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주주총회
스래곤 예전 사장 소정훈이 대포폰을 붙들고 열심히 주장했다.
“놈들이 스래곤 주식의 51%를 먹었습니다. 일부러 주가를 폭락시켜놓고 쓸어담은 겁니다.”
주가가 폭락한 원인은 소정훈과 박재곤의 주가조작 작전이 기자회견장에서 들통났기 때문이다.
박재곤이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 과반을 빼앗겼으면 다 끝난 이야기 아닙니까?
“아니지요. 49%는 아직 남아 있잖습니까?”
- 거의 절반이긴 하군요. 그래서요?
“그중에 큰손 몇 명을 제가 압니다. 그 사람들을 만나 그놈 때문에 주가가 폭락한 거라고 설득하겠습니다.”
- 그러면 그 사람들은….
“분명히 주총장에서 난리를 칠 겁니다.”
- 소 사장님 말을 믿지 않더라도 일단 화를 많이 내겠군요.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할 테니까.
“그때 제가 나서면 아주 난장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 화를 소 사장님에게 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작전이 성공했으면 그 사람들도 고점에서 큰 재산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그걸 망친 게 그놈입니다.”
- 그쪽으로 강조하면 되겠군요. 그럼 기자들은 내가 부르지요. 보도국장들이 내 반박 기사는 내준다고 했으니까.
“고맙습니다. 확실히 성공하겠습니다.”
소정훈이 전화를 끊고 나서 말했다.
“후우. 됐다.”
그가 이를 갈았다.
“선우현 그 새끼만 잡으면 나는 어떻게든 산다. 주총 때 치명타를 먹이면 잡을 수 있어.”
◈ ◈ ◈
소 사장은 보유한 주식부터 팔아치웠다.
“이렇게 파는데도 주가가 유지돼? 혹시 그 새끼가 아직도 사나?”
권 전무와 최 상무도 같이 주식을 팔았다. 두 사람은 대주주는 아니지만 각자 1%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윤 이사는?”
“이미 다 팔았더라고요.”
“그럴 줄 알았다. 배신자 새끼.”
권 전무가 물었다.
“그런데 그 새끼가 사는 거라면, 왜 아직도 사들이는 걸까요? 주총을 위한 명부는 이미 나왔는데 말이지요.”
지금 주식을 다 팔아도 주주총회에 참석할 수 있다.
“그게 바로 JHC나 길성이 그 새끼의 확실한 아군은 아니라는 뜻이다. 백기사가 언제 팔지 모르니까 미리 사두려는 거야.”
소 사장이 장담했다.
“주총이 난장판이 되면 안 그래도 불안하던 주가는 더 폭락할 거다. 그때 폭락한 주식을 다시 사면 우리가 지분을 늘릴 수 있어.”
“맞습니다. 그놈들이 썼던 방법을 그대로 쓰는 거지요.”
“그런 후에 그 새끼에게 비싸게 팔아야지.”
최 상무가 걱정했다.
“이미 51%를 장악했는데 어떻게 더 비싸게 받아낼 수 있을까요?”
“난장판이 되면 백기사 두 놈이 계속 그 새끼에게 협조할 거 같아? 나한테 오는 비난이 그 백기사들에게 갈 수도 있는데?”
“JHC 테크나 길성에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군요.”
“그러니까 그 새끼는 우리 지분을 사야 할 거야.”
그는 그 계획이 실패해도 손해는 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설사 일이 우리 생각처럼 안 풀려도 상관없어. 우리가 저점에서 산 가격에 도로 팔 수는 있을 테니까.”
“그럼 우리는 최소한 손해는 안 보겠군요. 성공하면 대박이고요.”
“그러니까 이 방법으로 그 새끼 돈을 빼앗아와야겠다. 자금이 부족해져야 회사가 빨리 망하지.”
◈ ◈ ◈
박재곤이 언론사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국장. 반박 기사 내준다고 한 약속. 지켜야겠어.”
- 알겠습니다. 자료를 보내주시면 기사로 내겠습니다.
“자료 말고, 기자를 좀 보내줘.”
- 예?
“이번 사태는 스래곤이 누명을 쓴 거야. 그러니까 진실을 알고 싶으면 스래곤 임시 주총장에 기자를 보내라고.”
- 잠깐만요? 그게 누명이라고요?
“나한테 묻지 말고 기자를 보내서 확인해! 내가 그동안 김 국장에게 해준 게 있는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 알겠습니다. 기자를 보내겠습니다.
박재곤이 전화를 끊은 후에 숨을 몰아쉬었다.
“전에는 내가 말만 하면 기자를 보내던 새끼가…. 김 국장. 내가 재기하면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
그가 다른 언론사에도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전화할 곳이 많았다.
◈ ◈ ◈
스래곤 임시 주주총회가 시작됐다.
전체 주식의 51%는 선우현이 가진 주식과 우호지분이다. 나머지 49% 중 절반은 주총에 참석하지 않는 개인 지분이다.
결국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질 수 있는 지분은 선우현 쪽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이 상태로 대표이사 교체를 요구하면 표결은 볼 것도 없이 선우현이 이긴다.
제일 먼저 대표이사 교체 안건이 나왔다.
4%의 지분을 가진 주주가 마이크를 들고 화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새 사장이 스래곤을 싸게 인수하려고 일부러 주가를 폭락시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해명하십시오!”
지금 단상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선우현이 아니었다.
스래곤 비서실장 박서윤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전임 사장 소정훈의 주가조작 작전 사건의 내막은 기사로 충분히 보셨을 텐데요? 부족하던가요?”
“그러니까 그 작전을 일부러 터트렸다던데! 누군가 터트린 건 맞잖습니까!”
“그게 우리 측이라는 증거는 있으신가요?”
“정황이 그렇잖습니까! 정황이!”
박서윤은 주주들을 보며 선명한 발음으로 말했다.
“누군가 안 터트렸으면 작전주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은 다 망했을 겁니다. 그 후에 회사도 망하고 임직원들은 당연히 길바닥에 나앉았겠죠. 물론 모든 사람이 피해를 보는 건 아닙니다. 전임 사장은 떼돈을 벌었겠죠.”
“그렇게라도 돈을 벌어서 회사를 살리려고 했다던데!”
“개인투자자 피를 빨아서요? 그게 강도하고 뭐가 다른가요? 그 주장조차 사실이 아니겠지만요.”
“그럼 왜 주식을 다 사들인 겁니까! 회사를 찢어서 돈만 빼먹는 게 목표라던데! 그럼 임직원들이 길바닥에 나앉는 건 그대로잖습니까!”
박서윤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신임 사장님은 회사를 살릴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박서윤이 가늘고 긴 하얀 손가락을 들어 우아하게 손짓을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에 모였다. 그녀가 그 손으로 스크린을 가리켰다.
대기하던 직원이 스크린에 미리 준비한 영상 자료를 띄웠다. 영상에 뮐러 교수의 모습이 나왔다.
박서윤이 설명했다.
“독일에 계신 뮐러 교수입니다. 국내에서 개발된 소형 금속 제작기술의 추가 효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 그 제작기술은 나도 압니다. 그런데 추가 효과 연구? 그럼 완성된 게 아니잖습니까?”
“최근에 완성됐습니다. 이제 방사능 저항성이 높은 소형 부품을 다른 회사보다 더 저렴하게, 더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 방사능?”
“인공위성, 항공기, 원자력 발전소, 특수 로봇 등등, 응용 분야는 많습니다. JHC 테크와 길성에서 공동으로 분석했는데, 품질은 물론이고 가격 경쟁력도 우수합니다.”
“경쟁력이….”
화면이 그 기술을 설명하는 3D 그래픽 자료로 변했다.
“이 기술로 스래곤의 경쟁력을 대폭 높일 수 있습니다.”
“그, 그래서 그 기술을 사온다는 겁니까? 기술은 다른 회사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경쟁력이 원점으로….”
“스래곤은 가장 좋은 조건으로 기술을 받을 겁니다.”
“어떻게 그런단 말입니까?”
“원 기술 개발자가 신임 사장님이시고, 추가 효과인 방사능 저항성도 공동으로 연구했으니까요.”
“어? 어?”
화면 속 영상이 새로운 도표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기술 도표가 아니었다.
앞으로의 사업 계획과 예상 실적이 알아보기 쉽게 그래프로 표시되어 있었다.
“스래곤은 최근 사태로 반년 안에 부도가 날 위험헤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가가 폭락했다.
“이제 모든 건 변했습니다. 신임 사장님이 직접 나서셨습니다. 스래곤은 망하지 않습니다. 성장할 겁니다.”
오늘 주총에서 단단히 따지겠다고 온 5% 주주가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새 사장님께서 믿는 게 있으셨구나.”
그가 가진 4%의 주식은 지금 동전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떨어졌다. 그가 투자했을 때에 비하면 대폭락했다.
그런데 회사가 살아나고 스래곤이 잘나가게 되면, 그가 가진 주식은 폭등한다.
그의 목소리가 저절로 부드러워졌다.
“참 좋은 걸 믿으셨구나.”
바로 옆에 있던 2% 주주가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난 찬성! 신임 사장님을 환영합니다!”
“나도 찬성합니다!”
오늘 주총장에는 기자들도 여럿 참석했다. 박재곤이 힘을 써서 동원한 기자들이다.
기자들이 주주총회 현장의 바뀐 분위기를 사진으로 찍으며 말했다.
“나도 스래곤 주식을 좀 살까?”
“지금 당장 사고 싶은데, 오늘 주식 시장은 이미 끝났잖아.”
박서윤을 열심히 찍는 기자도 있었다.
“저 사람이 신임 사장의 비서실장이라던데, 난 처음에 연예인을 데려온 줄 알았어. 근데 포스가 장난이 아니네.”
◈ ◈ ◈
소정훈은 마스크와 가발, 안경을 쓰고 임시 주주총회에 와 있었다.
그는 주주총회가 난장판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일장 연설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선우현이 모든 것을 꾸몄다고 뒤집어씌울 계획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렀다. 당연히 망할 줄 알았던 회사에 살 기회가 생겼다. 전에는 이런 기회조차 없었다.
“이게 아닌데….”
소정훈이 직접 찾아가 설득한 주주들은 주총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는커녕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저러지 않기로 했는데, 화내기로 했는데….”
권 전무가 옆에서 말했다.
“주가가 오르겠다 싶으니까 좋아서 저러는 겁니다.”
“주가? 아…. 내 주식….”
“다 팔았잖습니까? 가지고 있었으면 많이 오를 텐데, 사장님이 팔라고 해서….”
최 상무가 옆에서 후회했다.
“팔라고 할 때 팔지 말걸.”
◈ ◈ ◈
박재곤은 상황을 파악하고 처음에는 말을 잊지 못했다.
“이게 뭐야….”
그러다가 화를 벌컥 냈다.
“나만 또 우스워졌잖아!”
그는 보도국장들을 움직여 기자들을 임시 주총 현장에 보내게 했다.
다만 기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쓸지 정해줄 수는 없었다. 요즘은 박재곤의 말이 언론사에 잘 안 먹혔다.
그래도 반박 기사 위주로 쓰겠다는 정도는 이야기가 됐다. 다만, 그러려면 소스가 있어야 한다.
박재곤은 주총 도중에 난장판이 벌어지면 재료로는 충분하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내가 이걸 준비하려고 보도국장에게 얼마나 전화를 했는데! 이걸 이렇게 망쳐!”
그는 보도국장 카드를 이번에 다 써버렸다.
만약 계획이 성공했으면 카드는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기삿거리를 줬으니 사라질 필요가 없다.
그런데 실패했다. 카드도 사라졌다. 이제 보도국장에게 반박 기사를 요구해도 반등이 시큰둥할 게 뻔하다.
박재곤이 창가에서 밖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아? 그 새끼들 다 죽여버리겠어!”
◈ ◈ ◈
김수선이 선우현에게 보고했다.
- 박재곤이 창가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화가 많이 났나 봅니다.
“물건도 좀 던지지 왜 소리만 지른다냐.”
- 그러게 말입니다.
◈ ◈ ◈
스래곤의 주주총회에서 일어난 일이 기사로 떴다. 신기술을 사용해 스래곤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기사였다.
스래곤 주식을 아직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기사를 보고 환호했다.
“으아아아! 가즈아!”
“전에 팔 걸 하고 후회할 때 안 팔길 잘했어!”
“당장 사야겠…. 장이 끝났구나.”
주주총회는 금요일 오후, 주식 거래가 끝난 후에 있었다. 당장 주식을 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난 월요일 장이 열리자마자 살 거야!”
◈ ◈ ◈
구하니는 선우현이 스래곤 주식을 샀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기사를 자주 검색했다.
“50억이지만 괜찮아. 선우현 씨는 주식이 망해도 떼먹지는 않….”
그녀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검색하다가 스래곤 관련 기사를 발견했다.
“어머. 이게 이렇게 되는 거였구나.”
그녀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휴우. 쫄딱 망하는 줄 알았네. 살았다.”
◈ ◈ ◈
남미연은 평소에도 경제 기사를 자주 본다. 그녀가 스래곤에 관한 기사를 보며 말했다.
“이러면 스래곤 주식 많이 오르겠다.”
그녀가 혀를 찼다.
“쳇. 우현 씨한테 평생 계속 선물 받으려고 했더니 실패했네.”
그녀가 두 팔을 쭉 펴 기지개를 켰다.
“그래도 돈 많이 벌겠다!”
그녀는 선우현이 스래곤 주식을 샀다는 말을 듣자마자 전 재산을 담보로 돈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그 돈으로 스래곤 주식을 사들였다.
소정훈과 권 전무, 최 상무가 팔아치운 주식은 선우현이 산 게 아니다. 그중 상당수는 남미연이 사들였다. 그래서 그 세 사람이 그렇게 팔아대도 주가가 내려가지 않았다.
“내가 돈 많이 벌겠다. 우현 씨랑 평생 친하게 지내야지.”
◈ ◈ ◈
신나리는 새로운 작전주에 들어갔다가 알바비에 용돈을 모은 것까지 탈탈 털렸다.
“내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옥상 오빠한테 치킨 얻어먹으면서 안 쓰고 모은 돈인데!”
그녀는 문득 선우현과 박서윤이 사라고 했던 주식이 생각나 스래곤을 검색해보았다.
그녀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사라고 할 때 살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