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십자포화
박재곤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나왔다.
- 내가 달기지 선행연구 계획을 발표하면, 바람은 누가 잡는 겁니까?
스래곤 사장 소정훈이 대답했다.
- 기자를 섭외해뒀습니다. 그 기자가 스래곤을 언급할 겁니다.
이미 오늘 기자회견에 온 기자 중 한 명이 선행연구 조건에 스래곤이 제일 유리하다고 발언했다.
- 나야 기술 위주로 선정하겠다고 딱 잡아떼면 되겠고.
- 선행연구 기술과 장비제작을 우리 회사에 딱 맞춰 세팅했으니까, 결국 우리 회사가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된다는 걸 다들 금방 눈치챌 겁니다. 그러라고 바람잡이를 쓰는 거니까요.
스래곤은 지난번 인수합병 이후에 회사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
박재곤이 말했다.
- 스래곤의 저번에 장비제작 회사를 인수했을 때는 실패라는 말이 많았지요. 이제는 소 사장님의 인수 판단을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하겠군요.
소정훈이 웃음기 섞인 소리로 말했다.
- 그게 다 주가 폭등의 재료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박재곤이 창백한 얼굴로 기자를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건 다 모함이다! 저 목소리는 조작이야! 내가 말한 게 아니란 말이다!”
박재곤이 소리 지른 것과 똑같은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 소 사장님은 부자가 되겠어요. 이번 일만 성공하면 수천억은 챙길 수 있으니까.
- 그게 어디 다 제 돈인가요. 박 의원님하고 잘 나눠야죠. 하하하.
박재곤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내 목소리가 아니라고!”
- 우리 대박 납시다. 그러니까 우리 몫이 한 1조가 될 때까지 주가를 띄워서, 오천억씩 나눕시다.
- 작전에 동원한 곳들도 돈을 나눠줘야지요. 덕구파만 해도 수백억은 떼줘야 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욕심 부리지 말고 사천억씩만 하시죠.
녹음파일 속 박재곤이 웃었다.
- 사천억 원. 거 참 울림이 좋은 소리군요. 하하하.
녹음파일은 거기서 끝났다. 그런 파일이 더 있었지만 기자는 하나만 재생했다.
기자가 말했다.
“의원님께서 방금 어느 한 부분만 자르지 말라고 하셔서, 파일 하나를 다 재생했습니다. 이런 파일이 인터넷에 여러 개 올라왔습니다.”
박재곤의 눈동자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상황이 그의 예상보다 한참 더 심각했다.
박재곤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생방송이 아니야. 한두 번 덮어본 거 아니잖아? 이것도 충분히 수습할 수 있어. 덮을 시간이 있을 거야.’
◈ ◈ ◈
박재곤이 달 광개토 기지 건설계획을 발표하고 그 기사가 속보로 떴다. 주식 게시판이 곧바로 반응했다. 작전주를 전문으로 다루는 폐쇄 게시판이나 단톡방 등도 움직였다.
- 달기지 테마주가 어디죠?
- 항공우주 개발 쪽이 아닐까요?
- 스래곤은 어때요?
- 스래곤은 이제 맛이 갔으니까 빼시죠. 달기지 대장주를 골라야 크게 먹습니다.
바람잡이 기자가 스래곤을 언급했다는 소식도 소식이 속보로 떴다.
그 즉시 작전주 전문 게시판에 확신에 찬 글이 속속 올라왔다.
- 이 테마의 대장주는 스래곤이다!
- 스래곤을 당장 사야 합니다!
실제로 스래곤의 주식을 사들인 사람도 몇 명 있었다.
그런데 곧바로 박재곤과 스래곤 연루설 속보가 쏟아졌다. 어쩌다 한두 개 나온 것도 아니고 기사가 물량전이라도 하듯이 쏟아졌다.
스래곤의 주식을 사려던 사람들이 그 속보를 보고 당황했다.
- 어?
- 이 산이 아닌가?
박재곤과 스래곤 사장 소정훈의 대화를 녹음한 파일들도 인터넷에 올라왔다. 짧은 건 1분이면 들을 수 있었다.
그걸 보고도 주식을 사는 사람이 있기는 있었다.
- 그러니까 스래곤으로 사장이 직접 작전 들어갔다는 거잖아! 가즈아!
하지만 대부분은 주식을 사려던 손을 키보드에서 뗐다.
주가조작 기사가 계속 쏟아져나왔다. 스래곤을 사려던 사람들이 그 기사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 와. 여러분. 저 방금 삼도천 보고 온 듯.
- 삼도천이 아니라 한강을 봤겠지.
- 스래곤에 들어갔으면 우리 다 한강에서 정모 했을 듯.
- 하여간 죽다 살아났습니다.
◈ ◈ ◈
선우현이 건물 복도에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박재곤과 스래곤의 주가조작 작전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 수많은 기사가 거의 동시에 쏟아지려면 누군가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움직여야 한다.
“상미 씨가 힘을 확실히 썼네.”
박재곤과 소정훈의 대화를 녹음한 건 엠투다. 엠투가 초소형 디지털 녹음기를 입에 물고 가서 두 사람의 근처 풀 사이에 숨겨두었다.
그 녹음파일을 여러 개로 나눠서 인터넷에 올린 사람은 최종훈의 비서 김찬혁이다.
그리고 그 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되자마자 기자들에게 뿌리는 일은 전호 호텔 사장 전상미가 맡았다.
전상미는 전호 그룹 경영권 전쟁을 치르면서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면서 확보한 기자 인맥을 이번 일에 사용했다.
기자들은 좋은 소재를 받자마자 신나서 기사로 올렸다. 어차피 자기가 안 올려도 남이 올릴 걸 알기 때문에 앞다투어 올렸다.
그래서 기사가 동시에 쏟아졌다. 박재곤이나 스래곤에서 작업한 기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양이었다.
선우현이 스마트폰으로 스래곤 주가를 확인했다. 박재곤이 기자회견을 할 때 위로 올라가려고 꿈틀댔던 주가가 아래로 처박혔다.
선우현이 그 복도의 다른 사무실 앞으로 걸어갔다. 엠투가 문앞에 서 있었다.
“여기 맞아?”
“멍!”
덕구파 조 과장은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선우현이 그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경훈 기자가 손이 묶인 채로 짜장면과 탕수육을 노려보고 있었다. 선우현이 예상한 모습과 좀 달랐다.
“음?”
오경훈이 눈에 핏발이 선 채로 말했다.
“이거 먹으면 나 죽이려는 거지? 이거 최후의 만찬이지? 안 먹어! 안 먹는다고!”
“짜장면 다 불었네.”
“불어도 안 먹는다고! 난 안 죽어! 살 거야! 살고 싶어! 살려주세요! 제발! 뭐든지 다 할게요! 난 집에 처자식이….”
“살려주려고 왔습니다만?”
“네?”
“구하러 왔다고요.”
오경훈이 선우현의 얼굴을 확인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체형이나 헤어스타일, 눈빛이 덕구파 조직원들과 완전히 달랐다.
“지, 진짜요?”
“방금 싸우는 소리 못 들었나?”
“아! 그 소리가 그럼…. 사, 살았다!”
오경훈이 일어나려고 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후들거렸지만 일어날 수는 있었다.
“그럼 저쪽에 있는 놈들은….”
“다 잡았습니다.”
“크흐흑. 고맙습니다!”
“뭘 그 정도로. 나도 시킬 게 있어서 구한 건데.”
뒷말은 작게 말해서 오경훈에게 들리지 않았다.
선우현이 말했다.
“저쪽 사무실로 갑시다. 가서 기사 써야지요.”
“네?”
“기자니까 기사를 써야지요.”
“자, 잠깐만요. 시간을 조금만 주세요!”
“급하게 할 일이라도?”
오경훈이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짜장면만 좀 먹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저건 최후의 만찬이라서 안 먹는다더니?”
“지난 며칠간 하루에 컵라면 하나로 버텼습니다. 저거 진짜 먹고 싶었….”
선우현이 오경훈의 묶인 손을 풀어주며 말했다.
“기사 쓰면서 먹어요.”
오경훈이 얼른 짜장면 그릇을 집었다. 선우현은 그 옆에 탕수육을 챙겼다. 소스는 이미 부어진 상태였다.
두 사람은 주가조작 작전팀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경훈은 짜장면을 먹으면서 사무실 안쪽을 확인했어.
“와. 진짜 다 잡았어. 덕구파 놈들은 박살이 났고, 주가조작 하려던 놈들도 기절했…. 어?”
그는 덕구파 놈들의 구겨진 상태와 부서진 내부 집기들을 보며 기시감을 느꼈다. 그가 사무실 내부를 다시 확인했다. 서 있는 건 선우현뿐이었다.
“혹시 저놈들을 선생님 혼자서 다 때려잡으셨습니까?”
“그렇죠.”
“이런 일이 가능한 고수는….”
강력사건 전문 기자 오경훈은 요즘 들어 이런 사건을 여러 번 보았다.
“혹시 덕구파 칼잡이 조성철을 선생님이….”
“음?”
“오민하 납치 사건 때도 선생님이….”
“뭐지? 당신 그걸 어떻게 알아?”
오경훈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팬입니다!”
“응?”
오경훈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 진짜 선생님 사건들을 취재하면서 감탄 많이 했습니다! 꼭 뵙고 싶었습니다! 인터뷰도 따고 싶….”
“괜히 구해줬나?”
“아, 아닙니다! 인터뷰는 안 따겠습니다!”
“내 기사는 쓰지 맙시다.”
“네? 아, 네! 조심하겠습니다.”
“그것보다는 지금 오 기자님이 당한 일을 기사로 써야지요.”
오경훈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죠!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쓰겠습니다!”
선우현이 스마트폰으로 지금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여주었다. 박재곤과 스래곤 사장, 그리고 덕구파 이야기도 있었다.
“이미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데?”
“아! 터졌군요!”
“여기에 불을 화끈하게 지릅시다.”
“예?”
“박재곤이 인맥과 권력을 총동원해서 이거 덮으려고 할 게 뻔하잖습니까?”
오경훈이 소리를 질렀다.
“제가 막겠습니다!”
“그러려면 지금 당장 기사를 써야겠네요.”
“당연하지요! 제 노트북, 노트북이….”
“그거 어디 있는지 모르면 저놈들 컴퓨터라도 쓰던가.”
사무실에는 주가조작팀이 사용하는 컴퓨터가 여러 대 있었다. 그중 몇 대는 싸울 때 부서졌지만, 멀쩡한 것도 있었다.
오경훈이 즉시 그 자리에 앉았다. 그는 그 컴퓨터로 회사의 송고 시스템에 접속해 기사를 썼다.
[나는 스래곤 주가조작 작전 조직을 조사하다 납치됐다. 나는 방금 구출됐다. 나는 지금 납치된 바로 그 장소에서, 주가조작용 컴퓨터로 이 기사를 쓰고 있다.]
그는 일단 거기까지 쓰고 1보를 날렸다.
“일단 이슈를 끌어놓고!”
그는 짜장면을 한 젓가락 더 먹고 탕수육도 집어먹은 후에 그 기사에 다시 내용을 추가했다.
[나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했다. 범인들은 그런 나를 죽여 입을 막으려고 납치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괴롭혔다.]
선우현이 옆에서 말했다.
“그런데 가족에게 연락 안 합니까? 걱정 많이 할 텐데.”
“제가 총각이라서요. 부모님은 따로 사셔서 며칠 연락 안 해도 그런가 보다 하실 겁니다.”
“응? 처자식이 있다더니?”
“그거야 살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뱉은 건데요.”
“누구 걱정할 사람이라든지?”
“여자친구도 없고요. 회사에서도 며칠 취재 나갔나 보다 생각할 겁니다. 가끔 그랬거든요. 그래서 아무도 걱정 안 합니다.”
“어…. 기사 계속 써요.”
오경훈이 2보도 보내고 나서 계속 기사를 썼다.
[작전 세력은 주가조작이 끝나면 나를 죽일 계획이었다. 두려웠다. 그런 나를 버티게 해준 건, 사명감이다. 나는 기자다. 나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선우현이 그걸 보며 말했다.
“조금 전에 누가 살려만 주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하던데.”
“제가요? 아니요. 잘못 들으신 겁니다.”
“뭐, 그렇다고 칩시다.”
오경훈이 기사를 조금 더 써서 올렸다. 속보라서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기사가 올라갔다.
그가 짜장면과 탕수육을 허겁지겁 먹으며 말했다.
“일단 시작은 했습니다. 후속 기사는 계속 쓰겠습니다.”
“그렇게 쓰면, 박재곤이 언론사에 압력을 가해 덮으려고 할 때 기자들이 반발하겠습니까?”
“물론이죠. 이걸 그냥 넘어가면 다른 기자들의 안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이제 이건 못 덮습니다.”
“그럼 기사 계속 써요. 경찰에 신고도 하고.”
“네? 신고를 제가….”
“내가 여기 있으면 곤란해서.”
“아! 그렇…. 저기….”
오경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알기로는, 경찰에서는 선생님이 누구신지 눈치채고 있던데….”
“증거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지요.”
“역시 그래서 그 사건들에서는 사라지셨…. 알겠습니다! 제가 신고하고, 이 사건을 기사로도 쓰고 다 하겠습니다!”
“난 빼고.”
“네! 선생님은 빼겠습니다!”
선우현이 엠투를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오경훈이 먼저 경찰에 신고했다. 기자가 며칠 동안 납치됐다는 것도 알리고, 범인들은 모두 제압됐다는 것도 알렸다.
그리고 이 사건이, 지금 인터넷에 난리가 난 스래곤 주가조작 사건과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렸다.
그는 경찰에 신고한 후에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부장이 소리를 질렀다.
- 야! 오 기자! 이 기사 뭐야! 이거 다 진짜야?
“당연히 진짜지! 죽다 살아났습니다! 이거 내거니까, 서포트 확실히 해줘요! 나 지금 현장에서 기사 쓰고 있습니다!”
- 지금 간다! 거기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