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쇼
선우현이 말했다.
“깃털은 장식입니다.”
최종훈은 당황했다.
“네?”
“물론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가 부실하면 깃털이 있는 게 낫습니다. 그런데 저 드론에 적용된 기술만 제대로 이해하면 깃털이 없어도 날릴 수 있습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지금 지구의 기술로 이해한 만큼만 날리겠지요.
“비행 소프트웨어만 제대로 만들면 잘 날 겁니다.”
선우현은 지구연합의 기술을 신뢰한다.
지원위성은 자주 고장 난다. 선체에 금이 가는 경우도 종종 있고 가끔은 구멍이 나기도 한다. 뭔가가 터질 때도 있다.
그런데 그건 지원위성을 오천 년 동안 사용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지원위성은 오천 년 동안 위성궤도에서 버티고 있다.
선우현이 버드형 드론 매순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날개의 양력 발생 형태, 날개를 움직일 때 사용한 구동계 구조, 모터 하나로 여러 개의 프로펠러를 제어한 동력 제어 방식. 그 세 가지만 제대로 조합하면 단거리 이륙이 가능한 소형 항공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매순이의 크기를 그냥 키울 수는 없다. 그러면 지금 크기에서는 생기지 않던 문제가 수두룩하게 튀어나온다. 특히 구동계에 부담이 많이 걸린다.
“당연히 항공기 수준으로 크기를 키우면 날갯짓에 제한이 걸리겠지요.”
동체의 크기를 키우면 날개도 그만큼 커져야 한다. 헬리콥터 수준으로만 키워도 지금 같은 수준의 날갯짓을 구동계가 버틸 리가 없다.
“대신에 날개를 제한적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이륙 거리가 줄어들 겁니다. 착륙 거리야 뭐, 소형 비행기라면 조그마한 공터만 있어도 될 정도로 단축될 거고요.”
“네? 공터요?”
◈ ◈ ◈
한쪽에서 김정수 이사가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제 매순이가 착륙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1호기가 속도를 줄이며 고도를 낮추었다. 지상이 가까워질수록 날갯짓을 더 크게 해 속도를 급격히 줄였다.
그러다 발이 땅에 닿았다. 착륙 순간에 동체는 조금밖에 흔들리지 않았다.
착륙하는 모습이 어제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동체가 완전히 정지한 후에 매순이가 날개를 천천히 접었다.
기자들이 감탄했다.
“와. 진짜 새처럼 착륙했어.”
선우현이 마스크를 쓰고 팔에 보호대를 장착한 후에 야외 시연장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김정수 이사가 선우현을 슬쩍 본 후에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제 매순이 2호의 착륙을 보시죠.”
2호기도 고도를 낮추며 속도를 줄였다. 그런데 2호기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선우현이 걸어가고 있었다.
기자들이 놀라서 외쳤다.
“어? 어?”
“충돌한다!”
“거기! 피해!”
선우현이 2호기를 향해 왼팔을 들었다.
2호기는 1호기와 달랐다. 땅바닥이 아니라 사람의 팔 높이로 착륙을 시도했다.
선우현은 어제 매순이가 사람의 팔에 앉는 기능을 만들라고 했다. 하지만 김정수 이사는 그러다 연구원이 크게 다칠 수 있다며 말렸다.
그래도 사장이 시켰으니 그 기능을 만들기는 했다. 연구원 대신에 마네킹을 사용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였다. 마네킹의 팔에 착륙하려던 4호기는 크게 파손됐다. 마네킹도 팔이 날아갔다.
그래서 오늘은 선우현이 직접 나섰다.
김정수 이사가 침을 꼴깍 삼켰다.
‘아침에 사장님이 테스트했을 때는 성공했는데….’
선우현이 앞으로 걸어가며 날아오는 2호기의 다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착륙 프로세스가 시작됐다. 2호기의 발이 앞으로 향했다.
속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팔에 정확히 착륙할 정도는 아니었다. 착륙 위치와 고도 모두 오차가 있었다.
선우현이 옆으로 슬쩍 움직여 착륙 위치를 잡았다. 이제 문제는 속도였다.
2호기가 선우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속도는 마네킹의 팔을 날려버릴 정도로 빨랐지만, 덕구파 칼잡이가 칼을 휘두르던 속도보다 딱히 더 빠르진 않았다.
선우현이 2호기의 다리를 손으로 재빨리 잡아채 힘으로 끌어당겼다. 2호기의 속도가 순식간에 정지 상태로 떨어졌다.
선우현이 붙잡은 2호기의 발을 팔에 얹었다. 팔에는 이미 금속으로 만들어 발과 결합할 수 있는 전용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2호기의 발이 그 보호대의 장착 홈에 걸렸다. 철컥 소리가 나며 발이 보호대에 단단히 걸렸다.
그 과정은 굉장히 빠르게 이루어졌다. 게다가 그는 기자들이 있는 방향을 등지고 2호기를 붙잡았다. 그의 손동작은 기자들의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선우현이 기자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팔에 앉아 있는 2호기가 매사냥을 나온 매처럼 보였다.
“와…. 진짜 매처럼 팔에 앉았어.”
팔에 앉은 게 아니라 잡아서 팔에 붙였다.
김수선이 말했다.
- 그건 쇼인데 말이죠.
“스래곤을 살리려면 쇼가 좀 필요해.”
오늘 시연 때는 기술유출 방지를 핑계로 삼아 기자의 사진촬영을 막았다. 대신에 시연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은 스래곤 홍보팀에서 촬영해 기자들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홍보팀은 선우현의 마스크 쓴 얼굴은 빼고 사진을 찍었다. 당연히 착륙 순간도 찍지 않았다.
그 작업은 스래곤 비서실장 박서윤이 지휘했다.
선우현이 옆으로 걸어가 2호기를 홍보용 거치대에 옮겨놓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김정수 이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오늘 기자 시연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이륙과 비행, 착륙 자체는 성공할 줄 알았다. 문제는 마지막 시연이었는데, 선우현이 다치지 않고 매순이 2호기를 받아냈다.
김정수도 오늘 시연에 눈속임이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데모 시연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기능이 완벽하면 데모를 왜 해? 출시를 해야지.’
◈ ◈ ◈
최종훈은 넋 나간 얼굴로 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저건 진짜 어떻게 만든 겁니까?”
탐사대 지원 매뉴얼에 첨부된 설계도를 보고 만들었다.
선우현이 대답했다.
“그냥 느낌 가는 대로?”
기자들은 김정수 이사와 버드형 드론 제작을 맡은 연구원들, 그리고 홍보팀에게 다가가 질문을 쏟아냈다. 선우현은 그냥 실험맨이라고 생각해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선우현은 현장을 빠져나왔다.
“오늘 일은 이제 다 했다. 퇴근할까?”
- 사장실로 가서 일하시죠?
“이틀 연속으로 일하라고?”
- 먼저 퇴근하시면 박서윤은 혼자 일하겠군요.
“사장실로 가려고 했어.”
◈ ◈ ◈
최종훈도 JHC 테크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탔다.
비서 김찬혁이 차를 출발시키며 물었다.
“사장님. 아까 그 매, 선우현 씨가 우리 연구소에 있을 때 만든 그거 맞습니까?”
“어. 그거래. 스래곤 연구소에서 그걸 시연용으로 복제했다더라. 보니까 어떠냐?”
“분명히 폐품 적치장에서 부품 가져다가 만들었는데, 장식품인 줄 알았던 그게 왜 하늘을 날죠?”
“잘 날지?”
“스래곤 연구소에서 아예 새로 개발한 거 아닐까요?”
최종훈이 피식 웃었다.
“일주일 만에 새로 개발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겠냐? 프로토타입을 카피만 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선우현 씨는 그걸 며칠 만에 뚝딱 만들었잖습니까?”
“그건 선우현 씨니까 가능한 거야. 너도 이제 알잖아. 천재인 거.”
◈ ◈ ◈
스래곤에서 매처럼 생긴 드론을 만들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정식 출시가 아니라 미리 설정한 경로로 데모 비행을 한 것뿐이지만, 현장에서 그 모습을 본 기자들은 다들 감탄했다. 그래서 긍정적인 기사가 많이 나왔다.
기사에 사용된 사진과 영상은 스래곤에서 제공했다.
사진이나 영상을 CG로 조작하진 않았다. 스래곤 홍보팀은 기자 앞에서 데모 비행을 하던 모습을 실제로 촬영해 그중에서 잘 나온 것만 편집해 제공했다.
인터넷 게시판에 그 비행 영상 중 하나가 올라왔다.
[매 아님. 새 아님. 저거 드론임.]
곧바로 댓글이 붙었다.
- 뻥 치시네.
- 아이쿠. 영상만 올리고 사진이 안 올라갔네. 추가 사진 올려서 수정합니다.
그 글이 수정되면서 사진이 몇 장 올라갔다.
비행 동영상에서는 매처럼 보였는데, 지상에 착륙해 있을 때의 사진은 조금 달랐다. 멀리서 비행할 때는 제대로 찍히지 않았던 프로펠러가 선명하게 보였다.
- 와. 진짜 드론인가?
- 살아있는 매의 몸에 프로펠러를 꽂은 게 아니라면 진짜겠죠.
-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인조 깃털을 붙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진짜 깃털하고는 차이가 좀 나네요.
- 동영상에서 날갯짓하는 거 봤는데?
- 기사를 보니까, 소형 프로펠러와 날개를 같이 사용해서 비행한답니다. 그래서 이륙할 때나 착륙할 때는 날갯짓을 크게 하나 봅니다.
- 이륙? 착륙? 저 동영상은 그냥 비행만 하는데요?
새로운 게시글이 올라왔다. 그곳에는 매순이가 이륙하는 모습도 있었다.
- 대박. 지상에서 진짜 날아오른다.
- 수직이륙은 아니지만, 활주로가 딱히 필요 없는 건 마찬가지네요.
- 드론이 비행할 때 저런 날갯짓이 가능한 거였나?
- 사이즈가 작으니까 가능은 합니다.
- 매 크기니까 작은 사이즈는 아닌데요.
- 잠깐만. 평소에는 날개를 접어서 보관할 수 있는데요? 와….
매순이 1호기의 착륙 동영상도 올라왔다. 선우현이 마스크를 쓰고 등장해 착륙하는 2호기를 손으로 받는 영상도 있었다.
홍보팀에서는 선우현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게 편집에 신경 썼다. 매가 팔에 착륙할 때도 선우현의 손동작이 보이지 않게 했다.
그래서 영상만 보면, 날개를 펴며 속도를 줄이고 하강한 매가 사람의 팔에 조금 빠르게 앉는 것처럼 보였다.
- 와.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 지금 기술로 저게 되는 거였어?
- 스래곤이 뭐 하는 곳인데 저런 걸 만들죠?
- 항공우주 장비와 부품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 비행기와 우주선을 만드는 전문기업에서 드론을 만드니까 저런 대단한 작품이 나오는구나.
- 스래곤은 비행기와 우주선을 직접 만들지는 않습니다. 부품은 만들지만요.
- 그래도 기술력이 쩌네요.
- 원래는 안 쩔었습니다. 오히려 기술 경쟁에서 밀리고 있었죠.
- 지금 보니까 쩌는데요?
- 경영진이 교체되고 나서 뭔가 막 바뀌고 있습니다. 저도 놀라는 중입니다.
- 그런데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쪽 업계 관계자세요?
- 스래곤 주식을 샀다가 물린 사람입니다.
- 아이고.
- 괜찮습니다. 요즘 주식이 많이 올라서 본전은 회복했거든요.
드론 관련 인터넷 카페에도 그 기사와 영상이 올라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얼마야? 얼마면 되겠어?
- 당장 내 돈을 가져가!
- 나에게 매순이를 팔아달라!
- 내가 원한 드론이 바로 저겁니다. 고정익! 고정익!
- 새처럼 날아다니고, 고정익처럼 날 수 있는데도 이륙할 때 활주로가 거의 필요 없고, 착륙은 조그마한 공간만 있으면 되고!
- 소리도 조용하답니다. 이착륙 순간을 제외하면 다른 드론보다 프로펠러를 약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조용한 비행이 가능하답니다.
- 날갯짓이 가능하니까 조용히 날 수 있나 보다.
- 새처럼 날아다니다가 팔을 내밀면 거기에 착륙한다니…. 앞으로 나를 매사냥꾼이라고 불러주세요.
- 그래서 출시일이 언제입니까?
- 그건 기사에 없던데요? 데모 시연 영상이라고만 나와서….
◈ ◈ ◈
스래곤에 전화를 걸어 출시일을 문의한 사람도 많았다. 그중 한 명이 드론 카페에 글을 올렸다.
- 여러분. 큰일 났습니다. 스래곤에서 매순이를 팔 계획이 없답니다.
- 그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입니까!
- 영상에 나온 건 기술 시연용으로 만든 데모버전이랍니다.
- 정식 버전을 만들면 되잖습니까?
- 실제로 개발하는 건 드론이 아니랍니다.
- 드론을 만들어놓고 드론이 아니라니. 그럼 뭔데요?
- 항공기에 사용할 기술을 개발하면서, 그 기술로 뭘 만들 수 있는지 매순이로 보여준 거라더군요.
- 잠깐. 항공기요? 그러면 매순이를 대형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겁니까?
- 어? 막 사람이 등에 탈 수 있는 크기로? 드래곤 라이더의 꿈이 이렇게 실현되나요?
- 으아아아! 드래곤 나이트!
- 매순이를 타면 선더버드 라이더!
- 저도 그게 가능하냐고 물어봤더니, 그건 아니라더군요. 날개나 구동계 등등에 사용된 기술을 항공기에 적용하겠답니다.
-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그러니까 결론은 매순이를 안 판다는 겁니까? 왜요? 출시만 하면 잘 팔릴 텐데!
- 저도 항의했습니다. 다들 스래곤 홈페이지에 가서 글이라도 남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