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탈출 II
선우현의 노트북에 나사에서 보낸 이메일이 도착했다.
이메일에는 엑셀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건 나사 시스템이 자동으로 생성한 후에 엑셀로 변환된 파일이었다.
그 파일에는 나사에서 확인한 파편 데이터가 대량으로 들어 있었다.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에서 그걸 보며 말했다.
“뭐지? 이걸 왜 굳이 보낸 거지?”
- 그러게요.
조세핀의 전화가 곧바로 걸려왔다. 선우현이 일단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인공위성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파편 데이터, 지금 보냈어요! 원래 예측과 다를 수도 있으니까 확인해 줘요!
나사가 조금 전에 계산한 우주왕복선 피격 확률은 63%다. 선우현은 이미 어제 93%의 확률로 피격된다고 경고했다.
선우현은 조세핀이 지금 보내준 데이터를 변수로 삼아 다시 계산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계산할 줄 모른다.
93%라는 값은 선우현이나 김수선이 계산한 게 아니라 탐사대 지원위성의 탐색 시스템으로 알아낸 예측치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계산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바뀐 건 없습니다. 그 지역에 있는 건 다 박살 날 겁니다.”
- 그러면 그 지역에서 제때 탈출할 수는 있어요? 있다고 말해줘요!
김수선은 오래된 인공위성이 폭발한 직후에 탐사대 지원위성의 시스템을 사용해 피격 예상 지역을 확인했다. 선우현은 그 지역의 넓이가 얼마나 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대답해줄 수 있었다.
“이미 파편이 덮치는 범위를 다시 계산해봤습니다. 우주왕복선에 연락해서 엔진이 터질 정도로 달리라고 해요. 그래야 삽니다.”
◈ ◈ ◈
우주왕복선은 엔진을 가동해 현장에서 이탈하려고 애썼다. 그러다 휴스톤에서 소식을 전달받았다.
선장 마이클이 비명을 질렀다.
“인공위성이 진짜 터졌다! 파편이 5분 안에 이곳을 덮칠 거야! 더 밟아!”
“지금보다 더 빨리 탈출할 수는 없어요! 이미 안전규정 다 무시하고 엔진을 켜는 중이에요!”
휴스턴에서도 무전이 들어왔다.
- 더 빨리 탈출할 수 없나?
마이클이 소리를 질렀다.
“이건 자동차가 아니라 우주선이라고! 시동 버튼만 누른다고 튀어나가는 게 아니야!”
- 방금 이 상황을 이미 예측한 한국 회사에 문의했다. 예상 피해 범위에서 벗어나려면 더 빨리 탈출해야 한다. 엔진이 터질 정도로 달리라는 조언을 받았다.
“이미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 어? 잠깐.”
마이클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이 사태를 이미 예측한 곳이 있다고?”
- 그…렇다.
마이클이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그러면 왜 더 일찍 도망치라고 말해주지 않았는데! 그것만 알려줬어도 토마스를 데리고 탈출할 수 있었다고!”
- 우리 쪽에서는 그 예측을 믿지 못했다.
“왜!”
- 우리 슈퍼컴퓨터가 계산했을 때는 괜찮았으니까.
“내려가서 그 컴퓨터 담당자 새끼 박살을 내버리겠다!”
그가 소리를 지르며 창밖을 보았다. 인공위성의 파편은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위성이 터질 때의 섬광은 방금 보았다.
위성을 수리하러 나간 토마스의 우주복도 보였다. 토마스는 이미 개인용 추진장치를 사용해 다른 방향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시발. 우리도 문제지만 토마스는 진짜 큰일 났다. 콩알 크기의 파편 하나조차도 여기서는 총탄이나 마찬가지라고. 우주복에 맞아 작은 구멍만 나도 죽는다고.”
◈ ◈ ◈
토마스는 우주복에 달린 추진장치를 최대 출력으로 사용했다.
“느려! 젠장! 느려!”
그 개인용 추진장치는 우주를 천천히 유영할 때 쓰라고 만들어놓은 것이다. 당연히 쓸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이렇게 최대 출력으로 사용하면 효율은 낮고 연료도 순식간에 바닥난다.
그렇다고 효율을 높이려고 추진장치를 약하게 쓰면 연료를 다 소모하기도 전에 파편이 덮친다.
토마스는 추진장치를 최대로 사용해 현장에서 멀어졌다.
우주왕복선은 다른 방향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그 방향이 조금 덜 위험했다. 하지만 토마스가 있던 위치에서는 그쪽으로 탈출할 수가 없었다.
“인공위성이 터지고 파편이 날아온다는 걸 조금만 빨리 알았어도 같이 탈출할 수 있었…. 어? 잠깐.”
토마스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아직 우주왕복선과는 통신이 된다. 그가 선장인 마이클에게 물었다.
“선장. 지상에 있는 친구들은 어떻게 인공위성의 파편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온다는 걸 이렇게 빨리 계산했지? 그 인공위성이 폭발하기 전에 대피하라고 경고가 왔잖아.”
- 나도 방금 알았는데, 이미 경고를 받았는데 무시했단다.
“뭐? 그 새끼들이 미쳤구나!”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상에 내려가면 내가 경고를 무시한 놈의 멱살을 비틀 테니까, 너는 팔을 꺾어.
“멱살? 난 주먹부터 날릴 거야!”
- 그것도 좋지. 내려가면 같이 박살을 내놓자.
잠시 후에 폭발한 인공위성의 파편이 그들이 방금 떠나온 곳으로 날아왔다.
토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연료를 아주 약간 사용해 몸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그가 방금 떠나온 곳이 보였다.
고속 파편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선장 마이클이 외쳤다.
- 시작됐다! 토마스! 살아남아라!
“내려가면 텍사스식 스테이크 산다는 약속 지켜!”
- 맥주도!
“그래! 맥주도!”
날아온 파편 중 하나가 토마스가 급히 탈출하면서 버려둔 수리용 교체 모듈을 직격했다. 수리모듈이 한 방에 박살 났다.
토마스가 그 모습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저거 조금 전에 내가 옮기고 있었는데….”
토마스가 아직도 그곳에 있었으면 수리모듈이 부서질 때 같이 당할 뻔했다.
다른 파편이 날아와 토마스가 수리 중이던 대형 인공위성도 때렸다. 그런 파편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대형 인공위성의 외부가 마치 포탄에 맞는 것처럼 펑펑 터져나갔다.
토마스가 침을 꼴깍 삼켰다.
“저 위성의 거주구역으로 대피했으면 죽었겠구나. 빨리 탈출하라던 지시가 그나마 최선이었어.”
오래된 인공위성의 파편들은 여기까지 날아오면서 점점 넓은 범위로 흩어졌다. 바깥쪽으로 갈수록 날아오는 파편은 적었지만, 없는 건 아니었다.
토마스의 눈에도 앞쪽을 뭔가 휙 지나가는 게 보일 정도였다.
“젠장. 전쟁터에서 기관총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날아오는 파편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토마스가 그걸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제 거의 끝났…. 컥!”
작은 파편 하나가 토마스의 우주복을 긁고 지나갔다. 토마스는 충격을 받는 순간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으아악! 안돼!”
우주복이 빙글빙글 돌았다. 별과 지구가 그를 중심으로 휙휙 도는 것처럼 보였다.
“젠장! 맞았어! 선장! 나 맞았다고!”
대답이 없었다.
그가 급히 우주복의 상태를 확인했다.
우주복의 제어 시스템은 아직 작동하고 있었다.
어차피 연료는 거의 다 소모했다. 산소 잔량은 그가 숨을 쉬는 만큼 줄어드는 중이다. 특별히 공기가 빠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우주복에 구멍이 난 건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그런데 통신이 되지 않았다.
“방금 통신기가 맞았겠지. 파편이 몇 센티미터만 안쪽으로 들어왔으면 죽을 뻔했는데, 아슬아슬하게 살았다.”
그는 우주왕복선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방금 피격된 충격으로 위성 궤도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는 중이다.
상황을 파악하고 몸을 안정시키려면 어떻게든 중심을 잡아야 했다.
토마스가 마지막 남은 연료를 확인했다. 대피할 때 거의 다 썼지만, 자세제어를 한 번 할 정도는 남아있었다.
“어차피 파편 폭격은 끝났을 거야. 회전이라도 좀 멈추자. 어지럽다.”
◈ ◈ ◈
김수선이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보고했다.
“선장님. 파편이 외부에서 활동하던 대원의 우주복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 뚫렸어?
“우주복에 달린 장비를 긁고 지나갔습니다. 우주복이 뚫린 건 아닙니다.”
- 다행이네.
“예. 다행…. 아. 이런.”
- 왜?
다른 방향으로 탈출하던 우주왕복선을 향해 날아가는 파편이 보였다.
“왕복선으로 날아가는 파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대로면 못 피합니다.”
왕복선이 파편에 처음 맞은 건 아니다. 이미 탈출 과정에서 파편을 몇 발 맞았다. 그런데 이번 건 달랐다.
“이번엔 살짝 큽니다.”
- 젠장.
◈ ◈ ◈
우주왕복선은 덩치가 커서 파편에 맞기도 쉬웠다. 이미 작은 파편 몇 개를 맞았다. 선체에 손상도 조금씩 생겼다.
그래도 파편이 워낙 작고 치명적인 부분은 맞지 않아 당장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마이클이 말했다.
“여기까지 대피했는데도 선체에 손상이 생길 정도야. 아무것도 모르고 저기 있었으면 우린 다 죽었겠다.”
부선장이 대답했다.
“대피가 1분만 늦었어도 다 죽었을 겁니다.”
“그래도 살았….”
갑자기 선체에 충격이 느껴졌다. 뭔가가 강하게 때리는 소리도 들렸다. 어딘가 맞았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맞은 것보다 소리와 충격이 훨씬 더 컸다.
마이클이 다급히 외쳤다.
“피해 확인해!”
부선장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피격 부위가….”
“어디인데!”
“엔진을 제어하는 쪽에 손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마이클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씨발.”
◈ ◈ ◈
선우현은 옥상에서 외국 뉴스 홈페이지에 속보가 뜬 게 있는지 보았다. 우주왕복선에 관해 뜨는 건 없었다.
“수선아. 상황은?”
- 일단 파편 낙하 상황은 끝났습니다. 위험지역 중심에 있던 건 다 부서졌습니다. 저 사람들이 수리하던 대형 위성도 손상이 심합니다.
“사람들은?”
- 우주 공간에 혼자 떨어진 대원은 계속 날아가고 있습니다. 빙글빙글 회전하던 몸을 자체 추진장치로 바로잡았는데, 그 후에는 통제 자체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개인용 추진장치의 연료가 떨어진 것 같습니다.
“우주왕복선은?”
- 방금 파편에 손상된 부분이 엔진과 관련된 것 같습니다. 엔진이 꺼졌습니다.
“심각하네.”
◈ ◈ ◈
마이클이 지상 관제센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수리가 가능한지 빨리 확인하라고!”
우주왕복선의 대원들은 손상 부위의 상태를 확인해 지상 관제소에 전달했다. 지상에 대기 중이던 엔지니어들은 그 데이터를 확인하고 수리할 방법을 찾았다.
- 엔진은 고칠 수 있다. 엔진 자체가 터진 게 아니라 제어장치 쪽만 파손됐다. 예비 부품으로 비상조치를 하면, 엔진을 다시 켤 수 있다.
마이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다.”
우주왕복선은 파편을 여러 발 맞았다. 그래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진짜 죽다 살아난 기분이다. 빨리 고쳐서 토마스를 구하러 가야 해. 수리 방법이나 어서 알려줘.”
- 확인작업이 끝나는 대로 알려주겠다. 그런데….
지상 관제소의 담당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문제가 좀 있다.
“문제라니? 수리할 수 있다며?”
- 수리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수리를 끝내고 구출하러 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면, 토마스의 우주복은 산소가 남아있지 않을 거다.
우주에서 산소가 떨어지면 죽는다.
마이클이 소리를 질렀다.
“뭐? 그럼 빨리 수리 방법을 알려줘야 할 거 아냐! 더 빨리 고쳐볼 테니까!”
- 어떤 방법을 써도 시간 안에는….
“안전규정 무시하고 고치면 더 빨리 수리할 수 있어! 확인작업 건너뛰고 당장 수리 방법이나 말해!”
- 이미 토마스와의 통신이 끊겼다. 파편에 피격된 것 같다. 사망했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니까 우주왕복선을 안전하게 수리하는 게 최선….
“닥치고 수리 방법부터 보내라고!”
◈ ◈ ◈
지상 관제소의 분위기는 참담했다.
조세핀이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쥐어뜯었다.
“토마스가 죽었어.”
우주왕복선과의 연락 담당 부서 책임자는 대머리라 쥐어뜯을 머리카락이 없었다. 그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야….”
조세핀이 화를 냈다.
“당신이 내 말을 안 믿었잖아!”
“확실한 근거도 없이 위험하다고만 하면 어떻게 믿으라고….”
조세핀도 책임자가 왜 안 믿었는지는 안다. 그녀도 그랬었다.
그녀는 이틀 전부터 들어온 스래곤의 경고를 무시했었다. 평소에도 아마추어의 잘못된 경고 메일은 자주 들어온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다.
그녀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알아요. 근거가 너무 부족했죠. 우리 시스템보다 그 회사의 계산이 더 정확할 거라고 어떻게 생각했겠어요. 그래도 우리 때문에 토마스가 죽었어요. 우리 책임이에요.”
◈ ◈ ◈
선우현이 말했다.
“수선아.그 혼자 떨어진 대원,구해줄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