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85화 (185/281)

185. 점령 II

선우현이 스래곤의 이사들을 쭉 보며 말했다.

“나한테 비리 제보가 꽤 들어왔습니다. 여기 이사님 중에 몇 명은 아주 비리가 많더군요. 회사 내부에 싫어하는 사람이 참 많은가 봅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대상자들을 관찰해 그걸 알아내 제보한 건 그 회사 직원이 아니라 접니다.

“네가 한 것도 제보는 맞잖아.”

- 저와 엠투한테 관찰을 시킨 건 선장님인데요?

“길성과 JHC에서도 제보를 받았어.”

- 거기도 외부에서 정보를 수집한 거죠.

“이렇게 말해야 회사 내부에서 제보가 더 나왔나 싶어서 몸을 사리지.”

선우현이 바짝 긴장한 스래곤 이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지금 버텨봐야 임시 주총에서 어차피 날아갑니다.”

그가 두 손을 위로 들며 손가락을 폈다.

“그때는 여러분의 비리도 같이 터질 겁니다. 아주 펑펑.”

그가 최 상무와 권 전무, 윤 이사를 보며 말했다.

“아. 소정훈 사장처럼 선을 아주 세게 넘은 사람의 비리는,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터지긴 할 겁니다. 어디까지 터지냐의 문제지만.”

이사들이 웅성거렸다. 그 세 명 외에도 얼굴이 창백해지는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선우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사람의 절반은 주총 전에 짐 싸시지. 뭐, 억울하거나 자신 있는 사람은 주총 때까지 버텨보던가.”

절반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몇 사람의 표정이 변했다. 박 이사가 손을 들었다.

“이사급은 다 해고하는 게 아닙니까?”

“이사를 다 해고하면 일은 누가 합니까?”

스래곤이 멀쩡하게 돌아가려면 원래 임직원이 계속 일해야 한다.

어차피 이사 자리에 대신 집어넣을 사람도 없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의 손바닥만큼 좁은 인맥 때문이죠.

“내가 인맥은 넓은데 여기 안 맞는 거야.”

- 넓다는 기준이?

“다른 회사 대표나 가수, 배우를 이사로 넣을 수는 없잖아.”

박 이사가 물었다.

“혹시 대상자 선별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까?”

선우현이 권 전무나 최 상무, 윤 이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문제가 심각한 절반은 지금 나가고, 다른 분들은 계속 일하시죠.”

“그럼 일을 잘하면….”

“당연히 쭉 하셔야지.”

박 이사가 선우현의 좌우에 있는 최종훈 사장과 박길성 회장을 슬쩍 보며 물었다.

“비게 된 이사 자리는 JHC나 길성에서 사람이 오는 건지요?”

선우현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신임 이사는 거의 다 내부 승진입니다. 한 자리만 빼고.”

최종훈과 박길성은 백기사로 나서기 위해 주식을 매집했다. 그들은 스래곤을 인수할 생각도, 경영에 참여할 계획도 없다.

두 사람 다 선우현 개인을 보고 이번 일에 참여했다.

게다가 스래곤이 살아나면 지분을 매집한 두 회사도 이익을 크게 본다.

스래곤의 이사들은 자리가 걸린 상황이라 궁금한 게 많았다. 그렇다고 아무 질문이나 쏟아낼 수는 없다. 선우현이 이미 이사 절반을 날리겠다고 선언했다. 질문하기 무서웠다.

다른 이사가 조심스럽게 중요한 문제를 물었다.

“그럼 내부 승진 기준은….”

“당연히, 내가 알아서 판단할 겁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제가 대상자들을 열심히 보고는 있습니다. 이러다 관측 카메라 구동계가 또 고장 나겠습니다.

JHC 테크와 길성에서도 업계의 소문을 수집해 정보를 제공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누구를 남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선우현은 단순하게 정했다.

“수선아. 비리가 많은 놈과 인성이 나쁜 놈을 쳐낼 거야. 그러면 남은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겠지.”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는 김수선이 봐도 알 수 없지만, 대상자가 회사 밖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관찰하면 인성을 조금 엿볼 수는 있다.

- 선장님. 제 인성 분석이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난 널 믿어.”

- 믿지 마시라고요.

내부 승진 기준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인성으로 한 번 걸러내고, 일하는 거나 행동하는 걸 보고 다시 판단하자. 수선아. 네가 할 일이 많다.”

- 엠투도 일을 시켜야죠.

“당연히 엠투도 밥값을 해야지. 그 녀석이 많이 먹잖아. 비싼 것도 잘 먹고.”

- 금을 자주 먹죠.

“금값이 오르는데 말이야.”

- 금괴는 남은 거 많잖습니까? 팔 수도 없는 거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

선우현이 이사들에게 말했다.

“정식 사장 취임은 주총에서 하기로 하고, 그 전에 내가 사장실을 써야겠는데, 반대하는 분?”

소정훈이 소리를 질렀다.

“내가 반대한다!”

평소라면 당연히 따라올 호응이 없었다. 조용했다.

소정훈이 옆을 보았다. 이사들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뭐, 뭐야? 권 전무! 최 상무! 윤 이사! 왜 다들 가만히 있는 거야!”

윤 이사가 말렸다.

“저기, 사장님. 더 버티셔봐야 추해질 뿐이니까….”

“이 새끼가!”

“제가 사장님 새끼는 아니잖습니까?”

“뭐, 뭐야?”

선우현이 말했다.

“명단에 있는 이사님들은 짐 싸서 나가시죠. 정리할 시간은 줄 테니까, 업무 인수인계도 좀 하고.”

선우현과 같이 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나가야 할 사람의 명단을 이사들에게 나눠주었다.

선우현은 경고도 했다.

“이 시간 이후로 이메일 하나라도 삭제하면 제보받은 비리를 전부 경찰에 넘기겠습니다. 짐 쌀 때는 우리 쪽 사람이 같이 갈 겁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이사들의 인성은 조금 파악했어도, 비리는 그렇게 많이 수집하진 못했는데요.

“이 사람들은 그걸 모르잖아.”

선우현이 이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뭐 합니까? 우리 회의하니까 명단에 있는 사람들은 자리 좀 비켜달라니까. 아니면 뭐, 비리 제보받은 거 다 까야 나가실 건가?”

스래곤 이사의 절반이 회의실에서 쫓겨났다. 지은 죄가 꽤 있는 사람들인 데다가, 지금 버텨봤자 주총 날 어차피 쫓겨날 예정이라 버틸 수도 없었다.

선우현이 의장석에 앉았다. 최종훈과 박길성도 그 옆에 앉았다.

그들을 수행해 온 두 회사의 사람들은 대부분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미리 준비한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회의실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선우현이 말했다.

“자. 남은 분들은 일단 유임인데, 질문 있으신 분?”

조금 전에 질문했던 박 이사가 손을 들었다.

“우리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압니다. 주가조작을 하지 않았어도 1, 2년 안에 망할 거라는 평가였지요. 지금은 뭐, 전임 사장이 사고를 하도 크게 쳐서 1년은커녕 반년도 못 버틴다는 평가가 많고요.”

“그런 회사를 왜 인수하셨는지….”

“망하지 않게 하려고요.”

“그렇게 말하고 인수해서 회사를 팔아치우는 곳도 있던데….”

“인수합병 후 쪼개 파는 사냥꾼들이 그러긴 합니다만.”

선우현이 양옆을 가리켰다.

“나는 못 믿어도 이분들은 믿을 수 있을 텐데요. 이분들이 그런 일을 한 적은 없으니까.”

JHC 테크는 기술 전문 기업으로 유명한 곳이다. 길성도 인수합병 후 매각으로 돈을 버는 사냥꾼과는 거리가 먼 기업이다.

이사들의 표정이 좀 밝아졌다.

어쨌든 이 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이사 자리를 유지했다. 지금 빈자리도 외부가 아니라 내부 승진으로 채우겠다고 했다.

어차피 회사가 망하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사가 그만둬야 한다. 그런데 회사를 살리겠다면서 새로운 사장이 나타났다. 그것도 든든한 지원군을 둘이나 데려왔다.

희망을 얻은 다른 이사가 말했다.

“그럼 비서실은 어떻게…. 비서실장이나 비서 일부는 전임 사장의 최측근입니다.”

“아. 그 이야기를 안 했구나. 내부 승진에서 한 자리 정도는 뺀다고 했지요?”

선우현이 옆쪽에 서 있는 박서윤을 가리켰다.

“스래곤의 새 비서실장입니다.”

박서윤의 눈이 잠깐 커졌다가 바로 차분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지금 처음 들었다.

‘나를 왜….’

하지만 놀란 모습을 스래곤의 이사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모든 건 계획된 일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차분한 표정을 연기했다. 그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박길성이 선우현에게 몸을 기울여 작은 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박서윤 대리를?”

“잘 챙겨달라면서요.”

“그러긴 했지만, 그게 빼가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그리고 지금 직급은 대리인데.”

“스래곤 비서실은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해서요.”

“허…. 그렇게 믿어주는 건 진심으로 고맙군요.”

“그럼 이직 처리해주시는 거로?”

“겸직으로 합시다. 나도 박서윤 대리가 꼭 필요하니까.”

“서윤 씨가 동의하면, 좋죠. 양쪽 일을 다 하려면 서윤 씨가 좀 바빠지겠지만.”

반대편에서 최종훈도 몸을 기울여 말했다.

“길성에서는 대리인데 스래곤에서는 비서실장? 굉장히 특이한 신분이 되겠군요.”

“잘할 겁니다.”

“우리 김 비서는 안 됩니다.”

“찬혁 씨는 지금도 잘 부려먹고 있는데 굳이?”

“아. 그렇죠.”

박서윤은 차분한 얼굴로 계속 서 있었지만 속으로는 엄청나게 놀라는 중이다.

‘왜 나를….’

하지만 표정에는 놀람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차분한 모습을 계속 완벽하게 연기했다.

‘왜 나를 선우현 씨의 비서실장에….’

싫은 건 아니다.

‘혹시 서프라이즈인가? 나중에 이유를 물어봐야겠다.’

선우현이 이사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회사 상황에 대해 좀 이야기해봅시다. 나는 스래곤이 망하지 않게 할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어떻게 쓰느냐는 회사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까.”

◈          ◈          ◈

선우현은 스래곤의 비공식 사장이 됐다. 정식 사장 취임은 주총을 거친 후에 하기로 했다.

회사 운영은 이사들에게 맡겼다.

스래곤의 이사들은 소정훈 사장이 그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울 거란 건 알고 있었다. 수사를 받는 중인 데다가, 주가조작 기사가 워낙 크게 터져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장의 최측근인 권 전무나 최 상무가 바지사장 역할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날아갔다. 그것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날아갔다.

이사 두 명이 회사 밖에서 만나 말했다.

“주식 과반을 매집했다길래 권 전무나 최 상무를 주총에서 날릴 줄 알았는데….”

“그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이 쳐들어와서 비리를 다 알고 있다고 경고했죠. 반항조차 못 하게.”

“증거가 나오면 체포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반항하나.”

“새 사장은 무서운 사람이네요.”

“사장님이라고 하자. 우리 대화를 듣고 있을지도 몰라.”

“에이. 그건 불가능하죠. 저기 저 개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면 모를까.”

그들의 옆에서 하얀 개처럼 생긴 엠투가 하품을 했다.

이사의 절반이 날아갔다. 그 빈자리는 대부분 내부 승진으로 채우기로 했다. 일단 인성에 큰 문제가 없고 실력이 좋다고 알려진 두 명이 먼저 승진했다. 그중 한 명은 연구소 소속인 김 이사였다.

그들이 회사 옥상에서 커피를 마셨다.

장 이사가 한숨을 쉬었다.

“승진한 게 잘한 건지 모르겠다. 이사가 됐으니까 언제든지 잘릴 수 있잖아.”

김 이사가 대답했다.

“어차피 예전 사장 체제였으면 조만간 회사 망하고 우리 다 길바닥에 나앉았어야 했어.”

“그건 그렇지.”

“승진했으니까 회사가 망하더라도 그때까지는 연봉을 더 받을 수 있잖아. 그리고 말이야.”

김 이사가 은근히 기대했다.

“JHC 테크와 길성이 괜히 투자했겠어? 회사를 살릴 방법이 있으니까 투자한 거 아니겠어?”

“그 회사들은 기업사냥꾼은 아니니까 그렇기는 한데….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살리겠다는 거지?”

◈          ◈          ◈

스래곤 사장 소정훈이 박재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재곤 의원이 짜증을 냈다.

- 소 사장. 미쳤어요? 지금 나한테 전화하면 어쩌자는 거야!

“박 의원님. 이거 대포폰입니다.”

- 이 시기에는 누가 대포폰으로 나한테 전화한 것도 문제야!

“어차피 이번 사태 해결 못 하면 우린 다 끝장입니다.”

- 방법이 없잖아! 다들 나를 슬금슬금 피한다고!

“저한테 방법이 있습니다.”

화를 내던 박재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 역시 소 사장은 유능하군요. 믿고 있었습니다. 방법이 뭡니까?

“이건 전부 스래곤을 집어삼키려는 세력이 꾸민 음모입니다.”

- 뭐요? 아니, 지금 겨우 그런 소리를….

소정훈이 다급히 말했다.

“진짜입니다! 이번 일이 터지자마자 이상한 놈이 회사 두 곳을 끌어들여 주식을 쓸어담았습니다. 아직 임시 주총도 하지 않았는데 쳐들어와서 나를 회사에서 쫓아냈단 말입니다!”

박재곤이 관심을 보였다.

- 그래요? 수상하긴 하군요.

“그러니까 이걸 대형 이슈로 만드는 겁니다. 곧 대표이사 교체를 위해 임시 주총이 열립니다. 그때가 기회입니다.”

- 그런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박재곤이 입맛을 다셨다.

- 논점을 흐리게 하고 본질을 호도할 수는 있겠군요.

“우리를 향한 비난도 어느 정도 희석할 수 있습니다.”

- 이슈 물타기라…. 그래. 이거라도 해봐야지요.

“제가 주주총회를 현장에서 난장판으로 만들겠습니다. 그 판을 의원님이 키워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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