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경고 II
스래곤 이사가 사장인 선우현에게 직접 전화하는 일이 거의 없다. 보통은 비서실을 거치고, 그게 다시 박서윤에게 넘어간 후에 선우현에게 연락이 온다.
그렇게 하는 게 더 효율이 높아서가 아니다. 선우현이 직접 하는 일을 줄이려고 일부러 보고체계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데 급한 일까지 그렇게 단계를 밟아서 연락할 수는 없다. 상황이 급할 때는 지금처럼 선우현에게 직접 전화하기도 한다.
“와…. 내가 퇴근했는데도 이사가 전화를 한다. 이런 경험 처음이야.”
- 오늘은 박서윤이 없어서일 겁니다.
“영화 봐야 하는데.”
- 받으시죠?
선우현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입니까?”
- 사장님. NASA에 납품하려고 줄을 댄 거 말입니다. 제가 연락한 NASA 담당자가 화를 많이 냈습니다.
“아직 납품도 안 했는데 왜 화를 냅니까?”
- 사장님이 주신 위성 충돌 정보를 담당자한테 보냈다가, 그 담당자가 항의를 많이 했다면서….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 경고를 아직도 안 믿나 보군요.”
- 예. 이러면 NASA에 납품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영업 담당 이사는 지금 납품이 어려워진 이유가 선우현 때문이라고 돌려 말하고 있었다.
선우현이 휴대폰을 얼굴에서 뗀 후에 작게 말했다.
“수선아. 충돌 확률은?”
-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92%였습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도와주려고 했는데, 알려줘도 알아먹지를 못하네.”
-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다고 뻔히 다 죽을 걸 알면서 못 본 척할 수도 없고.”
선우현이 휴대폰을 다시 얼굴에 대고 말했다.
“내가 다시 계산해봤는데 충돌 확률이 92%로 나왔습니다. 말을 해줘도 못 알아먹으니 답답하긴 한데, 그래도 알려는 줘야지요.”
- 사장님. 지금 상황에서 또 그렇게 연락하면, 이쪽 라인을 통한 납품은 완전히 끝장이….
“우리가 뭐 NASA 아니면 물건 팔 곳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도 못 알아먹으면 거기는 그만둡시다.”
사장인 선우현이 안 되면 그만두라고 했다. 이러면 일이 잘못돼도 영업 담당 이사가 책임질 건 없어진다.
-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통화가 끝난 후에 김수선이 말했다.
- 우주왕복선 승무원들은 93%의 확률로 다 죽겠군요.
“그 사이에 1% 더 올라갔어?”
- 방금 통화하시는 동안 다시 확인했거든요. 예상 충돌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변수가 줄어드니까 정확도는 올라갑니다.
◈ ◈ ◈
선우현이 스래곤으로 돌아갔다.
회의실에서 김정수 이사가 말했다.
“사장님의 계산에 의하면 우주 쓰레기와 오래된 위성이 충돌할 거라는 이야기, 저는 믿습니다만.”
“안 믿는 것 같은데.”
“하지만 저쪽에서는 말만 가지고는 믿을 리가 없습니다. 정보를 좀 더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보?”
“우주 쓰레기의 비행 궤도를 계산한 방법이라든가….”
“그건 뭐….”
- 저도 모릅니다. 선체의 탐색 시스템으로 획득 가능한 우주 쓰레기를 찾다가 알아낸 거니까요.
스마트폰을 쓸 때 내부에서 어떤 동작이 일어나는지 알 필요가 없듯이, 탐색 시스템을 사용할 때 궤도를 계산하는 이론을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선우현이 이사들에게 말했다.
“계산은 내가 알아서 한 거라 문서로 설명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우주 쓰레기가 어떤 궤도로 비행하다가 오래된 위성과 충돌하는지는 그려줬잖습니까?”
“그건, 종이에 대충 그려 주셔서…. 저희가 좌표 형태로 바꿔서 보내긴 했습니다만 눈대중으로 한 거라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좌표를 정확히 찍어주면 믿으려나…. 적당한 프로그램이 있겠습니까?”
김정수 이사가 대답했다.
“예. 딱 적당한 게 있습니다.”
◈ ◈ ◈
연구소 최 팀장이 그 프로그램이 설치된 노트북을 가져왔다.
“이건 공개 프로그램인데 사용법이 무척 간단합니다.”
선우현이 대충 설명을 들은 후에 말했다.
“작업은 내가 할 테니까 가서 일하시죠.”
“아닙니다. 말씀만 하시면 좌표 찍는 작업은 제가….”
“그러다 다시 야근하는 수가 있습니다.”
매순이 프로젝트의 데모 버전 복제품을 만들 때는 연구소 TF가 꽤 고생했다. 그때 최 팀장도 그 TF에 들어가 일했다.
“아, 아닙니다. 가서 일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거.”
선우현이 서랍에서 R 크림을 한 통 꺼내주었다.
“남는 건데, 혹시 필요하면….”
최 팀장의 표정이 확 펴졌다.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최 팀장은 사장실을 나온 후에 신나서 전화를 걸며 걸어갔다.
“어. 여보. 그거 구했어. 왜 비명은 지르고 그래? 아. 좋아서라고? 어떻게 구했냐고? 내가 누구야? 사장님 일을 좀 도와드렸더니 직접 챙겨주시더라니까?”
R 크림 통을 들고 지나가면서 자랑하는 최 팀장을 보고 비서실 대리 두 명이 말했다.
“사장님은 R 크림이 남아도시나 보다.”
“나한테도 하나 흘리셔도 되는데.”
◈ ◈ ◈
나사 직원 몇 명이 퇴근 후에 모여 저녁 식사를 겸해 맥주를 마셨다.
대화 주제로 이번에 발사한 우주왕복선 이야기가 나왔다.
조세핀도 술안주로 적당한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나는 내일 우주 쓰레기와 위성이 충돌하고 그 파편이 우리 왕복선을 덮칠 거라는 경고를 받았어. 개인이 그런 경고 이메일을 보내는 일은 평소에도 흔한데, 이번에는 한국 회사가 보냈더라고.”
“근거는 있어?”
“아까 예상 경로 좌표를 정식으로 받긴 했는데.”
선우현은 우주 쓰레기의 예상 이동 경로 좌표를 직접 찍어 김정수 이사와 영업 담당 이사에게 보냈다. 그들은 그 데이터를 가공한 후에 조세핀에게 다시 보냈다.
“우리 슈퍼컴퓨터가 계산한 예측 궤도하고 비교했더니 뒷부분이 좀 다르더라.”
“왜 다른데?”
“몰라. 그 회사가 계산해봤더니 그렇더래. 그냥 믿으래.”
동료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 그런 건 무시한다더니 이번에는 제대로 확인은 했나 보다?”
“한국 회사에서 몇 번이나 경고해서 혹시나 하고 확인했지. 내가 일은 철저히 하잖아.”
다른 동료가 물었다.
“그 회사는 왜 그런 거래?”
“나한테 그 자료를 넘겨준 사람한테 물어보니까, 그 회사가 NASA에 납품 계약을 맺고 싶어 한다더라. 그거랑 관계가 있나 싶은데.”
“하지만 우리 슈퍼컴퓨터가 맞고 그 회사 계산은 틀렸다며.”
“나도 그 회사가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지 이상하긴 해. 사장이 미친 걸까?”
동료가 웃었다.
“어차피 안 될 거 찔러나 봤겠지.”
◈ ◈ ◈
우주에 나가서 위성을 수리하던 토마스가 말했다.
“선장. 지금 교체한 모듈은 어때?”
무전이 들어왔다.
- 상태 좋다. 역시 토마스. 혼자서도 잘하는구나. 우주 공간에서의 수리는 네가 세계 최고다.
우주왕복선에는 토마스처럼 수리 임무를 맡은 동료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일주일 내내 24시간 일할 수가 없다. 그 동료는 지금은 자다가 나중에 토마스와 교대할 예정이다.
“그렇게 띄워주고 일을 더 시키려는 거 다 알아.”
- 그래도 위성의 상태가 많이 나아졌어. 하루만 더 하면 끝낼 수 있어.
토마스가 대형 위성을 보았다. 위성 외부에 구멍이 나 있었다.
이 구멍은 궤도를 날아다니는 우주 쓰레기와 충돌해서 발생했다. 우주 쓰레기는 주먹보다 작은 크기였지만 손상된 모듈은 여러 개였다. 위성이 정상 상태로 돌아오려면 그걸 모두 교체해야 한다.
토마스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우주 공간을 보며 말했다.
“내가 수리하는 도중에 뭐가 또 날아오면 위험한 거 아니야?”
- 겁먹었냐?
“선장이 나와서 작업해보라고. 우주 공간에 혼자 둥둥 떠서 작업하다 보면 안 무섭나. 그런 거 맞으면 난 죽는다고.”
선장이 웃었다.
- 크크. 그런 것에 맞으면 우리 왕복선은 뭐 멀쩡하냐?
“우주왕복선은 덩치가 크기나 하지. 난 콩알 하나만 맞아도 끝이야.”
- 우리도 중요한 부분이 뚫리면 지구로 못 돌아가는 건 마찬가지야. 당장 죽냐, 천천히 죽냐의 차이라고. 그러니까 좀 쉬다가 다시 일해. 빨리 끝내야 안전한 지구로 빨리 내려가지.
“알았다고.”
◈ ◈ ◈
이튿날 아침에 선우현이 하늘을 보며 물었다.
“수선아. 우주왕복선은 대피했냐?”
- 아니요. 여전히 위성 궤도에 머물면서 작업 중입니다.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나? 충돌 확률은?”
- 99%입니다.
“다 죽겠네.”
- 출근하시겠습니까?
“출근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잖아. 우리 연락을 저쪽에서 아예 차단했다더라. 납품이나 해보려고 수작 부리는 거로 알더래.”
- 도와주려고 한 건데 빈정 상하네요.
“오늘은 그냥 옥상에 누워서 TV나 봐야겠다. 거기 신경 쓰면 스트레스만 받을 것 같아.”
- TV나 같이 보시죠.
◈ ◈ ◈
우주 쓰레기, 식별부호 SG-47163가 지구 주변을 빙빙 돌면서 날아다녔다. 지금까지는 NASA에서 예측한 비행 궤도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SG-47163의 비행 궤도가 나사가 예측한 것과 아주 약간 달라졌다. 처음에는 작았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졌다.
◈ ◈ ◈
NASA와 북미 방공사령부에서 최근에 설치한 최신 위성 궤도 추적시스템이 갑자기 경고를 날렸다. 우주 쓰레기와 인공위성의 충돌 위험이 있다는 경보였다.
해당 경보는 관계자 여러 명에게 자동으로 날아갔다.
그중 한 명인 NASA의 조세핀은 경보를 받자마자 인공위성의 정보부터 확인했다.
“오래된 민간 인공위성이네.”
지금은 경보가 뜬 단계다. 아직 두 물체가 충돌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혀를 찼다.
“쯧. 진짜로 충돌하면 이 회사는 속 좀 쓰리겠네. 우리 쪽도 비싼 위성이 고장 나서 우주왕복선까지 보냈는데, 이 충돌로 위성이 고장 나면 그냥 버리는 수밖에 없겠어.”
시스템이 추적할 정도의 우주 쓰레기라면 크기가 작지는 않다. 그런 물체가 고속으로 비행하다가 충돌하면 인공위성을 관통하거나 아예 폭발시킬 수도 있다.
그녀가 추적된 우주 쓰레기도 확인했다.
“어떤 녀석이 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나. 주식 있으면 일단 팔아버리는 게…. 어?”
그녀가 눈을 껌뻑였다. 우주 쓰레기의 추적 번호가 익숙했다.
“SG-47163?”
그건 이틀 전부터 한국 회사에서 경고했던 그 우주 쓰레기였다.
“이건 어제까지만 해도 충돌 위험이 없었는데….”
충돌 예정이 없다가 경고가 뜨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은 아니다. 늦게라도 발견했을 때 알려주기 위해 이 경고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상황을 먼저 예측한 곳이 있다.
그녀가 급히 어제 봤던 우주 쓰레기의 경로를 띄웠다. 처음에 보내줬던 것처럼 대충 찍은 것이 아니라, 상세한 좌표를 정확히 찍어서 다시 보내준 경로가 화면에 떴다.
그녀는 그 경로와 지금까지 추적된 SG-47163의 비행경로를 확인했다.
두 개의 선이 정확히 일치했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스래곤의 예측이 맞았어. 우리가 틀렸어.”
스래곤에서 굳이 경고한 건 위성 하나를 날려 먹는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서, 설마?”
한국 회사 스래곤은 우주 쓰레기와 위성이 충돌하면 그 파편이 우주왕복선과 현재 수리 중인 대형 위성을 덮칠 거라고 했다.
“우리 쪽 판단은?”
우주 쓰레기와 위성이 충돌한 후에 어떻게 될지는 지금부터 계산해봐야 한다. 아직은 예측값이 나온 게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만약 충돌 후 예측도 스래곤의 데이터대로라면?”
우주왕복선 승무원들이 위험해진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레곤이 경고한 대로 사고가 터진다면 남은 시간은 별로 없었다.
“당장 대피시켜야 해!”
◈ ◈ ◈
선우현이 하늘을 보며 말했다.
“수선아. 아직도 그대로냐?”
- 대원 한 명이 우주복을 입고 위성으로 수리모듈을 옮기고 있습니다. 그대로입니다.
“이쯤 되면 알 때도 되지 않았나?”
- 아직도 모른다면 지상의 위성 궤도 추적시스템이 개판이라는 거겠죠.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지?”
-그 정도는 아니면 좋겠네요.저 사람들을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