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디데이 II
덕구파 조 과장이 소리를 지르며 선우현을 향해 칼을 내질렀다.
“조져!”
조직원 두 명도 양옆에서 선우현을 향해 달려들며 잭나이프를 휘둘렀다.
그 사무실은 넓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운동장만 한 건 아니다. 갑자기 세 명이 세 방향에서 달려들어 찌르면 피할 공간이 별로 없다.
선우현은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는 앞으로 성큼 걸으며 조 과장의 공격을 옆으로 쳐냈다.
동시에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다. 손바닥이 조 과장의 두꺼운 몸통에 푹 파고들었다. 살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깊게 남았다.
조 과장의 커다란 덩치가 뒤로 쭉 밀려났다. 몸의 중심이 먼저 급격히 밀려나면서 허리가 접혔다.
“케엑!”
조 과장이 책상에 처박혔다. 책상의 얇은 철판이 구겨지고 그 위에 있던 물건들이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날아갔다.
선우현이 앞으로 이동해 조 과장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양옆에서 들어오던 칼날은 목표를 잃었다.
그들은 곧바로 선우현을 향해 몸을 돌리며 다시 공격했다.
양쪽 뒤에서 칼이 다시 들어왔다.
선우현이 뒤로 돌아서며 오른쪽 놈의 팔을 잡았다. 잡은 팔을 비틀어 꺾으며 오른쪽으로 쭉 밀어 붙었다. 적의 팔이 그 압도적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으아악!”
오른쪽으로 밀어붙인 만큼 왼쪽 놈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왼쪽 놈이 허겁지겁 뒤쫓아 달려들며 칼을 휘둘렀다.
선우현이 오른쪽 놈의 머리를 손으로 붙잡아 아래로 처박으며 왼쪽을 향해 발을 들었다. 발끝이 채찍처럼 날아가 적의 오른팔을 걷어찼다.
적의 팔이 뚝 부러졌다. 그놈도 비명을 질렀다.
“끄아악!”
손에 쥔 칼은 천장으로 날아가 박혔다.
선우현이 오른쪽 덩치를 번쩍 들었다. 140kg짜리 덩치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그가 그놈을 왼쪽으로 던졌다.
140kg과 130kg이 근거리에서 충돌했다.
“꾸에엑!”
두 놈은 팔다리가 꺾이며 한 덩어리로 뭉쳐져 벽이 있는 곳까지 밀려가 처박혔다. 270kg짜리 충격을 받은 건물이 진동했다. 그 진동은 주가조작팀 네 명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주가조작팀 네 명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이게 무슨….”
“사람이 어떻게 저 덩치를 들어서 던져….”
선우현이 덕구파 조 과장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이것들이 초밥 먹고 살만 찌웠나. 왜 이리 무거워?”
조 과장이 부서진 책상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는 선우현에게 맞았는데도 기절하지 않았다.
조 과장이 잭나이프를 하나 더 꺼내며 욕을 했다.
“이 새끼…. 죽인다.”
“와…. 넌 살만 찌운 건 아니네. 대단해.”
선우현이 아예 박수까지 쳤다.
“나한테 맞고 일어선 걸 보면 맷집이 장난이 아니야. 맷집도 많이 키웠어. 어디서 그렇게 맞고 다닌 거냐?”
“이 새끼. 진짜 죽인다.”
조 과장은 말은 사납게 하면서도 눈알을 굴렸다.
몸무게와 머리 회전 속도는 상관이 없다. 그는 이미 머릿속으로 이대로 싸우면 승리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고 있었다.
계산은 순식간에 끝났다. 부하 셋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계산식에 넣을 상대의 전투력이 너무 높았다.
‘칼을 피하고 받아칠 정도로 눈과 몸이 빨라. 거기다 주먹은 강펀치야. 정면대결로는 절대로 못 이겨.’
조 과장이 물었다.
“어디서 보냈냐?”
“넌 그걸 도대체 몇 번을 물어보는 거냐? 그렇게 궁금하냐?”
선우현이 적당히 둘러댔다.
“기자 한 명이 실종됐다. 너희가 납치했지?”
이렇게 말해둬야 나중에 경찰이 알게 됐을 때 핑계로 쓸 수 있다.
“오경훈 기자? 지금 기자 한 놈 때문에 이렇게까지 한 거냐?”
“내가 오 기자한테 받을 게 있거든.”
조 과장이 눈알을 번뜩였다.
‘틈이 보인다!’
그가 얼른 협상을 제안했다.
“오 기자를 살리고 싶지 않나?”
“살려야지.”
“그러면 이쯤 하고 물러나라. 안 그러면 오 기자는 죽는다.”
“이러고 그냥 갈 거면 뭐하러 쳐들어왔겠냐?”
조 과장이 협박했다.
“오 기자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곳에 가둬놨다. 내가 당하면 오 기자는 죽는다고! 그러니까 당장 물러나란 말이다!”
복도 밖에서 개소리가 들렸다.
“멍!”
선우현이 말했다.
“찾았다는데?”
“뭐?”
“우리 개가 사람을 참 잘 찾아. 오 기자를 멀리 숨겨둔 것처럼 말하더니, 이 건물에 있네?”
덕구파 조 과장은 진짜로 들켰다는 걸 깨달았다. 개소리가 들린 방향이 오경훈을 가둬놓은 쪽이었다.
“젠장….”
선우현이 말했다.
“야. 맞고 항복하면 나중에 상황 설명할 때 귀찮으니까, 그냥 칼 버리고 손들어라. 그래야 팔다리가 멀쩡해.”
눈알을 굴리던 조 과장이 갑자기 옆에 있던 최성철 주가조작 작전팀장을 붙잡았다. 그는 최성철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비켜!”
“너 지금 뭐 하냐?”
“당장 안 비키면 이 새끼 죽인다!”
“아. 혹시 너 혼자라도 도망치려는 거냐?”
“이 새끼 죽인다고!”
최성철이 겁에 질려 새소리를 냈다.
“히익!”
선우현이 말했다.
“그러든가.”
“뭐?”
“그럼 뭐, 내가 그놈 살려주라고 할 줄 알았냐?”
조 과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 경찰이나 정치인 쪽… 아니야?”
“오 기자를 찾으러 왔다니까 믿지를 않네.”
선우현이 아예 손까지 앞으로 흔들었다.
“그래. 어서 찔러라. 찔러. 아. 거긴 좀 조심해라.”
조 과장의 눈동자가 희번덕거렸다.
“그럴 줄 알았다! 역시 넌 이놈을 살려야 해!”
“거기를 푹 찌르면 한 방에 죽으니까 조심하라고. 인질은 살아있어야 가치가 있잖아? 여기저기 푹푹 찔러가면서 나를 협박하려면 살려는 둬야지.”
최성철의 얼굴은 이제 하얗게 질렸다.
“사, 살려….”
조 과장이 선우현을 노려보았다.
“이, 이 새끼….”
“그런데 너 왜 초면에 자꾸 욕이냐?”
조 과장이 선우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 개새끼야!”
“개는 지금 복도에 있는데, 듣는 개 서운하겠다. 쟤가 개의 새끼는 아니거든.”
최성철은 이대로 있으면 목이 찔리든 다른 곳이 찔리든 칼을 맞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조 과장이 선우현을 노려보며 욕을 하느라 칼날이 목에서 조금 떨어졌다.
주가조작 전문가 최성철이 갑자기 두 손으로 조 과장의 팔을 잡고 앞으로 확 밀었다.
칼날이 목에서 조금 멀어졌다. 최성철이 기합을 지르며 팔을 더 밀어냈다.
“이야아압!”
조 과장도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조 과장의 오른팔 힘이 두 팔로 버티는 최성철보다 강했다. 잠깐 멀어졌던 칼날이 다시 최성철의 목을 향해 움직였다.
최성철은 겁에 질렸다.
“으, 으아, 으아아아!”
선우현이 앞으로 쓱 다가가 조 과장의 손목을 잡고 바깥쪽으로 끌어당겼다. 칼날이 최성철의 목에서 멀어졌다.
조 과장이 최성철을 붙잡고 있던 왼손을 놓고 선우현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선우현이 그 주먹도 덥석 잡았다.
조 과장이 기합을 지르며 힘을 썼다.
“이야아아!”
선우현이 조 과장의 두 팔을 아래로 확 밀었다. 조 과장이 버티려고 했지만,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팔이 아래로 쑥 내려가고 무릎이 꺾여 바닥에 꽂혔다.
“끄아악! 이 새끼가!”
“칼은 위험하니까 놓자.”
선우현이 조 과장의 오른손목을 비틀었다. 손목이 부러지며 잭나이프가 빠져나갔다.
“으아악!”
“좀 시끄럽네.”
선우현이 조 과장의 머리를 후려쳤다. 소리를 지르던 조 과장의 몸이 갑자기 축 늘어졌다.
선우현이 조 과장을 옆으로 밀어버렸다.
“그러게 그냥 항복했으면 손목이 날아가진 않았을 텐데.”
방금 죽다 살아난 주가조작팀장 최성철이 옆에 주저앉아 덜덜 떨면서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
“고맙긴. 너도 잡으러 왔는데.”
“네? 나, 나를 왜…. 아!”
최성철이 다급히 손을 흔들며 외쳤다.
“난 아닙니다! 난 저놈들한테 잡혀서 협박을 당했습니다!”
팀원들도 다급히 외쳤다.
“우리도 다 납치됐습니다!”
“시키는 대로 한 것뿐입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지랄들을 해라. 야. 거기 너. 키보드에 손대면 손가락 다 부러뜨려버린다고 했다. 장난 같지?”
“히익!”
키보드에 손을 대려던 팀원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선우현이 최성철에게 물었다.
“야. 스래곤 주가는 어떻게 조작하려던 거야? 여기는 장비가 너무 부실하잖아.”
최성철은 좌절했다.
“다, 다 알고 왔….”
“대답은 너도 여기저기 좀 부러지고 나서 할래?”
최성철이 덕구파 조 과장을 보았다. 조 과장을 이곳에 보내 주가조작팀을 감시하게 한 사람은 스래곤 사장 소정훈이다.
‘다 알고 왔어. 그런데….’
그가 사무실의 컴퓨터들을 보았다.
‘우리가 아직 주가조작을 한 건 아니잖아?’
실제로 한 것과 미수에 그친 건 처벌을 받을 때 아무래도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는 방금 목에 조 과장의 칼을 맞을 뻔했다. 죽다 살아났더니 화가 치밀었다.
최성철이 급히 설명했다.
“여기서 주식을 직접 매매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다 사는 건 아닙니다. 여기서는 주가를 띄우는 작업을 주로 합니다.”
“어떻게 띄우게?”
“여기저기 정보도 흘리고, 주식 리딩방에서 영차영차도 하고….”
“직접 사야 할 때는?”
“IP를 우회하기도 하고, 외부에 둔 장비를 원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너희 개인 자금도 좀 섞고?”
그러려고 했다. 이미 외부에 자금 세팅도 다 해놨다.
최성철이 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아니긴.”
“그, 그래도 우리는 아직 주가조작을 한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미수 정도….”
“그런 건 경찰에 가서 이야기해라.”
최성철은 경찰에 체포되는 건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 차라리 수사에 도움을 좀 주는 게 낫지 않나?’
하지만 그 생각은 금방 버렸다.
‘아니야. 저쪽에는 박재곤 의원이 있어. 어설프게 협조했다가 박재곤에게 찍히면 징역을 길게 받을 수도 있어.’
그는 그래서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런데 그의 팀원은 박재곤의 보복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 지금 스래곤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을 겁니다.”
“알아.”
“우리가 멈춰도, 사전작업해놓은 게 많아서 기사가 쏟아지면 바로 주가가 폭등할 겁니다!”
“폭등 안 해.”
◈ ◈ ◈
박재곤이 기자회견을 계속 진행했다.
지금은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는 시간이었다. 기술적인 질문은 정부에서 나온 국장급 공무원이 대답했다.
비서가 한쪽에서 기사를 검색하다가 화들짝 놀라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액정에 금이 쫙 갔다.
“아, 안돼.”
이미 액정이 완전히 깨져 그 화면으로는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터치도 먹지 않았다.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박재곤이 인상을 썼다.
“뭐지?”
마이크를 든 기자가 급히 질문했다.
“박재곤 의원님. 스래곤과의 공모 의혹을 해명해주십시오.”
박재곤은 그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바람잡이 기자가 떡밥을 뿌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걸 저렇게 버릇없이 대놓고 묻다니. 어느 회사 기자야? 나중에 국장한테 전화해서 한소리 해야겠어.’
박재곤이 속마음을 감추고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허. 공모라니요. 연구 주관 기업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술력만 보고 선정하겠다니까요.”
“하지만 지금 인터넷에 공개된 녹음파일에서는….”
“녹음파일? 무슨 녹음파일?”
박재곤이 비서를 돌아보았다. 비서는 스마트폰 화면만 두드리고 있었다.
박재곤은 비서가 아무것도 보고하지 않는 걸 보고 기자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무슨 녹음파일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는데, 그거 다 음해입니다. 정치를 하다 보면 온갖 음해에 시달리는 건 숙명이겠지요.”
기자가 물었다.
“그러면 공개된 녹음파일 하나를 들려드려도 되겠습니까?”
박재곤은 멈칫했다. 당당하게 말하긴 했는데, 그동안 정치를 하면서 찔리는 짓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그러다 기자가 ‘스래곤과의 공모’ 이야기를 한 것이 생각났다.
‘스래곤 사장과 만날 때는 도청 여부를 철저히 확인했어. 소 사장이 우리 관계를 터트릴 리는 없어. 그러면 같이 죽는 거니까.’
게다가 지금은 생중계되는 기자회견이 아니다.
‘소 사장과 며칠 전에 이야기한 건 녹음파일이 존재할 수 없어. 그것만 아니라면, 어지간한 건 덮을 수 있어. 시간은 충분해.’
게다가 기자는 그 녹음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됐다고 말했다.
‘어차피 공개된 녹음파일이면, 강하게 대처하는 게 맞아.’
박재곤이 더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 들어나 봅시다. 도대체 무슨 음해인지. 아. 어느 한 부분만 잘라 왜곡한 거 말고 앞뒤가 다 나오는 걸 틀어봐요.”
“그러면 제가….”
박재곤의 비서가 갑자기 달려왔다.
“안됩니다!”
박재곤이 인상을 썼다.
“이게 무슨 버릇 없는 짓….”
박재곤이 입을 다물었다. 비서의 얼굴이 창백했다.
박재곤은 뭔지 몰라도 상황이 심각하다는 건 깨달았다.
“무슨 파일인데….”
비서가 스마트폰에 뜬 기사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화면이 깨져 있어서 아무것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박재곤이 말을 바꾸었다. 그는 기자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잠깐만.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 나중에….”
늦었다. 기자가 인터넷에 공개된 녹음파일 중 하나를 스마트폰으로 재생했다. 그 소리가 기자가 들고 있는 마이크에 들어갔다.
기자회견장 스피커에서 박재곤의 목소리가 나왔다.
- 내가 달기지 선행연구 계획을 발표하면, 바람은 누가 잡는 겁니까?