내려온 후에 병원의 정밀검사를 받고 나서 나사의 사태 수습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토마스가 해야 하는 일은 공식적인 기자회견과 개별적인 기자 인터뷰, 그리고 TV 토크쇼 등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간부들에게 주의를 받았다.
“엔젤 이야기는 하지 마. 미친 줄 알 거야.”
토마스가 항의했다.
“하지만 진짜 봤단 말입니다.”
“토마스. 혹시 독실한 기독교도인가?”
“아니요. 무교인데요.”
“그런데 왜 자꾸 엔젤 타령이야?”
“봤으니까요.”
간부가 사건 분석 서류를 토마스 앞에 내려놓았다.
“네가 구출될 때는 우주복의 산소가 거의 떨어진 상태였어. 반면에 이산화탄소는 증가해 있었지. 거기다 극도의 스트레스도 받았을 테니까, 엔젤이 나오는 환각을 볼 수도 있지.”
“아니, 그게 환각이 아니라….”
“아니면 극한 상황을 겪으면서 기억에 혼란이 온 거겠지.”
◈ ◈ ◈
토마스는 기자회견에서 그 이야기를 결국 꺼냈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을 때, 날개에서 하얀빛을 뿌리는 엔젤이 나타나 저를 구해줬습니다.”
질문한 기자는 당황했다.
“예? 엔젤이요? 우주에요?”
토마스가 방금 발언을 수습하기 위해 말했다.
“아. 그건 우주복의 낮아진 산소 농도와 높아진 이산화탄소 농도, 그리고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착각한 겁니다. 그래도 그때는 진짜인 줄 알았다는 거죠.”
“그럼 실제로는 뭘 보신 겁니까?”
“저를 구하러 오는 우주왕복선이 그렇게 보였던 게 아닐까 합니다.”
기자가 물었다.
“혹시 당시 영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파편이 우주복을 긁고 지나갈 때 영상 기록장치가 파괴됐습니다.”
토마스가 미련을 가지고 슬쩍 물었다.
“혹시 지상에서 그 상황을 보신 분이 있습니까?”
그때는 탐사대 지원위성의 선체가 카모플라쥬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토마스의 아래쪽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서 김수선이 나타났을 때는 지상에서는 토마스를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지상에서는 토마스의 위치를 이미 놓친 상태였다. 그래서 설사 선체로 가리지 않았다 해도 토마스의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토마스가 말했다.
“환상이었다는 건 알지만,그래도 엔젤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진짜 아름다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