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98화 (198/281)

198. 개발

정치인 두 명이 고급 식당의 별실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50대 정치인이 술을 마시며 불평했다.

“박재곤 의원 체면을 생각해서 그놈들이랑 술이나 좀 마셔줬다가 이게 뭔 꼴이야? 나는 그리 대단한 걸 받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정치인이 말하는 대상은 덕구파였다.

덕구파는 요즘 수사기관에 의해 갈려 나가는 중이다. 그러다가 정치인과 관련된 첩보가 흘러나오곤 했다.

다만 아직은 말은 나오고 소문만 돌았지 물증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권력의 힘으로 덮을만했다.

40대 정치인이 두 손으로 술을 따르면서 맞장구쳤다.

“저도 그놈들에게는 심부름이나 좀 시킨 정도입니다. 그래도 그 일이 알려지면 선거에 영향이….”

“덕구파 기사에 괜히 우리 이름이 나오면 당연히 영향이 있겠지.”

“저는 지역구 지지율에 여유가 없습니다. 다음 선거 때 상대편에서 덕구파 연루설이라도 들고나오면 많이 곤란합니다.”

“알아. 그렇게 되면 나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야.”

“두목이 입을 열기 전에 빨리 잡아넣어야 합니다.”

“당연하지. 빨리 잡아서 우리 영향력이 닿는 곳에 집어넣어야 해. 그래야 우리가 피곤해지지 않아.”

40대 정치인이 걱정했다.

“그놈이 그걸 눈치채고 얼마나 꼭꼭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답니다. 혼자 숨은 게 아니라 핵심 간부와 친위대까지 통째로 사라졌다더군요.”

“영악한 놈이네. 내가 경찰에 전화를 다시 넣지. 빨리 잡으라고.”

“저도 그러겠습니다. 그런데….”

40대 정치인이 희망 섞인 관측을 내놓았다.

“덕구파 두목이 이렇게 숨어서 영원히 안 나타나면 그것도 차선책은 되지 않겠습니까?”

50대 정치인이 혀를 찼다.

“쯧쯧. 사람이 이렇게 허술해서야.”

“예?”

“두목이 안 나타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놈이 나중에라도 나타나서 터트릴지 누가 알아? 그 생각을 하면 두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겠어?”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렇게 속 편하게 있지 말고 아는 수사기관 있으면 전화나 한 통 더 넣어.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게 덕구파 두목을 빨리 체포하라고 해.”

◈          ◈          ◈

스래곤의 주력분야는 항공우주사업이다. 그 회사는 직접 비행기나 우주선을 만들지는 않지만, 부품은 많이 만든다.

스래곤의 기존 부품 제작 공정에 소형 금속 부품 제조기술이 조금씩 반영됐다. 일반 버전과 방사능 저항성 추가 버전 둘 다 쓸모가 많았다.

연구소가 매순이를 복제하면서 분석한 기술들은 선우현의 이름으로 특허를 신청하기로 했다.

국제 특허는 JHC 테크가 전문적으로 잘한다. 그곳에는 아예 특허를 전담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

스래곤도 예전에는 특허를 직접 처리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부서는 예전 사장 때 없애버렸다. 지금은 국내 특허도 변리사에게 의뢰해야 한다.

그래서 매순이에 사용된 기술의 국제 특허는 JHC 테크가 대신 처리해주었다.

최종훈이 회의실에서 말했다.

“선우현 씨에게 이것저것 묻거나 따지지 않고 특허를 출원하려면, 역시 우리 회사에서 맡아야죠. 제가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하면 되니까요.”

“이번엔 수수료가 얼마 안 될 텐데요.”

소형 금속 부품 제조기술은 라이센스 판매까지 JHC 테크가 맡았다. 그래서 수수료가 쏠쏠하게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허 업무와 관리만 JHC 테크가 처리하고 라이센스 판매는 스래곤이 직접 하기로 했다.

최종훈이 시원하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그 일을 하는 건 제가 아니라 직원들이니까요. 저는 가만히 있어도 회사는 알아서 잘 돌아갑니다. 하하하.”

“저랑 똑같은 마인드시군요!”

“우린 진짜 통하는 게 있습니다. 하하하.”

김수선이 불평했다.

- 선장님이나 현지협력자나, 참 대단들 하십니다.

오늘 이 회의에는 스래곤에서는 비서실장 박서윤이, JHC 테크에서는 비서 김찬혁이 참석했다. 두 회사가 실제로 어떻게 협조해서 일을 처리할지는 그 두 사람이 확인하고 진행해야 한다.

김찬혁이 말했다.

“사장님. 지금 그 말씀, 직원들이 들으면 욕합니다.”

“너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몰라.”

“박서윤 씨도 있는데….”

박서윤이 말했다.

“스래곤은 불만 없어요. 망해가던 회사를 살릴 기술을 우현 씨가 다 개발했으니까, 실무는 직원들이 해야죠.”

“거봐라. 김 비서 너는 서윤 씨한테 저런 자세를 좀 배워야 돼.”

김찬혁도 할 말은 있다.

“하지만 사장님은 요즘은 개발 안 하시잖아요.”

“우리 회사도 설립 초기에는 내가 개발한 기술로 먹고살았어. 그리고 나 없을 때도 알아서 잘들 하더라.”

최종훈은 부상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일 년간 회사 일에서 거의 손을 놓았었다.

“사장님. 그래서 그때는 파벌 싸움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그건 내가 돌아와서 깔끔하게 해결했잖아.”

할 말이 없어진 김찬혁이 박서윤에게 물었다.

“박서윤 씨는 두 회사에 다 출근하려면 힘들지 않아요?”

“괜찮아요. 요즘은 매일 활토를 하나씩 먹어서 활력을 보충하니까요.”

“와. 그 귀한 걸 매일 하나씩…. 부럽다.”

“우현 씨가 챙겨주더라고요. 가끔 토마토 요리를 할 때는 하루에 두 개쯤 먹게 되는 날도 있고요.”

“진짜 부럽….”

최종훈이 말했다.

“김 비서. 너 왜 나 쳐다보냐? 나도 남는 거 없다.”

◈          ◈          ◈

매순이에 사용된 기술은 여러 업체가 관심을 보였다. 그중에는 외국 기업도 여럿 있었다.

유럽 항공기 제작사에서는 날개와 동체의 형상에 관심이 많았다. 그 회사의 기술 책임자가 보고했다.

“스래곤이 공개한 자료를 검토했습니다. 날개의 크기를 확대할 수만 있으면 더 적은 연료로 더 멀리 날 수 있을 겁니다. 연료 소비량이 줄어들면 항공사의 경쟁력이 올라갑니다.”

“한국의 스래곤에 접촉해서 우리 쪽에 적용할 수 있는지 연구해 봐.”

미군에서는 매순이의 날개에 사용된 가변익 기술과 프로펠러를 이용한 단거리 이착륙에 관심이 많았다.

“스래곤 쪽 자료에 의하면, 이 매순이라는 드론은 항공기 수준으로 크기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항공기 수준인데?”

“1개 분대 정도는 탑승 가능한 단거리 이착륙 가변익 항공기의 제작이 가능할 겁니다.”

“1개 분대라….”

“이착륙 거리가 짧으면, 활주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도 빠른 속도로 병력을 투입하거나 후퇴시킬 수 있습니다.”

“헬리콥터와의 차이점은?”

“이쪽의 비행 속도가 훨씬 더 빠릅니다.”

“그러면 운동장이나 공터 같은 곳에 고속으로 부대를 투입할 수 있겠군. 한 대가 아니라 편대를 보내면 소대 병력도 가능하겠어.”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실제로 가능한지는 연구해 봐야겠지만요.”

“우리 쪽 항공기 제작사에 연락해서 가능한지부터 확인하라고 해.”

한국 국방부는 스래곤을 직접 방문했다.

대령이 대놓고 질문했다.

“매순이 드론은 언제 출시할 겁니까?”

김정수 이사가 대답했다.

“매순이는 항공기 제작기술 시연용으로 만든 겁니다. 정식 생산 계획은 없습니다.”

“영상을 봤습니다. 그 정도면 이미 다 만든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기술 시연용으로 만든 거라서, 정식으로 출시하려면 아직 개발해야 할 게 많습니다. 그리고 좋은 부품을 많이 쓴 드론이라 단가가 꽤 높습니다.”

선우현은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 폐기된 장비들을 뜯어서 부품을 확보했다. 소형 금속 부품 제조기술로 만든 부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폐기장에 버려진 것이다.

그런데 버리는 부품이라고 해서 그게 처음부터 쌌던 건 아니다. 고가의 장비에 들어갔던 부품도 있었다.

시연용 매순이는 프로토타입과 달리 모든 부품을 신품을 썼다. 당연히 가격이 비쌌다. 게다가 고성능이나 경량 부품으로 대체할 수 있는 건 다 바꿨다. 그런 건 가격이 더 비쌌다.

김정수 이사가 말했다.

“그러니까 매순이를 개발한다 해도 제품 가격이 꽤 비쌀 겁니다. 그렇게 비싼 게 몇 대나 팔리겠습니까? 정식으로 만들기엔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군용으로 납품하면 단가는 문제가 안 될 텐데요?”

“군용이요?”

“제가 왜 찾아왔겠습니까?”

“하지만 매순이는 경량화를 많이 해서, 기관총이나 폭탄을 설치하는 건 무리입니다. 그런 걸 달면 단거리 이착륙이나 날갯짓 비행이 안 됩니다.”

“지금 크기로도 초경량 카메라와 무선 송출 시스템 정도는 달 수 있겠죠. 우리가 원하는 건 공격용이 아니라 정찰용 매순이입니다.”

김정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군용 정찰드론은 이미 있잖습니까?”

“그건 적에게 발견되면 격추되는데, 매순이는 새처럼 보이니까 봐도 모를 거 아닙니까? 적은 자기들이 노출됐다는 것조차 모를 겁니다.”

“아….”

“스래곤에서 정찰용 매순이를 개발한다면, 우리 쪽에서 지원이 팍팍 나갈 겁니다. 나중에 방산 장비로 수출까지 하면 스래곤에도 좋은 일일 텐데요.”

◈          ◈          ◈

선우현 며칠 만에 회사에 출근했다가 김정수 이사의 보고를 받았다.

“육군에서 정찰형 매순이를 원했습니다. 파생형으로 해군 버전도 있으면 좋다고 했습니다.”

“해군형이요?”

“데모 영상 속 스펙이면, 함선의 헬기 데크에서 이착륙이 가능하겠다더군요.”

김수선이 말했다.

- 매순이의 원래 임무가 새로 위장해 공중에서 정찰하는 것이긴 합니다.

선우현이 김정수에게 물었다.

“드론이 새처럼 보이면 말이죠. 매순이가 투입된 전쟁터에서는 적군이 하늘을 나는 모든 새를 다 쏴버리겠네요?”

“예? 그야…. 뭐가 드론이고 뭐가 진짜 새인지 구분할 수 없으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이고. 새가 불쌍해서 어쩌나.”

“그럼 이 제안은 거절을….”

“전쟁이라는 게 원래 참혹한 겁니다. 새보다는 아군을 살리고 봐야죠.”

“그럼 진행할까요?”

“연구소에서 잘 만들어봐요.”

“알겠습니다.”

김정수 이사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사장님께서 매순이에게 적용된 다양한 기술의 이론적인 부분을 자세히 가르쳐주십시오. 그러면 연구소에서 육군과 해군용 정찰드론 개발에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이론적인 건 선우현도 모른다. 그는 김수선이 설계도를 보고 불러준 걸 듣고, 지상의 부품을 사용해 비슷하게 만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괜히 총 맞을 새가 불쌍하네. 없던 일로 합시다.”

“네? 저기, 사장님?”

김수선이 물었다.

- 그렇게 해서 우주왕복선은 언제 사실 겁니까?

“새가 불쌍하잖아.”

- 저는 안 불쌍하고요? 새가 떨어지냐, 제가 떨어지냐의 문제입니다만?

“그치? 개발하긴 해야겠지?”

선우현이 다시 말했다.

“김정수 이사님. 매순이의 군용 정찰드론 버전은 연구소에서 알아서 잘 만들어봐요. 나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예? 그럼 적용된 이론은….”

“여러분을 믿는다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          ◈          ◈

남미연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드디어 완성됐다.

고 감독은 싱글벙글 웃었다.

“흐흐흐. 이번 영화, 느낌이 좋아. 아주 좋아.”

남미연이 물었다.

“고 감독. 그게 다 누구 덕이야?”

“내가 잘 찍어서?”

“영화 끝났다고 이렇게 나올 거야? 앞으로 나랑 영화 안 할 거야?”

“당연히 남미연 씨의 명품 연기가 빛을 발했죠.”

“우리 흰둥이는?”

고 감독이 엠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이고. 우리 멍배우 흰둥이. 진짜 내가 개한테서 배우의 품격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

“멍!”

“흰둥아. 다음에도 나랑 영화 찍자?”

“멍?”

“내가 고급 사료….”

“멍?”

“는 역시 안 먹겠지. 육포 줄게.”

“우리 흰둥이는 강아지용 육포도 안 먹어.”

“당연히 사람이 먹는 고급 육포입니다. 멍배우 주려고 육포 전문점에서 산 겁니다.”

고 감독과 남미연의 영화는 제작될 때부터 기대를 많이 모았다. 게다가 마침 그 시기에 극장에 걸 마땅한 영화가 없었다.

그래서 영화가 완성되면 곧바로 개봉하도록 상영관이 미리 잡혀 있었다.

그래도 영화 시사회는 하기로 했다. 그래야 기사가 개봉 전에 나간다.

시사회는 정식 상영 며칠 전으로 잡혔다.

남미연이 선우현에게 영화 시사회 표를 보내주었다.

선우현이 퀵으로 받은 봉투에서 표를 꺼냈다. 표는 두 장이었다.

“이 영화를 누구랑 보러 가지? 서윤 씨는….”

- 박서윤은 선장님 때문에 두 회사에서 근무하느라 바쁠 겁니다. 오늘은 길성 비서실에서 대리로 일하는 날입니다.

“안 되겠구나.”

신나리가 옥상에 올라왔다.

“오늘은 치킨 안 시켜요?”

“넌 알바 안 가냐?”

“출근을 뭐 매일 하나요? 저 학생이거든요?”

“학생이 지금 여기에 왜 있어?”

“휴강일 줄은 몰랐죠.”

“음…. 너 영화 시사회 갈래?”

“영화가 뭐냐에 따라 다르죠.”

“남미연 씨 이번에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신나리가 손뼉을 쳤다.

“대박. 그거 시사회 표가 있어요? 그럼 옥상 오빠랑 같이 가나요?”

“너 혼자 가야지? 두 장 있으니까 친구 데려가라.”

“옥상 오빠는요?”

“나는 나중에 영화관에 개봉하면 보려고.”

“아싸아. 얼른 주세…. 설마 돈 받는 거 아니죠?”

“내가 그래도 벼룩의 간은 안 빼먹어. 나도 만 원 정도는 있거든.”

“와…. 만 원이나 받으려고 했어요?”

“표 주지 말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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