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경고
두 시간 후에 스래곤 연구소 김정수 이사가 선우현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 이메일에는 인터넷 홈페이지 링크와 외부 방문자용 계정이 들어 있었다.
“김 이사님이 유능하네. 이런 걸 바로 보내주고.”
- 그러게요.
선우현은 창가에서 이메일에 첨부된 인터넷 주소를 눌러 접속했다. 모니터에 NASA에서 만든 홈페이지가 나타났다.
그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NASA가 추적 중인 지구 주변 물체의 현재 위치와 속도, 과거 비행 궤적 등을 간단히 확인할 수 있었다.
선우현이 이것저것 눌러보았다. 우주 쓰레기도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확인했다.
“데이터가 너무 많고 복잡하게 나온다.”
- 다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추적 중인 것과 일치하는 대상만 찾으면 됩니다. 좌표를 불러줄 테니까 직접 찾아보시죠.
“우리 선체에서 쓰는 건 NASA에서 쓰는 좌표와는 좀 다르지 않냐?”
- 3차원 좌표인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정보만 빼서 비교해보시죠.
선우현이 여러 개의 위성 궤도 물체를 골라 좌표 정보를 비교했다.
김수선이 불러준 좌표와 NASA의 것은 단위나 숫자가 다르긴 했다. 그런데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는 여러 개의 좌표를 비교하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좌표 변환 방법을 찾은 후에는 그 우주 쓰레기를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네가 말한 우주 쓰레기를 찾았다. 수선아. 내가 이렇게 잘 찾는다.”
- 변환 공식을 알아냈으니 이제는 윈도우에 포함된 계산기만 몇 번 두드려보면 찾을 수 있습니다만?
“그걸 내가 했잖아.”
- 같이 했죠.
“그건 그래.”
- 이제 그 우주 쓰레기가 충돌할 위치에 있는 오래된 인공위성도 찾아보시죠.
“그건, 어디 보자….”
그 위성은 민간 기업에서 띄운 것이었다. 김수선이 불러준 좌표를 변환 공식에 넣었더니 위성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이것도 찾았어.”
- 선장님. 이제 충돌까지 68시간 남았습니다.
“거의 사흘이네. 위성이 파괴된 후에 파편이 우주왕복선을 덮치는 시간은?”
- 우주 쓰레기와 위성이 충돌하면 파편이 5분 후에 왕복선을 덮칩니다.
“그 시간에 왕복선이 대피할 수 있나?”
- 5분은 위성이 파괴된 후에 우주왕복선이 위험에 처했다는 걸 파악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설사 파악한다 해도 파편이 날아오기 전에 피하긴 어려울 겁니다.
“음…. 역시 NASA에 경고를 해줘야겠네.”
- 이 상황을 어떻게 알아냈다고 설명하시려고요?
“내가 계산했다고 하지 뭐.”
- 바보는 그런 거 계산 못 합니다.
“나 바보 아니다.”
- 그렇습니까? 몰랐습니다.
“혹시 NASA에서 물어보면 이것저것 계산해 보다가 찾았다고 하려고. 다른 방법 있냐?”
- 없죠. 그래도 그 홈페이지의 링크를 받은 지 한 시간도 안 지나서 계산을 끝내고 그 문제를 찾아냈다고 하면 의심하지 않을까요?
“그치? 이상하겠지.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말해야겠다. 그래도 충돌까지 거의 이틀은 남으니까 대피할 시간은 충분하잖아.”
- 물론이죠. 그 정도면 대피가 아니라 우주왕복선이 지구로 귀환하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저 오래된 위성을 움직일 수 있으면 충돌을 회피할 수도 있고요.
선우현이 사장실 PC를 종료했다.
“그럼 오늘은 퇴근해야지.”
- 네? 벌써요?
“괜찮아. 내일 또 올 거잖아.”
◈ ◈ ◈
선우현은 이튿날 스래곤으로 출근했다.
“와. 이틀 연속 출근이다.”
- 직원들이 들으면 욕합니다.
“최종훈 사장님이 찬혁 씨한테 한 말 생각 안 나냐? 수선아. 너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몰라.”
선우현이 스래곤 회의실에서 대형 화면에 위성 궤도의 자료를 띄웠다. 그 자료는 나사에서 사용하는 위성 궤도 물체 추적용 인터넷 사이트에서 뽑았다.
선우현이 말했다.
“내가 어제 저걸 보면서 이것저것 계산해 보다가, 곤란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그 추적 사이트 주소를 구해온 김정수 이사가 물었다.
“어떤….”
선우현이 대형 화면을 가리켰다.
“여기 이 우주 쓰레기의 크기는 약 20cm 정도입니다. 크기가 좀 되는 것들을 이것저것 계산해 보다가 이 물체의 비행 궤도도 계산했는데.”
선우현이 다른 화면을 띄웠다.
“이게 여기 이 오래된 민간 위성과 충돌하더군요.”
김정수는 깜짝 놀랐다.
“예? 지금 말입니까?”
“아니, 지금은 아니고.”
선우현이 시계를 보았다.
“48시간쯤 후에.”
“아….”
다른 이사가 아부했다.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무척 어려운 계산으로 보이는데 하룻밤 사이에 알아내시다니요.”
김정수는 의심했다.
“아니, 아무리 사장님이라도 48시간 후에 일어날 일을….”
“사장님이니까 계산해내실 수도 있지요.”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거면 NASA에서도 알 겁니다. 그럼 이미 대책을 세웠겠지요.”
선우현이 말했다.
“하긴. 그렇지요? 대책이 있겠지요?”
“예. 설사 막을 방법이 없다 해도 오래된 민간 위성 하나 날아간다고 무슨 큰일이 나는 건 아니고….”
“그럼 이것도 알려나 모르겠군요.”
선우현이 화면을 바꾸었다. 우주왕복선의 현재 위치는 이미 공개되어 있었다.
“우주 쓰레기가 인공위성과 충돌하면 그 파편이 5분 후에 여기를 덮칠 겁니다.”
“예? 거기를…. 그러면….”
“우주왕복선이 파편에 맞아 폭발하면 다 죽겠죠.”
김정수가 바짝 긴장하며 물었다.
“화, 확실한 건가요?”
“확실한 건 아니고, 한 70% 정도?”
“예?”
김수선이 정정해주었다.
- 지금 기준으로는 75%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예측 정확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니다. 75% 정도 되겠네.”
“저기, 100%가 아니라면….”
김수선이 말했다.
- 위성이 파괴될 확률은 훨씬 더 높습니다. 우주왕복선까지 같이 폭발할 확률을 계산했을 때가 75%입니다.
김정수 이사가 생각했다.
‘그냥 추측한 것뿐인가? 75%라는 수치는 면피용으로 대충 말한 건가?’
선우현이 말했다.
“뭐, 75%라고는 해도 경고는 해주는 게 좋을 겁니다. 저 사람들이 우주에서 죽으면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아서.”
김수선이 맞장구쳤다.
- 맞습니다. 남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죠. 우리도 저런 위험한 상황을 여러 번 겪었잖습니까?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근거리 방어 포탑의 수리가 조금만 늦었어도 선체가 뚫릴 뻔한 일도 있었지.”
김정수 이사는 선우현의 말이 다 믿어지지는 않았다.
어쨌든 사장이 지시를 내렸다. 김정수 이사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NASA에 있는 지인을 통해 조심하라고 경고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단서도 달았다.
“다만, NASA에서 믿을지는 모르겠습니다.”
◈ ◈ ◈
NASA 직원이 스래곤 연구소 김정수 이사가 보내준 자료를 보았다.
“아니, 이 사람은 무슨 농담을 이렇게 공식적으로 하나.”
동료가 물었다.
“뭔데?”
“우주 쓰레기 하나가 이틀 뒤에 오래된 인공위성을 때릴 건데, 그 파편이 우주왕복선을 덮칠 거니까 미리 대피하란다.”
“응? 그럼 피해야지. 심각한 일인데 왜 농담이라는 거야?”
“이게 사실이면 이미 경보가 떴겠지. 우리 쪽 분석팀과 슈퍼컴퓨터는 뭐 놀고 있냐?”
“하긴.”
동료가 물었다.
“그럼 그건 어떻게 할 거야?”
“나 이거 말고도 할 일 많아. 이런 조크까지 신경 쓸 시간 없어. 이건 뭐.”
직원이 이메일을 위성 궤도 위험물 분석팀 쪽으로 보냈다.
“분석팀이 알아서 하겠지.”
분석팀의 담당자 조세핀은 이메일을 받기는 했다.
“오늘도 우주 쓰레기가 위험하다는 이메일이 전 세계에서 백 통이 넘게 왔구나.”
그 이메일이 조세핀에게 직접 온 건 아니다. 외부에 공개된 계정으로 들어온 이메일들이 그녀에게 전달됐다.
조세핀이 그 이메일들을 본문 앞쪽만 빠른 속도로 대충 훑어보았다. 하나를 보는 데 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첨부 파일은 열어보지도 않았다.
그런 후에 그 이메일들을 메일함의 특정 폴더에 몰아넣었다. 폴더의 이름은 ‘아마추어의 경고’였다. 일단 그 폴더에 들어간 이메일은 다시 열어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위성 궤도의 위험물은 우리가 알아서 잘 분석하고 있으니까, 이런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해줬으면 고맙겠다. 나는 이런 스팸 말고도 읽어야 할 업무 이메일 많다고.”
◈ ◈ ◈
이튿날 오전에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우주왕복선이 대피할 생각을 안 하는데요?
“아직 하루 여유가 있잖아. 급한 일 다 해결하고 움직이려나?”
- 그러기엔 너무 조용한데요?
선우현이 어제 받은 인터넷 링크로 우주 쓰레기 경로를 확인했다. 김수선이 지원위성에서 망원 카메라로 그 화면을 같이 보았다.
“예상 경로가 바뀐 게 없네? 수선아. 충돌 확률은?”
- 90%에 근접했습니다. 89%입니다.
선우현이 투덜댔다.
“오늘은 조종사 나오는 영화 보러 가려고 했는데, 또 출근해야겠네.”
- 사장이 됐으면 회사에 자주 좀 가라고요.
선우현이 회사에 도착했다. 비서실 대리는 오늘은 똑바로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오늘 어디 좋은 데 갑니까? 정장을 입었네?”
“심기일전해서 마음을 다져 일하려고 정장을 입었습니다!”
선우현이 자기 옷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오늘은 찢어진 청바지에 헐렁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찢어지고 헐렁해서 이런 걸 입은 거구나.”
“아, 아닙니다!”
“에이. 옷이야 마음대로 입어도 되지요. 나는 헐렁한 거 맞는데 뭐.”
- 선장님이 좀 헐렁하긴 합니다.
선우현이 사장실로 들어갔다.
대리가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도 출근하실 줄은 몰랐는데, 나 또 실수한 거죠?”
과장이 한소리 했다.
“너는 사장님이 왜 저런 옷을 입으시는지 몰라? 직원 복장 자율화를 위해 솔선수범하시는 건데, 정작 비서실에서 정장을 입으면 사장님은 뭐가 되냐?”
“지금이라도 좀 찢을까요?”
“그냥 티라도 하나 사서 위에만 갈아입어.”
◈ ◈ ◈
선우현이 나사와 연줄이 있는 이사들을 회의실로 불렀다.
“우주왕복선이 대피를 안 하고 NASA의 위험물 추적 사이트도 변화가 없던데, 우리 경고를 NASA에 전달한 거 맞습니까?”
김정수 이사가 보고했다.
“예. 자료를 보내주고 잘 확인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곤란한데. 충돌 확률을 다시 계산하니까 89%로 올라갔는데.”
“제가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그런다고 상황이 바뀌겠습니까?”
“그게…. NASA에도 위험을 분석하는 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팀은 아마추어가 이런 식으로 하는 경고를 매일 전 세계에서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나 봅니다.”
“음…. 내가 아마추어구나.”
“저, 저는 사장님을 믿습니다!”
“안 믿는 것 같은데.”
영업 담당 이사가 나섰다.
“사장님. 제가 NASA에 납품하려고 뚫은 라인을 통해서 위험 경보를 전달하겠습니다.”
“양쪽에서 동시에 연락하면 좀 나으려나. 그렇게 해봐요. 저대로 놔두면 저 우주왕복선은 터집니다.”
◈ ◈ ◈
NASA의 위성 궤도 위험물 분석 담당자 조세핀이 이메일을 받았다. 이번에는 양쪽에서 같은 이메일이 들어오고 동료 직원의 전화도 한 통 받았다.
“하여간 아마추어들이란.”
그녀가 툴툴대면서도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이번에는 잠깐 훑어보는 게 아니라 제대로 내용을 확인했다.
“SG-47136이 24시간 후에 인공위성과 충돌할 확률이 89%?”
그녀는 어제 받은 이메일도 폴더에서 꺼내서 열었다.
“어제는 75%? 하루가 지났으니까 예측 정확도가 높아졌다는 거야? 콘셉트 잘 잡았네.”
그런데 이메일에는 위험 경고만 있지 어떻게 그 결과를 도출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것까지 확인해야 하느냐고.”
그녀는 NASA의 슈퍼컴퓨터가 분석한 예상 경로를 확인했다. 예측 프로그램이 미리 만들어낸 경로가 있어서 불러내기만 하면 됐다.
스래곤에서 제공한 그래프와 NASA의 그래프는 비슷했다. 그런데 24시간 후의 위치에는 차이가 약간 있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우리 궤도 데이터를 살짝 고쳐서 보낸 거잖아.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
그녀는 이메일을 잘 확인해달라고 전화한 NASA 직원에게 도로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이런 장난질까지 나한테 연락하면 내가 일을 어떻게 하라는 거죠? 이거 일부러 나 멕이려는 건가요?”
◈ ◈ ◈
선우현은 점심을 먹자마자 퇴근했다. 그런 후에는 영화관으로 갔다.
“역시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니까.”
- 혼자만 보니까 좋으십니까?
“자동차 극장이라도 갈 걸 그랬나? 너랑 같이 보게.”
- 됐습니다.
그는 영화관에 들어가 상영관을 찾았다.그런데 상영관에 막 들어가려고 할 때 전화가 걸려왔다. NASA와 연락하겠다고 큰소리쳤던 스래곤의 영업 담당 이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