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83화 (183/281)

183. 바닥

박재곤 의원이 휴대폰에 대고 소리쳤다.

“박 국장! 그거 다 오해라니까! 내가 해명자료를 준비해서 보내줄 테니까, 그때까지만 기사 좀 내려!”

- 의원님. 이번 사건은 기자들이 제 말을 안 듣습니다.

“기자가 보도국장의 말을 안 들으면 누구 말을 듣는다는 거야!”

- 오경훈 기자가 납치돼서 살해당하기 직전에 구출됐다는 게 알려졌잖습니까?

“어? 오경훈이라니?”

- 스래곤 주가조작을 취재하려다 납치됐던 오경훈 기자 말입니다. 제가 기자들에게 기사 내리라고 하면 저만 욕먹습니다.

박재곤은 당황했다. 그는 지금 기자회견장에서 일어난 일을 덮으려고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자 살인 미수 사건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난 그런 거 모르….”

문득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는 며칠 전에 주가조작 작전팀 사무실 앞에 나타난 기자를 잡아서 가둬놨다는 보고를 들었다.

‘아. 그 기자…. 일이 다 끝나면 돈을 먹여서 매수하려던….’

그때는 아무리 심지가 굳은 기자라도 매수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이 생길 줄 알았다. 만약 매수가 안 되면 덕구파에게 알아서 입을 막으라고 할 생각이었다.

“아니야! 나는 모르는 일이야! 진짜 모르는 일이라고! 맹세할 수도 있어!”

- 죄송합니다. 해명자료를 보내주시면 그것도 기사로 쓰라고 지시하겠습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그게 한계입니다.

전화가 뚝 끊어졌다.

박재곤이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씨발! 그동안 내가 이 새끼한테 챙겨준 게 얼만데 어떻게 이렇게 안면을 바꿔!”

박재곤이 화를 내면서 대포폰을 꺼내 스래곤 사장 소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일단 상황을 확인하려고 했다.

“소 사장. 영등포 팀 어떻게 됐어? 설마 아니지? 들킨 거 아니지? 실수로 기자만 놓친 거지?”

- 의원님. 그 팀은 경찰에 모두 체포됐습니다. 이미 인터넷에 속보까지 떴는데 모르셨습니까?

“뭐? 감시팀은 뭘 하고 있었는데!”

- 감시팀까지 다 당했습니다. 신고는 가둬뒀던 기자가 했습니다.

“제, 젠장. 언제….”

- 의원님이 기자회견을 하던 바로 그때 작전팀이 당했습니다.

“하필 그때?”

소정훈이 사정했다.

- 박 의원님. 살려주십쇼. 이대로면 우린 다 끝장입니다.

“제, 젠장. 일단 끊어!”

박재곤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씨발. 일부러 내가 기자회견을 할 때를 노린 거야. 누구야? 누가 설계한 거야!”

그는 조금 전에 소파에 집어 던진 휴대폰을 보았다. 소파 등받이 사이에 처박혀 있었다.

박재곤이 그 휴대폰을 도로 꺼내 다른 언론사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이번에는 찾아가서 대놓고 말하자. 전화로 하니까 약발이…”

신호가 가는 소리가 나다가, 뚝 끊어졌다.

“어? 이 새끼…. 아예 전화를 안 받아?”

상황이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국회의원에 네 번이나 당선될 동안 쌓은 인맥과 권력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개새끼들. 내가 그동안 챙겨준 게 얼마나 많은데.”

◈          ◈          ◈

전호 백화점 사장 전상미가 기사가 뜨는 걸 보며 말했다.

“난 정말 화끈한 여자라니까. 기사 쏟아지는 것 좀 봐.”

그녀는 기자 인맥을 총동원해 이번 전투를 지원했다.

그녀의 최측근인 이 비서가 말했다.

“사장님. 박재곤이 곧 우리 호텔의 개입을 눈치챌 거예요.”

“어차피 박재곤은 우리의 적이야. 전준형의 빽인 데다가, 저번에 우리를 납치했던 놈들도 박재곤과 연결되어 있다잖아. 그러니 칠 수 있을 때 확실히 쳐서 날려버려야 해.”

전상미가 납치될 때 이 비서도 같이 납치됐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예 목을 쳐야죠.”

“대신에 우리 타겟팅은 박재곤 하나야. 다른 정치인은 알아도 모른 척 놔둬야지. 우리는 적이 아니면 공격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알려야 해.”

이 비서가 각오를 다졌다.

“박재곤이 망하는 날까지 열심히 일할게요.”

“그런데….”

전상미가 오경훈 기자가 쓴 기사를 보며 말했다.

“이건 나도 몰랐던 건데….”

◈          ◈          ◈

스래곤의 주가조작 작전에 박재곤이 연루됐다는 것이 기자회견 도중에 밝혀졌다.

그런데 그 기자회견장에는 정부의 국장급 공무원들이 있었다.

정부에서 서둘러 발표했다.

[달기지 건설계획은, 국회의 요청을 받은 관련 부서에서 개념 연구 차원에서 협조한 것뿐입니다. 정부는 실질적인 달기지 건설계획을 세운 적이 없습니다.]

박재곤의 소속 정당 대변인도 곧바로 기자들을 불러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그런 제안이 있어 논의는 했으나, 진행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행할 계획도 없습니다. 기술적으로 아직은 너무 이른 이야기입니다.]

인터넷에는 박재곤을 욕하거나 비웃는 글이 쏟아졌다.

◈          ◈          ◈

선우현이 전상미 사장을 만났다.

“상미 씨가 일을 잘했더군요.”

“박재곤이 기자회견으로 달기지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맞불을 놓은 건 내가 한 거예요. 그런데 그 후에는….”

오경훈이 직접 쓴 납치 기사 속보가 올라왔다.

“기자를 납치해서 죽이려고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기자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어요. 그러면서 박재곤 쪽에서 올라오던 반박기사가 싹 사라졌죠.”

“찾아봐도 나오는 게 없긴 하더군요.”

“이번에는 자기한테 불똥이 튈까 봐 다들 몸을 사렸어요. 그래서 지금 박재곤 쪽 반박기사는 완전히 묻혔어요. 박재곤의 권력도 이번에는 안 통해요.”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오경훈 기자를 구출한 사람, 선우현 씨죠?”

선우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공식적으로는 인정 안 할 겁니다.”

“혹시 이련 효과까지 예상하고 구한 거예요?”

“인정 안 할 거라니까요.”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나중에 내가 또 납치돼도 구해줄 거죠? 난 그냥 선우현 씨만 믿고 있으면 되죠?”

“그냥 경호원을 더 고용해요. 돈도 많은 사람이 날로 먹으려고 하네.”

“쳇. 로망이 없어. 내 말뜻은….”

“난 갑니다. 일이 있어서.”

◈          ◈          ◈

스래곤은 예전부터 주가가 계속 하락했다. 경쟁에서 밀려 몇 년 내에 파산할 수도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래서 스래곤 사장 소정훈은 주가조작 작전을 통해 주가를 수십 배 띄우고 한 방에 털어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주가조작 작전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기자회견이 시작되면서 잠깐 꿈틀했던 주가는 반박기사가 쏟아지면서 바로 내리꽂혔다.

오경훈 기자가 납치됐다가 풀려나면서 쓴 기사는 불난 집에 아예 기름을 들이붓는 역할을 했다.

결국 스래곤의 주가는 대폭락했다. 시장에 물량이 쏟아졌다.

선우현이 말했다.

“이제 사야겠네.”

최종훈이 물었다.

“주가는 더 기다리면 더 떨어질 겁니다. 아주 휴짓조각이 됐을 때 사면 더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스래곤 사장의 주가조작이 밝혀져서 회사가 상폐될 수도 있거든요.”

“수익률을 높이는 게 목표가 아니라, 더 많은 주식을 확보하는 게 목적이라서요.”

“아. 하긴 그렇죠. 지금 이 쏟아지는 물량을 적당히 받기만 해도 뭐….”

“최 사장님도 시작하시죠. 아. 이런 거 잘하시지요?”

“우리 김 비서가 잘합니다.”

옆에서 활토 주스를 얻어먹던 김찬혁이 깜짝 놀라 물었다.

“예? 제가요?”

“너 차에서 혼자 쉴 때 주식 잘하더라.”

“아니, 저야 월급 모아서 주식 조금 하던 겁니다. 그런데 이건 금액의 단위가 완전히 다른데요? 0이 몇 개나 더 있는데요?”

“괜찮아. 그냥 쏟아지는 물량을 받아먹기만 하면 돼.”

백기사 역할은 두 곳이 맡았다. 하나는 JHC 테크 사장 최종훈이고, 다른 하나는 길성 기업의 박길성 회장이다.

선우현이 말했다.

“박 회장님께는 내가 연락하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시다. 시장에 나온 스래곤 주식을 다 쓸어담는 게 목표입니다.”

“찬혁아. 뭐해? 시작하자고 하시잖아.”

옆에서 김찬혁이 조금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이거…. 혹시 불법 아닐까요?”

선우현이 대답했다.

“작전 세력의 음모를 밝혀서 수많은 개미가 한강에 가는 걸 막았는데, 그게 죄는 아니지요.”

“그거야 당연하지만, 그 결과로 폭락한 주식을 매집하면….”

“뭐, 굳이 걸려고 하면 상황이 복잡해지긴 하겠군요. 난 하나도 인정 안 할 거지만. 그리고.”

선우현이 하늘을 힐끗 보았다.

“내가 지상의 법을 다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서.”

김수선이 독촉했다.

- 오늘은 선체에 아예 구멍이 났습니다! 지구의 법이고 자시고 빨리 인수해서 뭐라도 하세요! 이러다 선체가 쪼개져서 추락하면, 선장님 꿈에 나타날 테다!

◈          ◈          ◈

선우현은 옥탑방 옥상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스래곤의 주식을 매집했다. 주식 시장에 나오는 물량을 다 사들였더니 폭락하던 주가가 더 내려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주가가 올라가지도 않았다. 선우현이 비싼 가격에 사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주가는 저점에서 횡보했다. 그러다 수사가 진행되고 새로운 소식이 기사로 나오면 또 매물이 쏟아졌다.

그런데 주가는 그럴 때마다 출렁거리기는 해도 어느 선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인터넷 주식 게시판에 그 현상에 관한 이야기가 올라왔다.

- 제가 스래곤의 거래 그래프를 분석했는데요. 혹시 스래곤 주식을 누가 매집하는 거 아닐까요?

- 왜 그러겠습니까?

- 인수하려고?

- 스래곤은 그럴 가치가 없습니다. 이미 기술 경쟁력이나 단가 싸움에서 밀렸는데, 이번엔 주가조작에 기자 납치사건까지 터졌습니다. 사장의 횡령도 있고요. 이젠 회사가 언제 망하느냐만 남았습니다.

- 물론 그 전에 상장폐지부터 당하겠죠.

스래곤의 전망은 굉장히 어두웠다. 그런데도 주식 매집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 난 버텨보려고요.

- 나도.

선우현이 최종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재 매입가에서 10%만 더 낮춥시다.”

- 확실히 좀 비싸게 사주긴 했습니다.

사 줄 사람은 선우현뿐인데 팔려는 사람은 넘쳐났다. 바닥을 친 줄 알았던 주가가 순식간에 10%가 더 빠졌다.

게시판에 버티겠다고 글을 쓴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 아까 버티겠다고 했을 때, 그때 팔걸!

- 님은 내일도 똑같은 소리를 또 할 듯.

다시 물량이 쏟아졌다.

개인만이 아니라 기관도 물량을 대량으로 팔아치우고 손절했다.

◈          ◈          ◈

선우현은 옥탑방 옥상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개인용 증권거래 프로그램을 띄워놓았다. 그러다 간간이 마우스를 클릭해 물량을 사들이곤 했다.

신나리가 옥상에 올라왔다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선우현을 보았다.

“옥상 오빠. 설마 일해요?”

“설마가 무슨 뜻이냐?”

“맨날 놀던 사람이니까 그러죠. 뭐 봐요?”

그녀가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증권 HTS 소프트웨어에 주식 차트가 떠 있었다.

“어? 설마 주식 해요?”

“어.”

그녀가 화면에 뜬 회사 이름을 알아보았다.

“아. 스래곤. 여기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온 거기잖아요.”

“네가 뉴스를 다 보다니.”

“요즘엔 경제뉴스만 좀 봐요. 근데 이거 천 원도 안 하는 동전주잖아요.”

“많이 싸졌지?”

“알바 해서 번 돈을 여기에 다 쏟아부은 거예요? 옥상 오빠는 이제 보니까 야수의 심장을 가졌네요. 주식은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선우현이 신나리를 돌아보았다.

“응? 너 또 주식 하냐?”

신나리가 큰소리쳤다.

“당연하죠.”

“어쩐지 네가 뉴스를 다 보더라.”

“주식으로 돈 많이 벌어서 이 건물 확 사버릴 거예요.”

“여긴 안 팔아.”

“팔지 안 팔지는 건물주가 정하겠죠.”

선우현이 건물주다.

“나리야. 너 전에도 주식 하다 월세 보증금까지 다 날렸다고 했잖아.”

“작전주 샀다가 대표이사 횡령으로 회사가 상폐되는 바람에 제 보증금은 휴지가 됐죠.”

“그때는 동아리 선배가 잘생겨서 믿고 샀다더니, 이번에는 다른 잘생긴 놈이 뭔가 추천했냐?”

“앗! 어떻게 알았지?”

선우현이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그거 다 손절하고 이거 사라. 그러면 그때 날린 손실을 복구할 수 있다.”

신나리가 손을 흔들었다.

“에이. 이젠 동전주는 안 산다니까요. 그리고 스래곤은 작전 크게 들어가려다가 터져나간 주식이잖아요. 안 사요. 안 사.”

“싫으면 말고. 난 알려줬다.”

박서윤이 옥상에 올라왔다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나리야. 스래곤 주식 사.”

“앗! 설마 언니도 스래곤을 샀어요?”

“당연하지.”

“왜요? 무슨 좋은 호재가 있어요?”

“우현 씨가 샀잖아. 그것보다 더 확실한 호재가 어디 있어? 그래서 나도 샀어.”

신나리가 호들갑을 떨며 말렸다.

“서윤 언니. 옥상 오빠랑 같이 망하려고 그래요? 빨리 빼요. 언니라도 살아야죠.”

박서윤이 고개를 흔들었다.

“안 뺄 거야. 나는 이미 적금까지 다 깨서 전부 넣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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