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호크 III
박 팀장이 자랑했다.
“버드형 드론을 복제할 때 경량화까지 할 수 있습니다.”
김정수 이사가 물었다.
“시간 안에 되겠어?”
“프로토타입에는 경량화된 부품도 들어 있지만, 평범한 것도 많습니다. 그것만 경량 버전으로 대체해도 무게가 많이 들어줄 겁니다.”
“무게가 줄면 더 잘 뜨고 더 잘 날겠구나. 그런데 밸런스는?”
“그런 건 어차피 복제품을 날리면서 잡아야 합니다. 지금 부품보다는 경량화한 부품이 밸런스 잡기 더 좋을 겁니다. 일단 더 잘 뜰 테니까요.”
“그럼 진행해.”
“그리고 또 있습니다.”
“또?”
“프로토타입은 그냥 낡고 흔한 부품을 모아다가 만든 겁니다. 마치 폐품 적치장 같은 곳에서 부품을 뜯어서 만든 것처럼요.”
김정수 이사가 눈을 껌뻑였다.
“사장님이 그런 말을 하시긴 했는데, 그게 진짜였어? 난 농담인 줄 알았는데….”
박 팀장이 분해해 놓은 프로토타입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동체 안쪽에 설치한 프로펠러와 모터를 보십시오. 이거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드론의 부품인데 출력이 양산품보다 약합니다.”
“일부러 출력을 줄인 건가?”
“아니요. 왜 그런가 했더니, 낡은 장비에서 모터를 뜯어서 쓴 거 같더라고요. 모터가 낡아서 원래 출력이 안 나옵니다.”
“와…. 진짜로 폐품을 모아서 만들었구나.”
김정수 이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우리 회사를 인수할 정도로 돈이 많은 분이 도대체 왜?”
이번에는 박 팀장이 눈을 껌뻑였다.
“어…. 그러게요.”
김정수가 정신을 차리고 이야기의 방향을 돌렸다.
“어, 그럼 복제품이 프로토타입보다 업그레이드되겠어.”
“대체 가능한 부품은 신품이나 더 고성능, 경량 부품을 쓸 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성능이 더 좋아지겠죠.”
“만들기도 쉽고?”
“넵. 이미 지원팀에서 부품 사러 직접 나갔습니다. 발주하고 받는 시간도 아끼려고요. 다만, 금속 부품 몇 개는 파는 게 아니라서 저희가 직접 깎아야 합니다.”
“일단은 그렇게라도 해.”
“외부 동체도 초경량 소재로 만들면 무게가 많이 줄어들고, 비행 성능은 또 더 좋아질 겁니다. 물론 그 작업은 다른 팀이 해야겠지만요.”
“그럼 테스트용 복제품을 충분히 만들어서 날려봐. 비행 소프트웨어 개발팀은?”
박 팀장의 팀에서도 기본적인 건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김정수 이사는 소프트웨어 팀도 프로젝트에 투입했다.
옆에서 소프트웨어 팀의 차 팀장이 말했다.
“정식 제어 소프트웨어는 1주일로는 당연히 무리입니다. 그래도 한 코스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한 코스라는 게 어디까지야?”
“이륙해서 크게 선회하는 정도?”
“착륙은?”
“버드형 드론은 바퀴가 아니라 발이 달렸습니다. 착륙은 무리니까 그물로 받으면….”
김정수 이사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차 팀장. 우리 회사는 지금 막 인수된 상태다?”
“그렇죠.”
“구조조정은 이사급만 했는데, 연구소의 개발 능력이 개족발로 보이면 과연 이사급에서 끝날까? 막 팀장급도 날아가고 그러지 않을까?”
차 이사가 즉시 말을 바꾸었다.
“착륙도 가능하게 하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요.”
“도움이 되겠다 싶은 팀은 이 프로젝트에 다 참여시켜. 샘플이 몇 대가 추락하든 일단 날려보면서 만들어. 앞으로 일주일에 우리 목이 걸려 있다.”
“옙!”
◈ ◈ ◈
개발 2일째.
버드형 드론은 여러 대의 복제품이 만들어졌다. 한 팀만 복제품 제작에 참여한 게 아니라서 디테일한 부분은 조금씩 달랐다.
덕분에 시행착오를 더 빨리 극복하고 더 다양한 테스트를 할 수 있었다. 한쪽 팀에서 만든 복제품에 생긴 문제가 다른 팀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면, 다른 팀 것이 정답이라고 봐야 했다.
문제는 차 팀장의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 개발팀이었다.
◈ ◈ ◈
개발 3일째.
연구원이 다가왔다.
“차 팀장님.”
차 팀장이 물었다.
“어. 왔어? 컨트롤러 새 버전은?”
“만들었습니다. 어차피 부품은 다 양산품이니까, 제어 컨트롤러는 보드에 칩 박아서 만들면 어떻게든 되는데….”
그런 방법으로 이미 여러 가지 형태의 컨트롤러를 만들었다.
“문제는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가….”
옆에서 비명이 들렸다.
“추락한다아아!”
차 팀장의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갔다.
버드형 드론 복제품이 드릴처럼 회전하면서 땅에 내리꽂혔다.
그런 충격을 드론이 버틸 리가 없다. 땅에 충돌하는 순간 동체는 박살이 나고 날개 두 개가 떨어져 나가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다.
차 팀장이 소리를 질렀다.
“야! 벌써 다섯 대째 부숴 먹으면 어쩌자는 거야!”
박 팀장도 외쳤다.
“저거 빨리 치워! 사장님이 못 보게 숨기라고!”
연구원이 옆에서 말했다.
“차 팀장님. 한 일 년 개발하면 진짜 멋지게 만들 자신 있거든요.”
“우리는 지금 진짜 멋진 게 필요한 게 아니야. 기자들을 모아놓고 데모 비행만 할 수 있으면 돼.”
하드웨어는 순조로웠다. 프로토타입을 복제하면서 오류가 조금 발생하긴 했지만, 수정할 시간은 충분했다.
소프트웨어가 계속 문제였다.
◈ ◈ ◈
개발 4일째.
시연용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 개발은 주말은 물론이고 밤낮으로 진행됐다. 그런 일정으로 돌리려면 한 팀으로는 부족해서 개발팀이 더 투입됐다. 주간조와 야간조가 교대로 움직였다.
“팀장님. 저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휴가 길게 쓸 겁니다.”
“김 이사님이 그러시는데 추가 근무한 만큼 수당이 더 나오고 특별 휴가도 나올 거라더라.”
“진짜요?”
“이 프로젝트에 성공해야 나온대. 실패하면 국물도 없대. 그러니까 일하자.”
먼저 하드웨어 복제를 마친 팀들은 소프트웨어 팀보다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일주일 동안은 이번 프로젝트에 전념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상황이라 시간이 남았다.
소프트웨어 팀이 고생할 때 시간이 남는 하드웨어 팀원 몇 명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
“나는 도색을 했다. 파란색으로. 블루 버드라고 불러라.”
“변화가 느리구나. 나는 깃털을 달았다.
“어? 진짜 새도 아닌데?”
“깃털 다니까 진짜 새처럼 보이더라. 오늘은 깃털이나 본격적으로 추가해보려고.”
◈ ◈ ◈
개발 5일째.
“이야아. 깃털을 완전히 다 붙이니까 새가 아니라 매가 됐네.”
깃털 버전을 가져온 연구원이 자랑했다.
“내가 어젯밤에 밤새도록 깃털을 붙였다. 이건 진짜 역작이지. 이름도 붙였어. 순매. 크으. 있어 보이지?”
“라면 같은 이름을 붙여놓고 있어 보이긴.”
“그치? 역시 매순이가 낫겠지? 순매와 매순이 중에 고민했거든.”
“그런 거 고민할 시간에….”
옆에서는 테스트용 복제품이 또 한 대 추락했다.
“으아아! 왜 자꾸 떨어지는 거야!”
개발 5일째에는 김정수 이사도 현장에 계속 있었다.
그가 지시했다.
“다른 복제품 더 가져와서 이번에는 3팀에서 만든 제어 소프트웨어 테스트해!”
“김 이사님! 테스트용 복제품은 이게 마지막입니다!”
“왜 마지막이야? 계속 제작하라고 했잖아!”
“만들고는 있는데, 소모 속도가 너무 빨라서 준비해둔 부품 몇 개가 떨어졌습니다!”
“왜 다 떨어지는데! 제발 좀 그만 떨어지라고!”
“부품은 퀵으로 오고 있습니다! 다음 복제품은 한 시간 뒤에 완성된답니다!”
“한 시간도 낭비할 수 없다! 우리는 빨리 더 많은 테스트가 필요하다!”
깃털을 붙인 버드형 드론을 만든 연구원이 그 말을 듣고 슬그머니 현장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김정수의 눈에 띄었다.
“어? 거기! 그거 뭐야? 매야?”
버드형 드론 제작을 맡은 연구원이 매를 들어 보이며 자랑했다.
“진짜 매처럼 보이시죠? 제가 어제 밤새도록 깃털을 붙였….”
“멀쩡한 복제품이야?”
“예? 아, 그게요. 테스트용 복제품이 부족해질 줄 모르고, 나중에 기자 시연회 때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가져와!”
“아, 안됩니다. 매순이를 추락시킬 수는 없….”
“뭐라는 거야? 3팀. 저거 빼앗아서 테스트해!”
“아, 안돼!”
◈ ◈ ◈
3팀이 개발 중인 비행 소프트웨어가 깃털을 붙인 복제품에 설치됐다.
“띄워!”
로봇 매 복제품은 지상에서 무선 제어로 움직이는 방식을 쓴다. 연구원이 무선조종장치를 직접 조작했다.
로봇 매의 엔진 역할을 하는 프로펠러가 맹렬히 회전했다. 동시에 날개를 펄럭였다.
“뜹니다!”
“뜨는 건 며칠 전부터 성공했어.”
로봇 매의 고도가 적당히 높아졌다. 김정수가 지시했다.
“비행 테스트 시작해.”
“전진 비행 시작하겠습니다.”
로봇 매가 앞으로 비행했다.
“그래. 여기까지도 통과했지. 다음!”
“선회 들어갑니다!”
김정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계속 여기서 문제가…. 어?”
“난다!”
“잘 난다!”
“왜 날지?”
이전 테스트에서는 그렇게 선회하다가 날갯짓할 때 추락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날갯짓을 여러 번 해도 안정적으로 날았다.
박 팀장이 그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혹시 깃털을 붙이면 더 잘 날 수 있게 설계한 거였나? 그래서 비행 소프트웨어에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깃털만 있으면 비행이 가능한 건가?”
차 팀장도 하늘을 보며 말했다.
“그런가 본데? 와…. 사장님은 도대체 어디까지 계산하고 설계한 거지?”
어느새 기자 시연회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김정수 이사가 외쳤다.
“다음! 착륙 테스트해!”
“착륙하겠습니다!”
로봇 매가 날개를 펼치고 천천히 하강했다.
“되겠는데?”
“드디어 성공….”
로봇 매의 발이 땅에 닿을 때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로봇 매가 앞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착륙은 실패였다.
밤새도록 드론에 깃털을 붙인 연구원이 소리를 질렀다.
“안돼! 매순아!”
김정수는 활짝 웃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좋았어! 거의 착륙했잖아! 이번엔 박살 나지 않았다고! 조금만 더 개발하면 되겠어!”
“매순이는 이미 죽었단 말입니다!”
“고쳐!”
◈ ◈ ◈
개발 6일째.
“매순이가 또 죽었어!”
“또 고쳐!”
차 팀장이 하소연했다.
“이사님! 이런 일정은 도저히 무리입니다!”
“사장님은 하드웨어 프로토타입을 사흘 만에 뚝딱 만들었어! 그것도 혼자서! 오후에만 출근해서! 게다가 그중 하루는 만든 날이 아니라 수리한 날이야!”
“아니, 그걸 어떻게 믿….”
“JHC 테크에 있는 지인 통해서 확인한 거야. 맞더라! 그런데 연구소가 달려들어 일주일을 매달렸는데도 비행 데모조차 못 하면 우리 모가지가 붙어 있겠냐?”
“매순이 2호기 준비 중입니다!”
◈ ◈ ◈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에서 말했다.
“아! 버드형 드론 말이야. 기본 개념을 문서로 정리해서 보내줬어야 하는데.”
- 아! 매뉴얼에 적힌 개념 설명을 불러드렸어야 하는데.
선우현이 옥상에 펼쳐놓은 캠핑용 접이식 의자에서 노트북에 워드프로세서를 띄웠다.
“네가 불러주는 그대로 입력만 하면 되겠지.”
- 시작할까요?
“내가 입력한다고는 안 했다.”
선우현이 그 노트북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야. 엠투. 네가 나 대신 수선이가 불러주는 거 입력해라.”
“멍?”
“왜 그렇게 봐? 할 수 있잖아.”
선우현의 바로 옆에는 얼음을 동동 띄워놓은 커피가 있었다. 그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캬아. 놀면서 마시는 진짜 커피의 맛. 지상에 내려오니까 이런 게 정말 좋다니까.”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제가 불러주는 자음과 모음을 엠투가 발톱으로 자판에 한 개씩 천천히 찍고 있는 걸 보면, 제 속이 터질까요? 안 터질까요?
“나 좀 편하게 일하면 안 되냐?”
- 지금도 충분히 편안해 보이십니다만? 그렇게 놀고먹으면서, 언제 우주왕복선을 사서 위성궤도로 자원을 보내실 겁니까?
“응? 어…. 그래서 스래곤을 인수했잖아.”
- 스래곤에는 우주선이 없습니다만?
“그러게. 없더라고.”
- 그러니 버드형 드론의 기본 개념이나 빨리 작성하시죠?
선우현이 노트북을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하려고 했어. 매뉴얼에 있는 거 읽어봐.”
◈ ◈ ◈
선우현이 박서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박서윤은 오늘은 길성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가 파일을 훑어보았다.
“버드형 드론의 기본 개념 설명…. 이걸 6일째에 주셨다는 건….”
그녀가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연구소에서 그동안 스스로 알아낸 것과 비교해보라는 뜻이구나.”
그녀가 그 파일을 연구소의 김정수 이사에게 다시 보냈다.
◈ ◈ ◈
김정수 이사는 다시 팀장과 팀원들에게 그 문서를 보냈다. 개발과 테스트는 잠시 중단됐다.
문서는 그리 길지 않았다. 대신에 기본 개념이 알차게 들어 있었다.
김정수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원들을 모아놓고 논의했다.
“왜 이걸 굳이 6일째에 보내신 걸까?”
“답답해서 그러신 걸까요?”
“역시 그런 거겠지?”
김정수가 희망적인 전망을 했다.
“그래도 이게 있으니까 우리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겠지? 그치? 박 팀장. 읽어보니까 어때?”
박 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개념이 잘 정리된 건 맞는데요. 해석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응? 한글로 적혀 있고 복잡한 수식도 없잖아.”
“문서에서 언급된 이론들이 처음 보는 이름이라서요.”
“박 팀장이 모르는 거 아니고?”
“그런 거 아닙니다. 검색해봐도 안 나오거나, 나오더라도 이름만 같은 전혀 다른 이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