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91화 (191/281)

191. 매순이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에서 캠핑 의자에 반쯤 누워 있다가 등을 살짝 들었다.

“아! 매뉴얼에 있던 기본 개념을 문서로 옮겨 적어서 보내줄 때, 이론 이름은 빼고 보내줬어야 하지 않나? 이 지구에는 그런 이론이 없거나, 있어도 이름이 다르잖아.”

- 아!

“멍?”

선우현이 다시 드러누웠다.

“괜찮겠지. 지구연합이라는 단어는 안 썼으니까.”

- 괜찮겠죠.

“멍!”

◈          ◈          ◈

스래곤 연구소에서는 버드형 드론 프로젝트를 위해 7일짜리 TF를 만들었다. TF는 김정수 이사가 직접 지휘했다.

프로젝트 6일째에, TF 소속 연구원들은 선우현이 작성해서 보내준 버드형 드론 기본 개념 문서를 보면서 회의했다.

김정수 이사가 물었다.

“사장님이 보내주신 기술 문서에 적힌 이론들이 뭔지 아는 사람?”

다들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차 팀장이 추측했다.

“그런 이론 이름은 검색해도 나오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장님이 만든 미발표 이론 아닐까요? 매순이는 사장님이 개발하셨잖습니까?”

“역시 그렇겠지? 버드형 드론 개발에 쓸 정도로 연구는 해놨는데, 아직 발표하지는 않은 이론이겠지?”

“아마 드론을 이론적으로는 예전에 완성하신 거겠죠. 그러니까 실물을 이틀 동안 뚝딱 만들고, 하루 수리하는 것만으로도 완성할 수 있었겠죠.”

“맞아. 그런 거였어. 이제야 좀 사람처럼 보인다.”

김정수 이사가 문서를 보다가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될 때까지 날려봐야겠지?”

차 팀장은 당황했다.

“예? 이사님이 사장님께 논문을 보내달라고 말씀해 주셔야죠. 문서에 언급된 이론들을 이해하면 우리 프로젝트에 더 도움이 될 테니까요.”

“생각해봐라. 발표하지도 않은 이론을 왜 우리한테 보여주겠냐? 우리는 아직 신뢰를 줄 만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

“어? 아. 그것도 그렇….”

“게다가 프로젝트 마감이 내일까지다. 지금 논문을 받아서 이해하고 내일까지 적용하겠다고? 무리 아니냐?”

“무리죠.”

“지금 받은 문서만 해도 도움은 되니까, 지금처럼 계속 날리면서 만들어보자. 어차피 거의 다 했으니까.”

◈          ◈          ◈

개발 7일째.

선우현이 옥탑방 이불 속에서 말했다.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다. 출근하기 싫어.”

- 사장님이 그러시면 직원들은 얼마나 싫겠습니까? 얼른 가시죠.

“그치? 가야겠지?”

- 누가 보면 매일 출근하시는 줄 알겠습니다. 이삼일에 한 번씩 가는 분이 왜 이러십니까?

“지원위성에 있을 때는 출근 시간이 따로 없었잖아.”

- 대신에 돌발상황이 많았죠.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우주복 입고 선체 밖으로 나간 일들이 생각 안 나시나 봅니다?

지원위성에 있는 유사동면형 생명유지장치는 하루에 몇 시간씩 쪼개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단 유지장치에서 벗어나면 꽤 오랫동안 선체 주거 구역에서 살아야 한다.

그럴 때는 당연히 낮에는 활동하고 밤으로 설정한 시간에는 잠을 자야 했다.

“원래 사람은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거야.”

- 숨 쉬는 건 귀찮지 않으신지?

“그건 안 귀찮더라고.”

- 선체에 궤도 폭격 무기가 없는 게 아쉽습니다. 있었으면 쏴버렸을 텐데.

“어…. 수선아. 버드형 드론 연구 상태는?”

- 오늘도 연구소에서 새벽부터 열심히 날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깃털까지 붙여서 꽤 잘 날아다닙니다.

“그럼 기자 시연회는 예정대로 해도 되겠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없….”

박서윤의 톡이 스마트폰으로 들어왔다.

선우현이 이불 속에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톡에는 오늘 일정이 들어 있었다. 보내준 일정에는 오전 임원회의도 있었다.

“서윤 씨는 벌써 출근한 건가?”

- 두 회사에서 동시에 일하잖습니까? 선장님이 노는 만큼 박서윤이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 출근 시간이라도 10시로 늦춰야겠어.”

◈          ◈          ◈

선우현이 오전 임원회의에서 선언했다.

“회사 출근 시간을 10시로 늦춥시다.”

이사들은 당황했다.

박 이사가 조심스럽게 반대했다.

“하지만 사장님. 회사를 살려야 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출근을 8시로 당겨도 부족할 판에 늦추는 건 좀….”

“직원 복지 차원에서 진행합시다. 아침에 일어날 때라도 좀 편하게 일어나게.”

- 직원이 아니라 선장님이 편하게 일어나시는 거겠죠.

“사장도 임직원이야.”

연구소 김정수 이사는 며칠째 현장에 있다가 오늘은 임원회의에 참석하러 왔다. 그가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연구소는 요즘 제때 퇴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근 시간이라도 늦춰주면 반응이 좋을 겁니다.”

JHC 테크의 최종훈 사장이나 길성의 박길성 회장은 스래곤의 임원이 아니다. 그들은 주주총회에서 백기사 역할만 했을 뿐 경영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최종훈만 업계에 도는 스래곤에 관한 소문을 모아 선우현에게 전달하곤 했다.

그러니 그가 10시 출근을 밀어붙이면 여기 있는 이사들이 반대해도 어차피 그대로 결정된다.

이사 중 몇 명은 불만이 생겼다.

‘직원들에게 일을 더 시켜야 회사가 살아날 텐데 왜 하필 이런 시기에….’

반면에 김정수 이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출근 시간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한 시간 늦게 출근하면 한 시간 늦게 퇴근하겠지.’

결국 출근 시간은 10시로 결정됐다.

박 이사가 손을 들었다.

“그럼 퇴근은….”

“난 정시퇴근할 겁니다.”

- 정시까지 근무나 하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아…. 그런 방향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김정수 이사가 손을 들었다.

“그럼 연구소의 근무 시간은….”

“버드형 드론은 어떻게 됐습니까?”

선우현은 그 일을 맡기면서 일주일이면 가능할 거라고 말했다. 프로토타입을 며칠 뚝딱거려서 만들어낸 사람이 한 말이라 반박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연구소에서는 몇 개 팀을 투입해 밤낮으로 매달렸다.

김정수 이사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했다.

“오늘 오후에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잘됐네요. 점심 먹고 보죠.”

◈          ◈          ◈

김 이사는 임원회의가 끝나자마자 연구소로 달려갔다. 그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거의 다 됐습니다. 어제 받은 기본 개념 문서가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사장님이 점심 먹고 보러 오실 거다!”

차 팀장은 화들짝 놀랐다.

“예? 그때까지는 무리입니다! 어떻게든 늦추셨어야죠!”

“저녁때 내가 소고기 사줄 테니까, 점심은 5분 안에 먹을 수 있는 거 시켜! 짜장면은 5분이면 먹을 수 있지? 햄버거도 금방 먹겠네! 짜장면이랑 햄버거 배달시켜!”

“그럼 저녁은 한우로 쏘시는 겁니까?”

“어…. 외제 소고기로 어떻게 안 될까?”

“그건 보통은 수입 소고기라고 하잖습니까?”

“그러니까 외제 맞잖아.”

◈          ◈          ◈

선우현은 박서윤과 회사 근처 음식점으로 갔다.

박서윤이 물었다.

“임원들과의 식사는 왜 굳이….”

그는 임원들을 마다하고 박서윤과 점심을 먹었다.

“나랑 먹으면 이사들 속이 안 편할 것 같아서요.”

“아. 그렇구나. 그래서 우리만 이렇게 느긋하게 먹는군요.”

“서윤 씨는 요즘 일 많이 하는데, 점심 먹으면서 좀 쉬어요.”

- 선장님이 쉬고 싶으신 거 아니고요?

“같이 쉬면 더 좋잖아.”

◈          ◈          ◈

선우현이 오후에 연구소를 방문했다.

김정수 이사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드디어 기자 시연용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선우현은 흥분하지 않았다.

“당연히 해낼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당연…. 저희가 고생을 많이….”

“그럼 지금 볼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가시죠.”

◈          ◈          ◈

연구소 근처 공터에 시연 준비가 되어 있었다.

김 이사가 외쳤다.

“매순이 4호기 출격!”

“매순이요?”

“연구원이 붙인 이름인데, 정식 명칭을 말씀해 주시면 당장 바꾸겠습니다.”

“어…. 정식 명칭은….”

- 탐사대 현장 제작용 공중 정찰 모듈 RB3입니다. 지구연합 탐사대 정규 장비가 아니라, 보급에 문제가 있을 때 현장에서 남는 부품으로 만들 수 있게 설계된 모델입니다.

“그냥 매순이로 하죠.”

“알겠습니다.”

버드형 드론 매순이가 머리를 위로 들고 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날개를 움직였다. 동시에 동체 내부에 있는 모터가 프로펠러를 고속으로 회전시켰다.

선우현이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 사용한 건 폐기된 드론에서 떼어낸 모터다.

그런데 테스트용 복제품에 적용된 건 고가의 경량 고출력 모터였다. 그 모터가 무게는 더 가볍고 출력은 더 높았다.

버드형 드론 매순이가 날개를 펄럭이며 위로 떠올랐다. 프로펠러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실제 매가 뜨는 모습과는 차이가 좀 있었지만,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이륙 성공했습니다!”

“비행 시작해!”

매순이가 날개를 조금씩 움직이며 앞으로 날았다.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어느 정도 가속이 되고 나자, 버드형 드론은 마치 매가 날 듯이 공중을 부드럽게 선회했다.

선우현이 말했다.

“잘 나네.”

- 그러게요. 오늘은 어제보다 더 잘 나네요.

버드형 드론이 공중에서 커다란 원을 그리며 선회했다. 데모용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는 간단한 동작만 가능했다.

현재 버전은 급격한 방향전환을 시도하면 추락 위험도 같이 커졌다. 그래서 그런 건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다.

선우현이 물었다.

“착륙도 잘합니까?”

김정수 이사는 긴장했다. 이륙과 선회 비행까지는 며칠 전에 성공했다. 문제는 착륙이었다.

“보여드리겠습니다.”

버드형 드론 매순이가 천천히 하강하며 날개를 움직였다. 이 단계를 개발하는 데 며칠을 소모했다. 매순이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발끝이 땅바닥에 닿았다. 갑자기 동체가 크게 흔들렸다.

김정수가 바짝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매순이는 전처럼 데굴데굴 구르지는 않았다. 착륙 직후에 몇 번 크게 흔들리다가 무사히 정지했다.

김 이사가 속으로 안도하며 자랑했다.

“보십시오! 착륙에도 성공했습니다!”

선우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매가 저렇게 착륙하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기야 합니다만, 진짜 매는 아니니까….”

“깃털을 붙여놓으니까 매처럼 생겼는데, 그럼 착륙도 잘해야지요.”

김정수 이사가 처음 깃털을 붙였던 연구원을 째려본 후에 선우현에게 말했다.

“시간을 더 주시면 자연스러운 착륙 동작을 개발하겠습니다.”

“음….”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수선아. 네 생각은?”

- 탐사대 지원 매뉴얼에 포함된 설계도과 비교해보고 있습니다. 깃털의 모양이 많이 다른데요?

“그치? 잘 만들었는데 디테일이 부족한 거지?”

선우현이 김정수에게 말했다.

“매순이는 몇 호기까지 있습니까?”

“4호기입니다. 1호기부터 3호기까지는 수리 중입니다.”

“종이와 펜 있습니까? 스케치북이 있으면 더 좋은데.”

“물론 있습니다.”

근처에 있던 연구원이 즉시 스케치북과 펜을 가져왔다.

선우현이 매순이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여기 이 부분의 깃털은 이런 거 말고, 이런 형태로 바꾸고요.”

선우현은 김수선의 설명을 들으면서 깃털 그림을 그렸다.

- 선장님. 깃털이 더 얇아야 합니다.

선우현이 깃털 위에 선을 직직 그어 지운 후에 다시 그렸다.

“손이 미끄러졌네요. 다시. 이런 깃털을 쓰시죠. 그리고 여기 이 부분은 깃털이 너무 큽니다. 좀 줄이시고.”

- 설계도에는 그 옆에 구멍이 개방되어 있습니다.

“아. 여기 이거. 이 구멍은 깃털로 막으면 안 되죠. 앞에서 들어온 바람이 내부를 통과해 여기로 나가야 하는데요.”

- 장식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머리에 이렇게.”

선우현이 머리 부분에 붙일 것도 그렸다.

“장식을 하나 달아주시고.”

“자, 장식이요?”

“머리 장식은 닭 말고, 왜가리의 깃털 느낌으로.”

선우현이 탐사대 지원 매뉴얼에 있는 디자인과 매순이 4호기를 비교해서, 깃털 모양이 차이가 나는 부분을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깃털을 이렇게 다 수정하고 비행하는 거, 언제까지 볼 수 있겠습니까?”

김정수 이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일? 모래? 아니야. 원래 마감이 오늘까지였어.’

“저녁때까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나 야근 싫어합니다.”

“5시까지는 보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좋네요.”

선우현이 회사로 돌아갔다.

김정수 이사가 팀장들에게 외쳤다.

“빨리 수정해! 매순이 깃털 다시 달고, 소프트웨어도 좀 고쳐봐!”

“김 이사님. 무리입니다! 외형이 바뀌는데 몇 시간 만에 어떻게 그걸 다….”

“그럼 깃털만이라도 다시 달아! 노력한 모습이라도 보여줘! 개발 기간은 그 후에 어떻게든 벌어볼 테니까!”

◈          ◈          ◈

첫 번째 깃털 수정 버전은 두 시간 후에 비행을 시작했다. 매순이가 이륙했다.

김정수 이사가 물었다.

“4호기가 추락하면 테스트에 쓸 다른 매순이는?”

“1호기부터 3호기까지 수리 끝났습니다. 이제 착륙은 웬만큼 하니까 크게 망가지진 않아서 수리하기 좀 쉬워졌습니다.”

“오늘 모든 매순이를 다 갈아 넣을 각오로 테스트하자. 그런데….”

김정수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깃털을 바꿔도 이륙과 비행은 잘하네.”

최 팀장이 맞장구쳤다.

“비행 특성이 더 좋아졌는데요? 더 잘 날아다닙니다.”

“그래도 착륙할 때는 위험하겠지?”

“지금 저 깃털 버전은 처음이라 아무래도….”

김정수가 시계를 보았다.

“시간 없다. 착륙시켜봐. 착륙 순간의 문제를 찾아서 바로 수정해야 하니까. 1, 2 3호기 다 대기시켜.”

선회하던 버드형 드론이 지상을 향해 하강했다. 날개가 움직이자 비행 속도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다리가 바닥을 향하다가 발이 땅에 닿았다.

그 모습을 본 연구원들은 당황했다.

“어?”

착륙이 예상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아직도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꽤 있었지만, 아까처럼 몸체가 심하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착륙…. 성공했는데요?”

김정수 이사가 눈을 껌뻑였다.

“왜?”

“사장님이 바꾸라고 한 그대로 깃털 형상을 바꿔서겠죠.”

“아니, 깃털 형상의 문제의 해결법을 왜 보자마자 알아? 왜 현장에서 쓱쓱 수정하니까 저렇게 잘 착륙하는데? 우리는 며칠을 고생해도 안 되던 건데?”

“그러게요.”

“와…. 우리랑 같은 사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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