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매순이 II
스래곤 연구소의 최 팀장이 말했다.
“김 이사님. 사장님이 보내주신 문서에 있는 이론들 말입니다. 그 이름만 알고 있는 이론들을 쓰면, 깃털의 형태까지 계산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김정수 이사가 손뼉을 쳤다.
“맞아! 당연히 필요한 이론과 공식을 미리 만들어뒀으니까 현장에서 수정할 수 있었던 거야!”
“아마 그렇겠죠.”
김정수가 소매로 이마를 닦았다.
“그래. 그래야 말이 되지. 사장님도 사람이구나. 휴우.”
“김 이사님.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매순이가 무사히 착륙했는데요.”
“당연히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를 수정해야지. 조금만 고치면 더 매끄럽게 착륙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우리 연구소의 실력을 자랑… 하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거겠지?”
“당연하죠. 사장님 앞에서 번데기라고만 안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내 목이 남아나겠냐.”
최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저는 갑자기 자괴감이 듭니다. 우리는 이렇게 달라붙어서 해도 어려운데, 사장님은 혼자서…. 모차르트를 본 살리에리가 이런 기분이었겠지요?”
“살리에리는 그 당시에 겁나 잘나가는 음악가였다. 최 팀장을 살리에리에 비교하는 건 오버 아니야?”
“아니, 그거야….”
“나랑 비교하면 모를까.”
“예이. 예이. 이제 이사님이시니까 살리에리 하십쇼.”
◈ ◈ ◈
선우현이 오후 5시에 다시 연구소 시험장을 방문했다.
“이거만 보고 퇴근해야겠다.”
김정수 이사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시작하시죠.”
김정수 이사가 시험장을 향해 오른손을 뻗으며 아까보다 더 커진 목소리로 외쳤다.
“매순이 1호기 이륙!”
매순이 1호기가 날개를 펄럭이며 지상에서 떠올랐다. 소형 프로펠러가 고속으로 회전해 이륙에 필요한 힘을 보탰다.
이륙과 선회는 오후에 보여준 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그때도 잘 날았고 지금도 잘 날아다녔다.
“착륙합니다!”
매순이가 착륙 단계에 돌입했다.
땅에 착지하는 모습은 아직도 진짜 매와 똑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까처럼 불안하지는 않았다. 흔들림도 적었다.
선우현이 말했다.
“이야아. 잘 만드셨네요.”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잘 알려주신 덕분입니다.”
“그럼 내일 기자 시연회는 문제가 없겠군요.”
김정수 이사는 당황했다.
“예? 내일이라니요?”
“여러분이 당연히 성공할 줄 알고 시연회를 내일로 잡아놨습니다.”
김정수 이사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럼 오늘까지 완성하지 못했으면, 우린 다 망할 뻔했나?’
“미,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우현은 연구소를 무작정 믿고 기자 시연회를 내일로 잡은 게 아니다.
연구소의 야외 테스트는 김수선이 종종 확인하고 보고했다. 실내 테스트는 지원위성에서 볼 수 없지만, 야외 테스트는 여러 차례 확인했다.
그래서 선우현은 기자 시연회가 가능한 상태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선우현이 물었다.
“그러면 하는 김에 그것도 할 수 있습니까?”
“예? 어떤….”
선우현이 왼팔을 들었다.
“진짜 매처럼 팔에 앉는 거?”
김정수는 화들짝 놀랐다.
“사장님. 살려주십쇼. 그러다 실수하면 받는 사람은 팔이 부러집니다.”
“일단 마네킹이라도 가져다 놓고 기자회견 전까지 만들어보시죠. 안 되면 할 수 없으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부담 많이 갑니다.”
◈ ◈ ◈
이튿날 선우현이 옥상 평상에 누워서 후회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말걸.”
- 뭘 말입니까?
“개발 기간 며칠 더 줄걸.”
- 설마 오늘도 출근해야 해서 그러십니까?
“맞아. 기자들 모일 테니까 출근을 안 할 수는 없어. 이틀 연속 출근이라니. 이러려고 사장이 된 게 아닌데.”
- 사장이 자꾸 그렇게 놀기만 하면 회사 망합니다. 이제야 항공우주회사 하나 손에 넣었는데 홀라당 날려 먹을 겁니까?
“회사는 안 망하겠지.”
- 근거는요?
“서윤 씨가 있잖아.”
- 시끄러우니까 빨리 일어나서 출근하십쇼.
◈ ◈ ◈
선우현은 말끔한 모습으로 출근했다.
스래곤의 모든 임직원은 옷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입고 출근해도 된다.
선우현은 그 제도를 시행한 후로는 옷을 대충 챙겨입고 나왔다. 추리닝을 입고 온 날도 있었다.
사장이 그러고 있으니 직원들도 알아서 옷을 마음대로 입었다.
이젠 정장을 입고 출근하면 오늘 어디 좋은 데 가냐는 소리를 들었다.
영업부서 직원 중에도 외근용 정장을 회사에 따로 보관해놓고 필요할 때만 갈아입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회사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이제 스래곤은 망해가는 회사가 아니다. 분위기도 밝게 바뀌었다. 진짜 뭔가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 직원들 사이에서 매일 나왔다.
선우현은 오늘은 말끔하게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손목에 찬 팔찌형 통신중계기는 특이한 디자인의 스마트워치처럼 보였다.
- 오늘은 정장을 입으실 줄 알았는데요?
“기자들을 내가 안내할 건 아니잖아. 난 구경하는 연구원처럼 있을 거야.”
선우현이 사장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자마자 박서윤이 보고했다.
“연구소에서 보고서를 보냈어요.”
“요약하면요?”
“오늘 시연을 위해 연구한 내용을 정리했더군요. 제대로 했는지 우현 씨가 확인해주길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봐야겠네.”
김수선이 물었다.
- 보면 아시고요?
“보는 시늉이라도 하려고.”
선우현의 책상은 사장실 창가에 있다. 그래야 그가 창문 옆에서 모니터나 서류를 볼 때 김수선도 볼 수 있다.
“음…. 잘 만들었나 보다.”
- 테스트용 복제품들이 잘 날아다니긴 하더군요.
선우현이 보고서를 넘기다가 말했다.
“이건 나도 알아보겠다.”
- 특허 출원 가능 기술 목록이군요.
“벌써 네 개나 찾아냈네?”
- 네 개밖에 못 찾은 겁니다.
◈ ◈ ◈
오늘 기술 시연은 스래곤 연구소에서 주관했다.
사장의 측근이던 연구소장은 이사진 절반을 날릴 때 같이 날아갔다. 그래서 김정수 이사가 홍보팀과 함께 기자들을 상대했다.
JHC 테크 최종훈 사장이 다가왔다.
그는 스래곤에서 기자를 모아놓고 기술 시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구경하러 왔다.
최종훈이 선우현에게 물었다.
“우리 회사 연구소 사무실에 두었던 그 모형 새를 날리는 겁니까?”
“복제품을 날릴 겁니다. 거기 뒀던 건 프로토타입이라서요.”
“맡겨만 주시면 우리 회사에서 연구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스래곤은 항공우주 기업이니까 비행체에 관한 노하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하는 게 맞습니다.”
아까부터 근처에 매가 한 마리 날아다녔다.
최종훈은 그 매가 신경이 쓰였다.
“저 매가 먹잇감이라도 찾나 봅니다. 그 모형 새가 날아다닐 때 공격하면 어쩌지요?”
“AI가 들어 있는 건 아니라서 자기들끼리 공격하진 않습니다.”
“매라는 게 원래…. 예? AI요?”
“AI는 없다니까요. 지상에서 무선으로 명령을 전송하는 방식입니다.”
“아니, 그럼 저게, 진짜 매가 아니라….”
한쪽에서 김정수 이사가 기자들 앞에서 하늘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지금 보고 계신 새는 매순이 1호기입니다. 매처럼 생긴 드론이죠.”
기사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아까부터 날아다니던데, 매가 아니라 드론이었어?”
“매처럼 생겼는데?”
“깃털도 있는데?”
“설마 진짜 매로 만든 건 아니겠지?”
김정수가 그 기자를 쳐다보았다.
“당연히 최첨단 기술을 집약해 만든 로봇 매입니다.”
“농담이었습니다. 하, 하하.”
“비행하는 모습만 보셔서 구분하기 어려우셨을 겁니다. 워낙 잘 만들었으니까요. 그러면 이제 2호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미리 준비되어 있던 대형 상자가 활짝 열리며 매순이 2호기가 나타났다.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연구원들이 2호기를 중앙으로 옮기며 작은 소리로 빌었다.
“제발 잘 날아라.”
“네가 떨어지면 우리도 잘려.”
곧바로 2호기가 날갯짓을 시작했다. 내장된 모터가 프로펠러를 돌려 이륙을 보조했다.
보조 동력까지 있어 날갯짓의 모습은 진짜 매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대신에 동체가 쉽게 떠올랐다.
“와아! 뜬다!”
2호기는 고도가 적당히 높아지자 앞으로 비행했다. 속도가 더 높아진 후에는 1호기와 함께 선회를 시작했다.
그 모든 동작은 자동으로 되는 건 아니다.
연구원이 무선 조종장치로 비행 시나리오 번호를 전송하면, 1호기와 2호기는 미리 설정된 경로를 천천히 선회했다.
“잘 난다.”
“진짜 매 같은데?”
기자가 질문했다.
“날갯짓만으로 나는 건 아니지요? 이륙하기 전에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던데요.”
“소형 추진장치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그 추진력과 날개의 움직임을 조합해서 비행합니다. 활강할 때는 그냥 날개만 펼치고, 추가 동력이 필요할 때는 날갯짓을 하는 거죠.”
◈ ◈ ◈
최종훈이 매순이 두 대를 보며 감탄했다.
“진짜 매인 줄 알았습니다.”
선우현이 옆에서 말했다.
“버드 타입 드론입니다. 가까이서 보면 진짜 매와는 다른 점이 좀 보입니다.”
최종훈은 저 드론의 원형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가 아는 건 여러 부품을 덕지덕지 기워 만든 고물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 보는 드론은 달랐다. 깃털까지 있어서 멀리서 보면 매와 착각할 정도였다.
잠시 후에 3호기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비행은 하지 않고 기자들 앞에 놓였다.
기자들이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소형 프로펠러가 이렇게 숨겨져 있구나.”
“프로펠러가 하나가 아닌데?”
매순이는 추진용 모터는 하나만 장착되어 있다. 그런데 그 모터 하나가 돌리는 소형 프로펠러는 여러 개였다.
“지상에 전시된 걸 가까이서 보니까 로봇이 맞긴 맞네.”
“그런데 이 작은 프로펠러 몇 개와 날개로 저 큰 덩치를 띄울 출력이 나오나?”
“그래서 날갯짓을 자주 하잖아.”
이런 기술에 지식이 제법 있는 기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데? 구동계를 어떻게 만들면 저 사이즈에 저런 날갯짓이 가능하지?”
“어렵나?”
“손바닥 크기의 소형이라면 가능하지. 그런데 저건 진짜 매처럼 크잖아. 내부 구동계가 저런 날갯짓을 버텨주나?”
김정수 이사가 말했다.
“우리 스래곤의 기술력이 그만큼 높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기술이 있는데 왜 회사가 어려울 때는 발표하지 않은 겁니까?”
“지금은 있지만, 전에는 없었으니까요.”
“예?”
“버드형 드론 매순이에 사용된 건 신임 사장님이 직접 개발하신 기술입니다. 우리 연구소는 양산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와…. 사장이 직접 개발을…. 보통은 안 그러지 않습니까?”
“우리 사장님은 하십니다.”
◈ ◈ ◈
최종훈이 선우현의 옆에서 입맛을 다셨다.
“우리 회사에서 양산을 연구했어야 했는데….”
“하늘을 나는 건 여기서 연구하는 게 낫다니까요.”
최종훈이 매순이를 보며 예측했다.
“일반적인 드론과는 다르지만, 수요가 꽤 있을 겁니다. 저 드론, 분명히 잘 팔릴 겁니다.”
“드론으로 팔려고 저걸 만든 게 아닙니다.”
“예? 그럼 왜….”
“저기 적용된 기술을 팔아야지요.”
“어? 그러면….”
최종훈이 새 형태의 드론을 보았다.
‘거의 로봇 새라고 해도 되는 형태와 크기인데….’
그래서 저 상태로도 수요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개인이 사기에는 많이 비쌀 거야. 군용은 이미 고정익 드론이 많지만, 틈새 수요가 있겠지. 디자인을 더 다듬고 고가 마케팅을 하면 수익도 꽤 낼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선우현이 팔려는 건 드론이 아니다. 드론을 공중에 띄운 기술이다.
최종훈이 물었다.
“그럼 날개의 구동계 기술을….”
“그건 전체 기술의 일부입니다.”
“전체 기술이라는 게 뭘….”
“프로펠러기에 가변익 날개를 달아 단거리 이착륙이 가능하게 하는 기술은 어떻습니까?”
“예? 가변익 단거리 이착륙 항공기요?”
“그렇죠.”
최종훈이 다시 생각해보았다.
이미 그런 방식의 항공기가 있긴 있다. 헬기의 수직이착륙 능력과 고정익기의 속도를 다 얻을 수 있는 항공기는 미군에서 실제로 사용한다.
그런데 그 항공기는 단점도 많고 정비 비용도 많이 들었다. 가격도 비쌌다.
최종훈이 하늘을 날고 있는 버드형 드론을 보았다.
항공기 사업은 개인은 물론이고 JHC 테크의 규모에서도 함부로 손댈 수 없다.
날개 하나만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뛰어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게다가 항공기를 개발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대신에 다른 항공사에 날개와 구동계 제어 기술만 파는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저 드론을 대형화시킬 수만 있으면 경쟁력이 있겠군요.”
“그렇죠.”
“그런데 저건 소형이잖습니까? 사람이 탈 수 있는 비행기 크기로 대형화하는 건 다른 이야기 아닐까요? 게다가 저건 깃털도 있는데, 대형 항공기에 깃털을 달 수는 없잖습니까?”
김수선이 장담했다.
- 탐사대 지원용 정찰드론에 사용된 기술은 지구연합에서 만든 것입니다. 당연히 더 큰 항공기에 적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김수선은 단서도 달았다.
- 지금 지구의 기술로 이해해야 하니까, 실제로 어느 크기까지 만들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