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개똥 골드
남미연이 박서윤에게 연예계 진출을 슬쩍 떠봤다. 하지만 박서윤의 대답은 단호했다.
“관심 없어요.”
“서윤 씨는 비쥬얼이 완전히 배우상이잖아. 마스크가 아깝지 않아?”
“안 아까워요.”
남미연이 샐러드에서 활토를 썰어놓은 것만 골라 먹으려고 했다. 박서윤이 잔소리했다.
“다른 채소도 같이 드세요.”
“먹으려고 했어. 내가 이거 먹으면 연예계로 오는 거다?”
박서윤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흔들었다.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그래도 안 해요.”
남미연이 포크를 스파게티 쪽으로 옮기며 말했다.
“스래곤 주총 때 보니까, 서윤 씨는 발성도 좋고 표정도 좋더라. 연기 조금만 배우면 잘하겠던데.”
박서윤이 조금 놀란 얼굴로 물었다.
“거기 오셨어요?”
“내가 산 스래곤 주식이 얼마나 많은데.”
남미연은 선우현이 스래곤 주식을 샀다는 말을 듣자마자 돈을 끌어모아 주식을 따라 샀다.
“내 재산이 휴지가 되는 건 아닌지 확인하려고 시간 내서 갔지. 물론 얼굴 다 가리고 구석에 앉아 있었지만.”
“부끄러워요.”
“거봐. 그때 주총장에서 보여준 강한 모습이 다 연기였잖아. 조금만 배우면 연기 되게 잘할 것 같아. 연예계로 와. 서윤 씨는 내가 진짜 팍팍 밀어줄게.”
“안 가요. 전 회사 다니는 게 좋아요.”
“이제는 스래곤의 비서실장이니까 망설이는 건 이해가 가는데….”
“길성 비서실의 대리만 해도 좋아요.”
남미연이 부리또를 먹으며 말했다.
“회사 때문에 그러면 겸업도 있잖아. 길성은 몰라도 스래곤은 사장님한테 부탁하면 허락할 것 같은데.”
남미연이 선우현을 돌아보았다.
“그렇죠? 스래곤 사장님?”
선우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퇴근하고 나서 뭘 하는지는 서윤 씨 마음이지요. 길성 박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선우현이 물었다.
“그런데 남미연 씨는 왜 서윤 씨를 그렇게 연예계로 끌어들이려고 합니까? 기획사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면서.”
“웅…. 글쎄? 동생 같아서?”
“조카라면 모를까 동생이라니.”
“조카는 너무하잖아!”
“아. 늦둥이 동생이라고 치면 뭐….”
“캬악! 나 이번 영화에서 같이 출연한 20대 배우들 다 압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그 이야기를 오래 해봤자 남미연이 불리해진다. 그녀가 말을 돌리려고 선우현에게 따졌다.
“그리고 말이야. 내가 주총에 갔더니, 대주주인 선우현 씨가 없던데. 내 돈 그렇게 많이 빌려놓고 주총에 안 나가는 건 뭐죠?”
선우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야 뭐 서윤 씨를 믿었으니까.”
“그 중요한 일을 떠넘겼다?”
“그만큼 믿었다니까요.”
남미연이 선우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선우현 씨는 참 신기한 사람인 거 알죠?”
“좋은 뜻인가?”
“이렇게 보면 놀고먹는 날백수가 따로 없는데.”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정확히 봤군요.
“엄청 대단한 걸 연구해서 만들어내는 걸 보면 그럴 리는 없고.”
- 그럴 리가 있는데, 그걸 모르네요.
“회사는 일하기 싫어서 남한테 다 떠넘기고 노는 것 같은데.”
- 날카롭군요.
“망해가던 스래곤이 살아난 거 보면 그건 아닌가 싶고.”
- 제가 여기서 잘 서포트해서지요. 다시 보니 남미연은 아는 게 없군요.
남미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옥상에서 보면요. 다시 봐도 날백수란 말이죠.”
“칭찬하는 걸까? 시비를 거는 걸까?”
“둘 다?”
“앞으로는 도와주지 말까 보다.”
“앗! 밥 다 먹었으니까 소화라도 시켜야겠다!”
남미연이 일어나 옥상을 걸었다.
“그러고 보면 여기가 참 전망이 좋긴 해요. 천장이 없어서 개방감도 끝내주고. 여기는 다른 건 다 그냥 그런데, 이것 하나만큼은 우리 집보다 낫네.”
“그것 때문에 여기 산다니까.”
옥상을 어슬렁거리던 남미연이 슬금슬금 활력 토마토가 열린 화분으로 이동했다.
“어머어! 활토가 많이 열렸네. 남겠다.”
“안 남아요. 손 떼요.”
“아직 손 안 댔거든요? 그냥 보는 거예요. 응?”
남미연은 화분 사이에서 동그란 걸 발견했다. 그녀가 다리를 굽히고 그걸 엄지와 검지로 집은 후에 일어났다.
“이게 뭐지?”
“그거 엠투 개똥인데.”
“켁. 개똥….”
구슬을 버리려던 남미연이 그걸 위로 들어 햇빛이 비춰보았다.
그녀가 뒤로 휙 돌아섰다.
“개똥은 무슨. 감촉이 금속인데. 흰둥이가 어떻게 쇠구슬을 눠요? 이거 뭐예요?”
“그냥 뭐, 여러 물질을 적당히 섞은 거?”
“황금색 무늬가 들어 있는데?”
“그거 성분이 반쯤은 금이니까, 황금색 무늬가 보이는 거야 당연하지요.”
“그렇구나. 딱 봐도 금색이더라. 진짜 금이었구나.”
“금으로 만든 개똥이니까 더럽지는 않겠네.”
남미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무슨 금이 옥상에 막 굴러다녀요?”
“그거 어디 좀 쓰고 남은 건데, 녹여서 금만 분리하려면 손이 너무 많이 가서 버려둔 겁니다.”
엠투의 내부 수리에는 골드바가 사용된다. 그 구슬은 수리 과정에서 금과 다른 물질이 뒤섞여 나온 부산물이다.
“이걸 녹여서 분리해요? 왜요?”
그녀가 그 구슬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햇빛이 닿자 영롱한 빛이 표면을 타고 흘렀다.
“무늬가 너무 예쁘게 들어갔는데 이걸 왜 녹여요?”
“금이 아까우니까?”
“아까울 거면 왜 이렇게 예쁘게 만들…. 아니, 잠깐만. 혹시 이것도 만든 거예요?”
“개똥이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요.”
“여기서 만든 건 맞는데.”
- 엠투가 옥상에서 만들었지요.
“진짜 잘 만들었다. 이거 혹시 무늬가 표면에만 있어요?”
“그럴 리가. 완전히 뒤섞인 거라서, 내부도 그 상태입니다.”
“그러면….”
남미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거 내가 가져도 돼요? 무늬가 너무 예뻐서 목걸이로 만들고 싶어요.”
“개똥을 왜 굳이….”
“금으로 된 개똥이 어디 있냐고요. 그것도 이렇게 아름다운 무늬가 들어 있는데. 자꾸 농담하지 말고요.”
“목에 걸기엔 조금 크지 않나 싶은데.”
“예쁘게 깎아야죠. 전문가한테 맡겨서.”
선우현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던가요.”
“선물로 주는 거죠?”
“와…. 있는 사람이 더하다더니. 그거 절반이 금인데!”
“스래곤 사장님. 이런 건 원래 선물로 받아야 가치가 더 있거든요? 그리고 금을 분해하기 어려워서 버린 거라면서!”
“뭐, 남미연 씨는 스래곤 인수할 때 돈을 많이 빌려줬으니까, 가져가요. 어차피 개똥인데.”
“개똥 아니라니까.”
◈ ◈ ◈
남미연은 액세서리 제작 전문 장인을 찾아가 구슬을 맡겼다.
“이걸로 목걸이를 만들 수 있겠어요?”
액세서리 장인이 구슬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다.
“금속이 신기한 형태로 융합된 구슬이군요. 금속을 조금씩 녹여가면서 붙였나? 이거 진짜 어떻게 한 거지?”
“가능하냐니까요?”
“금속이긴 한데 특수강은 아니니까, 가공하기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디자인은?”
엠투가 배출한 금속 구슬은 완전한 구체가 아니라 조금 길고 납작한 형태였다.
전문가가 스케치북을 가져와 예전에 그린 것을 보여주었다.
“이 디자인 어떻습니까? 위아래를 얇게 잘라내 길고 납작한 타원으로 만드는 겁니다. 잘라낸 부분들은 다시 더 작은 구슬 여러 개로 깎아서 연결하는 거지요.”
스케치의 그림은 납작한 타원형 장식이 가운데 가고, 그 양쪽으로 작은 구슬들이 이어진 형태의 목걸이였다. 그렇게 구슬 몇 개가 이어진 후에는 일반적인 목걸이 줄이 보였다.
“예쁘네요? 이 줄은 소재가 뭐예요?”
“백금이 어떻겠습니까?”
“좋네요. 이렇게 만들어줘요.”
◈ ◈ ◈
남미연은 이 수제 액세서리 공방의 VIP 손님이다.
톱스타인 그녀가 이곳에서 액세서리를 만들면 그만큼 이 공방이 운영하는 매장이 유명해진다.
그래서 그 장인은 그녀의 목걸이를 최우선으로 제작했다.
장인은 제작하면서 감탄했다.
“무늬가 정말 아름다워. 도대체 어떻게 금이랑 여러 가지 소재를 반쯤 녹여서 이렇게 깔끔하게 붙인 거지? 양쪽 다 녹여가면서 한 겹씩 붙인 것 같은데, 금속을 이런 식으로 녹이는 게 가능한가?”
목걸이는 이틀 만에 완성됐다.
그녀가 그 목걸이를 차고 TV 예능 방송에 출연했다.
남미연은 톱스타다. 그녀가 주연을 맡은 영화는 지금 극장에서 제일 잘나간다. 그녀가 오늘 출연한 방송도 인기가 높은 예능이다.
그래서 그 방송을 본 사람이 많았다.
그녀의 목걸이는 조명을 받을 때마다 아름다운 빛이 흘렀다. 그녀가 자랑하려고 차고 나온 목걸이를 보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그 영상과 사진이 올라왔다.
남미연이 다른 행사에서 그 목걸이를 차고 나왔다가 찍힌 고화질 사진도 올라왔다.
- 남미연 목걸이 어디서 파나요?
- 저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모르겠습니다. 파는 곳이 없어요.
- 알아도 사기 어려울 듯. 비싸겠죠.
남미연이 다른 방송에도 출연했다. 거기서 목걸이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가 대답했다.
“아. 이거 액세서리 장인이 만든 수제품이에요. 특정 브랜드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파는 게 아니에요.”
게시판에 그 이야기도 올라왔다.
- 그러니까 못 산다는 이야기네.
- 똑같이 만들면 되는 거 아닙니까?
- 제 친구가 금은방을 하는데, 저 독특한 무늬가 들어간 소재를 구할 수가 없어서 못 만든다더군요.
-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소재를 비슷하게 만들어본 곳이 있는데, 저 독특한 느낌과 색감, 분위기가 안 난대요. 그냥 따라 하면 조잡해 보인다더라고요.
◈ ◈ ◈
선우현이 스래곤에 며칠 만에 출근했다. 그런 날은 박서윤도 스래곤으로 출근한다.
점심을 먹으면서 박서윤이 말했다.
“남미연 씨가 그 구슬을 가져가서 목걸이를 만들었어요. 그 목걸이가 요즘 유명해요.”
“아니, 개똥을 굳이 가져가서 기어이 목걸이를 만들었네. 그러고 싶나.”
“예쁘잖아요. 진짜 개똥도 아니고요.”
“그게 예뻐요? 서윤 씨가 보기에도?”
“그렇죠?”
“그렇구나.”
◈ ◈ ◈
선우현은 퇴근한 후에 옥탑방에 들어가 쿠키가 담겨 있던 양철통을 꺼냈다.
쿠키는 이미 예전에 다 먹었다. 그는 양철통을 버리지 않고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데 썼다. 그런 양철통이 몇 개 있었다.
선우현이 양철통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엠투가 배출한 구슬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진짜 이게 예쁘다는 건가? 엠투 개똥인데?”
“멍?”
- 개똥이 아니라 엠투가 내부 수리에 사용하고 남은 찌꺼기입니다.
“그걸 보통 똥이라고 불러.”
- 이 지구에는 금속으로 된 똥은 없죠.
“엠투는 황금 개똥을 누더라고.”
선우현이 옥상에 꺼내놓은 TV에 남미연이 출연한 예능 방송 영상을 띄웠다.
“이걸 가공해서 저 목걸이를 만들었단 말이지.”
- 잘 만들긴 했네요.
◈ ◈ ◈
선우현이 곧바로 명품 전문 디자이너 채연서를 찾아갔다. 그녀는 활토와 R 크림의 패키지 작업을 담당했다.
채연서가 반가워했다.
“앗! 선우현 씨가 나를 만나러 왔어. 오늘 무슨 날인가요?”
“저녁은?”
“다이어트를 해볼까 하고 굶었는데, 방금 포기했어요.”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스래곤 사장님이 사는 거면, 어디 엄청 좋은 데 가나요?”
“김천?”
“네?”
“패밀리 세트?”
“내가 살게요.”
저녁으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으깬 감자를 곁들인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선우현이 물었다.
“채연서 씨는 액세서리도 만들 줄 압니까?”
“제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디자인은 할 줄 알아요. 실제로 한 적도 있고요. 디자인한 대로 만드는 건 전문가들이 따로 있어서 그쪽에 의뢰하고요.”
“그럼 내가 액세서리 하나 의뢰해도 되려나요?”
“어떤 거로요?”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
채연서는 깜짝 놀랐다.
“어? 설마 여친?”
“내가 여친이 어디 있다고. 요즘 일을 너무 많이 시켰나 싶어서, 뇌물로 쓰려는 겁니다.”
“아니구나. 흐음. 나 비싼데.”
“오늘 이거 내가 사면?”
채연서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뭐예요? 그게. 알았어요. 소재는 뭔데요? 금? 백금? 보석? 설마 다이아는 아니죠?”
“금이 섞인 금속입니다.”
선우현이 금속 구슬을 하나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데, 가능하겠습니까?”
채연서가 그걸 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게 왜 여기서 나와요?”
“이걸 알아요?”
“남미연 씨 목걸이의 소재로 쓴 R 골드잖아요.”
“R 골드?”
“남미연 씨가 그렇게 이름 붙였다던데.”
“와….미연 씨는 이제 개똥에 이름까지 붙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