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알바
토마토를 보고 시큰둥하던 연구원들이 김정수 이사의 말을 듣고 우르르 다가왔다.
“산삼이요?”
“아무리 봐도 토마토인데요?”
김정수 이사가 말했다.
“가격이 산삼 가격이고, 산삼처럼 귀해서 돈이 있어도 시장에 나온 게 없으면 못 사. 거기다 몸에 굉장히 좋아. 그럼 이건 사실 산삼 아닐까?”
“그럴 듯….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치? 아니지? 그런데 어떻게 토마토가 한 개에 백만 원이나 하지?”
비서실 과장이 설명했다.
“있는 분들은 어중간한 산삼보다 더 선호하는 보양 식품입니다. 이사님들도 활토를 좀 구해보라고 그렇게 비서실을 괴롭히셨습니다. 그래서 김정수 이사님은 아실 줄 알았는데….”
“어…. 난 이번에 이사가 돼서.”
선우현은 전임 사장의 측근과 비리가 많은 이사 절반을 날렸다. 그러면서 빈자리가 많이 생겼다.
김정수는 1차 승진 대상자에 들어 이사가 되었다. 1차 승진에서 이사는 2명뿐이었다. 나머지 이사 자리는 아직도 비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전에는 비서실에 활토를 구해달라고 할 위치가 아니었다.
비서실 과장이 말했다.
“아. 그렇죠. 어쨌든 활력 토마토는 한 개의 가격이 백만 원인데, 사실 실제 가치는 훨씬 더 높습니다. 물량이 귀해서 돈이 있어도 못 구하거든요.”
“와…. 그럼 이걸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으려나.”
“물론 사장님이 여러분의 피로 회복을 위해 하사하신걸, 날름 팔아먹는 분은 없을 겁니다.”
“어…. 안 팝니다. 안 팔아요.”
비서실 과장이 옆에 있는 R 크림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R 크림도 개당 백만 원입니다.”
“아니, 무슨 국산 화장품 가격이….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
“필요 없으시면 안 가져가셔도 됩니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필요 없다고는 안 했습니다. 와이프나 줘야겠네요.”
◈ ◈ ◈
박 팀장과 차 팀장은 활토와 R 크림을 하나씩 받았다. 그곳에 있던 다른 연구원들도 마찬가지로 하나씩 받았다.
나머지 연구원들은 다른 장소에서 일하고 있거나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특별 휴가를 간 상태였다.
박 팀장이 그런 사람들을 위해 R 크림 사진을 찍어 팀 단톡방에 올렸다.
- 사장님이 보내신 건데, 필요한 사람은 나중에 하나씩 찾아가.
특별 휴가를 간 여자 연구원이 그 사진을 보자마자 물었다.
- 잠깐만요. 설마 그거 R 크림이에요?
- R 크림을 알아? 여기서는 아무도 몰랐는데.
- 진짜 R 크림 맞아요? 짝퉁 아니에요?
- 사장님이 설마 짝퉁을 주시겠어?
- 아니면 어디서 사진 구해서 올려놓고 놀리는 거죠?
박 팀장이 왼손에 R 크림을 들고 셀카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새로 올렸다.
- 봐라. 진짜 맞지?
- 세상에! 이 귀한걸! 기다려요! 지금 갈 테니까!
- 휴가 중인데 왜 회사에 와?
- 수량이 안 맞아서 모자랄지도 모르잖아요! 늦으면 없는 사태, 절대로 바라지 않으니까요! 지금 차에 시동 걸었어요. 내건 아무도 손대지 마요!
그 여자 연구원은 20분 만에 회사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뛰어오느라 숨까지 헐떡였다.
“하악. 하악. 내 R 크림!”
“여기 있다.”
“꺄아! 진짜였어!”
“그리고 이건 활토라는 건데….”
여자 연구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 활토를 어떻게…. 말도 안 돼.”
“활토도 아네? 그런데 활토는 R 크림과 가격이 같다는데 반응이 왜 달라?”
“R 크림은 운이 좋으면 구할 수 있지만, 활토는 돈과 운만으로는 절대로 못 구하니까 그러죠.”
“귀한 거야?”
“말이라고 하세요?”
박 팀장은 조금 전에 비서실 과장에게는 제대로 묻지 못할 걸 슬쩍 질문했다.
“R 크림 말이야. 혹시 중고 거래 앱으로 팔면 팔리나?”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걸 팔아요? 왜요?”
“그냥 물어본 거야.”
“R 크림을 판다고 올리면 아마 연예인이 당장 달려올 걸요? 연예인들조차 돈 주고도 못 구하는 진짜 명품이니까요”
“설마 그 정도야?”
박 팀장이 단톡방을 보았다.
여자 연구원들은 R 크림이 뭔지 알았다. 남자 연구원들도 처음에는 몰랐지만, 정보를 듣고 나서는 잘 챙겨서 보관해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박 팀장이 활토와 R 크림을 보며 말했다.
“이거 팔아서 비자금 만들까?”
“어머. 팀장님. 그러면 댁에서 쫓겨나요.”
“에이. 설마. 우리만 입 다물면 집사람은 모를 텐데.”
“사모님들끼리 연락하는 분들 있잖아요. 그런데 누구는 R 크림을 받았고 누구는 못 받았다고 하면요. 심지어 남들은 사원까지 다들 받았는데 팀장님만 안 가져가면, 집에서 안 쫓겨날까요?”
“일주일은 쫓겨나겠네.”
◈ ◈ ◈
박 팀장은 그날 퇴근하면서 같이 술이나 마실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팀원이나 다른 팀장들이 다 집에 간다고 해서 같이 마실 사람이 없었다.
오늘은 그의 아내가 퇴근이 더 늦었다. 그녀가 박 팀장이 먼저 와서 노는 걸 보고 물었다.
“일찍 왔네?”
“TF 끝났잖아. 김 이사님이 일찍 퇴근하래.”
“특별 휴가는 언제부터야?”
“휴가 간 팀원들이 복귀하면 나도 바로 갈 거야. 그리고 이거.”
박 팀장이 상자를 내밀었다. 그건 비서실에서 포장해서 전해준 상태 그대로 가져왔다.
“오다가 주웠다.”
“뭔데? 좋은 거야?”
“별건 아니고, 회사에서 받은 거야. 과일이랑 화장품.”
“나 화장품 아무거나 못 바르는데, 내 피부에 맞는 거면 좋겠다.”
그의 아내가 상자를 열었다. 박 팀장이 설명했다.
“그게 그냥 토마토랑 크림이 아니라….”
“꺄악!”
“어?”
그의 아내가 비명을 지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어떻게 R 크림을 구했어?”
“그게 뭔지 알아?”
“알지!”
“어…. 아는구나. 그러면 설명할 필요가 없겠네.”
“이걸 어떻게 구했냐니까? 훔쳤어?”
“너 지금 남편을 어떻게 보고…. 이번 프로젝트 잘했다고 회사 포상으로 받았어.”
“대박! 스래곤이 뉴스에 나올 때는 망할까 봐 걱정했는데, 사장님 바뀌고 나서 진짜 잘나가는구나!”
박 팀장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일을 잘해서 그래. 아. 그럼 R 크림은 너 가지고, 토마토는 내가 먹으면 되겠다.”
그의 아내가 손으로 상자를 잡으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응?”
“활토를 왜 자기가 먹어?”
“어어? 활토가 뭔지도 알아?”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전설의 과일인데 당연히 알지.”
“그래? 그런데 그거 팔 수는 없어. 사장님이 주신 거라 팔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내가 먹….”
“우리 애가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어하는데?”
“어?”
“이거 먹으면 공부가 그렇게 잘 된대. 여드름도 사라지고, 스트레스도 줄어든다네?”
“아니, 우리 애는 아직 초등학생인데 뭘 그렇게까지….”
“내년에 중학교 가잖아. 그리고 자기는 애가 먹을 걸 굳이 먹고 싶니?”
“아니다. 채아 줘라. 그럼 R 크림도 채아 주게?”
“애가 화장을 왜 해?”
“화장품이 아니라 크림….”
“R 크림은 어리고 깨끗한 피부에는 효과가 별로 없대. 애들은 원래 피부가 좋으니까 발라봤자 그게 그거야.”
“그럼 그건 어떻게 하게?”
그의 아내가 배시시 웃었다.
“우리 집에서 크림을 바르는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 자기는 스킨이랑 로션 쓰잖아.”
박 팀장이 한마디 하려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이러려고 이걸 집에 가져왔나 싶다.”
그의 아내가 박 팀장의 엉덩이를 두드려주었다.
“잘했어. 아유. 우리 남편. 오랜만에 남편 노릇 했네.”
“그치? 그럼 오늘 애는 일찍 재울까?”
그의 아내가 활토와 R 크림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사진부터 찍었다.
“어떻게 자랑해야 자연스러울까? 응? 방금 뭐라고 했어?”
“아니다. 너 많이 발라라. 팀원한테 들었는데 피부 개선 효과가 진짜 좋다더라.”
◈ ◈ ◈
인터넷 주식 커뮤니티에는 스래곤에 관한 분석 글이 곧잘 올라왔다.
- 스래곤은 전망이 좋습니다. 신기술이 계속 발표되니까요.
- 저는 이번에 스래곤 주식을 샀습니다.
- 저는 예전에 샀다가 남들이 팔라고 할 때 안 팔아서 본전을 넘어 흑자를 보고 있습니다. 스래곤 사장님 사랑합니다.
그렇다고 좋은 분석만 올라오는 건 아니었다.
- 여러분. 잘 보셔야 합니다. 그 신기술은 스래곤의 기술이 아닙니다.
- 매순이 비행 영상은 보셨는지? 거기 적용된 기술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던데요.
- 봤습니다. 날개 형상은 물론이고 구동계 쪽으로도 다양한 특허를 낸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특허들은 스래곤이 소유한 게 아닙니다.
- 그럼 누구 소유입니까?
- 사장이 특허를 낸다더라고요.
그 글은 인기를 끌었다.
- 사장이 회사의 기술을 집어삼킨 건가요? 주식회사에서 그래도 되나요?
-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다 반박이 올라왔다.
- 기술력에서 밀려서 망해가던 회사가, 사장이 바뀌자마자 갑자기 신기술들을 발표한다? 그럼 그 신기술은 사장이 가져왔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닌지?
- 아.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요.
- 소형 금속 부품 제조기술도 신임 스래곤 사장이 개발했다는 거, 주총에서 발표했잖습니까? 딱 보니까 매순이까지 사장이 다 만든 거네. 스래곤은 그 혜택을 보는 거고.
- 어? 그럼 만약 사장이 잘리면, 스래곤 주식 팔아야 하나요?
- 사장이 스래곤 최대주주인데 자르긴 누가 잘라요? 그냥 믿고 가세요.
다른 걸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 그런데 스래곤 사장은 도대체 정체가 뭐죠? 검색해봐도 개인 정보는 하나도 안 나오던데요.
◈ ◈ ◈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에서 젓가락을 비볐다.
“일요일엔 역시 짜장라면이지.”
- 어느 시대 감성이신지?
“내가 좀 오래 살았잖아.”
- 그건 그렇습니다. 그런데 두 개를 끓이셨네요?
“하나는 네 거?”
- 놀리십니까?
“마음만은 알아달라는 거지.”
- 만질 수 있는 실물을 원합니다.
“곱빼기를 혼자 먹으면 두 배로 맛있잖아. 그래서 두 개 끓였어.”
옥상 벨 소리가 났다. 모니터에 신나리의 얼굴이 보였다.
선우현이 리모컨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신나리가 옥상에 들어오며 말했다.
“아. 배고파.”
“밥은 안 먹고 다니냐?”
“작전주에 들어갔다가 쫄딱 망했거든요. 식비 아껴야 해요. 앗! 이거 양이 많은 걸 보니까 두 개 끓인 거네요? 설마 혼자 다 먹지는 않겠죠?”
“뭐지?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인가?”
“표범이라고 해줘요.”
선우현이 옆을 가리켰다. 짜장라면 5개짜리 묵음 봉지에는 아직 3개가 남아 있었다.
“이건 내 거니까 넌 새로 끓여라.”
“넹!”
그녀는 얼른 짜장라면 두 개를 꺼냈다.
“두 개나?”
“있을 때 많이 먹어둬야죠.”
“작전주가 너를 이렇게 망쳤구나.”
“역시 우량주를 샀어야 했죠?”
“다른 잘생긴 놈이 작전주를 우량주라고 찍어주면 구분할 수는 있고?”
그녀가 라면 봉지를 뜯으며 말했다.
“나 바보 아니거든요?”
“그럼. 바보는 아니지.”
- 바보만 아니죠.
신나리는 옆에 있던 달걀도 두 개나 꺼내 부쳤다.
선우현이 그걸 보면서 말했다.
“나도 후라이.”
“내 건데요?”
“내 거일걸?”
그 달걀은 선우현이 샀다.
“요리는 내가 했거든요?”
“반띵.”
“콜. 일단 옥상 오빠 짜장라면부터 반씩 나눠 먹고, 새로 끓이면 또 반씩 나눠 먹죠?”
“설거지는?”
“내가 해야죠.”
“콜.”
반찬은 김치밖에 없지만 신나리는 짜장라면을 맛있게 잘 먹었다.
“역시 라면은 얻어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근데 내가 요리했으니까 얻어먹는 게 맞나?”
“라면을 요리라고 하는 게 맞나?”
“옥상 오빠나 나나 라면이 요리의 최대치 아니에요? 우리는 서윤 언니가 아니라고요.”
선우현이 짜장라면을 먹으며 물었다.
“너 작전주에 등록금도 집어넣은 건 아니지?”
“절 어떻게 보고! 등록금은 아직 집에서 못 받아서 못 까먹었어요.”
“자랑이다.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
“당연히 알바를 해서 돈을 벌어야죠. 학생이 주식을 못 하면 알바밖에 더 있어요?”
“좋은 거 있어?”
“앗! 옥상 오빠도 하게요?”
그녀가 생글생글 웃었다.
“어쩌나? 내가 찾은 건 대학생 인턴 알바인데. 옥상 오빠는 대학생 아니잖아요.”
“놀리는 거냐?”
“히히. 자랑하는 건데요? 다른 자리 알아봐 줄까요? 제가 모은 알바 정보가 많은데.”
“내가 하겠다는 게 아니야. 나 일하는 거 싫어한다.”
“아. 맞다. 그치. 옥상 오빠는 노는 게 체질이지. 월세는 진짜 어떻게 벌어요?”
신나리는 선우현이 이 건물의 주인이라는 걸 모른다.
“나도 가끔 일해.”
“아. 이번에 스래곤 주식으로 몇 푼 벌었겠구나.”
“네가 작전주 살 때 나는 스래곤 주식을 샀으니까. 네가 내 말만 들었어도 넌 지금쯤 나한테 치킨을 쏠 수 있었다.”
신나리가 후회했다.
“내가 그때 스래곤을 왜 안 샀을까요?”
“넌 잘생긴 놈 말만 듣고 주식을 사니…. 아니, 잠깐. 너 그때 내가 사라고 한 말은 왜 안 들었는데?”
신나리가 시선을 피했다.
“짜장라면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