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88화 (188/281)

188. 호크

최 팀장이 연구소 분위기를 계속 설명했다.

“당연히 인수한 곳에서 직원 구조조정부터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소 사장의 최측근 약간만 자르고 끝냈잖습니까? 그것도 이사급으로만요.”

선우현은 일반 직원은 아무도 자르지 않았다. 누구를 잘라야 하는 파악할 시간도 없고 굳이 자를 필요도 없었다.

대신에 소 사장의 최측근 이사들과 심각한 비리가 들통난 경우는 쫓아냈다.

“거기다 주총 때 발표한 것까지 보니까, 진짜로 회사를 살리려고 인수했나 싶은 거지요. 그래서 다들 의욕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난 1년 사이에 연구원들이 요즘처럼 의욕에 넘치는 거 처음 봅니다.”

김정수 이사가 말했다.

“다행이네. 나도 기대도 안 하던 이사가 갑자기 됐으니까… 이 자리에 좀 오래 있어야지. 하하하.”

“저도 갑자기 팀장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월급만 오르면 딱 좋을 텐데요.”

“회사가 살아나면 월급도 오르겠지.”

◈          ◈          ◈

박서윤은 평소에는 길성 비서실로 출근하다가 선우현이 출근하는 날은 스래곤으로 간다.

그녀는 오늘은 스래곤 비서실에 출근했다.

스래곤에서 유일하게 칼바람이 분 부서가 비서실이다.

비서실 직원 중에 전임 사장의 측근이거나 비리를 도운 것으로 의심되는 인원은 전부 다른 부서로 재배치됐다.

그렇게 비서실의 절반이 날아갔다. 특히 비서실의 윗선은 거의 전멸했다.

박서윤이 말했다.

“그분들은 결백이 증명되면 원래 자리로 돌아올 거예요. 지금은 임시 조치죠.”

비서실에 남아 있는 직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백한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도 못 돌아오겠구나.’

‘비리가 더 밝혀지면 아예 잘리겠네.’

김수선이 설명했다.

“사장님이 매일 출근하시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일을 따로 맡을 필요도 없어요. 그걸 기준으로 업무를 파악했어요. 저번에 고 과장님이 하신 말처럼, 비서실에서 회사 일만 하면 지금 인원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더군요.”

비서실 대리가 말했다.

“그게 말입니다. 야근하면 처리할 수는 있는데, 효율이….”

“오늘은 업무를 더 효율이 높은 쪽으로 조정하겠어요. 그렇게 했는데도 무리라면, 능력을 의심받을 수 있는데….”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늘 오후에 사장님이 오십니다. 보고 준비 완벽하게 하시고, 사장님의 지시사항이 내려오면 빠르고 확실하게 처리해 주세요.”

◈          ◈          ◈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에서 말했다.

“아. 출근하기 싫다.”

- 사장이 출근하기 싫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사장이니까 내 맘대로 놀아도 되지?”

- 되겠습니까? 최근에 용케 열심히 일하셨다 했습니다.

“열심히 해서 항공우주회사 하나 먹었잖아. 이제 좀 쉬어도 되지.”

- 그 회사를 왜 먹었을까요?

“어….”

- 저한테 우주왕복선 보내려고 먹었습니다. 그런데 스래곤에는 왕복선은 고사하고 인공위성을 쏠 로켓도 없습니다. 부품과 장비만 생산하고 있죠. 저는 오늘도 선체에 난 빵꾸를 때웁니다.

“출근할 거야. 하려고 했어.”

◈          ◈          ◈

선우현은 JHC 테크 연구소에 먼저 들렀다.

이 연구소에는 선우현에게 제공된 방이 하나 있다. 그곳 책상에는 버드형 드론이 올려져 있었다.

“책상에 먼지가 없다. 박선희 씨가 내 책상까지 청소해 주나 보다.”

그가 스래곤 연구소에 놔둔 버드형 드론을 챙겼다.

최종훈이 물었다.

“그 기계 새의 소프트웨어는 우리 연구소에 맡기실 줄 알았는데요.”

“날개가 달린 건 항공우주 전문인 스래곤 쪽이 더 잘 맞을 겁니다.”

“이 방은 그대로 둘 테니까, 언제든지 이용하시죠.”

“그거 좋네요. 이 연구소 공짜 커피가 맛있으니까요.”

◈          ◈          ◈

선우현이 스래곤에 도착했다.

스래곤 건물의 지하주차장은 유료다. 주차가 가능한 임직원은 차량 번호가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주차장 차단기 화면에 선우현의 차 번호와 함께 방문객이라는 표시가 떴다.

“수선아. 주차장에 내 차 번호가 등록이 안 되어 있다. 주차비 내야 하나보다.”

- 잊지 말고 무료 주차권을 받으십시오.

선우현이 상자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 후에 사장실로 올라갔다.

사장실 앞에는 비서실이 있다. 자리는 반쯤 비어 있었다.

비서실 직원 중 한 명이 상자를 들고 오는 선우현을 발견하고 벌떡 일어났다.

“사장님!”

다른 직원들도 즉시 일어났다.

이사 절반을 자르고 비서실 직원 절반을 다른 부서로 날려 보낸 사람이 나타났다. 비서실 직원들은 다른 부서 사람들보다 훨씬 더 긴장했다.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사장님 소리 들으니까 영 어색하다.”

- 익숙해지십쇼.

“그냥 출근을 안 하면 안 듣겠지.”

- 그러면 일은요?

“최종훈 사장님은 예전에 아플 때 화상 통화로 진행했잖아. 나도 그러면 되지 않을까?”

- JHC 테크의 이사진은 파벌 싸움은 했지만 그래도 모두 최종훈의 측근입니다. 그런데 선장님은 스래곤의 기존 임원들을 얼마나 믿으시는지?

남은 이사들이 다 검증된 건 아니다. 김수선이 파악한 인성이나 외부에 도는 소문은 최소한의 선별 기준이었다.

“자주 출근해야겠네.”

박서윤은 비서실장실에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일했다. 그녀가 밖으로 나왔다.

“오셨습니까?”

“서윤 씨. 너무 사무적인 목소리로 그러니까 어색한데….”

“여기는 회사라서,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내가 사장이니까 그 선 내가 정하면 되는 거 아닌가?”

박서윤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러네요.”

“심심하면 사장실에 놀러 와요.”

“업무보고 준비해 뒀어요. 바로 일하셔야죠.”

“와. 다들 나보고 일하래.”

“사장님이시니까요.”

“커피 한 잔 마시고 나서 합시다. 여기 커피 머신이….”

비서실 직원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인원 충원을 제안하려다 바로 꼬리를 말았던 대리였다.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박서윤이 대리에게 말했다.

“그럴 시간에 일해요. 야근하기 싫으면.”

“네? 아. 네!”

박서윤이 선우현에게 말했다.

“제가 가져갈게요.”

“아. 그리고 무료 주차권은 어디서 받는지 알아요? 1층 로비인가?”

박서윤이 비서실 직원들을 휙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사나웠다.

“어째서 사장님 차가 등록이 안 되어 있죠?”

직원들이 허둥거렸다.

“드, 등록이….”

“담당자가….”

선우현이 말했다.

“서윤 씨. 표정 풀어요. 별것도 아닌데 뭘 그런 일로. 같이 커피나 합시다.”

“네.”

선우현이 사장실로 갔다.

박서윤은 커피 머신과 제빙기의 얼음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만들어 사장실로 갔다.

두 사람이 사장실로 사라진 후에 비서실 직원들이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어휴. 비서실장님 눈빛이…. 저렇게 무서운 표정은 처음 봤네.”

“그런데 그 매서운 표정에도 묘한 매력이….”

“정신 차려. 실장님이 사장님하고 대화하는 거 못 봤어? 잘 아는 사이 같지 않아?”

“잘 아는 사이니까 비서실장을 시켰겠죠.”

“그게 아니라, 뭔가 사장과 직원보다는 가까운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잖아.”

옆에서 다른 직원이 말했다.

“실장님한테 반한 총각 직원이 한둘이 아닐 텐데, 다들 헛물만 켜겠구나.”

비서실에서 살아남은 고 과장이 말했다.

“지금 떠들 시간이 어디 있어? 일 안 해? 우리는 야근하면 능력을 의심받는다고! 그리고 당장 사장님 차 번호부터 등록해!”

“차 번호를 몰라서….”

“어?”

“어떻게 하죠?”

“시, 실장님이 아시겠지? 아셔야 하는데….”

◈          ◈          ◈

박서윤이 미소를 지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선우현이 물었다.

“방금 그 사나운 표정에 무서운 눈빛. 싸늘한 목소리는….”

박서윤이 얼른 말했다.

“그거 다 연기한 거예요. 화난 거 아니에요. 비서실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고 실장도 가끔 출근하는데, 비서실에서 실수할 수도 있죠.”

“와. 그게 다 연기였구나. 연기를 배우진 않은 줄 알았는데.”

“안 배웠어요. 영화에서 본 거 따라 한 거예요.”

“그럼 오늘 표정의 원본은 뭐지요?”

“남미연 씨가 영화 전설의 팀장에서 보여준 모습이에요. 10년 전 영화인데, 재미있어요.”

◈          ◈          ◈

남미연이 선우현에게 전화를 걸어 엠투의 촬영 스케줄을 의논했다. 그러다 영화 이야기도 나왔다.

“전설의 팀장? 어머. 선우현 씨. 내 팬인가? 10년 전 영화를 다 물어보고?”

- 거기서 사납게 나왔다던데.

“말은 바로 해야죠. 사나운 게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팀장 역할이었어요. 좀 사나운 모습을 연기하긴 했는데,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을 표현해야 했거든요.”

- 평소 성격대로 하면 되니까 연기하긴 쉬웠겠군요.

“어머어. 그 연기 진짜 어려운 건데 뭘 모른다. 나 그걸로 연기상 받았어요.”

◈          ◈          ◈

스래곤의 이사들이 한 명씩 선우현을 찾아와 업무보고를 했다.

이미 한 번 칼바람이 불어 전임 사장의 측근 이사들이 날아갔다.

남은 이사들은 한 번 더 고르기 작업이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대신에 일을 잘하면 유임이 확실하다는 판단도 했다. 비서실장 외에는 외부 인물을 아무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무와 전무 자리가 하나씩 비었다. 지금 시점에 성과를 잘 내면 유임이 문제가 아니라 승진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사들은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업무보고 때는 현재 실적과 앞으로의 계획을 잘 요약해서 보고했다.

잠시 쉬는 시간에 박서윤이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은….”

“어우. 어색해라.”

“우현 씨는 이사들을 다 믿나 봐요?”

“열심히 일 잘하면 믿어야죠. 수작을 부리면 날려버릴 거고요.”

“회사에 출근도 잘 안 하면서 그런 걸 어떻게 구분하세요?”

“잘?”

김수선이 말했다.

- 저랑 엠투가 열심히 하는 거겠죠. 선장님이 잘하는 게 아니라요.

연구소의 김정수 이사가 보고를 마쳤다. 그가 나가기 전에 선우현이 옆을 가리켰다.

“저거 어떻습니까?”

“새 모형이군요. 어? 혹시 작동하는 겁니까?”

“알아보시네.”

“단순 장식품 느낌이 아니라서요.”

“자세히 살펴봐요.”

김정수 이사가 탐사대 지원장비인 버드형 드론을 들여다보았다.

“이건, 묘하네요. 부품이 어쩐지 폐품을 모아 만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죠.”

“폐품은 아니고, 버려진 장비에서 뜯어서 모아 만든 겁니다.”

“예? 누가….”

“내가요.”

“아! 어쩐지 명품 느낌이 든다 싶었습니다.”

“그걸 연구소에서 가져가서 빠진 것 좀 채워봐요.”

“어떤 부분을….”

김수선이 말했다.

- 하드웨어는 설계도를 보고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제어 소프트웨어가 하나도 없습니다. 선장님이 임베디드 프로그래밍을 못 해서요.

“수선아. 내가 아니라 우리가 못한 거야.”

선우현과 김수선은 지상의 프로그래밍 기술은 하나도 모른다. 그런데 이게 시킬 곳이 생겼다.

선우현이 김정수 이사에게 말했다.

“그 드론은 제어 소프트웨어가 없으니까 그걸 만들어봐요. 제대로 만들면 날 수도 있으니까.”

“예? 이거 비행이 가능한 거였습니까?”

“아직 안 날려봐서 모르는데, 혹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추가하고 개선해서 꼭 날려요.”

- 부족한 부분이 많겠죠.

“가져가서 잘 연구해 봐요.”

김정수 이사가 말했다.

“우리 회사의 항공 장비 개발 전문팀에 맡기겠습니다.”

◈          ◈          ◈

김 이사가 버드형 드론을 연구소로 가져갔다.

“이사님. 이건 뭔가요? 폐품을 모아 만든 깡통인가요?”

“사장님이 만드신 거다.”

“재활용을 테마로 삼아 예술로 승화시키셨군요.”

“안 계신 곳에서 아부해서 뭐하게?”

“그러게요.”

“나처럼 바로 앞에서 해야지.”

“네?”

“아니야. 이건 박 팀장네 팀이 맡아서 분석해봐.”

“분석이고 자시고, 날개 형상이 좀 이상한데요?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데….”

“그치? 이대로 날리는 건 무리지?”

“아마 온갖 문제가 쏟아져 나올 걸요?”

“그럼 날 수 있게 날개 형상을 수정하거나 모터를 바꿔서라도 날려.”

“네?”

“제어 소프트웨어도 없으니까 새로 만들어. 한 번도 띄워본 적이 없으니 구조를 분석해서 문제 있는 건 다 수정하라고.”

박 팀장은 당황했다.

“아니, 이사님. 그게 말이 쉽지….”

김정수 이사가 진지하게 말했다.

“박 팀장. 나 이사 단 지 며칠 안 됐다.”

“그쵸. 소 사장 측근이 다 날아가면서 생긴 자리에 승진하신 거니까.”

“그런데 우리 회사가 이제 망하지는 않을 거 같네?”

“저도 그래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사 자리에 오래 있고 싶은데, 이사 되고 사장님한테 처음으로 받은 일을 못 하겠다고 할까? 이사 절반이 목이 날아간 지 며칠이나 됐다고?”

“아뇨.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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