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구출
김수선이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말했다.
- 저 사람을 구할 방법이 있긴 합니다. 리스크가 커서 그렇지요.
탐사대 지원위성은 우주왕복선보다 더 높은 궤도에 떠 있다.
- 저곳까지 직접 내려가면 저 사람 한 명쯤은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움직이지 않은 건, 치러야 하는 대가가 꽤 크기 때문이다.
- 다만, 그런 급격한 이동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합니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내려간 후에도 에너지 손실이 계속되지.”
- 네. 저런 낮은 궤도에서 선체가 한반도 상공에 계속 떠 있으려면, 에너지의 소모가 평소보다 더 커집니다. 저기는 우리 선체가 떠 있기 좋은 고도가 아닙니다.
지금도 탐사대 지원위성은 에너지가 부족해서 아껴 쓰고 있다. 에너지 소모가 더 큰 궤도로 내려가면 당연히 부족 현상은 더 심해진다.
- 에너지가 없으면 선체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음…. 당분간은 지구 주변을 다른 위성처럼 빙글빙글 돌면 되려나.”
- 물론 그러면 에너지 손실을 줄여서 선체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대신에 카모플라쥬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 관측당할 위험이 커집니다.
그 위장 시스템 덕분에 지상에서는 탐사대 지원위성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위장 장치는 가끔 고장 난다. 그때마다 바로 고치긴 하지만, 낮은 궤도를 돌면 누군가 눈치챌 위험이 그만큼 커진다.
“그래도 우주에서 조난되는 게 남 이야기 같지 않아서 그냥 버려두기 좀 그러네.”
- 그건 저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오천 년이나 지원위성을 타고 지구 궤도에 떠 있었다. 그 상황 자체가 조난 상태였다.
게다가 그 긴 기간 동안 다양한 위험을 수없이 겪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선체가 손상되는 일도 많았다.
지금 우주왕복선과 토마스가 겪은 사건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나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선우현이 결정을 내렸다.
“수선아. 그 궤도로 내려가. 그 대원이 구출될 수 있게 도와주고, 당분간은 그 궤도에 머물러 있어.”
-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러면 한반도 상공의 고정 위치에 떠 있을 수 없습니다.
탐사대 지원위성은 에너지만 충분하면 고도와 상관없이 정지위성처럼 떠 있을 수 있다. 에너지를 아끼려면 지금처럼 적당한 고도에 머물러 있거나, 아니면 빠르게 지구 주변을 공전해야 한다.
- 그러면 원래 궤도로 올라갈 에너지를 획득할 때까지 선장님을 제대로 서포트할 수 없습니다. 공전하다 한반도 상공을 지나가는 때만 서포트할 수 있습니다.
“그거야 뭐, 감수해야지.”
- 레드 포션 생산 작업도 그때까지는 중단해야 합니다. 남는 에너지가 없을 테니까요.
“그것도 아쉽지만 감수해야지. 남은 문제가 더 있냐?”
- 아니요. 나머지는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 대원은 오늘 운이 정말 좋군요. 명령대로 내려가겠습니…. 선장님. 잠시만요.
“다른 문제라도 생겼어?”
김수선의 목소리가 확 밝아졌다.
- 우주왕복선이 화물칸에서 화물을 버리고 있습니다!
“응? 어떤 걸 버리는데?”
-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걸 챙기면 에너지와 자원을 보충할 수 있을 겁니다!
선우현의 목소리도 밝아졌다.
“쓸모가 있는 걸 버렸으면 그렇겠지!”
그 화물에 쓸모 없는 것만 있다면, 그걸 챙긴다 해도 다시 현재 궤도로 올라올 에너지를 얻을 수 없다.
반대로 에너지를 뽑을 만한 자원만 충분히 있다면, 현재 궤도로 금방 돌아올 수 있다.
선우현이 말했다.
“그 화물이 뭐든, 어지간하면 다시 정지궤도로 올라갈 에너지가 나오겠지. 저 사람들이 돌멩이를 우주로 가져가서 버리진 않을 테니까.”
- 운이 좋으면 선체 수리용 자재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이야아. 마음을 곱게 쓰니까 이런 좋은 일이 생기는구나!”
- 제가 그러긴 했습니다.
“너 방금 따지는 게 되게 많던데?”
- 선장님의 서포트도 중요하니까 확인을 위해 말만 그렇게 한 겁니다. 제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알았으니까 당장 내려가서 사람은 구하고 대가로 보급품을 받아내!”
- 이미 시동 걸었습니다.
“응? 우리 지원위성은 시동을 거는 방식이 아니잖아.”
김수선이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 지상 방식으로 기분을 내 봤습니다.
◈ ◈ ◈
김수선이 지원위성의 비행 방향을 조정했다.
비행 궤도 변경은 평소에도 우주에서 자원 획득을 위해 하던 일이다. 5천 년 전에 만든 고물 선체가 빠른 속도로 고도를 낮추었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타깃을 향해 하강 중입니다.”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에서 물었다.
- 카모플라쥬 시스템은?
그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지상이나 우주왕복선에서 탐사대 지원위성을 보지 못한다.
“저고도로 내려가면 누군가 눈치챌 위험이 증가하긴 합니다만.”
그 시스템의 위장 성능은 완벽하지는 않았다.
새까만 우주를 배경으로 할 때는 표가 거의 나지 않지만, 비교할 물건이 있으면 약간의 일그러짐이나 어색함을 느낄 수 있다.
지금처럼 저궤도로 내려가면 그런 위험이 조금이나마 증가한다.
“설마 들키겠습니까? 괜찮겠죠.”
- 우리 수선이가 보급품에 눈이 멀어서 그냥 냅다 달리는구나.
“저는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습니다.”
◈ ◈ ◈
우주왕복선 선장 마이클이 소리를 질렀다.
“당장 없어도 되는 화물은 전부 버렸다!”
지상 관제소에서 무전이 들어왔다.
- 그거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낼 보급품인데….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야 수리가 끝나자마자 토마스를 더 빨리 구하러 갈 수 있단 말이다! 그래서 버렸어! 따질 테면 나한테 따지라고 해!”
- 아니다. 그냥 해본 말이다.
◈ ◈ ◈
지상 관제소에서는 통신 담당자가 마이크를 잠깐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토마스는 죽었다고 봐야 하는데, 믿지를 않네.”
그렇다고 구출을 포기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우주왕복선이 귀환하자마자 대원들에게 몰매를 맞을 수도 있다.
“나도 토마스가 살아있기를 바라지만, 파편에 맞아서 통신까지 완전히 끊겼는데 어떻게 살아있겠냐고.”
◈ ◈ ◈
토마스는 어지러웠다.
마지막 남은 연료로 자동 자세제어를 시도한 덕분에 몸이 빙글빙글 회전하는 건 어느 정도 해결했다.
그렇다고 회전이 완전히 정지한 건 아니라서 여전히 우주가 천천히 돌고 있었다.
“지금 어느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계속 빙글빙글 도니까….”
그가 눈을 감았다.
“어지러워서 죽겠네.”
그는 자기가 한 말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아니야! 안 죽어! 나는 살 수 있어! 살 수 있…겠지?”
우주복의 제어장치는 이미 꺼졌다. 처음에는 통신이 나갔다가, 나중에는 시스템이 다 꺼져서 다시 켜지지 않았다.
지금 제대로 나오는 건 산소밖에 없었다.
“언제 구출하러 오는…. 어?”
그는 눈앞의 새까만 우주와 반짝이는 별들의 모습이 살짝 일그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몸이 계속 회전하고 있어서 제대로 살펴볼 수는 없었다.
“이제 눈도 침침한가 보다.”
◈ ◈ ◈
김수선이 보고했다.
“선장님. 우주에서 조난돼 혼자 빙글빙글 돌고 있는 대원의 위치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접근하면 카모플라쥬 시스템의 위장 효과가 뚫립니다.”
선우현이 있는 옥탑방 옥상에서는 우주가 보이지 않는다. 뉴스를 검색해도 현재 토마스의 모습은 알 수 없다.
- 그 사람이 눈을 뜨고 있어?
“예.”
- 차라리 기절했으면 구하기 편한데. 이제 어떻게 한다….
“제가 선체 밖으로 나가야지요.”
- 응? 수선아. 그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
“지금 제 걱정을 하시는 건가요?”
- 아니. 네가 없으면 선체에 금이 갔을 때 누가 고치냐? 그걸 걱정한 거지.
“시끄럽습니다. 선체 외부 수리용 장비를 착용하고 나가겠습니다.”
- 조심해라. 위험하다 싶으면 구조 포기하고 지원위성으로 돌아와. 네가 살고 봐야지.
“당연하죠.”
◈ ◈ ◈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에서 외국 사이트의 기사를 계속 검색했다.
속보가 속속 올라왔다.
NASA에 비상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나왔다. 우주왕복선이 손상됐다는 것도 알려졌다.
우주 공간에 조난된 대원이 있다는 걸 알아낸 언론도 있었다. 그 기사는 빠르게 퍼졌다. 그러면서 우주복에 남은 산소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도 알려졌다.
“수선이의 개인용 추진장치가 이번에는 고장이 안 나야 할 텐데.”
선우현이 같이 있을 때는 선체 외부를 수리하다 개인용 추진장치가 고장 나도 딱히 위험하지는 않았다. 추진장치 고장으로 멀리 튕겨 나갔다 해도, 선체를 직접 움직여 도로 데려오면 된다.
그런데 지금 김수선은 혼자다.
“수선아. 비상탈출용 추진기 가져가지?”
- 당연한 거 아닙니까? 선장님이 없는데 그거라도 있어야죠.
“유사시에 선체를 부를 수 있지?”
- 선체 간이조종 장비도 가져가고 있습니다. 근거리 전용이지만요.
“조난된 사람의 통신은 이미 끊겼어. 우주복의 카메라만 조심하면 돼.”
- 카메라는 처리하겠습니다.
◈ ◈ ◈
김수선이 탐사대 지원위성 선체 외부로 나왔다. 등 뒤에서 날개 두 개가 좌우로 쫙 펼쳐졌다.
탐사대의 원래 우주 활동용 비행장치에는 그런 날개가 없었다.
그런데 그 우주용 비행장치는 이미 옛날에 망가졌다.
지원위성에는 그렇게 망가진 장비가 하나둘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쓸 수 있는 자원이나 장비, 부품을 다 활용해 개조하고 수리하며 5천 년을 버텼다.
이 우주 비행장치도 마찬가지다. 이 장치에 날개가 있는 건, 지상 저고도 비행용 날개에 우주용 추진장치를 붙여서 수리했기 때문이다.
김수선이 날개에서 빛을 뿌리며 토마스를 향해 날아갔다.
◈ ◈ ◈
토마스는 이제 포기 단계에 접어들었다. 정신도 반쯤 나가 있었다.
“나의 이 희생이 인류의 미래에 크나큰 기여를…. 아니야. 그냥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되겠지. 이런 결말을 바란 건 아니었…. 어?”
횡설수설하는 그의 눈에 김수선이 날아가는 모습이 잠깐 보였다. 두 개의 날개에서 추진장치가 빛을 뿌리고 있었다.
토마스가 눈을 껌뻑였다.
“천사?”
김수선이 토마스의 앞을 지나간 건 잠깐이었다. 곧바로 토마스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토마스가 정신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위성으로 데려갈 수는 없다. 위성 내부는 고사하고 카모플라주 시스템이 가려주는 영역 안쪽으로도 데려가서는 안 된다.
그러면 구출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선장님. 이제 조난자를 우주왕복선 쪽으로 던질 겁니다.”
- 산소가 떨어지기 전에 만날 수 있게 그쪽으로 정확하게 밀어.
그게 그들의 계획이었다.
토마스가 우주왕복선 쪽으로 정확히 날아가면, 구출에 필요한 시간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
“그 전에 카메라 좀 처리하고요.”
토마스의 우주복은 이미 손상돼 있었다. 김수선이 손상된 제어장치를 확인했다.
“우주복이 안 찢어지고 산소가 멀쩡히 나오는 게 신기할 정도로 파손됐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실히 부수겠습니다.”
- 파편에 맞을 때 부서진 것처럼 보이게 해야 돼.
“물론이죠.”
◈ ◈ ◈
다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나사 직원 조세핀이었다.
“아직도 나한테 물어볼 게 남았나?”
이미 오래된 인공위성은 터졌고 파편 폭격도 끝났다. 그가 경고한 상황은 모두 그대로 이루어졌다.
선우현이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대처법을 물어보려고 한 전화가 아니었다. 답답해서 한 전화였다.
조세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당신네 회사 말을 믿었으면, 토마스는 죽지 않았을 거예요. 내 잘못이에요.
“당신 잘못 맞습니다.”
- 우리가 다 잘못했어요.
“오해의 여지가 없게 대상을 정확히 말하자고요. 당신들만 잘못했습니다. 난 충분히 경고했으니까 거기서 빼야죠.”
- 알아요. 알아. 우리가 토마스를 죽인 거예요.
선우현이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죽었다고는 안 했는데?”
- 통신이 끊겼어요. 파편에 맞은 거겠죠. 이미 죽었을 거예요.
김수선이 보고했다.
- 토마스는 맛이 좀 가서 그렇지 멀쩡히 살아있는데요? 저 여자는 산 사람을 죽이네요.
“통신기만 고장 났을 겁니다.”
-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모르죠.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우주왕복선도 그렇게 믿고 토마스를 구하려고 출발했어요.
“잘됐네요.”
- 하지만 우주 공간에서 토마스를 찾아내고, 그 위치까지 가서 구출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이미 시간을 많이 소모했는데….
조세핀이 다시 울먹였다.
- 토마스는 그때까지 버틸 산소가 없어요. 죽을 거예요.
“사람이 왜 그렇게 부정적입니까?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 하지만….
선우현이 단언했다.
“우주왕복선이 지금 방향으로 계속 날아가면 토마스를 구할 수 있습니다.”
- 그걸 어떻게 알죠? 이번에는 데이터가 없어서 계산할 수도 없잖아요.
선우현이 얼른 둘러댔다.
“희망을 놓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