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탈출
나사 직원 조세핀이 시스템상에서 그녀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경보를 발령했다. 우주왕복선이 당장 현재 위치를 이탈해서 대피해야 한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부족했다. 그녀의 권한으로는 경고할 수는 있지만 명령할 수는 없다.
그녀가 상관을 찾아갔다.
“우주왕복선을 당장 대피시켜야 해요!”
“근거는?”
“자료 보내줬잖아요!”
“그건 지금 보고 있어.”
상관은 그녀처럼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가 날린 경고의 내용이 이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답답해진 그녀는 우주왕복선과 연락을 담당하는 부서로 달려갔다. 그 부서는 그녀의 ID카드로 출입이 가능한 곳에 있었다.
그녀가 책임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왕복선을 당장 대피시켜야 해요!”
“그럴 이유가 있나?”
“자료 보내줬잖아요!”
이곳의 책임자는 그녀의 상관보다는 자료를 볼 시간이 더 있었다.
“그거라면 방금 봤는데, 우리가 분석도 아니고 한국의 회사에서 경고한 거던데.”
조세핀은 이틀 전부터 한국 회사 스래곤이 보낸 경고를 몇 차례나 받았다. 하지만 그녀도 말도 안 되는 경고라며 그걸 다 무시했다.
지금 담당자의 반응도 그녀와 비슷했다.
게다가 우주왕복선이 갑자기 철수하면 치러야 하는 대가가 꽤 크다. 그러니까 확실한 근거가 필요했다.
심지어 아직 우주 쓰레기와 위성은 출동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 임무를 중단하고 긴급 대피를 하면 위성 수리는 실패하게 돼. 부정확한 추측만으로 중단할 수는 없다.”
“일단 대피했다가, 상황이 괜찮으면 그때 다시 돌아와서 하면 되잖아요!”
“지금 중요한 수리모듈을 옮기는 중이라서 말이야. 긴급 대피를 하면 그건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서 사라질 수도 있어.”
“그깟 모듈 하나 때문에….”
“그깟 모듈이 아니야. 예비 부품이 없다고. 그걸 잃어버리면 말이야. 위성을 수리하려면 우주왕복선을 또 올려보내야 한다고.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은 예산을 잡아먹는지 몰라?”
“우주왕복선이 터지면 예산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대원들은 다 죽고 우리도 다 목이 날아가요!”
책임자가 그녀의 경고에 시큰둥한 건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나도 네가 말한 피격 확률을 계산하라고 지시했어.”
위성 궤도에서 두 물체가 충돌했을 때 일어나는 일을 시뮬레이션하는 프로그램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 데이터를 상황에 맞게 입력하고 충돌 후 발생할 파편의 비행 방향을 예측하면 피격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
“내가 그 계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아니야. 현재 상황이 어떤지도 알아봤지. 그런데.”
책임자가 화면에 자료를 띄웠다.
“그 우주 쓰레기와 오래된 위성의 예상 충돌 지점이 우리 우주왕복선에서 100km쯤 떨어져 있더군.”
“그건 그렇지만….”
“100km 밖에서 위성이 터질 때 날아온 파편이 우리 우주왕복선을 다이렉트로 때릴 확률? 운동장 끝에서 당구공을 때렸는데 그게 맞은편 당구공을 맞출 확률이 더 높겠는데?”
“그거야…. 그래도 위험하잖아요! 이미 그 파편이 우주왕복선을 덮친다고 계산한 곳이 있다고요!”
“그 회사는 NASA에 납품하고 싶어 한다며. 거기서 우주 쓰레기와 위성이 충돌하는 걸 계산한 건 대단해. 하지만 충돌 후의 결과까지 이틀 전에 계산하는 건 불가능해.”
책임자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내가 볼 때 그 회사는 도박을 한 것 같군. 파편이 우리 왕복선의 반경 30km 안쪽으로만 지나가도 자기네 기술력을 어필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납품에 유리해진다고 판단했겠지.”
조세핀도 어제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회사는 이틀 동안 반복해서, 계약 자체가 틀어지는 상황까지 감수하면서 경고했다.
그게 지금 조세핀이 이 위험을 심각하게 느끼는 이유였다.
“그래서 왕복선을 저대로 놔둔다는 건가요?”
“최소한 우리 컴퓨터의 피격 확률 계산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기다려야지.”
“미리 경고해줄 수는 있잖아요!”
“지금 중단하고 엔지니어를 대피시키면, 위성 수리용 교체 모듈은 잃어버린다니까? 그러면 우주왕복선을 다시 발사해서 수리해야 해. 그거 뒷감당이 되겠어?”
“지금 예산이 문제가 아니라…. 알았어요.”
조세핀이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충돌 대상 위성이 이동하는 건요?”
“방금 그 위성 회사에 연락해 봤는데, 너무 오래된 위성이라 관리가 잘 안 되나 봐. 그 일을 할 수 있는 담당자가 누구인지 지금부터 찾아보겠다더군. 거기는 대응이 늦어. 충돌 예상 시간 전에 움직이는 건 무리야. 그러니까.”
책임자는 느긋했다.
“우리 슈퍼컴퓨터의 계산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조세핀은 더 설득해봤자 시간 낭비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그 부서를 나와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주왕복선 쪽에 따로 경고를 좀 할 수 없어?”
- 계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왕복선 쪽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 어? 잠깐? 이게 뭐지?
갑자기 책임자가 뛰어나왔다.
“조세핀!”
그녀가 얼른 휴대폰을 등 뒤로 감췄다.
“난 아무것도 안 했….”
“결과가 나왔어!”
조세핀이 급히 물었다.
“피격 확률이 얼마예요?”
“우주 쓰레기와 위성이 충돌하고 파편이 우주왕복선을 덮칠 확률 63%!”
“악! 빨리 대피시켜야 해요!”
“방금 당장 탈출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우주왕복선 비행을 담당하는 부서에 비상이 걸렸다. 사람들이 뛰어다녔다.
책임자가 소리를 질렀다.
“조세핀! 그동안 한국 회사에서 받은 자료 다 가져와! 전부 다 분석해야 해!”
“이미 다 줬잖아요!”
“그럼 당장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부터 확인해!”
“그걸 어떻게 확인…. 아! 직접 물어볼게요!”
◈ ◈ ◈
우주왕복선의 선장 마이클은 연락을 받고 기겁했다.
“지금 뭐라는 거야! 다시 말해!”
- 당장 거기서 탈출해! 곧 우주 쓰레기와 인공위성이 충돌한다. 그 파편이 그곳을 덮칠 확률이 63%야!
“시간은 얼마나 남았지?”
- 인공위성이 파괴될 때까지 5분! 파괴된 후 파편이 그 지역을 덮칠 때까지 다시 5분!
“이런 씨발! 10분밖에 안 남았잖아! 그걸 왜 이제 이야기해!”
- 당장 탈출하라고!
“밖에 토마스가 있어! 저기 그냥 둘 수는 없어!”
- 토마스가 복귀할 때까지 기다리면 우주왕복선은 시간 안에 그 위치를 탈출할 수 없다!
지금 상태로는 토마스가 우주왕복선에 복귀하는 시간만 10분이 넘게 걸린다.
“그러면 토마스는 죽어!”
- 거기 있으면 다 죽어! 일단 대피했다가 다시 구하러 가! 이건 명령이다!
“씨발!”
- 토마스는 왕복선보다 훨씬 작잖아. 파편이 빗나갈 수도 있어! 그러니까 왕복선부터 탈출하라고!
◈ ◈ ◈
토마스는 위성 수리용 교체 모듈을 우주 공간에서 옮기다가 우주왕복선이 엔진을 가동하는 걸 보았다.
“어? 뭐야?”
무전이 곧바로 들어왔다.
- 토마스. 10분 후에 이 구역을 폭발한 인공위성의 파편이 덮칠 거다. 확률은 63%.
토마스는 화들짝 놀랐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 시간 안에 널 데려갈 방법이 없어. 너를 구출하려다가 왕복선이 파편에 맞으면 너도 죽고 우리도 죽어! 다 죽어!
토마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선장. 설마 날 버리는 거야?”
- 절대로 안 버려! 하지만 방법은 하나뿐이야. 넌 크기가 작으니까 피격 확률이 낮아. 우주복의 추진장치를 최대로 가동해서 그곳을 벗어나면 피격 확률을 더 낮출 수 있어.
토마스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었다.
“그러면 나중에 구하러 올 수 있어?”
- 우주정거장으로 보급하러 가는 임무를 때려치우면 돼. 거기 쓸 연료를 다 쏟아부어서라도 너를 구할 테니까, 일단 대피해. 우리도 대피한다!
“씨발.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거잖아.”
- 연료 아끼지 마! 전부 다 써!
“나도 안다고!”
토마스가 수리 대상인 위성을 보았다. 거기에 주거구역이 있지만, 10분 안에 그곳으로 날아가 정확히 주거구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고속으로 날아온 파편이 그 위성을 때리면 그곳까지 위험해진다.
토마스가 소리를 질렀다.
“알았으니까 가! 갔다가 내 산소가 떨어지기 전에 돌아와! 안 그러면 가만 안 둘 테다!”
- 꼭 살아있어라! 구하러 갈 테니까!
토마스가 우주복의 추진장치 제어기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어디로 피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우주왕복선의 엔진이 서서히 깨어나는 게 보였다. 토마스가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나 어디로 가야 하냐!”
◈ ◈ ◈
조세핀은 그녀가 받은 이메일에 적혀 있던 번호로 국제전화를 걸었다.
스래곤 연구소의 김정수 이사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 나사의 조세핀입니다! 당신이 나한테 경고했죠?
“예. 그 경고는 사실….”
- 파편이 우주왕복선을 덮치면 어느 방향으로 대피해야 해요?
“어? 그건….”
- 빨리 대답해요!
“내가 계산한 게 아니라서 모릅니다.”
- 그럼 계산한 사람 연락처! 빨리!
◈ ◈ ◈
선우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국제전화였다.
“보이스 피싱인가?”
- 이번에는 진짜 국제전화일 수도 있습니다.
선우현이 전화를 받았다. 조세핀이 다짜고짜 물었다.
- 우주왕복선이 어느 방향으로 탈출해야 합니까!
“아. 이제야 믿나 보다.”
- 빨리!
“현재 좌표부터 알려줘야지요.”
조세핀이 현재 우주왕복선의 좌표를 즉시 불러주었다. 김수선이 즉시 파편이 제일 적게 떨어지는 방향을 말했다.
선우현은 그 방향을 조세핀에게 말했다.
조세핀이 그 좌표를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했다. 그런 후에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 하나 더! 대원이 외부에 있어요! 우주복의 개인용 추진장치로 그곳을 벗어날 거예요!
“좌표부터.”
선우현은 토마스가 탈출할 때 생존 확률이 제일 높은 방향도 알려주었다. 조세핀은 그 정보도 옆 사람에게 전달했다.
그녀가 그런 후에 물었다.
- 위성이 파괴되면, 그 파편이 우주왕복선을 덮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그쪽 계산도 확인하고 싶어요. 우리 계산으로는 사고 확률이 63%가 나왔어요.
“이제 확률 계산은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일어날 일이니까.”
◈ ◈ ◈
휴스톤에서 우주왕복선으로 연락이 들어왔다.
- 탈출 방향을 알려주겠다. 파편이 집중될 지역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방향이다.
곧바로 좌표가 전송됐다.
선장 마이클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방향이 확실해?”
- 확실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 ◈ ◈
김수선이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모니터를 보며 보고했다.
“선장님. 추적 중이던 우주 쓰레기가 인공위성으로 정확히 날아가고 있습니다.”
김수선은 조금 전부터 관측 카메라를 그쪽으로 돌려 오래된 인공위성의 상태를 관찰하고 있었다.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에서 물었다.
- 충돌 확률은?
“돌발상황이 없다면, 100%입니다.”
- 요격은 불가능하지?
“우리 선체의 포탑은 근거리 방어용입니다. 우주 쓰레기나 파편 모두 포탑의 요격 거리 바깥에 있습니다. 어차피 늦었습니다. 곧 충돌합니다. 3. 2. 1. 충돌.”
20cm 크기의 우주 쓰레기가 오래된 인공위성의 측면을 때렸다. 고속으로 날아가는 쓰레기의 위력은 포탄처럼 강력했다.
방탄판이 없는 인공위성이 그 충격을 버틸 리가 없다. 위성은 마치 폭발하듯 뜯겨 날아갔다. 파편이 우주로 쏟아졌다.
“터졌습니다. 인공위성이 완전히 폭발했어요.”
- 파편이 날아가는 방향은?
“일부는 지구 쪽으로, 일부는 우주로. 지구로 가는 건 대기권에서 타버릴 테고, 우주로 가는 건 그냥 사라지겠죠. 그런데 일부가….”
그녀가 관측 카메라를 우주왕복선 쪽으로 돌렸다.
“예측한 대로 우주왕복선 쪽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파편이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지겠네요.”
- 그 사람들, 대피는 제대로 하고 있어?
“조금 전부터 대피 중인데, 아슬아슬합니다.”
선우현이 불평했다.
- 이틀 전부터 대피하라고 그렇게 경고했는데, 말은 진짜 안 듣는다니까.
“마치 선장님처럼요.”
- 파편이 왜 나한테 날아오냐?
◈ ◈ ◈
지상 관제기지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추적 코드 SG-47163과 민간 인공위성이 충돌했습니다!”
“인공위성, 폭발했습니다!”
“잔해가 어디로 날아가는지 확인해! 무사히 넘어갈 확률도 37%는 있어!”
“파편 일부가 우리 왕복선 쪽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제기랄!”
조세핀도 그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덜덜 떨었다.
“한국 회사가 계산한 그대로 진행되고 있어.”
그 예측대로면 저 파편은 우주왕복선이 있는 곳을 5분 안에 덮치게 된다.
조세핀이 왕복선과의 통신 책임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봐! 미리 대피시켜야 한다고 했잖아! 경고를 받았잖아!”
책임자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타, 탈출할 방법이….”
경고를 받은 우주왕복선은 이미 안전규정을 다 무시하고 엔진을 켜는 중이다. 이것보다 더 빠른 탈출법은 없다. 설사 있다 해도 그 방법을 찾을 시간이 없다.
조세핀이 말했다.
“이제는…. 행운을 빌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요.”
책임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한국의 스래곤에 우리 데이터 전송하고 다시 물어봐!혹시 빗나갈지도 모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