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멍배우
영화 시사회를 시작하기 전에 배우와 감독이 인사했다. 배우들 사이에는 엠투도 있었다.
“무대에 개가 있네?”
“남미연 씨가 요즘 자주 데리고 다니는 개잖아. 이름이 아마 흰둥이였지?”
“이 영화 포스터에 저 개도 있더라.”
사람들이 인사를 하다가 엠투의 차례가 돌아왔다. 엠투가 마이크를 향해 짧게 짖었다.
“멍!”
관객 일부가 그걸 보고 웃었다.
“자기도 배우라는 거야?”
“개배우네. 개배우.”
배우와 감독이 내려가고 상영관이 어두워졌다. 영화가 시작됐다.
신나리는 선우현이 준 시사회 초대권으로 이곳에 왔다. 그녀는 영화를 보면서 감탄했다.
“와…. 엠투는 옥상에서 굴러다닐 때는 그냥 주인 닮은 개인데, 화면에서 보니까 장난 아니다. 막 기품이 있어.”
영화 상영이 끝난 후에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가 꽤 컸다.
감독과 배우들은 상영관 앞쪽과 복도에서 시사회에 참석한 손님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인사했다. 그녀의 옆에는 엠투가 따라다녔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보기 전보다 훨씬 더 엠투에게 관심을 보였다.
“소문이 자자한 멍배우 흰둥이가 어느 정도인가 했는데….”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알겠네. 영화를 보니까 멍배우 맞아.”
30대 여배우가 엠투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참 신기하다. 생긴 건 똥개인데….”
남미연이 그 손을 밀어냈다.
“넌 가. 만지지 마.”
“언니이. 농담이죠. 너무 자연스럽고 편안한 개라는 뜻이었어요.”
“그래?”
“그럼요.”
그녀가 흰둥이를 쓰다듬었다.
“아이. 착하다. 착하…. 어머. 털이 느낌이 진짜 좋다. 무슨 비단 같아요.”
“우리 흰둥이가 만지는 느낌이 좋긴 하지? 냄새는 더 좋다?”
“진짜 장난 아닌데요? 털 깎아서 옷 만들고 싶….”
“멍?”
“너 가!”
기자들도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출연 배우들의 팬서비스도 좋았다.
좋은 기사가 많이 나오면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 ◈ ◈
신나리는 수업이 없는 날은 스래곤에 가서 알바를 한다. 작전주로 날려 먹은 돈을 복구하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스래곤은 인턴 알바에게는 점심이 무상으로 제공되었다. 그녀가 점심을 먹으며 동기 알바들에게 시사회에 갔던 일을 자랑했다.
“그 영화 진짜 쩐다니까?”
“역시 남미연과 고 감독인가?”
남미연이 말했다.
“거기다 엠투까지. 아니다. 영화에서는 흰둥이구나. 흰둥이까지.”
“흰둥이?”
“영화에서 남미연 씨가 데리고 다니는 개 역할로 나오는데, 진짜 연기 잘해.”
“에이. 개가 무슨 연기를 해.”
“일단 영화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내일 정식 개봉한대. 꼭 봐.”
신나게 자랑하는 신나리의 옆에 박서윤이 앉았다.
“나리가 그 영화 봤구나?”
“앗! 서윤 언니. 오늘은 출근했네요?”
신나리와 같이 밥 먹던 인턴 알바들은 깜짝 놀라 손이 굳었다.
스래곤 비서실장 박서윤이 물었다.
“시사회 초대권은 어디서 나서?”
“옥상 오빠가 줬죠. 아니면 제가 어디서 구해요?”
“역시 그렇구나. 단둘이 보러 간 거야?”
“아뇨. 친구랑요. 옥상 오빠는 나중에 정식 개봉하면 본다던데요?”
박서윤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렇구나. 밥 맛있게 먹어.”
“엥? 같이 먹는 거 아니었어요?”
“다른 분들이 불편해하실 것 같아서.”
신나리가 앞을 보았다. 인턴 알바들은 돌처럼 굳어서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박서윤이 다른 자리로 걸어갔다.
문서수발실 창고에서 일하는 성준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긴장해서 죽을 뻔했다.”
“왜? 서윤 언니가 심하게 예뻐서?”
“물론 엄청 예쁘시지. 그것만 해도 긴장이 되는데, 거기다 비서실장님이시잖아.”
“실장이면 높은가?”
“당연히 높지. 이사급이니까. 그리고 비서실장님의 실제 파워는 다른 이사님들보다 더 세다더라. 사장님이랑 직접 통하는 분이니까 당연하겠지.”
“무서운 언니 아닌데. 되게 착한 언니인데.”
“너한테만 그렇겠지. 우리 같은 인턴 알바한테는 말 걸기 무서운 높은 분 맞아.”
다른 남자 알바가 말했다.
“그런데 진짜 예쁘시긴 하다. 왜 배우를 안 하시고 회사에 다니시는 걸까?”
“저 언니는 연예계는 관심이 아예 없대.”
◈ ◈ ◈
남미연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정식으로 개봉됐다.
영화를 찍는 동안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영화 제목은 몇 번이나 바뀌다가 ‘우리들의 청춘’으로 결정됐다.
마침 대작이 없어 여유가 생긴 영화관 여러 곳에서 ‘우리들의 청춘’이 상영됐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만족했다. 영화는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남미연의 외모가 상당한 이슈를 일으켰다.
그녀는 원래 미녀로 유명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다른 쪽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그 이야기가 올라왔다.
- 남미연이 20대 역할 맡는다길래 무리수인 줄 알았는데, 진짜 그 나이로 보이더라고요.
- 예고편에서도 젊게 나왔지만, 그때는 CG로 처리한 줄 알았죠.
- 영화에 같이 나온 20대 여배우들을 다 압살해 버리던데요.
- 남미연이 몇 살이죠?
- 우리 나이로 40살이요.
- 엄청 동안이네요. 영화에서는 진짜 20대로 보였는데요. 우리나라 메이크업 실력 어마어마하네요.
- 메이크업만으로 그게 될 리가요. R 크림을 영화 촬영 기간 내내 매일 발라준 덕분이라던데요.
- R 크림이 뭐죠?
- 명품 화장품이요.
- 화장품 홍보하러 오셨나? 안 사요. 안 사.
- 홍보를 왜 합니까? R 크림은 워낙 귀해서 돈이 있어도 못 사는 화장품인데.
- 맞아요. 연예인들도 그거 구하려고 그렇게 애쓴다는데, 홍보라니요.
- 와. R 크림이 뭔지 검색해보니까 장난 아니네요. 팬들이 조공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어서 조공을 못 한다는 전설의 화장품이네요.
- 전호 호텔에 장기 투숙하는 연예인도 있대요. 그 호텔에 R 크림을 얼굴에 발라주는 피부관리 패키지가 있어서요.
- 그거 상황이 좀 변했습니다. 투숙객이 다들 R 크림 패키지를 원해서, 이젠 예약을 해야 받을 수 있답니다. 그것도 투숙 첫날 신청자를 우선한다니까 장기 투숙해도 매일 바르긴 어려울 겁니다.
- 그런데 그런 귀한걸 남미연은 어떻게 매일 발랐대요? 게다가 촬영하러 전국을 돌아다녔을 텐데.
- 그러게요.
그 영화는 남미연의 젊어 보이는 외모만 유명해진 게 아니다.
- ‘우리들의 청춘’은 남미연이랑 개가 연기력으로 캐리했습니다.
- 인정합니다. 와. 무슨 개가 연기를 그렇게 잘하지?
- 개가 감정 연기를 하더라고요.
- 대본 외우고 연기한다고 해도 믿겠더군요.
- 그래서 별명이 멍배우랍니다. 멍배우 흰둥이.
영화가 개봉하고 사람들이 몰리면서 엠투도 유명해졌다.
◈ ◈ ◈
토요일 저녁때 신나리가 엠투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다.
“너 말이야. 맨날 옥상에서 뒹굴고 있으면 되겠어?”
“멍!”
“그래도 산책하는 게 좋지?”
“멍?”
“좋다고 해. 그런데 너 되게 유명해진 줄 알았는데….”
지나가는 사람 중에 엠투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신나리가 편의점 앞에서 컵라면을 하나 샀다. 그녀가 편의점에 들어간 사이에 젊은 여자 두 명이 다가와 엠투를 쓰다듬었다.
“얘는 영화에 나온 흰둥이랑 진짜 똑같이 생겼다.”
“이렇게 생긴 개는 시골에 가면 많아.”
“역시 시고르자브종.”
“근데 되게 착하다.”
“털이 느낌이 진짜 부드럽고 좋다.”
엠투는 워낙 흔하게 생겨서 사람들은 멍배우 흰둥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비슷하게 생겼다면서 쳐다보는 사람만 가끔 있었다.
여자들이 간 후에 신나리가 말했다.
“넌 생긴 게 아니라 연기력으로 성공한 멍배우구나? 뭐 먹을래? 닭가슴살? 핫바?”
“멍!”
“넌 역시 맛을 알아. 핫바.”
◈ ◈ ◈
남미연이 엠투를 데리고 공식 행사에 참석했다. 영화 홍보를 위해 참석한 행사라 엠투가 필요했다.
남미연이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아름다운 밤이에요.”
엠투는 그녀의 옆을 따라다녔다.
그 모습을 본 영화 관계자가 말했다.
“저 개는 경호 훈련이라도 받았나?”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잘 봐.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게 잘 피하면서 따라다니잖아.”
“똑똑한 개는 그 정도는 해요.”
“그러다가 남미연 씨의 사각에서 접근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쪽으로 이동해서 견제하더라고.”
“경호견을 연기하는 거 아닐까요?”
“어?”
“멍배우 흰둥이의 연기력이야 유명하잖아요. 남미연 씨가 저러라고 시켰을 수도 있지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
다른 영화 관계자들도 엠투에게 관심이 많았다.
“우리 다음 영화에 연기력이 있는 개가 필요한데, 멍배우 흰둥이가 딱이야.”
“우리 영화에도 개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우리도 멍배우를 생각하고 있는데?”
“같은 개가 여러 영화에 나오면 좀 그렇지 않나?”
“같은 배우는 나와도 되고?”
“하긴. 나와도 되겠네.”
남미연은 엠투와 행사에 참여한 후에 곧바로 선우현의 옥탑방으로 갔다.
엠투는 옥탑방 옥상에 올라가자마자 벌렁 드러누웠다.
“우리 흰둥이. 누나 따라다니느라 힘들었구나?”
김수선이 말했다.
- 엠투는 남미연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지상에서 활동했으니까, 남미연이 누나는 아닌데 말이죠.
선우현은 순대와 떡볶이를 옥상에 펼쳐놓고 먹으려던 참이다. 남미연이 맞은편에 앉았다.
“어머. 맛있겠다.”
남미연은 이쑤시개로 순대만 쏙쏙 집어 먹으며 말했다.
“여기 순대 맛이 괜찮네요.”
“여배우는 먹는 거 좀 가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영화 끝났잖아요. 이제부터 난 흰둥이랑 놀면서 쉴 거예요. 그러니까 많이 먹어도 돼요.”
“그럼 남미연 씨도 배달시켜서 먹어요.”
“순대는 이렇게 땡길 때 먹어야 제일 맛있어요. 나도 먹겠다고 새로 배달시키면, 그게 도착했을 때는 맛 없어요.”
“돈도 많이 버는 사람이 남의 밥을 빼앗아 먹고 싶나?”
“어머. 그거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그녀가 옥상 옥탑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스래곤의 사장님이 도대체 왜 여기서 살아요?”
“이 건물 내 거라니까요.”
“스래곤 인수할 때 대출 풀로 땡겼을 테니까, 은행 거 아닌가?”
“그건 이미 갚았는데.”
“벌써요? 어떻게요?”
“기술 로열티랑 활토, R 크림?”
이 건물에 걸린 대출은 그렇게 들어온 돈으로 갚았다.
“나한테 빌린 돈은?”
“천천히 갚을 겁니다. 그리고 남미연 씨는 내 말 듣고 산 스래곤 주식이 폭등해서 돈 많이 벌었을 텐데?”
“내가 가진 주식보다 선우현 씨 주식이 훨씬 더 많은데, 그럼 누가 돈을 더 많이 벌었을까? 도대체 그렇게 돈 잘 버는 사람이 왜 여기 사냐고요.”
선우현이 손을 머리 위로 들고 흔들었다.
“전망이 좋아서 산다니까 그러네.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너무 오래 살아서, 이제는 이런 넓고 탁 트인 공간이 좋습니다.”
“집은 원래 천장이 있어요.”
지원위성에서 사는 건 평범한 집에서 사는 것과 달랐다.
집은 일단 밖으로 나오면 골목도 있고 길도 있다. 차를 타고 훌쩍 떠나면 산이나 강, 들판으로 갈 수도 있다. 좀 더 나가면 바다도 있다.
하지만 지원위성에는 그런 곳이 없었다. 밖으로 나갈 때는 우주복에 갇혀서 나가야 했다.
그렇게 나간 외부는 우주 공간이라 풀 한 포기조차 없었다. 시원한 바람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 옥상에는 옥탑방 말고는 천장이 없잖아요. 바람도 잘 불고. 그래서 좋다니까?”
“취향 참 특이하다니까.”
박서윤이 옥상에 올라왔다. 손에는 요리 재료가 들려 있었다.
남미연이 손을 흔들었다.
“서윤 씨. 나 왔어.”
“네. 밑에서 차 봤어요.”
“근데 그건 뭐야?”
“오늘 저녁은 토마토로 요리를 만들어서 같이 먹기로 해서요.”
그녀가 얼른 들고 있던 이쑤시개를 내려놓았다.
“어머어! 내가 먹을 복이 있구나!”
선우현이 말했다.
“2인분만 할 건데.”
“뻥 치시네. 둘 다 엄청 많이 먹는 거 다 아는데. 나는 그냥 조금만 덜어주면 돼요.”
“영화 끝났으니까 많이 먹을 거라더니?”
“들켰네.”
박서윤은 활력 토마토를 베이스로 고기와 치즈가 들어간 요리를 몇 개 만들었다. 스파게티와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부리또, 거기에 토마토가 들어간 샐러드가 탁자 위에 놓였다.
남미연이 부리또를 먹으면서 눈을 감았다.
“진짜 맛있다.”
박서윤이 샐러드 접시를 살짝 밀며 말했다.
“섬유질도 충분히 드셔야 해요.”
“섬유질은 몸매 관리할 때 실컷 먹는단 말이야. 지금은 휴식기니까 안 먹어도 돼. 내 몸 어딘가에 충분히 저장되어 있을 거야.”
“섬유질은 저장이 안 돼요. 식사 때마다 먹어야 건강에 좋아요. 그리고 샐러드에서 활토만 빼먹으면 어떻게 해요? 다른 채소랑 같이 드세요.”
“우리 엄마인 줄.”
남미연이 박서윤의 요리를 먹으며 물었다.
“서윤 씨.진짜 연예계로 안 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